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어비앤비 Oct 14. 2019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 타이베이

타이베이 독립서점 투어


작가로서 떠난 첫 번째 여행

지상파 방송국 리포터였던 나는 지난 9월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유럽행 비행기를 결제했다. 한 달간의 유럽 여행에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난 후 한국으로 돌아가면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한 달간의 여행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 동네 서점에서 진행하는 책 만들기 클래스를 통해 독립출판물을 만들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졸지에 여행 작가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프리랜서 방송인이자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출판물을 출간한 후 일이 잘 풀린 덕분에 아나운서이자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됨으로써 얻게 된 것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중 하나는 독립서점과 독립출판물이라는 트렌드에 대해 시각이 넓어진 것이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고 자유로운 표현 방식이 담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통로, 기존 출판업계에서는 다루지 않는 내용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독립출판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독립서점의 세계 시장에 관해 조사하다가 대만이 독립출판 강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두 번째 여행지를 타이베이로 정했다.

▲ 타이베이에서 묵었던 에어비앤비 골목 풍경



일상이 문화예술인 도시, 타이베이

대만은 아시아에서 출판 산업이 가장 활발한 나라이자, 인구 대비 신간 도서 출간 비율이 영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높은 출판 강국이다. 또한, 24시간 운영하는 서점이 있을 정도로 대만 사람들에게는 독서가 생활의 일부라고 한다.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느껴보고 싶어서 타이베이의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잡았다. 건축가인 호스트 하리(Hari)의 취미가 미술이어서 에어비앤비는 그림으로 가득했다. 마치 현대미술관에 온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림의 개성이 강했기에 타이베이의 에어비앤비 모습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았다.

▲  타이베이에서 묵었던 에어비앤비 호스트 하리가 직접 그린 그림들

하리의 말에 의하면 대만은 어릴 적부터 예술적 재능에 대해 높게 인정해주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서 문화와 예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유치원생들이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어른들은 아이의 그림 실력을 칭찬하며 적은 돈을 주고서라도 그림을 사주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고 한다. 문득, 어느 나라보다 개성 강한 독립출판물이 출간되고 독립서점이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인처럼 독립서점 즐기기     

▲ 에어비앤비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독립서점, 엘스웨어 카페

내가 묵었던 에어비앤비 한 블록 옆에는 유명 독립서점 겸 카페인 엘스웨어 카페(Elsewhere Cafe)가 있었다. 여행자들이 많이 찾을 뿐만 아니라, 늘 현지인들로 붐비는 핫한 서점이었다. 엘스웨어 카페와 가깝게 위치한 에어비앤비 덕분에 타이베이에 머물렀던 매일 아침 엘스웨어 카페에서 브런치를 맛보며 타이베이의 동네 책방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대부분의 독립서점이 그렇듯, 엘스웨어 카페 역시 현지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 골목 사이에 위치해 있어 더욱 힙한 분위기였다. 이곳에서는 주로 세계 각국에서 온 동화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동화에 나올법한 예쁜 일러스트가 그려진 입구 벽 너머로는 작은 전구와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오전 11시쯤 사람들은 엘스웨어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노트북을 꺼내어 공부 또는 작업을 시작한다.

▲ 엘스웨어 카페

'동화책이 이토록 개성 있는 장르라니!'


나는 다채로운 일러스트를 구경하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려진 엽서 몇 장을 구입했다. 오늘의 영감을 엘스웨어 카페에서 찾은 것이다. 현지인과 여행자가 적절한 비율로 어우러진 서점의 풍경에서 활기를 느꼈고, 좋은 에너지를 한 아름 안고 다음 일정을 위해 길을 나섰다.

▲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에 위치해 있는 블루 앤 북

다음 목적지는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華山1914 創意文化園區)였다.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는 과거 양조장을 문화 공간으로 개조한 타이베이의 인기 관광지이다. 이곳에 2016년 새롭게 문을 연 독립서점인 블루 앤 북(Blue&Book)이 자리한다. 블루 앤 북 입구에는 초록빛 식물들이 배치되어 있어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치 우리 집에 나만의 책방을 꾸며놓은 듯한 아기자기한 큐레이팅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조용한 분위기에서 커피와 함께 독서를 즐길 수 있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 블루 앤 북의 아기자기한 큐레이션

블루 앤 북에서는 독립출판물, 디자인, 고전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살펴보며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다. 또한, 나의 취향을 꼭 맞는 잡지를 발견하기도 했다. 내가 발견한 잡지는 식물도감 같은 것이었다. 평소 길가에 핀 들꽃에 애정을 갖고 있는 나에게 그 잡지는 소소하고도 확실한 행복이었다. 잡지에는 볕 속의 들풀, 돌계단 틈 속에서 꿋꿋이 자라나는 꽃 등 숨겨진 소박한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순간, 그 찰나를 잡지에서 만날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나와 소통을 할 수 있는 행운의 시간이었다.

▲  복합문화 공간이자 독립서점 펑딩

세 번째로 찾은 독립서점은 펑딩(Pong Ding)이다.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아름다운 통유리 건물이 나를 맞아주었다. 밖에서 훤히 보이는 하얀색의 깔끔한 내부는 서점보다는 트렌디한 카페가 연상되었다. 1층은 독립출판물이 주를 이루는 북카페, 2~3층은 공연과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다.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세계 곳곳의 아티스트들이 출판한 개성 있는 독립출판물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서점의 전시와 큐레이션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미술관을 관람하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책이 눈에 띌 수 있도록 전시해놓은 공간은 선택의 자유로움을 주었다. 

     

독립서점의 가장 큰 매력은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어떠한 선택지 없이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등 어떤 선택지의 강요 없이 다양한 장르와 취향을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한다는 것은 자유를 뜻한다. 펑딩에서는 그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자유라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기쁨이 된다.     


펑딩에서 나가는 길에 주인과 스텝들이 책방의 통유리 전면을 두고 열띤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대만어라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추측컨대 그들은 오늘도 이토록 자유로운 공간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곳보다도 복합적인 콘텐츠와 다양한 사람이 함께 모인 이 공간의 힘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 특별했던 공간 VVG                                                                     ▲ 어둡지만 힘이 있었던 독립서점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VVG. 타이베이로 여행을 오기 전부터 큰 기대를 가졌던 독립서점이다. 평소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골동품에 관심 많은 나에게 VVG는 독립출판물뿐만 아니라, 골동품도 보고 살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구성된 공간이라니! 어떻게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굽이굽이 골목을 찾아 들어간 VVG는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아기자기하지만 세월의 힘이 느껴지는 골동품으로 꾸며진 입구 사이로 보이는 서점 내부가 어두워서 금방이라도 그곳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많지는 않았지만 어느 앤티크 숍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오래된 조명과 비커, 컵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서점 주인은 많은 세월을 안고 온 80대 백발의 할아버지일 것 같았다.

▲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골동품까지 볼 수 있었던 VVG

골동품과 책의 조화는 결코 가볍지 않았으며 서점이 아닌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것 같았다. 이제는 사람들이 책만 보기 위해 서점을 찾지 않는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알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서점을 찾는다. 그것은 골동품, 영화 등이 될 수도 있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의 소통이 될 수도 있다. 서점은 이제 하나의 문화 플랫폼이 되었다. 사람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서점에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사는 방법을 알아간다.




다양하고 깊은 색채를 가진 도시, 타이베이

'책을 읽는 이유는 지금의 내 모습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책을 사랑하는 타이베이 사람들은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았다. 다양한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너지는 사람이 모여들게 해 타이베이를 역동적이고 활력 있는 곳으로 만들어 나간다.


책을 사랑한다면, 창의적이고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의 작은 책방을 방문해보고 싶다면, 그리고 소통의 힘이 있는 곳을 여행하고 싶다면 타이베이를 꼭 한 번쯤은 방문해 봐야 할 것이다.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을 가진 타이베이의 첫 방문기는 다양하고도 깊은 색채를 가진 도시라고 표현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내가 느꼈던 타이베이의 다채롭고도 깊은 매력을 알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





에어비앤비 작가, 김혜인

대구 KBS 방송총국 등 방송국 취재 리포터로 활동하며 꿈을 좇다 새로운 꿈을 좇게 된 크리에이터 지망생.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여전히 본업에 충실한 여자. 최근 오디오북 <이 순간을 말한다면>으로 20대 삶의 한 편을 승화시켰다.     


인스타그램 @orchid27__

매거진의 이전글 꽃 피는 사월, 프라하 한 달 살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