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새로운 경험이 있으니까! 부모님과 함께한 유럽여행
“아, 바다 가고 싶다. 여행 한 번 다녀오면 좋겠다.”
“아빠, 엄마 좀 데리고 다녀와.”
“어딜 가고 싶은지 딱! 정해서 알려줘야 가지.”
여행 가고 싶다고 말하는 엄마와 목적지가 딱 정해지면 가겠다는 아빠.
“엄마, 가고 싶은 곳 정해서 아빠한테 말하면 안 돼?”
“아빠, 어디든 일단 나가면 안 돼?”
공평하게 한 마디씩 거든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힘없는 나는 빨리 밥 먹고 이 자리를 떠나야지. 부모님은 주변 친구들과 함께 가는 여행 외 별도의 시간을 내어 여행하진 않았다. 계모임에서 동창회에서 부부동반으로 함께 가는 패키지여행이 내가 아는 부모님의 여행의 전부였다. 그래도 방방곡곡, 전 세계를 다녔다. 부모님들의 필수 여행지 장가계부터 쉽게 가기 어려운 지중해 여행까지 하셨으니까. ‘가고 싶어서 가는 여행이 아닌, 가야 하니까 가는 여행.' 언젠가 캐리어를 열고 여행 짐을 싸는 아빠를 보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난 그래서 아빠가 여행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부모님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여행을 많이 다녔다. 취업하고 몇 년쯤 지나니 저가항공의 시대가 왔다. 2014년, 앞으로 여행을 위해 환승 경험도 해봐야 하지 않겠냐며 에어아시아로 굳이 말레이시아를 경유해 방콕을 다녀왔다. 그 뒤로는 매년 한 번은 해외에 나갔다. 프로모션에 빠져 언제 구매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항공권으로 1년 동안 5번이나 가까운 나라를 짧게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웬만한 나라는 거의 섭렵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즘, 인스타그램에서 베를린 여행 사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래! 올해는 유럽이다.
목적지는 작은 이모가 살고 있는 베를린. 비행기 표는 2개. 이모를 만나고 싶어 했던 엄마가 이번 여행 메이트다. 여행을 숙제처럼 여기는 아빠와 달리 늘 여행을 가고 싶어 했던 엄마를 위해 취업 후, 우린 매년 여름휴가를 함께 했다. 펜션을 숙소로 했던 강원도, 게스트 하우스에 묵었던 통영, 멀리 가기 어려워 가까운 홍대에서 즐겼던 호캉스까지. 국내는 웬만큼 합을 맞췄으니 이제 해외를 여행할 타이밍이었다.
“루리야, 아빠한테도 같이 가자고 해봐”
“저번에 안 간다고 했는데...”
그렇게 여행 메이트가 한 명 더 늘었다. 여행지도 하나 더 늘렸다. 베를린과 프라하로. 여행 생각이 없다던 아빠는 갑자기 유럽여행을 결심하더니 본격적으로 가고 싶은 여행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에펠탑도 보고 싶고 이왕이면 스위스에서 알프스도 한 번 가보고 싶다고... 결국 엄마, 아빠를 위해 독일에 있는 현지 여행사도 검색했다. 부모님은 내가 한국에 오고도 9박 10일을 더 여행하고 오는 일정이 되었다. 엄마와 간단히 베를린 이모네에 도착해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다 오려고 했던 내 계획은 생각보다 커져버렸고, 책임감도 함께 커져버렸다. 나, 이 여행 잘할 수 있겠지?
부모님과 함께 하는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여행지는 유럽. 다른 가족들에게 걱정 말라고 카톡을 보내면서도 과연 이 여행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지 걱정됐다. 하지만 늘 패키지여행을 다녔던 엄마, 아빠는 이것저것 물어봐도 미안하지 않은 ‘딸 같은 가이드’가 아닌 ‘가이드 같은 진짜 딸’이 옆에 있는 게 너무 좋았나 보다. 8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두 분의 수다는 멈추지 않았고 장시간 비행으로 걱정했던 컨디션도 매우 좋아 보였다. (난 아빠가 기내식에서 와인을 즐긴다는 것도, 엄마가 영화 3편은 연달아 볼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여행을 통해 알았다.)
물론 나도 들뜬 부모님과 함께하는 비행이 좋았다. 엄마, 아빠는 여행을 그렇게 많이 다녔음에도 공항에서 처음 해보는 것이 많아 알려드리는 재미도 있었다. 비록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거쳐 베를린 튀겔 공항에 도착하자 여행이 끝난 듯한 피로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베를린에 도착한 다음 날. 엄마는 이모에게 양보하고 아빠와 함께 베를린 여행을 시작했다. 역사를 좋아하는 아빠와 함께 처음으로 간 곳은 베를린 장벽. 동독에서 바라보는 장벽과 서독에서 바라보는 장벽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웠다. 냉전 당시 가장 유명한 검문소,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카드를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발견했다.
“아빠, 우리 사진 찍자”
여행 첫날이라 잔돈이 별로 없었던 우리는 10유로(약 13,000원) 지폐를 넣었고 거스름돈은 돌려받지 못했다. 기계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 기계는 잔돈을 돌려주지 않음(The machine does not give change)' 거스름돈을 돌려주지 않는 기계였던 것.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보았고, 아빠는 그저 재밌는지 웃으며 날 쳐다보았다. 그때 난 너무 작은 것도 실수해버린, 제 역할도 못한 기분이 들었다.
“점심은 어떻게 할까?”
“속이 느끼해서 국물 있는 음식 좀 먹으면 좋겠다.”
비행기에서부터 아침까지 제대로 된 한 끼(빵 제외)를 먹지 못한 아빠의 첫 요구 사항이었다. ‘국물… 국물… 아, 국수를 먹으면 되겠다!’’ 구글맵에 들어가 국수를 검색했고 괜찮은 평점의 타이 음식점을 찾았다. 음식점을 찾기는 쉽다. 'Noodle'이라고 치면 평점과 후기를 볼 수 있으니까.
다음이 문제다. 내게 여행지에서 제일 어려운 영어, 메뉴판. 읽을 수는 있어도 무슨 재료인지 모르겠는 단어들. 팟타이같이 익숙한 단어의 음식도 보이지 않았다. 이걸 오래 붙잡고 있어 봐야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Best와 별이 붙어있는 메뉴 중 'Noodle'을 찾고, 'Spicy(매운)'가 적힌 음식을 주문했다. ‘국수니까 국물도 있을 거고, 매우면 느끼하진 않겠지…’ 그리고 우리 앞에 나온 것은 볶음면이었다.
‘망했다’
그제야 메뉴판에 ‘Soup’이라는 섹션이 따로 있는 것이 보였다.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 사진 잔돈에 이어 2연타(게다가 싼 가격도 아니었는데…) 미안한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보니 이미 맛있게 볶음면을 먹고 있다.
“아후, 매운 거 먹으니까 속이 내려간다.”
“여기 위에 뿌려진 풀에서는 특이한 향이 난다.”
처음 보는 음식을 만나게 된 아빠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여행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었던 아빠. 오랜 기간 합을 맞췄던 엄마만큼 아빠도 여행 메이트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하에서는 100% 자유여행이었다. 어떤 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늘 가이드를 따라 여행만 했던 부모님께 이런 여행도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프라하 숙소로 에어비앤비를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요즘은 다들 이렇게 여행한다고,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고 알려주고 싶었달까. 그래서 프라하 숙소를 정하는 게 가장 오래 걸렸다. 유명 여행지만큼 좋아 보이는 집이 많았지만, 가보지 않았기에 실제로 좋을지 걱정됐다. 이왕 호텔 아닌 에어비앤비로 결정했으니, 처음 경험하는 부모님께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그래, 슈퍼호스트’
망설임 없이 슈퍼호스트를 체크하고 검색했다. 고민될 땐 슈퍼호스트라는 공식을 이번에도 믿어보았다.
"엄마, 오늘 가는 곳은 에어비앤비라고 호텔은 아니고 진짜 사람들이 사는 집에 가는 건데…"
“그럼 그 사람들이랑 같이 자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그 사람들이 집을 비워주니? 사기 치는 거면 어떡해!”
“어… 여기로 가면 돼요.”
입으로는 에어비앤비를 설명하고 눈은 스마트폰에 고정한 채, 구글맵을 따라 프라하의 낡고 오래된 건물 앞에 섰다. 그런데, 약속했던 곳에 열쇠가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호스트와 연락도 안 된다. 초조한 마음. 이 상황을 알게 되면 나보다 더 걱정할까 마음을 추스르고 말했다.
“곧 온대”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호스트와 연락이 닿았고, 10분 안에 아파트 앞 로비로 온다는 연락을 받은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로비에 그가 도착했다. 집을 정리하고 웰컴 과일 등을 구매하러 근처 마트에 다녀왔다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우리 가족이 프라하에서 처음으로 만난 현지인. 친절한 호스트의 미소를 본 순간, 부모님을 이끌고 낯선 여행지에 도착한 나는 지원군이 생긴 듯 든든했다. 그리고 부모님은 이해할 수 없었던 에어비앤비 시스템을 한 번에 이해하게 되셨다. 우리는 프라하의 마스코트 크르텍(KRTEK)이 맞이하는 누가 봐도 프라하에 있는 집에 들어갔다.
엄마가 집에 있는 세탁기와 부엌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어머~ 여기는 집이라 빨래도 할 수 있고, 음식도 할 수 있나 봐. 우리 저녁은 여기서 해 먹자.”
“여기가 호텔보다 좋다”
YES! 난 아빠의 그 한마디가 필요했다. ‘호텔보다 좋다.’ 집 전체를 빌리다 보니 방 하나인 호텔보다 넓게 사용할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낀 듯했다. 늦은 오후, 다 함께 프라하를 가볍게 돌고 가장 가까운 마트로 향했다. 이때만큼은 여행 내내 나를 따라오던 엄마가 앞장섰다.
“여기는 가지도 엄청 크다, 물가가 싸서 좋겠다.”
처음 보는 식재료들 속에서 익숙한 재료, 삼겹살을 발견했다. 별다른 양념이 없어도 맛있고 조리도 쉬운 음식, 삼겹살로 오늘 저녁 메뉴가 결정됐다. 가장 중요한 고기를 바구니에 넣고 마트를 돌아다니며 우리나라 쌀과 비슷한 쌀도 고르고 해외 식재료 코너에서 고추장도 샀다. 상추 비슷한 채소도 하나 샀다. 프라하에서 먹는 삼겹살이라니! 그동안 에어비앤비로 여행을 하면서도 생각해본 적 없는 메뉴에 나는 굉장히 들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시장에 온 엄마는 활기차 보였고, 아빠는 오랜만에 한식을 먹는다는 생각에 즐거워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 셋이 함께 요리를 했다. 처음에는 인덕션을 켜는 게 어려워 호스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삼겹살을 굽고 소금을 뿌리고 가지 온 라면 수프를 조금 풀어 얼큰한 계란탕도 만들었다. 체코에 오면 꼭 마셔야 한다는 코젤 맥주도 곁들었다.
“여행지에서 먹었던 음식 중 제일 맛있다.”
“좋다. 정말 좋다. 이런 게 여행이지.”
진짜 집에서 직접 음식을 해 먹으니 너무 좋을 수 없다며 모두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다.
‘이런 게 여행이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였다. 공항에서부터 여행하는 내내 엄마와 아빠가 말했다. 쉴 수 있을 때 쉬고 먹고 싶을 때 먹으니 여행할 맛이 난다고. 그동안 많은 여행을 해봤지만, 이런 여행은 처음이라고. 이런 여행이면 또 해도 좋겠다고.
저가항공, 스마트폰, 에어비앤비. 여행이 쉬워졌다고 생각했다. 10년 전 처음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는 여행책의 선택이 여행 준비의 시작이었다. 외국에서는 인터넷이 어려우니 들고 다닐 책이 필요했다.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는 나는 여행책을 달달 외우면서 이미 여행에 다녀왔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준비에 쏟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유심칩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원하는 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책에서 알려주는 곳보다 더 매력적인 곳이 구글맵에, 인스타그램에 있었다. 내가 신경 써야 하는 건 휴대폰의 배터리 잔량뿐이었다. 돌발상황이 일어나도 휴대폰만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여행은 그대로였다. 연세에 비해 스마트폰을 잘 다루는 아빠도 유심이라는 제도를 모르니 해외에서 스마트폰을 쓴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고 그저 가이드를 따라 여행할 뿐이었다. 예약된 음식점에서 다들 같은 음식을 먹고 단체로 예약한 호텔에 머물다 다음 일정을 따라가는 것. 그동안 아빠가 왜 여행을 숙제처럼 가는 것 같아 보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고도 유럽에 남아 여행할 아빠를 위해 구글맵 사용법, 남은 데이터 잔량 확인하는 법 등을 알려주었다. 만약 여행을 하다 한식이 먹고 싶으면 여기 ‘한국 식당’이라고 치면 되고 여기서 사용하는 휴대폰 요금은 한국과 전혀 별개이니 마음껏 사용해도 된다고. 만약 외국인한테 길을 묻거나 원하는 메뉴를 말하고 싶다면 번역 앱을 사용해서 소통하면 된다고. 기계를 잘 다루는 아빠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다음 날 프랑크푸르트 한식 식당을 찾아가 비빔밥을 먹었다고 카톡을 보내주었다. 부모님은 자유여행의 즐거움을 알게 된 듯 보였다. 특히 아빠가 그랬다.
“여행 잘 다녀왔어요? 뭐가 제일 좋았어요?”
여행을 마친 내게 누군가 건넸던 가벼운 인사말에 스스로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좋았던 것을 떠올리는데 ‘프라하 삼겹살’을 이기는 게 없었다. SNS에서 유명한 베를린 카페도, 프라하 멋진 야경도 삼겹살한테 졌다. 차마 그 자리에서 ‘프라하 삼겹살이요.’라는 대답은 하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갔다.
사실 삼겹살도 맛있긴 했지만(여행 이후 우리 가족은 체코산 돼지고기를 왠지 신뢰하게 됐다) 유럽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것을 떠올릴 때 프라하에서 저녁식사 시간이 생각나는 건, 그날 했던 모든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유일한 한국인으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를 간 것도, 부모님과 호텔도 민박도 아닌 여행 내내 ‘우리 집’이라고 칭할 수 있는 곳에 숙소를 잡은 것도, 낯선 유럽의 부엌에서 익숙한 요리를 한 것까지 그날은 60 넘게 살아온 부모님께도, 딱 그 절반의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도 모두 처음 해본 경험이었다.
베를린과 체코 여행 이후 부모님의 여행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 여러 나라를 찍고 돌아오는, 혹은 명소 앞에서 사진만 남기고 떠나는 게 여행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됐다. 인생의 2/3를 지나서야 본인들의 속도에 맞춰서 여행하는 선택지도 있음을, 그리고 그 여행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알게 됐다.
얼마 전 두 분은 핀란드에 다녀왔다. 숙소는 핀란드식 사우나가 있는 에어비앤비. 돌아오고 나서는 핸드폰으로 찍은 집 사진과 바로 숙소 옆에서 지내고 있는 호스트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납작 복숭아가 얼마나 맛있는 지도 함께. 나는 부모님의 삶이 다양한 경험으로 풍요로워지는 걸 지켜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32살 인생에서 잘한 일 중 하나를 고르라면 몇 개나 고를 수 있을까? 하지만 감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 부모님과 '살아보는 여행'을 함께 했던 2년 전 유럽여행이다.
"내게 좋았던 경험이기에 당신에게도"
내가 좋았던 경험들을 다른 사람도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전한다. 현재는 스타트업에서 기획자이자 마케터로 ‘리드미’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인스타그램: @yir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