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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Aug 20. 2019

여자 다섯, 12년째 계절마다 여행 중

할머니가 되어서도 우리는 이렇게 떠날 것이다

“우리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렇게 같이 떠날 수 있을까?”


여행지에서 우리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매번 같은 질문을 하고, 누군가가 죽으면 영정이라도 들고 같이 여행해야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며 타박한다.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30대 초중반을 함께 걷는 다섯 명의 여자 사람, 나와 내 친구들, 아니 그보다는 ‘가족’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우리의 여행기다.


천방지축 말괄량이 사고뭉치 여자 다섯.





여행만큼은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 끝나가던 무렵 전학을 갔다. 새 학교에서 처음 사귀었던 친구와 이듬해부터 같은 반이 된 친구, 중학교에 들어서며 친해진 또 다른 친구 두 명, 그리고 나. 여행 멤버는 이렇게 총 다섯 명이다. 처음 만난 친구를 기준으로 하면 우리는 30대가 된 지금까지 벌써 22년이나 함께해온 셈이다. 우리 다섯은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녔으며 한 명만 다른 지역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머지 넷은 또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물론 우리 다섯이 내내 꼭 붙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무리는 각자 붙고 떨어지며 여섯이 되었다가 어느 때는 열셋쯤이 되기도 했다. 우리끼리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는데, 학교 운동장 뒤편 나무 밑에서 서로 따귀를 때릴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험악하게도 싸웠구나 싶다. 어쨌든 우리는 세포가 나뉘었다가 다시 붙듯 여러 번 확장과 축소를 겪었고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을 무렵부터는 지금 모양대로 쭉 다섯 명이 절친으로 지내게 되었다.


미성년을 벗어나면서부터 우리는 각자의 가정에서 아주 약간의 자유를 얻었고 바로 그때부터 단체 여행이 시작되었다. 돈이 없던 그 시절, 우리는 가장 놀기 좋은 여름에 1년에 한 번 여행을 떠났다(너무 춥고 사람들은 집으로 숨어들어 휑한 겨울의 관광지에서 피 끓는 20대 초반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여름 행선지는 대체로 비슷했다. 경포대, 속초 등 주로 동해였다. 매번 운전을 해서 여행을 다니는 지금 그때를 떠올려보면 어떻게 그 무거운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꼭두새벽부터 터미널에 모여 버스를 타고 떠났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새삼 그 열정에 감탄한다.


누리, 은혜, 노들, 수련, 예원,  다섯 명의 이니셜을 딴 모임 이름.


아무튼 그때는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려서,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거나 숙소에서 제공하는 픽업 서비스를 이용해 이동하곤 했다. 바다에서 계속 물놀이를 하다가 잠시 쉬고, 다시 밤바다를 즐기던 그때 우리의 숙소 기준은 정말 ‘잠만 잘 곳’이었다. 바다와 가깝고, 가격이 싸며, 다섯이라는 인원을 감당할 수 있는 곳. 신나게 놀고 나면 컵라면으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탱탱 부은 눈으로 다시 터미널에 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그런 여행을 했는데 쉬는 것도 어쩜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강행군이었다.


그런 방식의 여행이 종말을 맞게 된 것은, 너무 당연하게도 우리가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20대 중반 무렵부터였다. 여행 때마다 쌈짓돈을 꺼내는 대신 체계적으로 곗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시작은 월 3만 원, 지금은 월 5만 원씩 모은다. 1년에 한 번 하던 여행은 친구들의 생일에 맞춰 네 번으로 늘었다(나와 생일이 똑같은 친구가 있어 다섯 번이 아니라 네 번이다). 시기도 얼마나 적절한지 3월, 6월, 8월, 12월이라 봄과 여름, 겨울을 고루 즐길 수 있다. 가을에 여행을 못 하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중간에 틈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음 여행을 더 기대하게 되니까. 동해 일색이었던 여행지도 가평, 양평, 무주, 양양, 포천, 횡성, 강화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사이 우리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 같은 동네에 모여 살던 친구들은 서울과 의왕, 오산으로 흩어졌다. 가장 늦게 일을 시작한 나를 포함해 다섯 명 모두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고, 승진하고, 회사를 옮겨 다녔다. 여행을 갈 때마다 애인이 바뀌기도 하고 몇 년을  여행하는 동안 한 명만 꾸준히 만나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음 여행에서 깜짝 결혼 발표를 하거나 임신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변화를 함께 맞으며, 그 와중에도 여행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 기어코 꼬박꼬박 여행을 떠나왔다. 어쩌면 우리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였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 떠난 글램핑.
이번 여행도 함께해준 고마운 친구들.





강화도에 갈래?


올해 우리가 떠났던 두 번째 여행지는 강화도. 다섯 명 중 유일하게 아기가 있는 친구의 생일을 기념하는 여행이었다. 각자의 집에서 차로 두 시간 이상 걸리지 않는 곳을 고민하다가 마침 꼭 가보고 싶었던 숙소를 찜해두었던 기억이 떠올라 그렇게 정했다. 


이번 에어비앤비 숙소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2년 전쯤 한 매거진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마침 강화도 취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른 아침부터 일정이 잡혀 있어서 전날 미리 강화에 도착해 있어야 했다. 어디에 가면 좋을까, 이리저리 인터넷으로 강화 게스트하우스를 찾던 와중에 ‘화도공간’이라는 멋진 공간을 보았고 화도공간을 만든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새로 ‘순숨’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디자인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혼자 하는 여행도 좋아한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작은 것들을 발견하는 데에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운전을 못하는 이유도 한몫한다). 내 속도대로 걷고,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마음이 가는 곳에 오래 눌러앉기도 하는 그런 여행. 그래서 번화한 곳에서 조금 비켜 사람이 붐비지 않는 곳이라거나 동네의 정취를 잔뜩 느낄 수 있는 오래된 집, 자연이 가까운 곳, 그러면서도 생활자의 취향과 일상이 느껴지는 장소를 골랐고 또 그게 좋았다. 다른 사람의 일상에 잠시 끼어들어 소소한 것을 발견하는 기쁨. 순숨은 꼭 그런 곳이었다. 당장이라도 예약하고 싶었지만 일 때문에 잠깐 머물다 가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언젠가 혼자 책 한 권 들고 며칠 푹 쉬다 와야지’ 하며 잔뜩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이 느낌에 완전히 반해버렸던 강화도 에어비앤비



언젠가 혼자 가리라 마음먹었던 곳을 친구들과의 여행에 꺼내놓은 이유는 어느 때부터인가 같이하는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을 알아채서다. 낯선 곳에서 익숙하고 편한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고, 수다를 떨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 이런 여행은 특별하면서 또 때로는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여느 주말 같기도 했다. 가끔 쉬는 것도 너무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을 마주한 뒤로는 이렇게 여행인 듯 여행 아닌 여행 같은 여행에 더 마음이 쏠리게 되었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사는 거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내 ‘역시 혼자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 하는 식으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과 서로 취향을 나눌 기회를 갖는 것도 역시 근사하다.


숙소를 예약하면서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한 차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숙소의 최대 인원은 성인 네 명과 유아 한 명이었는데 예약할 때만 해도 모두 함께 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최대 인원을 초과하게 되어 예약이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강화도에 가는 이유의 8할이 이 숙소여서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우리의 사정과 여행의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거절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당연히 했기 때문에 메시지 말미에는 거절하셔도 괜찮다, 다음에 인원수에 맞춰 다시 찾겠다고도 말해둔 터였다. 그러면서도 꼭 가고 싶다는 바람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호스트는 무척 친절하게, 공간이 좁아 게스트가 불편할 수 있다며 우리를 걱정해주었고 그 정도는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나는 진심으로 괜찮다고 전했다. 찾아줘서 오히려 고맙다는 호스트의 메시지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조용한 마을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도란도란 살아가는 호스트의 정이 단 몇 개의 메시지에서 고스란히 전해졌다.




별거 없이 여행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우리는 정말 별것 하지 않았다. 숙소 체크인 시간 한참 전에 미리 만나 회포를 풀다가 적당히 입이 아파올 때쯤 숙소로 들어가 2차전을 펼치는 식이다. 우리는 차를 나눠 타고 미리 정해둔 강화도의 한 생선구이집에서 만났다. 다들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편이지만 생선구이를 먹지 않는 친구가 있었고, 마침 그 친구가 웨딩 촬영으로 여행에 합류하지 못하게 되면서 메뉴를 그것으로 정했다. 아쉬운 마음은 생선구이로 달랜다(!)는 게 우리의 목적이었다. 아무튼 한가득 상이 차려졌고 자연스럽게 누구는 물을 따른 뒤 수저를 놓고, 누구는 생선을 굽고, 누구는 뼈를 바르고, 누구는 맛있게 먹었다. 누가 뭘 하겠다는 말이 없어도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역할이 나뉜다. 불만이나 불평은 끼어들 틈이 없다. 그사이 우리의 이야기는 가족에서 연인, 회사, 동료, 과거, 미래를 넘나들며 시시콜콜 계속된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나면 당연히 카페에 간다. 쌓여온 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 정말 많은 카페에 함께 다녔는데, 이제 웬만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곳은 다 가봐서 다들 큰 욕심이 없다. 공간이 널찍하고, 붐비지 않으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들어도 눈치 보이거나 타박받지 않을 곳이라면 충분하다. 그래도 꽤 멀리까지 나왔는데 서울에서 흔히 보는 곳은 아니면 좋겠다 싶어 한옥 카페를 골랐다.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과 처마 끝 풍경 소리가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요가에 푹 빠져 사는 나는 풍경이 예쁜 곳에서 몸을 늘이고 허리를 꺾어대며 자세를 취하고 친구들은 이것도 해봐, 저것도 해봐 하며 연신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주었다. 물론 예쁜 사진을 건져주려는 건 아니다. 99장의 엽(기)사(진)와 1장의 프(로필)사(진). 예전에는 엽사만 보면 삭제하느라 바빴는데 요즘은 그 사진 속에 진짜 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잔뜩 찌그러진 얼굴에는 말도 못 하게 우스운 순간이 담겨 있고, 눈을 반쯤 감은 채 쭉 나와 있는 입 모양에는 얼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 평소에는 잘 짓지도 않는 웃음과 표정, 포즈를 찍은 사진보다는 그쪽이 훨씬 재미있고 순간을 기억하기도 좋다. 어디 올릴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는다.


한옥 카페의 처마 끝 풍경.
내가 요가 포즈를 취하면 친구들이 사진을 찍어주다가 곧 이런 식으로 방해한다.
왼쪽 사진을 찍어주다가 오른쪽처럼 눕혀버리기도 한다.



근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볼 법도 한데 이제는 이야기를 조금 더 하는 게 좋아 굳이 이곳저곳 옮겨 다닐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얼른 숙소에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침대에 누워 좀 쉬다가 저녁이나 차려 먹고 놀자는 게 우리의 계획이다.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 1박 2일로 여행을 하는 우리의 일정에서 토요일 밤 <그것이 알고 싶다> 시청을 빼놓을 수 없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먼저 마트에 들렀다. 여행지에서 숯을 올려 바비큐를 먹는 것은 괜히 손이 많이 가 안 한 지 꽤 되었다. 대신 자주 먹는 된장찌개를 포장하고 마트에서 김과 햄‧참치 같은 반찬거리와 과일‧과자‧라면을 조금 산다. 김치와 쌀은 집에서 미리 챙겨 온다. 그렇게 집에서나 먹는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서 특별할 것 없는 저녁을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는 게 새로운 코스가 되었다. 그날도 마트에서 여러 반찬거리를 사고, 여행에 오지 못한 친구가 미안하다며 케이크값으로 보내준 돈으로는 과일을 샀다. 멜론에 초를 꽂아서 멜론 케이크를 만들자! 빵은 너무 배부르니까. 메뉴를 구성하는 것마저 척하면 척이다.


숙소에 들어갈 준비를 모두 마치고 나니 드디어 체크인 시간이다. 이제 호스트를 만나러 갈 차례. 차 두 대가 좁은 시골길을 나란히 달린다. ‘드론을 띄워서 사진 찍으면 참 멋있겠다’ 생각한다. 처음 와보는 길에 내비게이션과 도로를 번갈아 보며 “여기 맞아?” 하는 것은 앞차나 뒤차나 매한가지. 숙소 주변에서 가장 큰 건물인 것 같은 초등학교 앞에 차를 세우고 호스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린다. 초등학교 옆으로 지붕이 낮은 집이 있었는데 ‘혹시’가 ‘역시’였던 것이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우리를 맞아준 호스트는 우리 엄마 또래쯤 되어 보이는, 소녀 같은 인상의 여성분이었다. 왠지 따뜻한 분일 거라고 생각했던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숙소 역시 호스트와 딱 어울리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맞춤복 같았다. 가정집의 방 한 칸을 곱게 정돈한, 따뜻한 느낌의 패브릭과 장식과 향이 곳곳에 스며든 공간이었다. 자개장은 옛날 할머니 댁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고 아기자기한 소품은 정겨웠다. 우리는 모두 “우와” 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좁은 계단으로 이어진 작은 옥상에 올라보니 집 바로 옆의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가을쯤에는 이곳에 누워 산들바람을 맞으며 책을 실컷 보고 쉬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리가 묵었던 에어비앤비 숙소 내부.
숙소 옆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준다.



방에 조명이 워낙 많아서 호스트는 버튼의 위치를 세세히 알려주었고, 방과 이어져 있는 비밀 공간을 따로 보여주며 여기도 괜찮으면 앉아서 원하는 책을 봐도 된다고 안내해주었다. 향이 다 타고 남은 재를 보니 집에서 자주 이용하는 공간인가 보다. 그분의 느긋한 생활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한참 숙소 구경에 푹 빠져 있던 우리는 그제야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두지 않은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주방으로 갔다. 주방을 함께 써야 해서 호스트는 미리 냉장고 칸 두 개를 비워주었고 우리는 하룻밤 먹을 양식을 그곳에 고이 넣어두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날 천 날 이야기해도


친구들 중에는 내가 사회생활을 가장 늦게 시작해서 다른 친구들이 모두 직장을 잡았을 즈음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도 학창 시절에 친했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살기에 바빠 연락도 안 하게 되었다고, 누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알 수도 없다고. 지금의 친구들은 모두 동네 이웃이었거나 일터에서 만난 사람이거나 해서 어린 시절의 구체적인 추억을 나눌 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다들 그렇게 살아서, 엄마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그게 나름 안심이 된다고, 그러니 너도 나중에 친구들과 연이 끊기더라도 많이 속상해하지는 말라고 위로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는 다른 세대야! 휴대전화로 맨날 연락할 수 있어!” 하며 엄마의 말을 받아쳤다.


그 말이 머쓱하지 않게 친구들은 내가 시험공부를 하며 예민해져 있을 때에도 잘 기다려주었고, 여러 번 시험에 떨어져 결국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 진심으로 기뻐해주었다. 그 후 누군가가 회사를 옮기고, 연애를 하고, 이별을 하고, 또 새롭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모든 크고 작은 사건 사이사이에 우리는 서로의 든든한 지지자, 새로운 가족이 되어 길고 굵은 인연의 끈을 이만큼 이어오고 있다. 이 정도 되니 이제 엄마는 “백날 천 날 이야기하는데도 아직도 할 얘기가 남았냐”고 타박을 주는 지경에 이르렀고, 나는 “그러게” 하면서도 정말 백날 천 날 이야기해도 소재가 마르지 않는 우리의 시트콤적 인생을 대단하게 느낀다.


사진 찍을 때 절대 가만히 있지 못하는 둘.



밤새 이야기할 듯 말하다가도 갑자기 모두 말을 멈추는 순간이 온다. 배고프다는 신호다. 말할 기력이 달리는 상태. 누군가가 꺼낸 “밥 먹자” 한마디에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릇과 수저를 세팅하는 사람, 조리 도구를 챙겨 요리에 돌입하는 사람, 밥을 안치는 사람, 과일을 자르는 사람, 이따가 할 설거지를 대비해 체력을 비축해두는 사람으로 역할은 자연스럽게 나뉜다.  나 뭐 해야 해?” 같은 어리둥절함과 혼란은 끼어들 틈이 없다. 이보다 더 완벽한 한 팀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래서 “우리 나중에 사업 같이하면 좋겠다” 싶다가 “우리는 OO가 안 맞아서 사업하면 망해. 회사나 잘 다녀” 하는 현실감각까지 갖췄으니 두말하면 입 아픈 팀워크가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잘 차려놓은 한 상을 앞에 두고 경건하게 사진을 찍은 뒤 전투를 치르는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 한입 넣을 때마다 “이야, 이거다 이거” 하면서. 라면을 먹으면서는 황태라면 끓이는 법을 이야기하고, 된장찌개를 먹으면서는 “지난번 포장해 간 된장찌개는 부모님이 잘 드셨냐” 서로 안부도 묻고, “복분자주보다 오디주가 더 맛있네. 다음에는 오디주만 사자” 하는 식으로 장보기 팁을 깨닫기도 한다. 음식과 이야기로 한껏 배를 불려놓은 다음에는 대망의 생일 케이크 커팅식을 한다. 보통 3분 정도면 끝나기 때문에 ‘대망의’라는 수식어를 붙이긴 좀 뭐하지만 어쨌든 초에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빌고, 다시 후 불어 초를 끄는, 그 와중에 사진도 찍어야 하는 등 여러 일이 중첩되어 있어 나름 공수가 든다. 이번엔 멜론 케이크와 각종 과일로 한껏 장식해 의식을 치렀다.


늘 이런 식으로 푸짐하고 손쉽게 차려 먹는다.
멜론 케이크와 과일 한 상.



“사진 다 찍었지? 그럼 나 화장 지운다.”


누군가가 이 말을 던지면 본격적으로 늘어지기 시작한다. 침대와 바닥에 각자 구역을 만들어놓고 서로의 다리나 배를 베개 삼아 누워 낮보다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고민이 있다거나, 말할까 말까 망설였다거나 하면서. 미주알고주알 밤하늘에 별을 수놓듯 말의 흐름을 쫒아가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시간이 오고,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입을 잠깐 쉰다. 그사이 피곤한 친구는 꾸벅꾸벅 졸다가 결국 침대로 기어가고 나머지는 텔레비전 앞에 남아 “진짜 세상 말세다” 같은 말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디에 가든 요가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지만 하루를 마무리하기엔 고통스러운 자세다.



여행은 살아가는 거야


한밤의 꿈 같은 우리의 작은 파티가 마무리된 다음 날 아침, 늦게까지 늘어지게 잘 법도 한데 회사 생활이 몸에 밴 친구들은 7시쯤 슬슬 일어나 한 명씩 또 모여든다. 말소리에 다른 사람이 또 깨고, 그렇게 8시면 모두 정신이 말똥말똥해져서는 어제 먹다가 남은 과자나 과일을 들고 와 댓바람부터 한차례 이야기의 장을 펼친다. 그러고 나면 보통은 아침으로 라면을 끓이거나 일찍 문을 여는 근처 식당에 들러 밥을 먹는데 이번 숙소에는 근사한 조식이 포함되어 있어 그걸 먹고 가기로 했다.


새벽부터 방 옆에 붙어 있는 부엌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린다. 도마에 칼이 탁탁탁탁 하고 닿는 소리, 뭔가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 아, 이제 밥시간이 되었나 싶었는데 그 소리가 제법 길게 이어진다. 어림잡아 두 시간은 지난 것 같다. 사실 우리가 갔던 대부분의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은 빵과 잼, 커피 정도여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닭을 푹 곤 육수에 말아낸 국수, 담백하게 삶아낸 닭과 감자, 퍽퍽한 닭 살을 잘게 찢어 구운 야채와 곁들여 먹게 내준 샐러드까지. 두 시간을 길게 느낀 아까와는 다르게 이렇게 푸짐한 한 상을 두 시간 만에 뚝딱 차려냈다는 게 놀라웠다. 집 밖에서 이렇게 정성스러운 아침을 맞은 건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호스트는 가족끼리 가끔 만들어 먹는 음식으로 차렸는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며 겸손해했지만 눈과 코, 입을 모두 만족시키는 소담한 밥상이었다. 양도 무척 넉넉해서 다들 “배부른데 계속 먹게 된다”며 좀처럼 수저를 내려놓지 않았다.



먹기 아까웠던 아침.



한껏 부른 배를 부여잡고 방으로 들어왔다. 짐을 챙기고, 간단히 씻고, 우리가 썼던 물건을 정리한 다음 다시 현실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지내는 동안 불편함 없이 푹 쉴 수 있는 환경에 엄청난 밥상까지 받고 나니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더 치우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차에 올라 우리는 좀 더 익숙한 곳으로 다시 방향을 잡는다. 유쾌했지만 모두가 함께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던 여행은 이렇게 또 지나간다.


가끔 생각한다. 서로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인생을 견디고 또 즐거워했을까. 시간이 많이 흘러 할머니가 되었을 때 우리가 목격한 서로의 청춘은 어떻게 기억될까. 그때도 마찬가지로 청춘이라고 말하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어 있겠지? 일반적으로 여행은 일상에 가끔 찾아오는 이벤트나 전환점이지만 다섯 명이 함께 떠나는 여행은 이제 그 자체로 새로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시간을 들여 견고히 쌓아 올린 것이 무너지는 때를 상상하면 마음이 아득하고 서러워지기도 한다. 여행은 새로운 삶을 경험해보는 것이면서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우리 같이.


숙소에서 한 컷.






에어비앤비 작가, 성노들

: 여행을 좋아합니다. 생각이나 감정을 글로 옮깁니다. 요가도 열심히 합니다. 보기만 해도 울고 싶어지는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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