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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Nov 11. 2019

쿠바에 두고 온 영혼

한량 여행자에게 쿠바가 매력적인 이유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쿠바

퇴사를 하고 중앙아메리카 여행을 간다고 했더니 친한 친구가 갑자기 쿠바(Cuba)에 대해 예찬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쿠바에 관심이 생겼고 체 게바라(Che Guevara)의 자서전을 읽었으며, 언젠가 꼭 쿠바에 가겠다는 말까지 늘어놓았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열심히 쿠바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어쩐지 쿠바가 궁금해졌다. 친구는 왜 그토록 쿠바라는 나라에 빠지게 된 걸까.


지금이야 송혜교, 박보검 주연의 드라마 <남자 친구>나 류준열, 이제훈 주연의 여행 예능 <트래블러> 등 TV 프로그램에서 쿠바를 접할 기회가 종종 있지만, 2016년이었던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쿠바는 잘 알려진 나라가 아니었다.

▲ 왼쪽부터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치코와 리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영화 포스터

결정적으로 중앙아메리카 여행 계획에 쿠바를 추가하게 된 이유는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세 영화 때문이었다. 그 세 작품은 나에게 ‘아프로큐반 재즈(Afro-Cuban Jazz, 재즈 본래의 리듬에 라틴 아메리카 리듬을 더한 재즈 리듬)’ 장르의 문을 열어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과 영화를 본 후에도 여운이 남아 OST를 백번 넘게 들었던 작품 <치코와 리타(Chico & Rita)>, 바이크로 세계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The Motorcycle Diaries>다.


친구의 적극적인 쿠바 영업과 영화 속 쿠바의 매력에 끌려 두 달가량의 미국-중앙아메리카 여행 계획에 쿠바를 슬며시 추가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쿠바에 영혼을 두고 왔다고 할 정도로 쿠바와 사랑에 빠지게 될 줄은.




호불호 강한 여행지 쿠바에서 '극호'를 외치다!

코스타리카(Costa Rica)에서 쿠바나 항공(Cubana Airlines)을 타고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José Martí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한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서 시내까지 가기 위해 탑승한 택시의 문이 잘 닫히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택시기사에게 문이 닫히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니 연신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게 쿠바 스타일'이라는 것처럼.

▲ 문이 잘 닫히지 않아 톡톡히 신고식을 치뤘던 아바나의 택시(좌) / 이것은 쓰레기인가 작품인가(우)

쿠바는 많은 사람들에게 동경의 여행지이기도 하지만,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나라라고 한다. 외지인에게 돈을 뜯어내거나 ‘치나(China, 스페인어로 중국 또는 중국인을 뜻하는 여성 명사로 동양인을 비하하는 말)’라고 부르며 캣콜링(Catcalling, 남성이 길거리를 지나가는 불특정 여성을 향해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는 행위)하는 일부 쿠바 사람들, 제한적인 인터넷, 복잡한 이중 화폐, 거의 없다시피 한 도시의 유물, 여기저기 쓰레기가 널브러진 도시 모습, 낡은 건물들, 구하기 힘든 공산품까지(꼽아보니 정말 많다!). 그럼에도 쿠바가 왜 좋으냐고 묻는다면 명확하게 설명할 길이 없다. 그냥 나의 한량스러운 여행 성향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고 밖에.




골목 덕후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곳

▲ 골목 덕후의 심장을 뛰게 한 쿠바의 골목 풍경

나는 삶의 흔적은 골목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여행지에서 역사 유적지나 박물관, 대자연을 찾아다니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프랑스 파리(Paris)를 여행했을 때에도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 궁전 근처도 안 가봤을 정도다. 대신 한량처럼 여행지 골목 이곳저곳을 누비며 현지 일상을 엿보곤 했다.


쿠바노들의 일상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서 현지인들의 거주 지역인 센트로 아바나(Centro Habana) 지역에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내가 묵었던 에어비앤비는 '쿠바노들의 만남의 광장'이라 불리는 말레콘(El Malecón,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구시가 북쪽에 위치한 해안)까지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현지인들의 삶을 더욱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에어비앤비에서 준비를 마치고 거리로 나오면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강렬한 카리브해(Caribbean Sea)의 햇살 아래 빛나는 형형색색의 파스텔 톤 건물들, 낡아빠진 올드카,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올라(Ola,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는 쿠바노들까지. 나와 같은 골목 덕후라면 쿠바 여행 내내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맛있는 럼과 맥주면 충분해!

▲ 럼 비율이 무척 높았던 쿠바의 모히토

나는 여행지에서 식사를 할 때 대부분 술을 곁들인다. 쿠바 여행에서도 끼니때마다 술을 마셨는데, 그중 모히토(Mojito)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바나(Havana)에서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즐겨 마셨다는 모히토를 마셔보았다. 모히토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마셨던 모히토는 음료수로 느껴질 만큼 럼(Rum)을 많이 넣어 술맛이 굉장히 강했다. 역시 럼의 고장다웠다.

▲ 쿠바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갓 만든 치즈 피자와 부카네로 맥주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쿠바의 맥주. 쿠바의 대중적인 맥주로는 부카네로(Bucanero)와 크리스털(Cristal) 두 종류가 있는데, 알코올 도수 5.5프로의 진한 맛의 부카네로 맥주가 나의 취향을 저격했다. 쿠바 여행 중 먹은 음식들 중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것도 부카네로 맥주와 한국 돈으로 단돈 칠백 원 정도에 판매하는 길거리 피자를 함께 먹었을 때였다. 진심으로 정말 맛있었다!




도심을 벗어나 시간 보내기

가끔은 북적거리는 도심을 벗어나 한가롭게 교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한량 여행’을 추천한다.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설레설레 산책을 즐기다 보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특히, 교외 인적이 드문 벤치나 잔디밭에서 낮잠 타임을 갖는다면 제대로 한량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쿠바 남쪽에 위치한 트리니다드(Trinidad) 섬에 방문한다면, 시내를 벗어나 잉헤니오스(Valle de los Ingenios) 열차 투어를 해볼 것을 추천한다. 과거 사탕수수 농장이었던 잉헤니오스 주변을 돌아보며 럼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투어다.

▲ 잉헤니오스 사탕수수 농장(좌) / 마나카이스나가 종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우)

이곳의 또 다른 볼거리는 47미터 높이의 종탑 마나카이스나가(ManacaIznaga)인데, 탑을 세운 이유는 사탕수수에서 일하던 노예들을 감시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악덕 사장(?)이 세운 탑이지만 지금은 인기 만점인 관광명소가 되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1쿡(CUC, 쿠바 화폐 단위로 1유로 정도에 해당된다)을 내면 종탑 전망대를 오를 수 있는데,  옛 사탕수수 밭은 물론이고 교외의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 돈이 아깝지 않다. 더위에서 벗어나 47미터 높이에서 잠시나마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으니 더욱 좋다.




어디에서나 흘러나오는 쿠바노의 음악

쿠바는 온 거리가 음악 천지로, 굳이 공연장을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음악이 듣고 싶다면 가던 길을 멈춰 서면 그만이다. 에어비앤비에서도 그랬다. 아바나에 도착한 첫날, 내가 묵었던 에어비앤비 건너편 방 미국인 여행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우연히 저녁 식사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기분 좋게 에어비앤비로 돌아와 발코니에서 맥주 한 캔씩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찰나였다. 그때, 발코니 밖에서 신명 나는 살사 음악이 흘러나왔다. 누군가에게 팁을 받기 위한 연주가 아닌 자신들끼리 흥에 겨워 부르는 노래였다.


살짝 술기운이 올라 흥에 취했던 우리는 발코니에서 쿠바의 대표 음악인 '관타나메라(Guantanamera)’를 불렀다. 흥이 제대로 올라 가사도 잘 모르는 노래를 후렴구만 이어 부르며 깔깔댔다. 그리고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OST인 <찬찬(Chan Chan)>을 부르려던 참이었다.

▲ 오직 나만을 위해 라이브 공연을 열어준 안토니오

<찬찬>의 가사를 몰라 ‘나나나~’하며 마음대로 노래하고 있는데, 창밖에서 <찬찬>이 흘러나왔다. 밖에서 노래를 부르던 쿠바노들이 우리의 노래를 듣고 화답해준 것이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밖에 있는 쿠바노들과 함께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멋진 공연이 끝난 뒤에는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눴다. 정말이지 쿠바였기에, 또 에어비앤비에 묵었기에 가능했던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어둡게 찍힌 사진밖에 남아 있지 않아, ‘제대로 된 사진을 한 장이라도 찍어둘 걸’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게으른 여행자에게 추천하는 여행지, 쿠바

▲ 아바나 혁명광장(Plaza de la Revolución)의 체 게바라 얼굴(좌) / ‘자유 쿠바 만세(VIVA CUBA LIBRE)’라고 적힌 벽화(우)

누군가는 여행하기에 최악의 나라라고 꼽기도 하지만, 나는 ‘영혼을 그곳에 두고 왔다’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쿠바에 푹 빠져버렸다. 특히, 나처럼 게으른 한량 여행자에게는 쿠바는 최적의 여행지가 될 것이다. 쿠바는 삶의 속도가 느리고, 사람으로 북적이지 않으며, 관광지가 많지 않아 자유 시간에도 딱히 할 일이 없다. 신기하게도 다른 나라에서는 빽빽하게 스케줄을 짜고 치열하게 관광지를 돌아다녔던 여행자들도 쿠바에서는 에어비앤비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유연하게 계획을 바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쿠바에 다녀온 지 3년이 지났지만, 바쁜 도시 생활에 지쳐 한량으로 지내고 싶을 때면 말레콘에 앉아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았던 순간을 떠올리고는 한다. 일렁이는 열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낭만적인 말레콘의 모습은 나의 기억 속에서 쿠바의 한 조각으로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에어비앤비 작가, 담다디

여행지에서 오전 10시 이전에 하루를 시작하는 법이 없는 게으른 여행자. 2020년에는 ‘바이크’와 ‘비건’을 키워드로 한량 여행을 떠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트위터 @somewherec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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