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친구들과 다시 방문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2017년 8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밤이었다. 8월치고는 쌀쌀한 공기에 제법 놀랐던 기억이 있다. 2008년 이후 9년만에 방문한 에든버러.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단서는 아직 찾아볼 수 없었다. 틀린 그림 찾기를 하러 온 것은 아니지만, 내 눈은 자꾸 세월의 흔적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짐을 찾고 공항을 빠져나와 광장으로 나와보니 ‘EDINBURGH’라고 적힌 사인이 보인다. 이 사인은 없던 건데..? 신기한 마음에 공항을 빠져나가는 것도 잊은 채 친구들과 에든버러 밤공기를 마시며 그렇게 한참 신문물(?)을 탐구했다. 이제 숙소로 출발해야 해서 택시를 탔다. 9년 전, 학생이었을 때는 밤 늦게 도착해서도 한 달 치 짐을 질질 끌고 버스를 탔는데... 경제활동을 하니 이런 데서부터 차이가 났다. 아니, 그저 나이가 들었으니 체력이 달리는 건가?
2008년, 20대의 우리가 에든버러를 찾은 이유는 하나였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뮤지컬 공연을 하기 위해서였다. 흔히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세계에서 가장 큰 아트 페스티벌'이라고 한다. 매년 8월이 되면 유서 깊은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 에든버러를 배경으로 세계 각국에서 온 공연팀이 무대에 오른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실감케 하는 짙은 돌길 위로 형형색색의 재기 발랄함이 생기를 뿌린다.
70년 전통의 이 축제는 도시를 먹여 살리는 중요한 행사이자, 근대 들어 에든버러를 전 세계에 알린 일등공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년 8월이 되면 이 작은 도시의 인구만큼인 5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려와 숙소를 잡고 로컬 경제를 살려주기 때문이다. 공연 티켓 또한 200만 장 이상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에게 프린지 페스티벌은 ‘도전'의 아이콘이다. 프린지에서 주목을 받게 되면 월드 투어 혹은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 무대로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일명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 공연팀들은 관객들과 평론가, 미디어 등을 끌어모으려고 사활을 건다.
머나먼 동아시아, 한국에서 온 20여 명의 대학생들이 여기서 함께 경쟁해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게 바로 9년 전 우리였다. 어느 정도 세상을 경험한 지금 30대의 나였다면, 도전에 앞서 여러 가지를 계산했을 것 같다. 축제 주최 측으로부터 공식 참가자로 선정될 확률, 숙소 경쟁 전망, 팀워크 걱정, 작품 흥행 가능성… 과연 도전을 할 수는 있었을까. 프린지를 향한 도전은 그때였기에, 20대의 패기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친구, 동생, 언니, 오빠들과 함께 땀 흘리며 공연을 만들어간 기억은 11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에든버러에서 고생한 기억은 함께했던 공연팀 멤버들 사이에 유독 강렬하게 남아있다. 모이기만 하면 그때 에든버러 중심가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며 '그땐 그랬지...'라는 추억 속 여행을 종종 떠나곤 했다.
연초를 맞아 몇 명이 모인 어느 날. 그날도 우리는 추억여행 중이었다. 그때 먹었던 와플집, 그때 연애하던 친구들 이야기로 낄낄대며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그러다 갑자기 실행력 좋은 친구가 한마디 툭 던졌다. “진짜로 다시 가 볼래?” 지금부터 계를 들어서 한 달에 5만 원씩, 차곡차곡 모아 내년에 가자고.
그때 사귀던 커플이 지금은 아이 딸린 부모가 되어 있고, 나머지는 여전히 싱글이지만 공연일은 하지 않고 나름대로 각자 분야에서 밥벌이하며 살고 있었다. 이제는 30대에 접어든 우리가 느낄 그곳이 궁금했다.
도착 다음날, 드디어 햇빛에 비친 에든버러 시내 모습이 드러났다. 창 밖으로 펼쳐진 에든버러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반가웠다.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집들. 한가한 거리와 파란 하늘. 15세기부터 스코틀랜드의 오랜 수도로 수백 년을 견뎌온 이 도시는 10년이란 세월 따위 별 것 아니란 듯, 어제 본 것처럼 익숙한 풍경으로 우릴 맞아주었다. 본격적으로 우리의 추억 여행이 시작됐다.
에든버러에 공연하러 온 2008년. 그때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관객이 적든 많든 매일 최소 1회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고, 낮에는 공연 홍보 활동도 해야 했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는 매년 3000~3500여 개의 공연팀이 찾아와 공연을 하기 때문에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알려지지 않으면 가차 없이 묻혀버린다. 지정된 포스터 기둥에 포스터를 붙이고 나서 뒤돌아보면, 다시 누군가의 공연 포스터가 우리의 것을 덮어버렸다. 전쟁이다. 2008년 공연 당시, 우리는 우리의 공연 포스터로 홍보 기둥을 도배했다. 하지만 곧 다른 공연팀이 우리 포스터들을 덮어버렸다. 그래도 아주 잠시 뿌듯했었다.
홍보하랴, 티켓 챙기랴, 분장하랴, 리허설하랴, 공연하랴, 정리하랴… 한 달 가까이 이뤄진 강행군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준 건 낮에 짬짬이 하는 시내 구경과 공연 관람,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시던 에든버러의 밤공기였다.
30대의 우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에든버러 중심가이자 축제기간 중 공연 홍보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길,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였다. 에든버러 올드타운의 핵심지이자 에든버러 성으로 향하는 길로, 홀리루드 성(Holyrood Castle)과 에든버러 성 사이를 잇는 ‘로열 마일(Royal Mile)’의 일부다.
이 돌길은 매년 8월 축제 시즌만 되면 전 세계 공연팀들이 서로를 뽐내는 무대로 변신한다. 예전에는 전쟁터에 임하는 군인의 심정으로 뚜벅뚜벅 이 로열 마일을 밟았다면, 지금은 “요즘 무슨 공연이 잘 나가나" 하는 여유로운 관객 모드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하이 스트리트를 가장 먼저 간 이유는 바로 9년 전 찍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St. Giles Cathedral을 배경으로 우연히 찍힌 사진. 우리 작품이 춘향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어 뮤지컬이기 때문에 화려한 의상으로 사람들을 사로잡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한복을 입고 공연을 홍보하던 중이었는데, 그때 별생각 없이 찍힌 사진이 우리를 지금 이 곳으로 재소환할 줄이야.
하이 스트리트 초입에서부터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우리는 말 그대로 ‘하이(high)’가 됐다. 성당 앞에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어줄 사람을 물색했다. 함께 오지 못한 공연팀 멤버와 닮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앗, 운명. 다급하게 그분을 불러 “이게 우리 9년 전 사진이에요!” 외치며 정중히 촬영을 부탁하자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그때 그 포즈를 다시 연구해 똑같이 포즈를 취해서 추억을 재현한 사진을 얻었다. 이 사진으로 텐션을 한껏 끌어올리고는 운명적인 그분과도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어서 찾은 곳은 우리가 한 달 내내 공연했던 바로 그 극장이었다. C Venues라는, 공연인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알려진 극장이다. 우리는 이 건물 지하에 있는 공연장에서 한 달 내내 울고 웃었다. 어느 날은 관객이 너무 없어서 리허설하는 기분으로. 어떤 날은 생각보다 관객이 너무 많아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대 위에서 실수를 연발하기도 하며.
이제는 관객의 입장으로 C Venues에서 하는 공연 포스터들을 보고 있노라니, 저 멀리 아시아에서 온 대학생들 공연을 보러 와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왔다. 우리의 짧은 방문 기간 동안 꼭 봐야 할 공연들을 추리다 보니 낯선 국가의 대학생 공연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공연 홍보물 하단에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 계정이 있다는 점이었다. 소셜 네트워크가 활성화된 지금은 관객으로서 공연에 대한 객관적이고 직접적인 사전 평가를 시행해볼 수 있는 요소가 많아졌다. 마음에 드는 포스터를 보고, 소셜미디어에서 자체 평가를 거친 뒤, 유튜브에서 평가를 확인하고, 그제야 티켓을 사게 된다. 예전에는 입소문과 프린지 가이드북 광고, 미디어 노출 등이 많은 걸 좌지우지했지만 이젠 시대도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 지금 다시 공연을 기획해보라고 하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의 기억을 바탕으로, 프린지 공식 웹사이트 앱(그렇다, 이제는 앱도 있다!)으로 바뀐 시대에 맞춰, 볼 만한 공연들을 물색해보았다. 축제는 보통 8월 내내 열리는데, 우리는 8월 중후반대에 방문했다. 축제 초반에는 기존에 유명한 공연팀만이 주로 부각된다면, 축제 중반이 지나면서부터는 어느 정도 입소문과 미디어를 타면서 작품 자체가 좋은 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보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 모든 공연팀이 한 달 내내 공연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해당 공연 일정을 미리 파악해 여행 날짜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작품 선정에 앞서 세우는 몇 가지 참고사항이 있다. 첫째, 들어는 보았지만 막상 본 적은 없는 작품. 둘째, 리뷰가 좋은 작품. 셋째, 그냥 느낌이 오는 작품. 세 번째, ‘느낌'을 통해 종종 좋은 만남을 갖곤 해서 감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긴 하다. (물론 실패한 경우도 많다.)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축제 곳곳을 거닐면서 내 눈길을 끄는 포스터, 흥미로운 거리 공연 등을 만났을 때 지체 없이 티켓을 구매하는 것도 프린지만의 매력이다.
하지만 감도 그냥 생기는 건 아니다. 축제에 앞서 우선 프린지 공식 웹사이트를 방문해 그 해 어떤 공연이 있나 살펴본다. 평소 좋아하는 장르가 있다면 축제에서 관람할 작품을 고르는 작업이 훨씬 수월해진다. 뮤지컬, 연극, 코미디, 댄스, 카바레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필터링을 한다. 어떤 작품들이 있나,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감을 조금씩 찾아간다.
장르 필터링 후에 주로 살펴보는 것은 ‘공연 장소'. 공연 장소가 중요한 이유는, 몇몇 인지도 높은 공연장을 뚫었다는 것 자체가 그 작품을 보증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수개월에 걸쳐 작품을 검증하여 ‘큐레이션' 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좋은 극장에서 공연하는 작품은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된다.
대표적으로 명망 높은 극장들은 어셈블리(The Assembly), 길디드 벌룬(The Gilded Ballon), 언더벨리(Underbelly), 플레전스(Pleasance)는 ‘프린지 빅 4’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올라오는 공연은 꽤나 큰 제작비를 들여 준비한 것으로, 원석을 캐내는 곳이라기보다는 보석을 알리는 곳이랄까.
특정 장르로 유명한 중간급(mid-tier) 공연장들이 있는데, 더 스탠드(The Stand)의 경우 스탠드업 코미디로, 주 베뉴(Zoo Venues)는 실험극과 신체극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공연했던 C베뉴(C Venues) 브랜드 역시 중간급으로, 다양한 장르를 ‘양'으로 승부하는 공연장 네트워크다. 시내 여기저기에 걸쳐 크고 작은 C베뉴 공연장에서 여러 장르의 신작을 소개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리뷰 참고에 활용하는 매체로는 주로 스코틀랜드 현지 언론들 -스코츠맨(The Scotsman), 더 헤럴드(The Herald), 쓰리 위크(Three Weeks)- 혹은 물망에 오른 작품들을 구글 검색해 나오는 정보들을 참고한다. 특히 유튜브나 페이스북 페이지 등이 있는 경우도 많아서, 감을 뒷받침해줄 증거(?)들을 찾아내기 참 좋아졌다. 9년 전 공연을 준비할 때 우리도 공연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뿌렸던 기억이 나는데, 여러 장애물로 쉽지 않았으나, 스코츠맨에서 리뷰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 또한 지금 하라 그러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티켓 구매도 이제는 앱으로도 손쉽게 할 수 있다. 반값 티켓을 판매하는 ‘하프 프라이스 헛(Half Price Hut)’도 여전히 있었다. 매일 몇 장의 티켓을 하프 프라이스로 분류해놓을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관객이 몇 명이나 올 지 모르는 상황에서 매일같이 머리를 굴리던 20대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조금 더 과감한 선택을 하라고 조언해주고 싶었다.
다시 현실. C베뉴를 향한 충성심이었던 건지, 그래도 여기에서 공연 하나는 봐야 하지 않을까 해서 한 작품을 봤다. 공중에 매단 밧줄과 몸의 움직임, 이 둘 만으로 스토리를 만든 ‘크리처스(Creatures)’라는 댄스 퍼포먼스였다. 결과는 대만족. 공연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마음이 흔들려서 추억 여행을 하고 있는 현실을 잠시 잊었다.
매일 밤, 공연이 끝나고 항상 지나던 잔디밭을 이번엔 낮에 다시 찾았다. 메도우즈(The Meadows)라는 넓은 잔디밭인데, 이 도시의 한가로움과 평온함의 원천이 되는 심장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거나 책을 읽는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가끔씩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저 편에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들도 유유히 돌아간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는 없고, 그저 바람 소리, 새소리,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만이 가까이 들려온다. 나머지 소리는 저 멀리 희미한 배경 음악 같달까.
9년 전, 공연을 마치고 매일 밤 숙소로 향하는 길에 이 잔디밭을 지날 때면 메도우즈는 참 여러 얼굴을 보여주곤 했다. 어떤 날은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고, 어떤 날은 달빛이 어두워 눈을 가리는 바람에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내디뎠다. 유난히 빛이 밝은 밤에는 잔디의 초록색도 꽤나 선명하게 보였다.
이 잔디밭에서 까불며 사진을 찍기도, 오늘의 공연을 평가하며 좌절하기도, 의견이 달라 다투기도 하며 매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 기억들을 고스란히 곱씹으며 차분하게 잔디밭에 누워있는데, 몸은 9년 전 그곳이 현실이 되어 존재하고 있어도 생각은 자꾸 9년 전, 과거를 더듬고 있는 상황이 추억 여행을 실감케 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지금은 잘 쓰지 않는 N 계정 이메일을 한번 열어봤다. 받은 편지함 목록. 예전에 만들어 둔 폴더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에든버러 작은 집'이라고 쓰인 그 폴더 안에는 당시 공연팀 숙소를 알아보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무렵의 나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들보다는 공연 기획 활동에 에너지를 더 쏟고 있었다. 20여 명으로 이뤄진 공연팀을 데리고 한 달 동안 매일 공연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한국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낮으로는 학교 수업을 듣고, 밤으로는 영국과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전화하던 시절이었다. 작은 집 폴더는 그중에서도 10명 이내의 스태프들이 지내게 될 숙소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폴더를 클릭해봤다. 29통의 이메일. 지금은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을 통해 숙소 구하는 게 클릭 몇 번으로 휙휙 이뤄지는 세상인데, 숙소 예약만으로 이렇게 많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니. 새삼스러웠다. 2008년 5월 31일 첫 이메일을 클릭해보니 축제 사이트에 올라온 숙소 렌털 글을 보고 문의를 넣은 게 시작이었다. 이후 렌털 가능 여부에 대한 이야기, 가격 네고에 대한 이야기가 한동안 오갔다. 한 달 동안 묵는 데 3120파운드. 당시 환율로 치면 (1파운드=2000원가량) 한국 돈으로는 약 624만 원이라는 거금이었다. 집주인이 집에 대해 설명하는 이메일이 구구절절 이어졌다. 방 세 개에 화장실 하나 짜리 집. 크림색 카펫이 깔려 있어서 신발을 신고 다니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한국은 원래 그러니 괜찮다고 답했다. 집주인은 안도했다.) 또 화장실은 포슬린 타일로 만들었는데, 라임스톤처럼 보이게끔 만들었다는... 의도한 인테리어 효과와 그 원리까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21개의 첨부파일이 달린 이메일도 발견했다. 저화질 집 사진으로 가득한 이메일이었다. 집의 구체적인 위치를 묻는 질문도 있었다. "A지역부터 집까지 걸어가면 몇 분이나 걸리나요?"
지금 같으면 출발지와 목적지만 입력하면 구글 맵에서 알아서 1초 만에 바로 계산해주는 걸, 그땐 그렇게 물어보고 답변을 기다려야만 했다. 물론 결제 과정도 복잡했다. 결제는 10% 보증금을 우선 요구했는데, 은행명과 은행주소, 계좌 번호, 해외 송금용 IBAN코드 등을 비롯해 Roll No., Sort Code처럼 난생처음 듣는 번호와 코드들을 또 이메일로 전달받고, 그걸 가지고 은행에 가서 해외 외화송금 신청을 해서 몇 날 며칠 걸려 결제했던 기억이 났다.
마지막 이메일은 2008년 7월 19일. [곧 만납시다. 기대하고 있어요!] 거의 두 달 가까이 걸려 숙소를 구한 셈이었다. 그렇게 이메일을 구경하다가 크롬 주소창에 a, i, r을 치자 자동완성으로 에어비앤비 사이트 주소가 나왔다. 우리가 지내던 동네와 최대한 가까운 숙소를 구하고 싶었으나 실패. 역시 에든버러의 8월은 경쟁이 치열하다. 방금 읽은 옛날 이메일 때문인지, 맵을 펼쳐놓고 다양한 리스팅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내 모습이 생소했지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에든버러 시내의 수십 개의 리스팅을 살피고선 친구와 문자로 신속하게 의견을 나눈 뒤 마음에 드는 집들을 위시리스트에 콕콕 달아놓았다. 위시리스트 입성 조건은 5명 모두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넓은 방, 함께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주방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멋진 거실, 그리고 슈퍼호스트. 모두가 만족할 만한 집을 찾고 슈퍼호스트와 집에 관한 몇 가지 궁금증을 나눈 뒤 카드 결제로 신속하게 모든 예약 과정을 마쳤다. 우리의 추억 여행을 도와줄 보금자리,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손쉽게 찾아냈다.
9년 전과 똑같이, 장을 보곤 에어비앤비 숙소로 향했다. 어떤 도시를 가더라도 로컬 마켓을 꼭 들러 현지인들의 생활을 조금 더 가까이서 엿보려고 하는데, 그 습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오랜만에 세인즈버리(Sainsbury)에서 영국, 그것도 스코틀랜드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골라 담으며 행복에 젖었다. 퀄리티가 뛰어나고 가격은 더 뛰어난 고기들을 보며 감탄하고,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목장에서 짜 낸 신선한 우유와 한국 마켓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브랜드로 뒤덮인 진열대를 보며 방황하는 손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숙소로 돌아와 이런저런 음식을 함께 해 먹었다. 예전에 지냈던 올드 타운에서 또 한 번 묵고 싶었지만, 8월의 에든버러에서 숙소 구하기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리스팅이 부족해 이번엔 뉴 타운에서 한번 지내보자고 정하고 온 이 곳은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4층짜리 아파트였다. 널찍한 2 베드룸에 밥 먹는 다이닝 공간 따로, 부엌 따로, 소파베드 딸린 거실 따로. 에든버러에서 지내는 4박 5일 내내 ‘여기가 우리 집이다' 생각하며 마음 편히 지냈다.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몰려오기 때문인지 에든버러에 사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8월이 되면 자기 집을 내어놓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더욱더 로컬의 삶 깊숙이 들어가 볼 수 있다는 게 에든버러 8월 여행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로컬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해도, 함께할 사람이 없다면 쓸쓸한 여행이 되지 않았을까. 함께 주방에서 복작거리며 음식을 하고, 식탁에서 껄껄 웃으며 기분 좋게 먹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혼자 떠나는 여행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역시 추억 여행은 함께 추억을 공유할 사람들과 떠나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10년을 기념하며 마음껏 먹고 마셨다.
한 달간 에든버러에서 공연하며 살아봤던 기억 때문에 다시 이 곳을 찾았고, 옛 추억에 새로운 추억을 더해 에든버러를 향한 사랑도, 우리들의 우정도 더욱 깊어갔다. 치열했던 기억도 모두 아름다움으로 포장되어 고이 남겨진 걸 보니, 또 다른 새로운 추억을 만들러 얼른 또 떠나고 싶어 진다. 10년 뒤의 에든버러를 다시 한번 기약하며.
지금은 공연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의료AI 스타트업에서 커뮤니케이터로서 매일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끔은 향수를 느끼며 뮤지컬, 넷플릭스, 여행, 사람 사는 이야기 등을 글에 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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