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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Oct 18. 2019

볼리비아 수크레에서 살아보기

우리의 여행 방식을 바꿔 놓은 수크레의 에어비앤비


긴 신혼여행의 시작

2015년 가을, 결혼식을 올리고 남편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났다. 첫 데이트 날에 남편은 뜬금없이 세계여행이 꿈이라고 고백했다. 2년 동안 적금을 부었고 곧 만기가 되면 떠날 것이라는 구체적인 계획도 덧붙였다. ‘세계여행이라니 이 무슨 꿈같은 소리인가?’ 생각했던 나는 어느새 설득됐다. 인생은 때때로 지루할 만큼 길고, 혹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날 만큼 짧으니 말이다. 게다가 우리는 잃을 게 없었다. 있는 돈을 다 합쳐도 방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힘든 시대였다. 사회의 기준을 쫓기보다 우리만의 기준을 만들어 나가고 싶었다. 1년 반 동안 돈을 더 모았고 불필요한 결혼 비용은 줄이려 노력했다. 그렇게 우리는 긴긴 신혼여행을 시작했다.

▲ 나의 꿈의 목적지였던 볼리비아의 우유니(Uyuni) 소금사막

상상만으로는 여행하는 하루하루가 행복할 것 같았지만, 가끔은 이 여행을 그리고 서로를 놓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이 많았다. 베드버그에 물려 고생하고, 가방을 도둑맞고. 미처 예상하지 못한 난관 속에서 미숙했던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참 많이도 싸웠다. 이제 막 시작하는 커플에게 어쩌면 1년간의 세계여행은 무모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마저도 여행의 일부였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여행과 인생은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여행하는 동안 만나는 눈부신 장소보다 먹고, 자고, 사랑하는 사람과 다투고, 화해하고, 감정과 생각을 나누는 일상 안에 행복이 있음을 자주 깨달았다. 우리가 거쳐 간 수많은 여행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도 그렇게 일상을 살았던 곳이다.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나는 이십여 일을 살았던 볼리비아(Bolivia) 수크레(Sucre)를 떠올렸다.




세계문화유산 볼리비아 수크레에서 살아보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크레는 약 500년 전 식민지 시대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안에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도시가 해발 2,810m 고도에 위치해 있어 기후가 사계절 내내 한국의 봄, 가을처럼 선선하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도 연일 기분까지 맑아지는 화창한 날씨가 이어졌다. 하얀 벽, 붉은 지붕의 예스러운 건물과 청명한 날씨는 수크레에 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아름다운 옛 건물에 묵고 싶은데, 호텔은 비쌌고 처음 묵었던 호스텔에서는 베드버그가 나왔다. 아무래도 가정집은 더 청결하겠지 싶어 에어비앤비를 검색했다. 원하는 조건을 넣고 리뷰도 꼼꼼히 읽은 뒤에 깔끔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았다. 프로필 사진 속 호스트의 이름은 아나(Ana). 현지인이 사는 집에, 현지인처럼 살아 볼 수 있다는 설렘을 안고 아나의 집으로 향했다.


옛 가옥인 아나의 집은 밖에서 보면 높은 벽에 문만 있는 형상이라 내부를 가늠할 수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아름다운 정원이 있고, 네모난 정원을 3층 높이의 건물이 둘러싸고 있었다. 집안일을 맡아서 하는 후아나(Juana)와 강아지 링고(Ringo)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줬다. 우리 방은 3층이었고, 바로 위층은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옥상이었다.

▲ 전망대에서 수크레 시내를 배경으로 한 컷
▲ 아나의 집 옥상에서 수크레 시내가 내려다보였고, 밤이면 멋진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수크레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크게 한 일이 없다. 그저 여행지에서의 일상을 살았다. 매일 아침 동네 뒷산에 올랐고 집에서 혹은 카페에서 개발자인 남편은 코딩을 하고,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메인 광장인 ‘5월 25일 광장(Plaza 25 De Mayo)’에 앉아 햇볕을 쬐고, 가보지 않은 골목길을 걸으며 도시를 구경했다. 신기하게도 광장 귀퉁이에는 한국분이 운영하는 사진관이 있었다. 라면이나 김 같은 한국 식품과 화장품을 팔고 있었는데,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정착하게 됐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용기가 없어 눈인사만 나눴다. 지구 반대편 일지라도, 이렇게 평화롭고 날씨 좋은 곳이라면 나도 와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잠시 생각했다.

▲ 메인 광장인 5월 25일 광장, 시민들에게 여유를 주는 곳이다.
▲ 골목 골목이 문화유산이었던 수크레

수크레에는 맛집이 많다. 유럽인이나 미국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많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끼니때마다 무엇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남미 여행 중에 음식이 아쉬울 때가 많았는데, 수크레에서는 제대로 된 스테이크와 수제버거, 피자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었다. 맛있었던 집은 이곳에 사는 동안 단골 가게가 되었고, 이 도시를 떠날 즈음 몸무게는 늘어 있었다.


장을 보는 것도 중요한 일과였다. 수크레 중앙시장(Mercado Central)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장 뒤편에 쭉 늘어선 생과일주스 판매대였다. 과일을 고르면 바로 주스로 만들어 주는데 한 번 갈면 두 잔이 나온다. 그래서 한 잔을 쭉 들이켜고 잔을 내밀면 바로 한 잔을 더 따라준다. 마치 유럽인들이 카페에 잠깐 들러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듯, 수크레 사람들은 출근 전에 혹은 업무 중에 잠시 생과일주스를 마시러 이곳에 들렀다.

▲ 판매대 앞에서 사람들이 생과일주스를 기다리고 있다(좌) / 아비스 카페의 치리모야 아이스크림(우)

한식이 그리울 때면 시장에서 최대한 비슷한 식재료를 찾아 요리했다. 당시에는 초보 주부였기 때문에 새로운 식재료로 요리할 엄두를 못 냈지만, 처음 보는 과일이 있으면 꼭 사서 맛을 보았다. 나는 치리모야(Chirimoya)라는 과일을 좋아했다. 하얀 속살의 결이 파인애플과 비슷한데, 수분은 적고 식감은 질기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새콤달콤한 맛이 났다. 치리모야로 만든 아이스크림도 참 맛있었다. 시내 곳곳에서 치리모야 아이스크림을 팔았지만, 특히 아비스 카페(Abis Café)의 치리모야 아이스크림이 정말 맛있어서 매일 찾다시피 했다.


처음 시장에서 치리모야를 살 때, 어느 집에서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살갑게 말을 건네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추천해주는 대로 큰 치리모야 한 개와 망고 세 개를 우리 돈 일만 원 정도에 사서 집에 왔다. 마침 부엌에 있던 후아나에게 시세를 물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2배나 비싸게 주고 산 것이었다. 돈보다도 속았다는 사실이 분하고, 속이 쓰리지만 어쩌랴. 어느 여행지에서나 겪어야 할 필수 과정이었다.




가족은 아니지만 마치 가족처럼

아나의 집에 살면서 우리는 마치 이 집의 구성원이 된 느낌이었다. 생활공간을 공유하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매일 아침 이 집의 반려견 링고와 산책을 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면 어디선가 쏜살같이 링고가 달려와 앞발로 남편 허벅지에 발도장을 쾅 찍으며 자기도 데려가라고 매달렸다. 종종 이 집에 묵는 손님들을 따라 산책을 했다는 링고는 걷는 동안 앞서가며 우리를 안내하거나, 뒤에서 킁킁 냄새를 맡으며 따라왔다.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느라 분주한 사람들을 뒤로하고 링고와 동네를 산책하는 것이 우리의 첫 일과였다.

▲ 링고와 산책 가는 길, 가끔은 여자친구를 만나러 사라져 애먹이기도 했다.
▲ 산 아래 레콜레타(Recoleta)에 있는 성당과 박물관(좌) / 매일 아침 뒷산에 올라 바라본 수크레 시내(우)

집에 돌아오면 근사한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모카포트로 내린 커피와 빵, 과일, 볼리비아 전통 잼 등 후아나 덕분에 매일 아침 호텔 조식이 부럽지 않은 식사를 했다. 후아나는 아나의 사촌인데, 집안일을 도와주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집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사람이 후아나였고,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후아나에게 물어봤다. 수크레에 있는 동안 가장 감사했던 사람이다.

▲ 매일 아침 후아나가 차려준 아침 식사

아나는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직장 여성으로, 볼리비아 아이들을 돕는 NGO에서 일한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했고 부모님 집으로 돌아온 후, 남는 방을 에어비앤비로 활용하고 있었다. 회사 일로 늘 바빠 보였지만, 우리가 불편함 없이 머물고 있는지 항상 묻고 집 주변의 맛집도 여럿 알려줬다.


우리는 때때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가 동양인이기 때문인지, 아나는 대만인이었던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결혼하고 세계여행 중이라고 말하면, 우리 또래의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은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는지’, ‘결혼 과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묻곤 했다. 그럴 때면 사랑에 대한 고민이 인종과 국가에 상관없이 전 인류의 난제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아나의 아버지 페드로(Pedro) 아저씨는 매너 좋은 신사였다. 우리와 마주치면 늘 웃는 얼굴로 인사하셨다. 이 집에는 아나의 조카 세바스티안(Sebastian)도 살고 있었는데, 나는 여행 중에 배운 스페인어를 써보고 싶을 때 일부러 초등학생 세바스티안에게 말을 걸었다.


어느 날 아침, 세바스티안이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학교 갔을 시간인데 무슨 일일까 궁금해하다가 나중에 후아나에게 물어봤더니, 후아나는 깔깔 웃으면서 아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세바스티안이 이를 안 닦고 학교에 가다가 아나한테 들켜서 크게 혼났고, 결국 울면서 양치하러 다시 집에 왔다는 것이다. 귀여운 세바스티안이 서럽게 울던, 웃기고도 안쓰러운 상황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 에어비앤비 앞에서. 우리 부부와 후아나, 페드로 아저씨(좌) / 세바스티안, 아나 그리고 링고와 함께(우)

잔잔하게 흐르던 수크레의 시간도 어느덧 마무리할 때가 왔다. 오래 머문 만큼 헤어짐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에어비앤비에 묵은 덕분에 수크레에 사는 현지인들과 교류할 수 있었고 더 깊은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수크레에서 살아본 경험은 이후로 우리의 여행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전의 여행이 눈에 담기에 바쁜 여행이었다면, 이후의 여행은 한 곳에 오래 머물며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그곳을 음미하는 여행이 되었다.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나의 꿈의 목적지는 우유니(Uyuni) 소금사막이었다. 하지만 너무 비현실적인 풍경이었기 때문일까? 그 장소가 머릿속에 사진처럼 남아 있을 뿐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반면에 우유니 이후 찾았던 수크레는 여러 날 살아본 기억 때문인지 항상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그때의 시간을 그리고 싶을 때면, 아나의 식구들과 가족사진처럼 함께 찍은 사진을 들여다본다. 내 기억 속 수크레의 일상은 날씨만큼이나 청명한 날들이었다.





에어비앤비 작가, 제이영

여행기를 주로 쓰지만, 여행작가보다 에세이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janeisyo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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