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포르투갈 여행 중 만난 신선한 식재료, 오늘은 무얼 해 먹지?
작년에 엄마는 환갑을 맞았다. 내가 갑작스럽게 유학 생활을 포기하고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엄마가 환갑을 맞아 프랑스로 오겠다고 했던 해였다. 어차피 내가 프랑스에 있었던 3년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던 여행이긴 했지만.
당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우 바빴고, 돈도 겨우겨우 모으기 시작한 참이었지만 엄마와 함께 유럽에 가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엄마가 “너무 바쁘면 안 가도 돼. 다음에 가면 되잖아.”라고 말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런 '다음'들이 모여 3년이 지나버린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혼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갔었다. 그때는 혼자였기 때문에 유스 호스텔을 이용했다. 마드리드의 호스텔에서는 온 건물에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탓에 “그 중국인 어디 있어?”라고 떠드는 독일인들과 싸웠고, 리스본의 호스텔에서는 매일 새벽마다 체크인하는 사람들 때문에 잠을 설쳤다. 좋은 일도 많이 있었지만, 유스 호스텔을 이용하기엔 더 이상 '유스'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컸다. 난 너무 예민하고 사나운 아시아인인 데다가 불면증도 있었다. 오후엔 술 마시고 한숨 자야 했는데 호스텔은 주로 오후 시간에 청소를 해서 낮잠도 못 잤다.
하지만 호스텔만 아니었다면 포르투갈은 내가 여행했던 곳 중 최고였고, 한 번 가봤기 때문에 엄마와 같이 가기가 조금 덜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내가 이미 많이 자랑을 해둔 터라 엄마도 포르투갈에 가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는 나보다 여러모로 더 젊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다시는 호스텔에 묵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일반 호텔을 예약하려 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딱히 가리는 건 없지만 본인이 요리를 너무 잘해서 자기가 한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 엄마의 입맛이었다. 역시나 호텔을 예약한다는 말을 하니 호텔에 주방이 있는 곳이 있냐며 아쉬운 소리가 나왔다.
그래서 과감하게 3주간의 숙소를 모두 에어비앤비로 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작에 에어비앤비를 생각했어야 했다. 호텔을 구했으면 주방도 없었을 테고, 또 트윈 베드였을 텐데 나는 코 고는 사람과는 잠을 못 자서 엄마와 20년 동안 멀리 떨어져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엄마의 바람대로 부엌이 있고, 나를 위해 침실이 두 개 있으며, 엄마와 이동하기 편하도록 중심가에 위치한 숙소들을 선택했다. 물론 호텔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숙소와 비행기, 기차표 등을 미리 일정에 맞게 예약해두고, 호스트들에게 차례로 우리의 이동 일정을 알렸다.
12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고 파리에서 경유해 또 3시간이 걸려 리스본(Lisbon)에 도착했다. 나는 비행기에 타면 바로 밥 먹으며 술을 마신 뒤 쭉 잔다. 그래도 피곤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긴 비행을 하면서 거의 잠도 자지 않았다는 엄마는 눈이 초롱초롱했다.
“이것 봐, 너 자느라 이런 거 다 안 먹었잖아.”
엄마는 비행기에서 챙긴 버터와 잼, 심지어 내가 남긴 모닝빵까지 주섬주섬 꺼내며 자랑했다.
“가서 사면되지, 별로 맛도 없는 걸 왜 챙겨?”
저녁 시간에 숙소로 도착한 우리는 숙소 앞에서 호스트를 만나 건물 현관문을 여는 법과 열쇠,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받았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호스트는 친절하게 손짓 발짓으로 필요한 설명을 모두 해준 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의 꼭대기로 우리를 안내했다. 낡고 가파른 유럽의 계단 때문에 살짝 후회할 뻔했는데, 숙소에 도착하니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소박한 거실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고, 거실의 큰 창으로 멀리 피게이라 광장(Plaça de Figueira)이 보였다. 넓은 메인 침실과 2층 침대가 있는 두 번째 침실, 깨끗한 화장실과 커다란 냉장고에 조리기구가 갖춰진 주방도 마음에 쏙 들었다.
대충 짐을 풀어놓고 내가 예전에 갔던 추억의 맛집으로 향했는데 1년 만에 맛이 너무 변해있었다. 엄마는 맛집은 무슨 맛집이냐며 엄마가 더 맛있게 요리해 준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숙소에 주방이 없었으면 정말 어쩔 뻔했는지.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간단히 장을 봤다. 커다랗고 싱싱한 망고가 너무 예뻐서 하나를 고르고 햄과 치즈, 와인과 물을 샀다. 정신없이 돌아와 씻고 잠이 들었다. 겨우 9시 정도에 잠이 들었던 탓에 새벽에 눈이 번쩍 뜨였다. 동이 트는 거실로 나가보니 엄마가 소파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잘 잤어, 엄마? 일찍 일어났네.”
엄마는 나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 나를 꼭 안아줬다.
“응, 너무 고마워.”
“뭐가?”
“여기 데려와 줘서. 너무 행복해.”
우리 엄마는 무뚝뚝한 사람이다. 웃음이 없다거나 말이 날카로운 사람도 아니지만, 안아준다거나 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오랜만에 엄마를 안아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알고는 있었는데 엄마는 이제 정말 나보다 작았다.
엄마에게 씻으라고 한 뒤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타고 전날 사서 냉장고에 넣어뒀던 시원한 망고를 꺼내 깎았다. 달고 싱싱한 과즙이 뚝뚝 흘렀다. 씻고 있는 엄마를 소란스럽게 불러서 한쪽 먹이고 단백질이 부족한 것 같아 햄도 조금 썰었다. 상을 다 차리니 엄마가 친구들한테 자랑한다며 사진을 찍었다.
“내 핸드폰으로 찍어서 보내줄까?”
“그래, 사진은 네가 찍어줘.”
엄마는 비행기에서 가져온 플라스틱에 담긴 버터를 꺼내 내가 남겼던 모닝빵에 발라 얇게 썬 햄을 끼웠다.
“먹어 봐. 챙기길 잘했지?”
“응, 그러네. 짱 맛있다. 다음부터 다 챙겨야겠네.”
여행하는 내내 우리의 일과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전날 장을 봐 둔 식재료로 아침을 해 먹고 느긋하게 밖에 나가시 내를 구경하거나 버스나 전철을 타고 근교로 나가 시골 마을을 구경하고 점심을 사 먹고, 저녁 즈음 집에 돌아와 저녁을 해 먹고 밤 산책을 하며 장을 보고 일찍 자고 또 일찍 일어나는 것이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유명한 시장은 모두 가본 탓에 하루는 시내에서 좀 떨어진 오리끄 시장(Campo de Ourique Market)에 가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La Boqueria)처럼 규모가 있지는 않았지만, 관광객의 발길이 적은 현지 시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게 뭐야? 자두인가 봐... 근데 새카맣네. 어머, 무화과 향기가... 이야... 이거 하나만 사도 돼?”
엄마가 과일 가게 앞에서 신기한 과일들을 몇 가지 골랐는데, 과감하게 잔뜩 사기가 망설여지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검게 잘 익은 무화과와 초록 무화과, 노란 자두, 검은 자두, 납작 복숭아를 골랐고 모두 한두 개씩 무게를 달아 살 수 있었다.
“바구니로 안 사도 된대?”
“응, 무게로 파는 거라 한 개 사도 괜찮대.”
“아유 고마워요.”
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한국어로 “고마워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인사를 받는 사람들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받아줬다. 나는 처음 혼자 외국에 나왔을 때 말이 잘 못 나오기라도 하면 창피해 얼굴이 붉어졌는데, 우리 엄마처럼 작고 선량하지만 용감한 모험가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나중에 엄마는 마음이 통하면 되는 거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믿고 실행할 수 있는 과감함도 더해야겠다.
“아까 저쪽에서 버섯도 사자.”
“버섯으로 뭐 하려고?”
“몰라 먹어보고 싶어.”
다른 쪽에서는 여러 종류의 버섯을 한두 개씩 섞어서 작은 용기에 담아 팔고 있었다. 하나같이 처음 보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버섯이 뭐 버섯이겠지, 치즈와 바질 페스토를 넣은 버섯 오믈렛을 해 먹으면 딱 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버섯과 함께 두고두고 먹을 치즈도 두 가지(말랑한 것과 딱딱한 것) 사고 만능 바질 페스토도 작은 것으로 하나 샀다. 매일 장을 볼 때마다 저녁에, 다음 날 아침에 뭘 어떻게 해 먹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신나게 놀고 실컷 자 고 빨리 내일이 왔으면.
다음 날 아침에 엄마가 씻을 동안 나는 고양이 세수만 하고 주방에 자리를 잡았다. 버섯을 썰어 버터와 바질 페스토에 슬쩍 볶아두고, 달걀을 풀어 소금 후추를 뿌린 뒤 팬에 올리고 반쯤 익힌 뒤 볶아둔 버섯을 더해 반으로 접었다. 접시로 옮겨서 딱딱한 치즈를 갈아 뿌려줬다. 곧 엄마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부엌에 얼굴을 비췄다.
“엄마가 뭐 도와줄까?”
“다 했어. 엄마 요거트 먹을 거야? 커피도 있는데.”
“둘 다 먹을래.”
식탁에는 따뜻한 버섯 오믈렛과 요거트, 커피, 어제 사다 둔 과일들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호텔 조식을 별로 좋아해 본 기억이 없다. 속옷이라도 챙겨 입고 내려가야 하고, 많은 사람이 뒤적거린 많은 음식들이 어쩐지 식욕을 떨어뜨리곤 했다. 그런 탓에 기껏 내려가서 주스나 마시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끼리 차려 먹으니, 아침마다 알맞은 양으로 내 맘에 들게 차려진 아침상을 보는 게 그렇게 뿌듯하고 흐뭇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맛있다. 한국 갈 때, 이 치즈 좀 사가자.”
“그래. 다른 치즈도 많이 먹어보고, 마음에 드는 거 다 사가자.”
후식으로 까맣게 잘 익은 무화과를 한입 물어보니, 쫄깃한 껍질에 과육이 가득한 속, 톡톡 터지는 꽃술이 말도 안 되게 달콤하고 향기로웠다. 동양에서 흔한 무화과와 서양에서 흔한 무화과는 종이 다르다는 글을 어렴풋이 본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다. 엄마도 행복한 탄성을 질렀다. 녹진한 맛의 검은 무화과와는 또 달리, 초록 무화과는 가볍고 산뜻하면서도 달고 향기로웠다.
“이런 건 정말 처음 먹어봐... 엄마는 초록 무화과 본 적 있었어?”
“아니, 근데 정말 너무 맛있다. 나는 초록색이 더 맛있는 것 같아.”
“그래? 난 둘 다 너무 맛있다... 다음엔 많이 사 오자.”
“그래도 돼?”
“그럼, 주방에 냉장고 완전 크잖아. 과일로 가득 채우자.”
리스본에서 꿈같은 일주일을 보내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짐을 정리했다. 체크아웃은 체크인보다 더 간단했다. 깔끔하게 정리를 해두고, 열쇠는 열쇠 통에 넣어 호스트에서 잘 지내고 간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도착했던 날처럼 따사로운 아침이었다. 택시를 타고 기차역에 도착해 미리 발권해뒀던 기차표로 두 번째 목적지인 포르토(Porto) 행 기차에 탔다.
우리가 예약한 포르토의 숙소는 2층으로 된 레지던스였다. 현관이 계단을 올라 2층에 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실과 테라스, 주방, 첫 번째 침실이 있고, 거실에서 내려가는 계단을 통해 마스터 침실이 하나 더 있었다. 오래된 건물의 운치 있는 나무 창틀과 미닫이문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모던하고 깔끔하게 꾸며진 숙소였다. 호스트는 포르토의 볼거리와 교통수단 이용법, 맛집과 마트를 손수 적은 커다란 지도를 보여주며 친절하게 직접 설명까지 해줬다. 물론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시장. 아쉽게도 숙소와 가까운 포르토 시내의 유명 전통 시장은 현대식으로 공사하는 중... 그렇다면 오늘 저녁은 라면이다.
포르투갈 제2의 항구 도시, 포르토는 중심지에 해리포터의 영감이 된 오래된 서점과 함께 포르토 대학이 있어 생각보다 더 젊고 활기찬 도시였다. 골목골목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따뜻한 햇빛에 더욱 빛이 나는 생기 넘치는 색깔이 넘치는 곳.
긴 시간 기차를 타고 도착한 첫날이니 만큼, 가볍게 도시를 걸으며 날씨를 즐겼다. 엄마가 좋아하는 젤라토 가게가 보일 때마다 기웃거리며 가게 위치를 저장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너무 좋아해서 하루에 딱 한 번 씩만 사 먹기로 했기 때문에 귀중한 하루 한 번의 젤라토를 고르는 일은 신중하게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장보기! 오늘은 라면을 먹기로 했으니 아침 거리와 함께 라면에 넣어 먹을 무언가도 사야 했다. 멋진 주방이 있는데 그냥 라면을 먹기는 아쉬우니까. 숙소에서 가까운 마트 중에 (낮에 동네를 돌며 미리 봐 뒀던) 가장 큰 마트로 향했다. 안에 사 온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큰 마트였다.
포르투갈은 다른 유럽에 비해서 물가도 너무나 저렴한 편이었는 데다가, 엄마와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이 풍부했다. 그날 우리는 문어를 사기로 했다. 칼칼한 라면을 팔팔 끓여 문어를 넣은 문어 라면...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한국 음식이 그립지 않은 줄 알았는데, 역시 라면은 소울푸드지.
“라면이 있는데 김치가 없네...”
“그러네... 오이무침이라도 해볼까?”
“양념 없지 않아?”
“임기응변으로 해 봐야지.”
양손 가득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와 커다란 냉장고를 든든하게 채운 뒤, 라면 물을 올리고 문어를 손질했다. 엄마는 그사이 커다란 오이를 총총 썰어 식초와 소금, 거기에 올리브를 다져 넣어 상큼하게 무쳐냈다. 임기응변을 한다더니, 정말이었다. 칼칼한 라면과 새콤한 오이무침이 식탁에 차려졌다. 통통한 문어가 딱 알맞게 익어서 쫄깃하고 부드러웠다.
“문어가 이 정도면 한국에선 엄청 비싼데.”
“그래?”
“그럼. 잘 끓였네, 너무 맛있다.”
“그치, 문어가 너무 잘 익었다. 포르투갈이 원래 문어가 유명하다잖아.”
“그랬어?”
“응, 그래서 우리 리스본에서 문어 먹었었잖아, 식당에서.”
“이게 훨씬 맛있다.”
“역시 라면이야?”
“그렇네.”
리스본에서 일주일, 포르토에서 일주일을 보낸 뒤 마지막 목적지는 포르투갈 남부의 휴양도시, 따뜻한 옥색의 바다가 기다리는 라고스였다. 비가 오는 새벽, 기차를 타고 리스본을 거쳐 라고스로 향했다.
리스본, 포르토 모두 바다와 가까운 도시였지만, 라고스(Lagos)에 들어서니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바다 향이 불었다. 밝은 색의 돌바닥과 푸른 하늘, 야자수들이 가로수로 늘어선 도시. 시내 중심지와 바닷가 사이에 위치한 숙소 앞에서 다정하고 친절한 호스트, 까밀라(Camila)를 만났다. 까밀라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숙소로 안내했다. 지금까지의 숙소들도 충분히 멋졌지만, 까밀라의 라고스 레지던스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눈이 반짝 떠지는 예쁜 인테리어에, 뭐든지 요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주방과 멀리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 거실과 다이닝, 두 개의 침실과 두 개의 화장실까지... 여기서 살게 해 달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엄마는 후에 포르투갈을 떠나기가 싫다며 엄마를 공항에 버리고 가란 말도 했다.)
어디서든 바다 내음이 나는 도시답게 라고스 시내에는 큰 해산물 시장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돔 종류로 보이는 생선들과 익숙한 연어, 참치도 있었고 낯설게 생긴 고기들과 커다란 갑각류, 조개 등이 가득했다. 엄마가 아주 싱싱하다며 신나 했지만 가격은 그렇게 신나는 가격은 아니었더랬다.
“이것 봐, 경선아, 이것 좀 봐!”
엄마가 아이처럼 기뻐하면서 커다란 새우를 가리켰다. 정말로 이제까지 내가 본 새우 중에 제일 큰 새우였다. 가격도 엄청났지만.
“우와...”
“이거 얼마야, 많이 비싸?”
“응. 하나에 우와... 하나에 2만 원이 넘나 봐.”
“우리 랍스터 사 먹었다고 생각하고 사자.”
“정말 먹고 싶은가 보네, 엄마.”
“응. 그냥 버터에 굽기만 해도 너무 맛있을 것 같아. 우리 하나씩 먹자.”
랍스터가 안 부럽다고 생각하니 썩 타당한 제안이었다. 통통하고 거대한 새우를 길게 갈라 버터에 노릇노릇 구울 생각을 하니 더욱 거절할 수 없었다. 주로 장을 봐서 요리를 해 먹었던 우리는 식비가 그렇게 많이 들지 않았는데, 그날은 새우에만 제법 큰돈을 썼다. 물론 후회 없는 결정이었다.
“어유, 갑오징어도 이렇게 크고 싱싱하네, 이것 봐.”
“와 진짜 맛있겠다... 이건 어떻게 먹어?”
“글쎄... 구워 먹을까?”
“새우 구워 먹기로 했잖아. 이거는... 파스타 어때? 내가 해줄게.”
“그럼 크림 파스타로 해줘.”
“그래. 생면 사서 해 먹자.”
“파스타도 생면이 있어?”
“그럼. 여기 유럽이잖아.”
새우와 갑오징어에 값이 싼 생선도 몇 마리나 샀다. 아주 큰 냉장고가 있는데 낭비할 순 없었다. 일반 식재료를 파는 마트에도 들러서 파스타 생면을 사고, 곁들일 채소와 크림을 샀다. 요리용 크림이 종류별로 가득했는데 버섯이 그려진 크림과 여러 종류의 치즈가 그려진 크림을 골랐다. 둘을 섞으면 버섯 치즈 크림이겠지, 라며.
반으로 갈라 버터를 넣고 노릇노릇 구운 새우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기가 막힌 맛이었다. 부드럽게 입안에 가득 차는 새우살이 너무너무 달았다. 라임을 띄운 시원한 맥주와 함께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런 건 식당에서 사 먹으면 진짜 비쌀 거야.”
“와 진짜 랍스터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 엄마.”
각자 새우 한 마리씩 먹었는데도 배가 불렀다. 흡족하게 배를 두드리다가 먹은 것을 치우고 바닷가를 걸었다. 카약을 타는 곳에 들러서 시간표를 봐 두고, 바다에 발도 담갔다. 맑은 물이 적당히 시원했다. 물이 차가울까 봐 망설이는 엄마의 양손을 잡고 물에 들어갔다. 엄마는 이내 활짝 웃으며 물에서 나오질 않았다.
해변에 앉아 물속에 서 있는 엄마를 보고 있으니 이제껏 엄마가 바다에서 물놀이하는 걸 저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뒤돌아 나를 볼 때마다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난 우리는 아침 겸 점심으로 파스타를 해 먹기로 했다. 채소를 적당히 썰어 간을 하고 볶다가 크림을 넣어 끓인다. 거기에 엄마가 잘 손질해준 갑오징어를 넣어 살짝 익었을 때 데친 파스타 면을 넣고 갑오징어가 알맞게 익자마자 불을 껐다. 오동통한 갑오징어가 너무 잘 익어서 쫄깃하면서도 살살 녹었다.
“파스타 생면이 이런 거구나... 어쩜 이렇게 맛있어?”
“그렇지? 애들이 맛집 많이 찾았냐고 물어보던데. 우리 집이 맛집이라고 해야겠어.”
라고스에서는 일주일 내내 바다를 걷고, 물놀이를 하고, 해변에 누워있기도 하고, 원 없이 바다를 즐겼다. 돌아다니며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 커피와 간단한 간식을 먹기도 했지만 늘 적어도 하루에 한 끼는 집에서 해결했다. 라고스의 숙소에서 참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지만, 특히 마음에 남는 일이 있었다. 라고스를 떠나기 전날, 다이닝의 식탁을 정리하다가 실수로 촛대를 깨뜨렸다. 우리는 까밀라에게 미안하다고 변상해 주겠다고 메시지를 보냈고, 까밀라로부터 말하지 않고 그냥 갔으면 몰랐을 부분인데 먼저 말해줘서 고맙다며 오히려 감사 인사를 받았다. (물론 보상은 했습니다.)
게다가 라고스를 떠나 리스본으로 가면서 숙소에 깜빡하고 두고 온 친구들 선물을 친절한 까밀라가 직접 버스 택배로 보내주기까지 했다. 선물을 두고 온 걸 알았을 때 눈물이 쏙 나왔는데, 정말 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무사히 선물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으니, 그때도 물론 많이 고마워했지만 또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해 본다. (엄마가 부엌에 있던 전기 주전자를 탐내서 나중에 전기 주전자 브랜드를 물어봤을 때도 친절하게 알려줘서 고마웠어요. 참 많이 질척거렸군요...)
지난 여행에 대해 생각해볼수록 우린 주방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시장까지 버스를 타고 찾아가 보기도 하고, 싱싱한 과일과 고기, 생선을 사서 낯선 향신료와 함께 마음대로 요리를 했다. 맛있는 와인과 맥주도 질 좋은 치즈와 햄을 안주 삼아 실컷 즐겼다.
우리의 숙소는 늘 넓은 주방과 거실, 식탁과 소파가 있었고 그걸 누리지 않고 그냥 지나칠 이유가 없었다. 에어비앤비 트립을 통해 포르투갈 국립공원으로 등산도 가고, 라고스의 해변에서 카약도 타고, 포르투갈의 아름다운 날씨와 자연을 마음껏 즐겼지만, 엄마와 둘이서 우리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며 보냈던 시간들이 더 마음에 남는다.
한국에서 만화를 공부한 뒤, 프랑스에서 만화와 미술사를 조금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프랑스에서의 일상을 담은 만화 [데일리 프랑스]를 연재했고, 2019년에 책으로 출간했다. 언제 돈 벌어서 네 엄마에게 효도할 거냐는 말에 반박하고자 엄마와 해외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