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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Aug 23. 2019

영화와 여행과 오로라
: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오로라를 보고 싶다면, 노르웨이 트롬소(Tromsø)에서!  



영화와 여행의 상관관계


고등학생 시절 나에게 처음으로 영화를 가르쳐준 선생님은 말했다. “영화란 주인공이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고, 그것을 성공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다.”. 대학교 교수님도 이런 얘기를 하셨다. “비극은 집을 떠나 여행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고, 집에 돌아온 인간은 길을 떠나기 전과는 달라진 자신을 느낀다.”. 종합해 보자면 이렇다. 주인공에게는 어려운 목표가 있고, 그것은 집 혹은 고향에서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주인공은 자의 혹은 타의로 집을 떠나고, 많은 어려움을 겪은 후 목표에 근접한다. 영화에 따라 주인공이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있지만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떠나기 전과는 달라진 자신을 느낀다. 이것이 그리스 비극부터 반복되어왔고 현재까지도 유효한 영화의 플롯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들의 말은 영화뿐 아니라 여행의 이유와 목적을 꿰뚫는 이야기였다. 우연한 계기로 여행을 처음 취미로 삼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여행은 온갖 고생과 지출을 수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스 비극의 등장인물들처럼 집에 돌아오는 여정이 운명에 반하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집을 떠나고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며 서서히 영화와 여행의 공통적인 핵심을 깨우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오로라를 보겠다고 북극으로 떠나는 여정도 하나의 모험으로 친다면 나의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뜬금없지는 않다는 얘기다.



갑자기 북유럽으로 떠나게 된 경위


나의 취미는 항공권 최저가 사이트에 들어가서 괜히 여기저기로 가는 항공권을 검색해보고 가격을 비교하는 것인데, 2018년의 마지막 달은 폴란드에서 보내리라 결정한 시점에 폴란드에서 노르웨이 트롬소(Tromsø)로 바로 가는 비행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트롬소는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북극 중에서도 따뜻한 곳이라는 정보도 함께. 몇 년 전 친구의 친구가 여행에서 오로라를 봤는데, 누운 자리에서 눈물을 줄줄 흘릴 만큼 아름다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미비한 통장 잔고와는 달리 계획만은 창대했던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남은 경비와 여행에 필요할 비용을 가늠하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경유하는 비행기를 놓치고 밤늦게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등 온갖 역경을 거치고 바르샤바(Warszawa)에 도착했을 때, 나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 바르샤바 숙소 도착 첫 날

새 집에서 하루를 조용히 쉬고, 트롬소로 가는 날 아침이 밝았다. 바르샤바에서 트롬소로 가는 비행기 직항이 있는 그단스크(Gdańsk)로 가려면 5시간 동안 버스를 타야 한다. 아침 6시에 맞춰둔 알람에 깨자마자 한 생각은 ‘아... 가기 싫다......’. 오전 7시 집에서 출발해 트롬소 공항에는 밤 9시에 도착하는, 그야말로 이동하는데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런 데다가 유럽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또 장시간 이동을 하려니 여행의 설렘보다는 부담과 피로가 더 크게 다가왔다. 또한 배낭여행객들에게 악명 높은 북유럽, 그것도 트롬소의 물가는 버거킹 햄버거 세트가 만 오천 원이 넘는다는 증언으로 나를 잔뜩 겁먹게 했다. 게다가 러시아에서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비행기 표를 급하게 새로 사야 했고, 응당 오로라 투어에 투자해야 했을 17만 원을 홀랑 까먹는 바람에 나의 지갑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아무튼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기회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어 거의 울면서 출발을 했다. 가방에는 폴란드에서 먹던 빵, 치즈, 라면 두 개, 사과 한 알까지 소중히 챙겨서. 



길잡이와 첫 번째 행운

              

플릭스 버스(Flix Bus)를 타고 그단스크에 도착해 점심으로 KFC 햄버거를 먹었다. 그것도 앞으로의 3일간 제대로 먹는 마지막 식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무려 치킨이 같이 나오는 박스세트로. 당시 그단스크 중앙 기차역은 공사 중이어서 나 같은 여행객이 전광판으로 기차와 플랫폼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시피 했는데, 절박한 마음에 플랫폼에서 중년 부부를 붙잡고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이 부부는 부인 쪽이 기차를 타고 떠나는 날 남편이 배웅 온 것이 었는데, 부인이 탈 기차가 떠나기 직전에 내가 말을 건 탓에 아저씨와 나는 나란히 서서 기차를 타고 유리창에서 손을 흔드는 아줌마를 배웅했다. 아저씨는 영어를 전혀 못했고, 나는 폴란드어를 전혀 못했다. 내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자 아저씨는 나를 안심시키면서 내 짐을 직접 들고 플랫폼에 들어오는 기차 역무원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내가 탈 기차가 오고, 짐을 싣는 것을 도와준 아저씨가 역무원에게 내가 내릴 역이 되면 꼭 이 아이에게 말해달라고 부탁까지 해주었다. 


▲ 내가 먹은 햄버거 세트                                                                            ▲ 그단스크 중앙역

기차에서 창밖으로 내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있는 아저씨와 손을 흔들며 헤어졌고, 덕분에 무사히 트롬소 공항에 도착했다. 밤늦게 작은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착륙을 하는데,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비행기가 착륙을 하려고 고도를 낮출 때 도시 위에 떠 있는 오로라를 본 것이다. 아주 흐릿한 녹색의 연기 같은 것이 구름을 뚫고 내려왔을 때 보이기 시작했고, 살짝 진해지다가 비행기가 도시에 가까워지자 조명 불 빛에 가려 스르르 사라졌다. 오로라는 휴대폰 카메라로는 찍히지 않아 남아있는 사진은 없지만, 당시에 느꼈던 기분 좋은 흥분과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 트롬소에 도착한 이 날은 내 생일이었다. 하루 종일 걸리는 장시간의 이동, 북유럽 여행의 부담이 상당해서 내 생일이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는데 깜짝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오로라는 보고 싶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전생에 착한 일을 많이 해야 볼 수 있다 는 여행객들의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많은 부분을 운에 기대야 하는데 이렇게라도 봤으니 오로라 투어에서 혹여 못 본다고 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 트롬소의 거리 풍경들

공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에 눈이 소담히 쌓여있는 작은 집들, 크리스마스 케이크 위의 설탕 장식 같은 아기자기한 설경을 보고 있으니 피곤한 상태였는데도 기분이 마구 좋아졌다. 눈다운 눈을 보지 못한 러시아와 폴란드를 거쳐, 이제야 비로소 겨울 여행이라는 실감이 났다. 



여행자의 안식처


에어비앤비에서 찾은 집은 호스텔보다 저렴하고, 무엇보다 1인실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낯선 곳에 막 도착해서 언어도 다르고 어떨 때는 성별도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잠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피곤한 일이다. 그리고 공용 주방이 있었기 때문에 경비 절감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여행을 할수록 자신을 알아간다고 하는데, 내가 얻은 나에 대한 진리는 나는 개인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날 가장 당황했던 순간은 짐을 풀고 곧장 샤워를 하러 갔을 때, 불이 켜지지 않고 문이 잠기지도 않는 샤워실과 마주했을 때다. 당황해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내니, 내가 도착한 날 샤워실 전구가 나갔고, 동시에 이전에 묵은 게스트가 열쇠를 잃어버리고 떠났다고 한다. 나는 어두운 샤워실에서 휴대폰 플래시를 켠 채, 문에 ‘IN USE’라고 쓴 종이를 붙이고 씻었다. 다행히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호스트가 말하기를 내가 도착한 날이 토요일이라 월요일이 될 때까지는 열쇠 집들이 열지 않고 전구도 살 수 없다고 했다. 월요일이 되자 호스트는 전구를 갈아주었다. 첫날은 ‘북유럽의 워라밸이란 이런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잠이 들었다.


▲ 트롬소에서 머물렀던 에어비앤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겨울의 트롬소는 낮 12시에 해가 뜨고 낮 1시에 해가 진다. 그러니까 정오의 한 시간 정도만 사위가 밝고 낮 3시부터는 완전한 밤처럼 어둡다고 이해하면 된다. 둘째 날은 일요일이어서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고 마트도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설렁설렁 시내를 구경하고 숙소에 돌아와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쉬었다. 도시 자체가 춘천보다도 작고, 주말이라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다.


3박 4일 중 하루 저녁을 오로라 투어에 할애하기로 했는데, 트롬소 공식 관광 사이트에서 프로그램을 확인하다가 호스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공식 사이트에서 가장 저렴한 투어인 1000크로네(노르웨이 화폐 단위, 당시 한화로 13만 원 정도)로 예산은 잡았지만 나는 3박 4일 일정 중 어떤 날에 투어를 해야 하는지, 어떤 투어가 좋은지 정보가 없어 호스트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연락이 닿은 호스트는 자신이 오로라 헌터라며 원한다면 개인 투어를 진행해 줄 수 있다고 했다. 호스트가 이틀 중 오로라를 볼 가능성이 높은 날을 정해서 알려주면 당일이라도 투어를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로라 투어 말고는 다른 계획이 없던 내가 흔쾌히 승낙하자 호스트인 카트(Kat)는 내가 마지막으로 머무는 밤인 월요일이 좋겠다며 간식과 차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덕분에 나는 오로라 지수(오로라의 강도를 1부터 10까지 숫자로 예보하는 시스템. 숫자가 높을수록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높다.)나 날씨에 신경 쓰지 않고 모든 것을 카트에게 맡긴 채로 기다릴 수 있었다. 며칠씩이나 투어에 나갔지만 오로라를 못 봤다는 여행기를 참고하면서 만약 오로라를 못 본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완전히 운에 맡긴다는 생각은 어떤 측면으로는 내 운을 시험해본다고도 볼 수 있어서 당일까지 ‘과연 볼 수 있을까?’하는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루기 겁나 힘든 목표와 조력자

▲ 트롬소 다리에서 본 풍경

오로라 투어 당일, 시내에 나가 투어리스트 센터를 구경하고 트롬소 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와중에 하늘에 구름이 점점 걷혔기 때문에 ‘뭐야 진짜 오로라 보는 거 아니야?’하며 혼자 설레발을 쳤다. 오로라를 보기 위한 조건은 여러 개가 있는데, 일단 비나 눈이 오면 안 되고 구름이 낀 날도 보기 어렵다. 만월인 날은 달빛에 오로라가 약해지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제약이 많은 데다 조건이 딱 맞는 날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이 때문에 오로라는 전생의 선행에 달렸다는 농담이 생겼나 보다. 


저녁 8시에 집 앞으로 호스트 카트가 데리러 왔는데 카트의 승용차를 타고 단둘이 투어를 진행했고 간식, 식사, 카메라 모두 카트가 준비해왔기 때문에 나는 정말 준비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로라를 보겠다는 희망찬 마음 정도? 카트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으로 굉장히... 북유럽스러운 사람이었다. 이 북유럽스러움이 뭔지는 아직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영어를 쓸 때는 좀 더 친화적인 사람이 되긴 하지만 대체로 낯선 사람을 어려워하는데, 나의 친화력과는 상관없이 편안하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오로라 헌터라는 낭만적인 직업, 현지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라는 점이 무한 신뢰를 샘솟게 했다. 


오로라를 보려면 인공 불빛이 전혀 없는 곳까지 가야 한다. 시내를 벗어나 1시간가량 차를 달리면서 카트는 이것저것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줬다. 일조량이 적은 곳일수록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것, 노르웨이의 경우 성인이 되어도 나이별로 살 수 있는 술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맥주-와인-보드카 등 도수 별로 연령이 올라간다.), 트롬소의 집들의 창가에 놓여있는 촛불은 이곳에서 여행자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한다는 환영의 의미인 것 등등.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가로등도 집도 어떠한 인공 불빛도 없는 도시 외곽에 도착했다. 카트는 그곳에서 자동차 시동을 끄고 헤드랜턴을 주면서


 여긴 아무것도 없는 곳이야. 너는 아무것도 없는 곳의 한가운데에 있는 거지
(You are in the middle of nothing)

이때의 ‘Middle of Nothing’이라는 말은 오래도록 내게 특별하게 남았다.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는 이차선 도로의 한쪽에 차를 세워두고 하늘을 보니 시야의 끝에서 끝까지 별들이 가득 반짝거렸고, 여러 차례 별똥별이 떨어졌다. 내가 살면서 별똥별을 처음 봤다고 하자 카트가 내 옆에 서서 함께 별똥별을 찾아줬다. 한 번은 서로 등을 지고 각각 다른 별똥별을 보며 동시에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인간이라곤 우리 밖에 없는 곳에서 별들의 소멸을 지켜본다는 것은 아주, 아주 근사한 일이었다. 이때 오로라는 약한 연기처럼 산 뒤쪽에서 뻗어 나왔는데,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냄새도 없는 곳에 우리 둘만 있다는 점이 오로라를 더 신비롭게 보이도록 했다. 

▲ 아무도 없는 곳에서 본 오로라
▲ 지하 벙커에서 바라본 오로라

이날 우리는 네다섯 군데의 포인트에 갔다. 그중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만들었다는 지하 벙커 근처에서 본 오로라는 정말 아름다웠다. 사실 오로라는 사진에 훨씬 잘 담기고 눈으로 볼 때는 사진보다 색도 형태도 비교적 약하다. 그런데 여기서 본 오로라는 정말 선명했고, 어떤 것은 연해지고 어떤 것은 강해지는 것이 육안으로 전부 보일 정도였다. 카트의 말처럼 오로라는 불과 같아서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했다. 사진을 찍는다고 해도 그 움직임은 잡아낼 수 없다. 


마지막으로는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해변으로 이동했는데, 이때의 오로라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우리 옆을 따라올 정도로 빠르고 강했다. 마치 용이 하늘을 날면서 입을 벌리는 것 같이, 차를 따라오면서 앞부분이 용의 아가리처럼 두 개로 나눠질 때 정말 멋져서 둘 다 소리를 꽥 질렀다. 


약한 오로라는 초록빛을 띠고 강해질수록 분홍, 빨강 빛이 돈다고 하는데 이때는 아랫부분에 분홍빛이 선명히 돌았다. 카트는 이번 시즌(트롬소에서는 11월부터 3월까지 오로라 관측이 가능하다.)에 분홍색까지 보인 것은 처음이고, 내가 운이 좋다고 말해줬다. 마지막 장소인 해변 모래사장에 도착해 차 트렁크에서 장작을 꺼내 모닥불을 피우고, 따뜻한 코코아를 마셨다. 


▲ 바다와 오로라

불을 쬐는 동안은 빛이 강해 오로라를 볼 수 없다. 우리가 불 앞에서 쉬는 동안 오로라도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여러 겹을 껴입어서 추위는 괜찮았지만 발가락이 깨질 것처럼 시렸는데 불을 쬐면서 발을 녹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카트가 캠핑용 음식과 함께 쇠숟가락을 가져와서 우리는 묵직한 숟가락으로 팩에 담긴 치킨 카레를 먹었다. 사위가 고요해서 가장 큰 소리는 내가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모닥불이 딱딱거리며 타는 소리 정도였다. 이때의 완전한 고요에는 특별한 점이 있었는데, '이 연고도 집도 절도 없는 나라에 내가 결국 와서 앉아있구나' 하는 묘한 감동과 '상상조차 닿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곳에 있구나' 하는 실감이 공존했던 것 같다. 


파도도 치지 않는 조용한 해변이었는데 가끔 먼 바다에서 첨벙하고 물이 요동치는 소리가 났다. 카트는 그게 고래 소리라고 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고래를 흠모해 왔지만 이번 기회에는 경비 문제로 보지 못했는데, 트롬소에는 야생 고래의 서식지로 배를 타고 나가는 고래 투어도 있어(비록 고래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오로라만큼이나 운에 맡겨야 하는 투어지만) 언젠가 한 번은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밥을 먹고 불을 쬐면서는 카트와 신화에 대한 대화를 했다. 내가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겨울 별자리 오리온자리를 카트에게 가르쳐주고 아르테미스와 오리온에 대한 신화 이야기를 해줬는데, 내가 신화를 좋아한다고 하자 카트는 북유럽 신화에 대해서도 조금 얘기해주었다. 고대 사람들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천상에 사는 전사 발키리들의 갑옷에서 반사된 빛이 오로라라고 믿었다고 한다. 비현실적으로 조용하고 멀리에서는 전설의 동물 고래가 헤엄치고 있는 와중에 듣기에는 지나치게 황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해변에서 먹은 것과 불을 정리하고 다시 한 시간여를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잠에 들면서 계속 그날 봤던 비현실적인 풍경만을 생각했다. 오로라나 밤하늘, 내가 지금까지 봤던 것과는 다른 바다를 생각했고 꿈에 나왔으면 해서 고래도 상상했다.


▲ 나와 에어비앤비 호스트 카트                                                                    ▲ 카트가 챙겨준 치킨 카레




집으로의 회귀


다음 날은 트롬소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밤 9시에 그단스크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낮 동안에 트롬소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야경을 보고 싶었던 것에 비해서는 조금 일찍인 12시쯤 정상에 도착했는데, 오른쪽으로 분홍빛 노을이 지고 있었다. 다른 곳을 여행할 때는 그저 ‘외국이구나, 유럽이구나, 예쁘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여기서는 ‘지금 이게 현실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서서히 구름이 흐르고 분홍빛 노을이 남색이 되어가는 하늘, 발밑에서 불이 하나씩 켜지는 섬의 풍경은 새로운 경이로움이었다.

▲ 트롬소 전망대에서 본 시내 전경

밤이 되어 비행기를 타고 폴란드 그단스크로 돌아왔고, 폴란드 편의점에서 트롬소 여행 동안 비싸서 먹지 못했던 핫도그를 무려 오렌지주스와 함께 먹는 사치를 부리는 것으로 나의 첫 북유럽 여행을 마무리했다. 


글을 쓰는 지금은 서울의 더운 여름, 지난겨울의 사진과 일기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지금 이 여행기를 쓴다는 것이 호사스럽게 느껴진다. 부디 글을 읽는 이들에게도 당시의 시원함과 고요한 아름다움이 전해지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음악을 소개한다. 라이(Rhye)가 부른 <오픈(Open)>이라는 노래를 우연히 들었을 때 몹시 놀랐는데, 고요한 밤바다 소리와 모닥불 타는 소리로 구성된 도입부가 이미 트롬소 여행으로부터 몇 개월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때의 해변 소리와 풍경을 선명히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당시의 경험과 생각을 여러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이것으로 트롬소 여행기를 마친다.


▲ 당시 그렸던 그림일기에서 일부 발췌




에어비앤비 작가, 김수림

영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고, 예술과 여행을 좋아합니다.

홈페이지_ ychoma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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