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밥을 하러 크라쿠프로!
퇴사를 하고 세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한여름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만큼 많아서, 편한 운동화만 한 켤레 구하면 나조차 훌쩍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그뿐인가. 퇴사를 한 후 날씨 좋은 외국의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사람들은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하는 사람만큼 많아서, 여권이 있는 사람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은 '한 달 살기'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심어준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심심해서 퇴사하는 사람은 없다는 걸. 모든 퇴사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아직 험한 세상을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퇴사를 결심하기까지는 감히 상상도 못 할 망설임과 고민의 시간이 있었을 테니까. 고민의 답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와중에 퇴사의 '퇴'보다 퇴근의 '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은, 삐약삐약 병아리 음메음메 송아지 같은 사회 초년생인 바로 나다.
되는대로 2n년을 살다가 4학년 2학기를 맞닥뜨린 여느 대학생들이 그렇듯, 나 역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취준생이 되었다가 운 좋게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취업할 때 모든 운을 다 써버려서 그런지 숨을 쉴 때마다 실수가 이어졌다. 실수가 많아질수록 ‘네’ 뒤에는 ‘죄송합니다’가 붙는 일들도 많아졌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네’라는 대답만 기계적으로 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불안했다. 불안감이 커질수록 자정을 넘겨 퇴근하는 날이 잦아졌다. 불안과 야근의 뫼비우스의 띠 사이에서, 사회초년생인 나는 사회 속에서 나의 쓸모를 찾다가 탈모가 올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달치 월급을 싸들고 폴란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입사하고 열 번째 월급을 받은 직후였다. 나만 빼고 다 하는 것 같은 퇴사를 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에, 남은 연차를 모조리 사용해서 2주의 여름휴가를 떠났다. 연차를 탈탈 털었지만 휴가 기간이 길지 않아서 폴란드에만 머물기로 했고, 크라쿠프(Kraków)는 그중 세 번째이자 마지막 도시였다.
크라쿠프로 떠난 데에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이런저런 숙소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바샤(Basia)의 에어비앤비가 아니었다면 크라쿠프를, 아니, 폴란드 자체를 여행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거실 통창으로 보이는 푸른 정원과 따듯해 보이는 햇빛이 해가 뜨기 전에 출근해서 해가 지고 퇴근하는 사회초년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캐리어를 탱탱볼처럼 튀게 만드는 개성 넘치는 보도블록 덕분에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도착한 에어비앤비의 문을 열었을 때를 잊지 못한다. 테라스의 통유리창으로 쏟아지던 따사로운 햇빛이 얇은 커튼을 통과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늘하늘 흩날리는 커튼의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다 보니 크라쿠프의 관광지를 가겠다는 마음은 사르르 녹아버렸다. 크라쿠프의 햇빛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건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하얀빛에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무사히 체크인을 했다는 걸 호스트에게 알리는 걸 놓칠 뻔했다. 바샤에게 에어비앤비에 써놓은 것과 똑 닮은 '파스텔 아파트먼트(Pastel Apartment)'를 마련해 주어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의 메시지에 바샤는, 에어비앤비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한국 음식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이 있으니 오늘 저녁은 그곳에서 크라쿠프의 첫 날을 축하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답장해 주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호텔은 어디로 예약했어요?”
“호텔은 안 다녀서 에어비앤비로 예약했어요.”
“에어비앤비는 밥을 안 주지 않아요?”
호바호(호스트 바이 호스트)가 가장 크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내가 차려 먹는 아침을 더 선호해서 여행의 아침은 밥을 차리는 노동과 함께 시작한다. 누군가는 귀한 연차를 쓰고 떠나는 여행지에서 사서 고생을 하며 밥을 차려 먹는 게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가능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먹여야 하는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은 우리네 삶과 너무나도 닮아 보여서 싫다. 직장인이 되고 나니 더욱 싫어졌고.
함께 여행 온 친구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면서 차린 첫 아침 식사는, 바샤가 정성껏 가꾸는 허브 화분이 있는 테라스에서 먹었다. 7월의 크라쿠프는 생각했던 것보다 쌀쌀해서 머그잔을 가득 채운 따뜻한 커피가 금방 식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커피를 데우러 자주 부엌을 들락거려야 했다.
친구와 오늘은 어디를 돌아다닐지 이야기하며 열을 올리다 보니 어느덧 점심때였다. 아침을 차리느라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무 곳도 가지 않고 에어비앤비에서 시간을 보냈다. 에어비앤비에서 쉬는 것은 하루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세상에! 크라쿠프에서 머무른 일주일 내내 이런 하루가 반복되었다. 호텔 조식보다 못한 아침을 정성껏 차려 먹고, 시간이 늦어서 아무 곳도 가지 못하고 뒹굴거리던 날들이 이어졌다.
소중한 연차를 몰빵하고 떠나온 크라쿠프에서 밥이나 차려 먹고 있다니. 폴란드 전통 요리를 만들어 먹은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내가 차린 요리들은 한국에서도 자주 사 먹던 채소들을 씻어 만든 샐러드나 어디에서나 쉽게 살 수 있는 파스타 소스를 부어 만든 파스타, 기껏해야 달걀을 넣어 만든 볶음밥 수준이었다. 바샤의 부엌은 프라이팬부터 포트와 모카 포트, 오븐, 글라스까지 주방 도구를 종류별로 갖추고 있어서 폴란드의 어느 가정집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사소한 음식을 해 먹는 게 얼마나 무안하던지.
결국 크라쿠프에서는 유명 관광지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아침밥을 차려 먹고 나면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고, 점심을 먹고 휴식을 좀 취했다 싶으면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크라쿠프에서 어디 좀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우연히 감상하게 된 성 베드로와 바울 성당(Kościół św. Apostołów Piotra i Pawła)의 정기 클래식 연주회와 크라쿠프 구시가지 광장(Rynek Główny) 안의 공연이 끝난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춘 것이 전부였다.
“그럴 거면 왜 크라쿠프까지 간 거야?” 하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20분이면 다 먹어버릴 아침 한 끼를 위해서 전날 저녁부터 두 시간씩 장을 보고, 모닝커피를 마시면서도 "오늘은 뭐 먹지?"라는 고민을 해야 하며, 아침부터 베이킹 소다를 탄 물에 채소를 씻다가 프라이팬에 올려둔 달걀프라이가 타지 않도록 뒤집으면서 바쁘게 보내는 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와 요리된 오믈렛을 담아 오는 호텔 조식과는 비교도 안 되게 귀찮은 일이다.
심지어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형편없을 수도 있다. 심폐소생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빵을 태울 수도 있고, 분명 사온 줄 알았던 베이컨이 냉장고 속에 없을 수(이럴 땐 아침 메뉴를 처음부터 다시 계획해야 하는 노동이 추가된다)도 있다. 간단하게 식빵을 구워 아침을 먹고, 후식으로 기품 있게 석류를 먹으려다가 석류 껍질을 까는 데에만 30분(바샤의 화이트 우드 톤 주방에 사방팔방 튄 석류즙을 닦는데 걸리는 시간은 포함되지 않았다)이 걸릴 수도 있다.
고작 그런 일들에 시간을 쓰다 보니 유명하다는 맛집에서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추천 메뉴를 먹기 위해 몇 시간을 줄을 설 수도, 널리고 널린 카페들 사이에서 분위기가 좋다는 카페를 꾸역꾸역 찾기 위해 길바닥을 헤맬 수도 없었다. 지금 내 소중한 달걀이 익어가고 있는데 어딜 감히 한눈을 팔겠는가. 그래서 이번 크라쿠프 여행에서는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했다. 분명 나는 여행을 다녀왔는데 여행하고 왔다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되니, 이토록 쓸모없는 여행이 또 있을까 싶었다.
이토록 쓸모없는 여행이 이토록 마음 편할 수가 있을까. 크라쿠프에서 지지고 볶으며 밥을 차리는 동안, 나는 내가 무엇 때문에 연차를 몰아 쓰고 여행을 떠날 만큼 불안해했는지 떠올릴 시간조차 없었다. 아침밥을 차려 먹기만 해도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갔지만 조급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해 샌드위치로 때워가며 야근하던 나와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쓸모없는 시간을 보낸다고 지구가 무너지진 않았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인간의 우주관을 바꿔 놓을 놀라운 발견을 한 것만큼,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일하면서 먹고살아야 하는 나에게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일주일 동안 밥을 차려 먹고 느낀 점치고는 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얼마 전, 나는 야근과 쓸모없는 시간 사이에서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으며 입사 1주년을 맞았다.
여담이지만, 바샤의 집은 주방만 완벽했던 것이 아니다. 침실 또한 완벽했다. 호텔보다 흰 침구와 머리맡의 수면 등 두 개, 양 사이드에 각자 놓인 협탁과 콘센트, 잠결에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빌트인 전면 거울까지. 바샤의 집을 나오는 날 아침, 이 침실 때문에라도 크라쿠프에 다시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판교에서 일한 지 1년 차가 된 사회초년생입니다. 출근길 3500번 버스에서 입을 벌리고 자거나 책을 읽습니다.
페이스북 최홍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