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만 해도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으로 물드는 도시 여행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가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다.
"다른데 돈은 아끼더라도 책, 음악, 여행에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말아라."
나는 착한 딸답게 엄마, 아빠가 가르쳐주신 대로 책, 음식, 여행에는 내게 남은 모든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우리 가족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어린 나이부터 여행을 다녔다. 나의 유년시절 추억은 산, 바다, 계곡 등 전국을 누비고 다닌 기억으로 가득하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10살 때 중국 상해를 간 것이다. 이후, 헝가리, 오스트리아, 일본, 라오스, 인도네시아, 독일,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포르투갈, 미국 등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경험을 즐겼다. 2019년에는 포르투갈의 도시 포르투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컴포스텔라까지 혼자 걷는 도보 여행도 다녀왔다. 정말 운이 좋게 수많은 나라와 사람들, 그들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누렸다.
여행이란 나에게 ‘포근한 존재’이다. 나는 1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 12년을 보내 겨우 ‘이방인’에서 ‘원어민’이 되었을 무렵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이방인도, 원어민도, 한국인도, 교포도 아닌 애매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젠 몇 년이 흘러 한국인 행세를 나름 잘하고 있으나, 사실 아직도 내가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인지 여행을 떠나 타지의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할 때면 새롭고 자극적인 느낌보다는, 내가 익숙하게 느껴왔던 ‘이방인’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라 여행이 포근한 익숙함으로 다가온다.
나이가 들어 돈을 벌기 시작하고나서부터 정말 열심히 여행을 다녔다. 처음에는 SNS에 가득한 이국적인 풍경과 호텔 수영장 벤치에 앉아 다리를 꼰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이들을 보며 그들을 부러워했고, 닮고 싶었다. 시간을 호화롭게 보내는데 돈을 투자하는 것만이 진리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가면 무조건 리조트나 호텔에서 묵어야 ‘좋은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부모님 말씀을 지나치게 잘 들었던 탓일까? 내가 버는 돈과 내가 여행에서 쓰는 경비의 차이가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버거워졌다. 그때 ‘에어비앤비’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친구들이 추천을 여러 번 했지만, 어떻게 다른 사람의 집에서 묵을 수 있냐며 손사래를 쳤었다. 하지만 배고픈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다. 당시 할머니를 모시고 가는 여행을 준비 중이라 걱정은 앞섰고 경비는 타이트했다. 에어비앤비 앱을 깔고 첫 예약을 잡았다.에어비앤비 첫 숙소는 한국 경주의 한옥집이었다. 다른 한옥집에 비해 가격이 저렴했는데 숙소가 정말 깔끔했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에어비앤비를 마음에 들어하셔서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그때부터 나의 모든 여행은 에어비앤비 앱을 열어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작년 추석, 일명 ‘황금 휴가’라고 불리던 추석 연휴, 우리 가족, 아빠, 여동생과 나는 유럽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유럽 여행은 대게 여러 나라를 거치기도 하고, 일정 자체가 길기 때문에 여행사를 통해 여행을 하지만, 우리 가족은 자유로운 여정을 위해 직접 숙소를 알아보기로 했다. 자유여행에 익숙한 내가 예약을 맡았고, 나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11박 12일, 3개국 유럽여행을 계획했다. 5곳의 에어비앤비 숙소에 머물렀는데, 여행 만족도에서 가족의 몰표를 얻은 도시 ‘드레스덴’에 대해 나눠 볼까 한다.
곧 쏟아질 것만 같은 비를 잔뜩 품은 먹구름이 하늘을 덮은 10월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속도 제한이 없는 독일의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쌩쌩 달려 드레스덴의 Aussere Neustadt, Outer New City에 도착했다. 지도 앱으로 숙소를 찾아 주차를 하고 호스트 클러디아에게 연락을 했다. 아우토반을 너무 질주한 탓일까?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도착해버린 우리에게 클러디아는 걸걸한 목소리로 "도착하려면 30분이 더 걸릴 예정이니 숙소 앞에 있는 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 어떻겠냐"라고 추천했다. 수제 맥주라면 자다가도 벌떡 눈을 뜨는 나이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빠와 동생을 펍으로 안내했다.
여행을 다니며 습득한 버릇이 하나 있다. 국외 여행을 다닐 때는 로컬 펍에, 국내 여행을 다닐 때는 시장이나 장에 꼭 들려보는 것이다. 사람 냄새가 흠뻑 나는 펍이나 시장에 들러 지역 특산주를 한 손에 들고, 펍 주인이나 나와 같은 여행자들, 또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만의 행복이다. 좋은 로컬 펍을 찾으려면 작은 골목이나 거리 구석에 자리 잡은 가게를 둘러보아야 한다. 보통 나이가 지긋이 드신 아저씨들이 작은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보고 계신 경우가 많다. 그런 분들이 여럿 모여 바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면 로또이다.
우리는 유럽에서는 야외에서 폼 잡으며 한잔 마셔줘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나누며 펍 밖에 자리를 잡았다. 맥주를 고르러 펍 안으로 들어간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독일이 맥주로 유명한 것은 알았지만 이 작은 가게는 독일 맥주의 저력을 비주얼로 압도하고 있었다. 가게의 네 면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맥주병들로 꽉 들어차 있어서 입이 떡 벌어졌다. 가게를 4바퀴나 빙빙 돌며 둘러보았지만, 어떤 맥주를 골라야 할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다양한 맥주 앞에서 고뇌에 잠긴 모습을 보고 도와주고 싶었는지, 카운터에 앉아있던 금발 언니가 지역 맥주 라면서 맥주 3병을 추천했다. 나는 ‘당케’를 연거푸 외치며 맥주 3병을 품에 안고 자리로 향했다. 아빠, 동생과 함께 각자 마음에 드는 맥주를 골라 병나발을 불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상점들, 앞으로 묵을 숙소에 관해 이야기하며 클러디아를 기다렸다.
맥주를 거의 다 마셨을 때쯤 클러디아 에어비앤비의 호스트에게 연락이 왔다. 에어비앤비 앞에서 그를 만나 키를 건네받았다. 그는 드레스덴에서 봐야 할 명소들을 알려주며, 마지막 날에는 거실 테이블 위에 키를 두고 가면 된다고 했다. 현관문은 닫히면 저절로 잠기니 조심하고, 빌딩에는 주민이 살고 있으니 소음에만 신경 써주면 고맙겠다고 서툰 영어로 설명했다. 궁금한 점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며 쿨하게 떠났다. 숙소가 2층에 위치한 탓에 낑낑거리며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건물이 낡은 것에 비해 계단이 대리석이어서 감탄이 새어 나왔다. 통나무로 만든 현관문은 오래되어 빛은 바랬지만 멋스러웠다. 숙소 안도 에어비앤비에 소개된 사진만큼 좋았으면 좋겠다고 재잘대며 문을 열었다.
클러디아의 집은 사진보다 훨씬 좋았다. 거실과 부엌이 일체형이라 세 식구에게는 좁을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공간이 널찍해 만족스러웠다. 소파 침대에 몸을 던지듯이 자리를 잡았다. 큼지막한 유리창으로는 작은 광장을 볼 수 있었다. 은은히 들어오는 햇빛은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의 크리스털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통나무로 만들어진 싱크대와 수납장이었다. 통나무를 깎고 밝은 연두색 페인트칠을 한 수납장은 웬만한 인테리어 잡지에서 본 가구들보다 훨씬 예뻤다. 아버지는 녹색 싱크대에서 요리를 하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고 하시며, 집에도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동생과 내가 묵을 방에는 커다란 창과 테라스가 있어 큼직한 침대에 누워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기에 좋았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느껴지는 것이지만 독일 숙소들은 침구가 정말 좋았다. 허리 디스크가 있는 아버지는 클러디아 숙소의 소파 침대에서 주무셔야 해서 모두 걱정했지만, 소파침대의 매트리스마저 웬만한 집의 매트리스만큼 좋았다고 만족하셨다. 소녀 감성을 깨우는 에어비앤비에 아주 만족하며 우리는 짐을 풀고 나갈 채비를 했다.
드레스덴(Dresden)은 제2차 세계전쟁 때 집중 폭격을 맞은 도시로 유명하다. 로마시대 때부터 지어진 성당들과 건물들은 총탄 자국들을 그대로 품은 채 여전히 드레스덴을 지키고 있다. 아름답고 정교하게 돌을 깎고 금과 대리석으로 뒤덮인 화려한 건물들도 좋지만, 나는 조금 딱딱하고 삐죽해 보여도 곧게 솟은 고딕형 건물들이 좋다.
시내 구경을 하기 위해 트램을 타고 엘베(Elbe) 강 근처에서 내렸다. 금방 어둠이 내렸다. 강가와 거리의 가로등이 하나둘 씩 켜져 어둠을 오렌지 빛으로 밝혔다.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아우구스트스(Augustus)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검은색 강물을 은은하게 밝혀주는 가로등 빛들이 잘 어우러졌다. 앞을 보고 걷는 것이 아니라 거의 옆을 보면서 걸었던 것 같다.
허기진 배를 잡고 조금은 늦은 저녁을 먹으러 근처 레스토랑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들어간 레스토랑마다 이미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거나, 예약이 가득 찼다고 하는 것이다. 겨우 들어간 레스토랑은 그리스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었다.
독일에서 그리스 음식이라니! 웃겼지만, 배고파서 불평할 여력도 없이 메뉴서 제일 잘 팔리는 메뉴 3가지를 골라 시켰다. 이곳에서 배운 레슨 하나는, 드레스덴처럼 작은 도시에서 밖에서 저녁을 먹으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당 종업원이 이야기하기를 작은 식당이나, 동네 사람들이 자주 찾는 단골 식당은 예약이 일주일 정도 밀려 있다고 한다. 샷글라스에 담긴 푸른색 (보드카 맛의) 식전 주를 마시며 저녁을 먹었다. 가격에 비해 음식이 너무 많이 나와서 손짓 발짓을 하며 겨우 의사소통을 해 남은 음식을 용기에 담아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돌아가 바로 잠들기 아쉬워 체크인하기 전에 들렸던 펍에 다시 들렸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낮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커다란 와인 통 맥주 테이블 용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쭈뼛쭈뼛한 모습으로 카운터로 향하자, 다시 금발머리 언니가 웃으며 반가워했다. 낮에 눈여겨봤던 독특한 디자인의 맥주병을 세 개 골라 계산하려고 하자, 언니가 좋은 물건을 보여 주겠다면서 손가락을 까닥까닥했다. 따라가자 맥주 냉장고에 놓인 커다란 병들이 보였다. 언니가 뜨문뜨문한 영어로 열심히 이곳 마을 사람들이 제조한 수제 맥주라고 소개했는데, 그 병을 본 순간 뜨악했다. 맥주병 (유리병)이 무려 2리터 사이즈였다.
맥주가 동그랗게 생긴 갈색 병에 담겨 있고, 손가락 하나 정도 들어갈 손잡이가 달려있었다. 언니는 이 맥주를 다 마시고 병을 가져오면 맥주를 할인된 가격으로 리필해 준다고, 살짝 윙크를 하며 말해줬다. 난 그 언니의 저주에 걸리고 말았다. 그 순간부터 드레스덴을 떠나는 날까지 내 손에는 2리터짜리의 맥주병이 들려있었다. 항상 들고 있어서 아빠는 탄산수 아니면 음료수인 줄 알았다가 마지막 날 맥주인 것을 알고 흠칫 놀라셨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겠는가? 음주는 유전이라고 외친 것은 아빠인 것을…
펍에서 맥주 한 병을 따서 홀짝거리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모여있던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헬로’를 외치며 어디에서 왔냐고 말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패트릭이라는 남자가 ‘오! 코리아! 노스? 사우스?’하며 북한에서 왔는지 남한에서 왔는지 묻자, 옆에 있던 친구 세스가 패트릭의 등짝을 세게 내리쳤다. 나는 웃으며 남한에서 왔다고 대답하며 여기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패트릭과 세스는 영국, 여자 레슬리는 이 곳, 드레스덴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 네 명은 급하게 친해져서 두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짧은 밤을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숙소에 돌아와 아빠와 동생에게 짧은 만남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리스 레스토랑에서 싸온 감자튀김을 곁들여 나는 맥주를, 아빠와 동생은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피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와 아빠와 동생은 바로 자러 갔다. 나는 거실의 커다란 테이블에 지친 두 다리를 올려놓은 채 일기를 쓰고는 세차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ASMR 삼아 잠에 들었다.
시차 적응이 덜 되었던 건지, 새벽 6시인데 눈이 뜨였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숙소에서 가만히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 전날 보지 못 했던 예술가의 마을, 쿤스트호프 파사쥬(Kunsthof Passage, Passage of Artists)도 궁금했고, 따스한 원두커피가 간절했다. 숙소에는 원두커피를 내릴 수 있는 프렌치 프레스와 포트, 원두가 준비되어있었지만, 사용법을 몰랐다. 원두를 핸드밀로 갈고 프렌치 프레스와 씨름을 하다 결국 사용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 쓸데없는 쇳덩이라고 괜히 짜증을 내며 웃옷을 대충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클러디아의 숙소는 드레스덴의 예술가들이 모여있는 공방 마을인 쿤스트호프 파사쥬에 있었다. 작은 찻길을 따라 놓인 건물들은 신기하게 생긴 벽돌의 건물과 색색의 벽화들, 벽에서 튀어나와있는 특이한 설치물이 눈길을 끌었다.
동생은 인생 샷을 건져야 한다면서 셀카봉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포즈를 취했다. 색색의 건물 때문인지 사진이 화보처럼 찍혔다. 날이 밝기 시작하자 구석구석에 있는 작은 공방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구멍가게 사이즈였지만 모두 하나하나 손으로 만든 소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작은 인형부터 커다란 도자기까지 빼곡하게 진열해 놓아 나의 지름신을 호출했지만 지갑을 놓고 나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지갑이 없으니 당연히 커피도 살 수가 없었고, 나와 동생은 결국 커피 없이 숙소로 돌아갔다.
그래놀라 바로 아침을 때우고 아빠와 동생과 함께 그 전날 마저 보지 못한 시내를 둘러보러 우비를 입고 숙소를 다시 나섰다. 알록달록한 예술가의 마을 건물들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마저 화사하게 만들었다. 강가 쪽으로 걸어가는데 어딘가에서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코너에 있는 빵집에서 나오는 냄새였다. 우리 셋은 바로 발길을 돌려 빵집에 홀린 듯이 들어갔다. 비상으로 먹을 미니 바게트를 3개 사고, 당장 먹을 귀리빵 2개와 따스한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다시 길을 걸었다. 우비만 입어 빠이 비에 젖어가고, 아메리카노가 빗물에 섞어 밍밍 해졌지만 기분만은 들떴다.
드레스덴 왕궁인 츠빙거 왕궁(Dresden Zwinger, Zwinger Palace)에 도착할 때쯤 빗방울은 가는 이슬비가 되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왕궁에는 우리 가족 외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왕궁을 전세를 낸 것처럼 구경하고 뒷 배경에 관광객이 단 한 명도 섞이지 않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드레스덴 왕궁은 드레스덴의 대부분의 건물과는 다르게 화려한 장식과 석고상으로 가득했다. 왕궁의 정원은 파릇파릇한 잔디와 싱그러운 꽃이 가지런히 정돈되어있었고, 비를 맞아 색감이 더 선명해 보였다.
하얀 대리석 조각상과 정원을 구경하고 있는데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궁금해 건물 뒤로 돌아가 보니 요정의 욕조(Nymphenbad, Bath of the Nympthes)라는 미니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말로만 미니 정원이지 실제로는 꽤 큰 규모의 정원이었다. 거대한 여신 상들이 둘러싸인 연못과 그 연못으로 떨어지는 폭포수도 아름다웠다. 연못 양쪽에 있는 나선형으로 생긴 대리석 계단으로 올라가니 수많은 아기 천사의 동상들이 나무 수풀 사이사이에 숨어 있고, 왕궁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나왔다. 예전 왕족들이 몰래 나와 비밀 연애를 했던 곳으로 유명했다던데, 숨어서 연애나 밀회를 하기에는 딱 적당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궁 구경을 마치고 나갈 때쯤이 되자 관광객들이 밀려들어와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왕궁을 나왔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내려서 앞에 있는 레스토랑에 뛰어 들어갔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식사는 하지 않는다는 말에 커피와 음료를 시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잔잔히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젖은 옷을 말리다 보니 그새 변덕스러운 비가 그치고 흐린 구름만 잔뜩 뭉쳐 있었다. 드레스덴 왕궁에서 나오니 커다란 광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독일에서 손꼽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매년 겨울에 열린다는데, 다음에는 눈이 오는 겨울에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광장 바닥은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벽돌이 빼곡하게 원형으로 박혀있었다. 광장 맞은편에는 드레스덴 성(Residenzgchloss, Dresden Castle)과,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 Dresden, Reconstructed Protestant Church)가 있었는데 세계대전 당시 화염으로 그을려진 외관이 어떻게 보면 칙칙해 보이기도 하시만 전쟁에서 당당히 돌아온 전사 같은 웅장한 분위기를 뽐냈다. 동그랗게 생긴 프라우엔 교회로 들어가 보았다. 내관은 어둑한 외관과는 달리 새하얗고 환했다.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이 말씀하시길 매일 연주회가 열려서 시간에 맞춰 오면 연주회를 즐길 수 있다고 하셨다. 눈부시게 하얀 교회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교회에서 나오니 어느새 먹구름이 사라지고 새파란 하늘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로마 시대에 만들었다는 군주의 행렬을 지나가는데 노란 벽이 파란 하늘과 대조되어 돋보였다. 군주의 행렬은 조그만 타일을 하나하나 이어 붙인 모자이크식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크기와 길이가 어마어마해서 도대체 이 작품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람들이 동원이 되었을지 문득 궁금했다.
그 밖에서 드레스덴의 시내는 가톨릭 궁전 교회(Katholische Hofkirche, Roman Catholic Church of Dresden), 챔버 오페라 하우스(Semperoper Dresden, Opera House), 보석 박물관(Old and New Green Vault) 등 의 건물들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가는지도 몰랐다. 드레스덴의 거뭇한 건물과 파란 하늘이 너무나도 대조되었지만, 그 광경이 너무나도 시원하고 아름다워 내 마음도 높은 하늘 같았다.
드레스덴에는 드레스덴 예술 대학교(Hochschule fur Bildende Kunsle, HfDK of Dresden)가 있는데 유럽에서 캠퍼스 뷰가 예쁘기로 유명하다. 뒷 캠퍼스가 강을 따라 이어져 있는데, 브륄의 테라스(Bruhl’s Terrace)라고 불린다. 작은 카페들이 늘어져 있고, 야외에 앉아 강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피크닉 테이블을 설치해놨다. 카페에서 따스한 뱅쇼(과일을 넣고 끓인 따스한 와인)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향기가 참 좋았지만 나는 달달한 술을 좋아하지 않기에 냄새로만 만족하며 걸었다.
드레스덴은 조용하고 잔잔한 도시이다. 잔잔한 사람들과 잔잔히 흐르는 강, 잔잔히 내리는 비와 잔잔히 걸어가는 나의 발걸음이 잘 어우러지는 그런 도시. 걷기만 해도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으로 물드는 도시. 드레스덴을 생각하면 내 마음은 푸른 하늘로 환해지고 펍에서 만난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이야기 소리와, 클러디아의 초록색 싱크대, 그리고 비 오는 날 코 끝을 스며드는 흙냄새로 가득 찬다. 언젠가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좋은 추억이 어그러질까 봐 괜히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나는 드레스덴에 꼭 다시 갈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드레스덴은 파스텔 같은 추억으로 나의 마음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책과 맥주를 즐길수있는 성북구 독립서점<원 애플 어 데이>의 책방지기 입니다.
산문집 <장마>를 내고 현재 산티아고 포르투칼길편 여행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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