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어비앤비 Aug 05. 2019

30대 부부, 퇴직금 털어 세계 여행

인생의 황금기를 즐기는 우리만의 방식

“네가 회사 제일 오래 다닐 줄 알았는데, 의외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서 5년간 일하다가 퇴밍아웃(퇴사+커밍아웃)을 했을 때 입사 동기들은 이렇게 말했다. 퇴사 목적이 ‘세계 여행’이라고 말했을 때 반응은 더 뜨거웠다. 


“이직하는 줄 알았는데 세계 여행이라고?! 멋있다. 근데 다녀와서는 뭐 하려고?”


나는 끝내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했다. 여행을 다녀오면 30대 중반에 접어들 텐데 여행 후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불안하지 않았냐고? 미래가 막연했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5년간 일한 나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어떤 여행은 삶의 뿌리가 된다


세계 여행을 떠나기 위해 퇴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여행은 우리 부부의 버킷리스트가 아니었다. 우리 부부가 30대 초반을 살아가는 방식일 뿐 세계 여행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우리는 젊었고, 여행에 필요한 돈(퇴직금)이 있었으며, 가족들이 모두 건강했고, 아이가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 세계 여행은 이 황금기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이 여행이 우리의 삶을 이전과 다르게 바꿔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여행은 여행일 뿐이다. 다만 여행을 통해 우리의 가치관이 더 단단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부부가 행복한 삶을 만들어나가도록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경험들이 튼튼한 뿌리가 되어주길 바랐다.


그렇게 떠난 세계 여행에서 우리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부부 여행자의 특성상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지 않았던 우리에게 에어비앤비는 국적, 나이, 성별, 직업이 다양한 호스트들을 만나는 교류의 장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집에 머물며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들과의 교류는 내가 여행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그려나가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세계를 돌며 30대 초반을 즐기기로 했다. 이 경험은 30대 이후의 우리 삶에 튼튼한 뿌리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원하는 환경에 나를 놓는 삶

셰프에서 에어비앤비 호스트로, 이탈리아 토리노의 스테파노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만난 스테파노다. 20대 후반인 스테파노는 6년간 호텔 레스토랑에서 퍼스트 디시(First Dish, 메인 요리가 나가기 전 준비되는 음식들)를 요리하는 셰프였다. 그는 하루에 열두 잔씩 커피를 마시면서 3교대(아침, 점심, 저녁)로 일했다고 한다. 좁은 주방에서 높은 온도를 견뎌가며 온종일 쉼 없이 일하다 보니 허리와 손목에 통증을 느꼈고, 일을 향한 스트레스가 심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도 많다고 했다. 친구들은 물론 가족들조차 만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만 했던 그는 결국 ‘이러다가는 건강을 해치겠다’ 싶어 일을 그만두고 2년 전, 부모님이 살던 집을 수리해서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되었다.

훤칠한 키와 핸섬한 외모의  이탈리아 청년 스테파노는 매일 아침 우리에게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려주었다.

그의 집은 토리노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지도만 보고 그의 집에 찾아갈 때는 이 길이 맞는지 계속 긴가민가했다. 너무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는 데다 시내와는 꽤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에 집 마당에서 토리노 시내와 비소산(Monte Viso)의 만년설까지 보는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자랐는데 성년이 되었을 무렵 부모님은 이혼하고, 형은 런던으로 직장을 구해 떠났다고 했다. 넓은 집을 그대로 두기는 아쉬워 집을 깨끗이 수리하고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집 뒤로는 비탈진 경사면에 작은 농장을 만들어 자신이 먹을 채소를 길렀다.

높은 언덕에 위치한 스테파노의 에어비앤비에서는 토리노 시내는 물론 설산까지 볼 수 있었다.

스테파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여행을 떠나기 전 일에 치여 살았던 때가 생각났다. 퇴사하기 전 우리 부부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지냈다. 출근 준비로 하루를 시작해 퇴근해서 집에 오면 밥 먹고 씻고 자기 바빴으며, 주말에는 평일에 일하느라 지친 몸을 쉬게 하는 데 대부분을 소비했다. 우리의 일주일은 회사에서 일을 하거나(평일), 회사에서 다시 일하도록 재충전하는 시간(주말)으로 나뉘었을 뿐이었다.


스테파노가 회사를 그만두고 에어비앤비를 운영할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할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스테파노는 연상의 일본인 여자친구가 있었으며, 내년 여름 여자친구와 함께 살기 위해 일본 교토에 간다고 했다. 그곳에서 레스토랑 셰프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도 있다고 했다. 가진 것을 지키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위해 새로운 환경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멋졌다. 그는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큰 위안과 용기를 주었다는 사실을.

일본인 여자친구가 있는 스테파노는 라면은 물론 김치도 잘 먹었다. 라면을 같이 먹은 다음날 그는 감사의 의미로 정통 이탈리아 파스타를 만들어주었다.



프라하의 젊은 맞벌이 부부가 사는 법

신혼집을 에어비앤비 숙소로, 체코 프라하의 스테판과 이자벨라


프라하에서 만난 스테판과 이자벨라는 맞벌이를 하는 신혼부부였다. 프라하는 서울만큼이나 집값이 비싸 그들은 도심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언덕에 위치한 아파트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큰 창이 있는 발코니와 거실 및 부엌 그리고 방 두 개와 화장실이 있는 집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부부의 성향이 집 안 곳곳에 걸린 감각적인 여행 사진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집 안 곳곳에는 여행을 좋아하는 부부의 사진들이 감각적으로 걸려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곳에 머물며 관찰한 그들은 한국의 여느 맞벌이 부부와 다르지 않았다. 스테판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엔지니어로, 이자벨라는 좀 더 작은 규모의 로컬 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다.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9, 10시까지 출근해서 4, 5시면 일을 마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숙소에는 5시 이후에만 체크인이 가능했다.


체크인을 하는 날 퇴근하고 집에 온 이자벨라와 집에서 저녁을 같이 보냈다. 스테판은 약속이 있는지 4시에 집에서 나가 밤 10시가 되어서야 들어왔다. 그동안 이자벨라는 간단히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넷플릭스로 미드를 한 편 보고, 차를 한 잔 끓여서는 방으로 들어가 책을 읽었다.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마치 프라하에 사는 맞벌이 부부가 된 느낌이었다.

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온 우리에게 그들의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출퇴근하고 저녁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마치 우리의 그것과 매우 비슷했기에 동질감을 느꼈고, 그러면서도 신혼집 방 한 칸을 에어비앤비 숙소로 운영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추가 수입을 버는 모습이 새로웠다. 우리도 한국의 신혼집을 이렇게 운영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우리 집은 전세였기 때문에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려면 집주인의 동의 및 관할 구청의 허가가 필요했겠지만 그런 서류상의 절차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될 생각을 못 했던 건 낯선 사람들과 집을 공유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수 부부가 되어 세계의 다양한 도시에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들이 한국에서 더 즐거운 추억을 만들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것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고 보람되면서도 경제적으로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신혼집의 방 한 칸을 에어비앤비로 운영하는 스테판, 이자벨라 부부를 보면서 우리도 돌아가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휠체어에 앉은 세계 여행자, 프랑스 트루아의 엘케


에어비앤비를 통해 만난 사람들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또 있다. 바로 프랑스 소도시인 트루아에서 만난 호스트 엘케 아주머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인상으로 우리를 반겨주신 아주머니는 긴 여정에 피로했겠다며 초콜릿부터 먹으라고 건네주었다. 포장부터 고급스러움이 엿보이는 그것을 맛있게 먹자 엘케 아주머니는 아예 봉지째 내어주었다. 마실 것도 준다기에 아내는 와인, 나는 물을 청했고, 우리는 그렇게 거실 테이블에 앉아 아주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주머니는 5년 전 두 번째 남편과 사별했고 슬하에 20대 초반의 아들이 있다고 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인 트루아의 넓은 집에서 혼자 지낼 어머니가 걱정되었는지 아들은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되어볼 것을 제안했다. 그리하여 엘케 아주머니는 다양한 게스트들을 2년째 만나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의자에 옷을 걸어둔 채 초콜릿, 와인에 이어 아주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식사까지 마쳤다.

사실 엘케 아주머니는 휠체어에 탄 채 생활해야 할 만큼 몸이 불편했다. 게스트의 아침을 차려주려면 부엌과 거실을 여러 번 오가며 준비해야 했고, 그때마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집 안 청소와 빨래 그리고 목욕은 아침마다 오는 도우미 아주머니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머니는 게스트들과의 교류를 즐겼다. 몸이 불편할지언정 마음은 늘 열려 있는 분이었다.


아주머니는 몸이 불편해서 멀리 여행을 가지는 못하지만 여행지에 가지 않아도 여러 나라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으니 자신은 집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 말에 여행을 떠나야만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생각은 도끼에 맞은 것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자신이 가진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니 우리가 찾는 행복한 삶 또한 특별한 환경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자세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여행을 떠나기는 어렵지만 아주머니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세계 여행을 통해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세계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는 건 아니다. 우리가 살아온 30년간 ‘성취’는 삶의 중요한 동기이자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승진, 이직, 성공한 재테크 등 한국에 있는 또래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불안하기도 하고, 우리도 그런 것들을 추구했어야 하는 건 아니었나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여행을 통해 몸소 체험하고 있다. 열심히 일해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성취해내는 친구들을 보면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지만 그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정답은 아니라고 믿는다.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다르고, 인생의 답은 단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우리의 황금기를 하루하루 즐기고 있다.

 

다양한 도시에서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의 인생에도 정답은 하나가 아님을, 각자의 삶에는 각자만의 해답이 있음을 믿는다. 우리의 여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30대 초반을 우리는 세계를 여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에어비앤비 작가, 김석민

증권회사에서 개미처럼 5년간 일하다가 퇴사 후 아내와 함께 세계 여행 중인 백수입니다. <일간백수부부>란 이름으로 하루 한 편 여행기를 쓰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_ @_kimpago

유튜브_ @김파고Pago

매거진의 이전글 책과 술을 사랑한다면, 포르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