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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Aug 09. 2019

르코르뷔지에가 지은 성당에서 혼인서약을

현대 건축의 마스터피스, 롱샹 순례자 성당의 천국의 빛 앞에서

건설회사에 다니던 2018년 2월, 남극세종기지 증축 공사로 5개월가량의 남극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홀로 짧은 귀로 여행을 했다. 귀국 루트는 남극세종기지 > 칠레 > 프랑스 > 대한민국. 칠레 파타고니아의 광활한 자연 풍경보다 더 가보고 싶었던 곳은 롱샹(Ronchamp)이라는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나는 프랑스에서 3일간의 여행을 계획했다. 처음 가보는 프랑스지만 파리가 아닌 롱샹을 선택한 이유는 근대 건축의 거장이라 평가받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마스터피스 ‘롱샹 순례자성당(노트르담뒤오, Notre Dam du Haut)’이 있기 때문이었다. 건축을 전공하며 많은 근현대 건축물을 알게 되었지만 죽기 전 꼭 한 번 가보고 싶을 정도의 열망이 생긴 건물은 이곳뿐이었다. 르코르뷔지에를 존경하지는 않지만 그가 제안한 기능적, 합리적 설계는 후대에게 높이 평가받고 있고, 나 또한 그의 천재성에 찬사를 보낸다.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 중 유일하게 유려한 곡선미를 부각한 롱샹 순례자 성당



현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마스터피스를 찾아서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다섯 시간 정도 걸리는 롱샹은 우리나라로 치면 태백시의 작은 마을에 비유할 수 있겠다. 수도에서 남동쪽 끝자락 산지에 위치해 있고, 과거 탄광촌의 흔적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어 태백시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접하기로는 파리보다는 스위스의 베른과 가까운 마을이다. 


인적조차 드문 이 작은 마을에 르코르뷔지에는 작품을 한 점 남겼는데, 그 작품이 수십 년 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나에게 특별히 다가왔다. 우리가 6.25전쟁으로 소란하던 때에 이미 명성을 떨치던 르코르뷔지에에게 한 신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아 흡족한 대접은 못 하지만 이것만은 약속할 수 있소. 멋진 부지와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이오.”


어쩌면 르코르뷔지에는 이 말에 그간 마음속에만 그리던 건물을 실현했는지 모르겠다. 무신론자인 르코르뷔지에는 언제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기능적 ‘설계’를 했지만 롱샹에서만은 유일하게 유려한 곡선미를 부각한 ‘예술’을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존재하는 모든 곳에 기능적 요소들을 부여한, 건물의 역할도 다한 걸작이다(다만 시공자의 입장은 제외하고)

지도의 빨간 점이 롱샹




프랑스에서 취소는 흔한 일


이곳에 가야겠다 마음먹고 주변을 알아보니 묵을 만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지인의 소개로 처음 사용하게 된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 롱샹을 검색하니 3, 4곳의 에어비앤비 집이 검색되었고 그중 에밀리의 집을 예약했다. 모든 예약과 결제가 애플리케이션상에서 이루어졌는데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답장이 몹시 느린 외국인과 메시지를 통해서만 소통하며 여행을 계획한다는 건 상당히 불안한 일이었다. 


출발 전날, 나는 파리에 도착해 기차 예매법을 검색해보았다. 신식 문물을 적극 활용하는 문화인이고 싶어 기차역에 직접 가지 않고 코레일과 같은 ‘OUI’ 애플리케이션으로 파리 동역(Gare de I’Est)에서 롱샹으로 가는 기차 좌석을 저렴한 가격에 예매했다. 여행 준비를 순조로이 진행하는 자신을 대견하게 느끼며 당일 아침, 일찍 동역으로 향했다. 촌스러워 보이지 않게 자동 티켓 부스에서 티켓을 출력……하려 했지만 화면에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프랑스어로 오류 메시지가 계속 나타났다. 사무실에 찾아가 직원에게 이유를 물었고 직원은 기차가 취소되었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해주었다.


나도 그분처럼 아무렇지 않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모든 여행 계획이 무너지고 있었다. 에밀리에게 예약을 취소한다고 해야 하나? 늦게라도 롱샹에 가게 되면 성당은 오늘 가야 하는가? 내일 가야 하는가? 무너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90유로가 넘는 TGV 티켓을 다시 구매했다. 프랑스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하니 나는 그동안 제법 좋은 나라에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 TGV에 몸을 싣고 불안한 멘탈을 다독였다. 네 시간을 달려도 끝나지 않는 비옥하고 평화로운 평원을 보며 프랑스의 국력이 바로 이 축복받은 땅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와닿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평야




보디랭귀지, 볶음밥, 웃음으로 가득했던 밤


루흐(Lure)라는 작은 역에 도착해서 다시 두 칸짜리 기차로 갈아탔다. 그렇게 다섯 시간 만에 도착한 롱샹역. 역무원도 역사도 없는 늦겨울의 스산한 간이역에 나 홀로 덩그러니 내렸다. 기차는 아득히 멀어져가고,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순간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에밀리가 실존할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스산한 분위기의 롱샹역

마을에 버스가 없어 나를 마중 나온다는 에밀리와 어색한 영문 메시지로만 약속을 잡는 일은 훨씬 불안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시골.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불안이 점점 짙어질 즈음 멀리서 차가 한 대 다가왔다. 에밀리는 창문을 내리며 밝은 미소로 인사해주었다. 나는 반갑기보다 놀랍고 신기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에밀리는 훨씬 포근한 인상의 젊은 주부였다.


에밀리는 집으로 가는 길에 자그마한 동네 곳곳을 소개해주었다. 마을은 전체를 둘러봐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금세 도착한 언덕 위의 아담한 이층집에는 에밀리와 남편 폴, 네 살배기 딸 루,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아들 세자르, 이렇게 네 식구가 살고 있었다. 나는 세자르가 미래에 살게 될 2층 다락방에 짐을 풀었다. 침대에 누우면 천장에 뚫린 창문으로 쏟아지는 별을 보며 잠들 수 있는, 만화에서나 보던 낭만적인 방이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 에밀리네 집
호스트의 아들 세자르가 커서 지낼 방을 에어비앤비 게스트에게 내어주고 있다. 아늑한 다락방

저녁 시간. 낯선 동양인의 방문이 이들에게는 익숙한 일일까? 루는 나를 경계하지 않고 방문 앞에서 내가 장난을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밀리와 달리 폴은 영어를 전혀 못했다. 폴은 번역기와 보디랭귀지로 자신의 직업을 소개했고 이 집은 자신이 직접 지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폴은 찰진 리액션으로 화답해주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와인과 치즈를 꺼내주기 시작하더니 이내 직접 담근 술과 ‘MIRANILLE’이라는 귀한 양주도 꺼내주었다(‘MIRANILLE’은 ‘미라벨’이라는 자두와 바닐라를 넣어 만든 양주인데 먹어본 술 중 최고였다. 파리에서 이 양주를 구하려고 수소문해보았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배낭에 챙겨 온 카레밥, 비빔밥, 볶음밥, 이렇게 세 종류의 전투식량을 조리했다. 에밀리는 저녁 준비에서 해방된 우리 어머니 같은 모습을 보였다. 미식가의 나라 프랑스에서 고작 인스턴트 전투식량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라 걱정도 되었지만 모두 즐겁게 먹어주었다. 비록 뛰어난 음식은 아니었지만 모두 맛있게 먹어주었다. 특히 루는 그릇을 싹싹 비워냈다. 뛰어난 음식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에밀리에게 짧은 휴식과 새로운 경험을 선물했다는 생각에 만족했다. 나는 기분 좋게 취해 침대에 누워 깊이 잠들었다.

프랑스식 만찬, 메인은 전투식량
전투식량을 싹싹 비워준 루와 방 주인 세자르
애주가 폴이 직접 담근 담금주와 MIRANILLE.



신성한 빛의 건물을 마주하다


이튿날 아침, 나는 고대하던 롱샹순례자성당으로 향했다. 걸어서 한 시간 남짓 걸려 겸사겸사 동네를 구경하기 좋았다. 항상 북적이는 파리 노트르담대성당과 달리 롱샹순례자성당이 이렇게나 조용히, 외롭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서글픈 마음도 들었지만 성당을 홀로 독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마을을 걷고 언덕을 오르다 보니 푸른 언덕 너머로 하얀 성당의 어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쌀쌀한 날씨 탓인지 방문객은 한 사람도 없었다.

언덕 너머로 살짝 보이는 하얀 건물이 롱샹순례자성당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장권을 구매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언덕 꼭대기에 오르자 이내 성당이 눈에 가득히 들어왔다. 보고 싶은 건물이었던 탓일까? 여기까지 오는 데 우여곡절을 겪은 탓일까? 순간 마음 깊숙한 어딘가에서 묵직한 감동이 밀려왔다. 나는 이 순간을 오래, 아주 천천히 음미하고 싶어 성당을 빙빙 돌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성당은 4면이  제각각 이유 있는 다른 얼굴을 가졌다.


스머프의 버섯 집을 닮기도 한 이 성당은 비둘기의 날개를 모티브로 디자인되었다고 한다. 햇빛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하얀 남동 측면을 바라볼 때 눈부시지 않은 이유는 벽면을 울퉁불퉁하게 처리해 난반사를 유도했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은 이 사실은 나의 추측이지만 직접 보고 느꼈기 때문에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드디어 마주한 성당 (남동 측면)
성당의 북 측면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무언가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두툼한 곡면 지붕의 매스(mass, 부피를 가진 하나의 덩어리로 느껴지는 물체)에서 아우러지는 무게감, 창을 뚫고 비추는 빛의 신성함이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모든 것을 차분하게 억누르는 분위기는 나를 몹시 안정시켰다. 남측 벽면 곳곳에 설치한 채광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난반사되어 눈부심 없이 편안하게 내부를 밝힌다. 빛의 건축가로 유명한 안도 다다오가 르코르뷔지에의 제자라 했던가. 인공조명 없이 순수 자연채광으로 내부를 밝히며 빛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부족한 필력으로 하나하나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곳곳의 디자인과 색의 조화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어 거장의 실력이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남측 채광창으로 유입되는 자연광
성당 내부 정면
창문의 그림도 직접 그렸다고 한다

성당 외부에는 후에 지어진 부속 건물이 있다. 파리 마레 지구의 퐁피두센터(Pompidou Centre)를 설계한 이탈리아의 렌초 피아노(Renzo Piano)의 작품인 이 부속 건물은 거장 앞에서 납작 엎드린 자세를 취해 그를 향한 존경을 나타냈다. 이 건물은 현재 수녀들을 위한 공간과 게스트하우스, 예배당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숙박도 가능하다고 한다.)

렌조 피아노의 부속 건물 뒤로 보이는 성당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이곳에 또 올 수 있을까?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기차 시간만 아니라면 하염없이 성당을 바라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에밀리는 나를 역까지 배웅해주었다. 나는 여자 친구를 만들어서 다시 오겠다고 에밀리에게 약속했다. 훗날 이 약속이 이루어지리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채로.




여섯이 되어 마주한 에밀리의 식탁


귀국하고 두 달 뒤 나는 ‘지연’이라는 내 인생에서 가장 존귀한 여자를 만났다. 지연이는 나의 롱샹 여행기를 관심 있게 들으며 같이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고 롱샹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그리고 2018년 8월 31일 휴가를 맞춰 프랑스로 떠났다. 


이미 한 번 다녀온지라 나는 자신 있게 지연을 가이드했다. 파리 리옹역에서 롱샹으로 가는 열차 티켓을 샀고, 프랑스 철도청은 역시나 열차 출발을 네 시간 지연시키며 나의 걱정에 호응해주었다. 롱샹은 이번에도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우리의 방문을 허락해주었다. 너무 쉽게 가면 재미없지 않은가?


어렵게 가는 만큼 감동도 클 거라고 지연이를 위로하며 도착한 롱샹역. 스산했던 지난번 방문과 달리 늦여름의 푸르름이 우리를 산뜻하게 맞아주었다. 에밀리는 여전히 답장이 매우 늦었지만 그녀의 실존 여부에 대한 의심 없이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으며 기다림을 즐겼다.

푸르른 늦여름의 롱샹역

에밀리는 나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고 지난번과 같은 미소로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부쩍 자란 루와 세자르 말고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애주가 폴은 자연스럽게 지난번 미처 다 마시지 못한 술병을 꺼냈고 우리는 야심 차게 준비해 간 짜장 라면을 만들어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나보다 술을 잘 마시는 지연이 덕분에 분위기는 훨씬 화기애애했고 이 동네에서는 잔칫날에 먹는다는 양주를 부은 셔벗(마치 아포가토처럼)도 맛보았다. 우리는 아찔한 달콤함에 취해, 너무나 비현실적인 지금 이 순간에 취해 세자르의 방 침대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보며 잠들었다.

모두 함께한 저녁 식사



롱샹순례자성당에서 혼인 서약을


다음 날 아침, 성당을 방문하는 우리의 목적 중 하나는 셀프 웨딩 촬영이었다. 분주하게 촬영 준비를 마치자 에밀리는 우리를 성당까지 태워주었다. 에밀리는 이번 호스팅을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리옹으로 이사를 간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대도시로 이사를 가는 모습은 맹자 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나 프랑스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이 사랑스러운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쉬웠지만 에밀리의 마지막 호스팅 상대가 우리라는 사실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지구상 가장 아름다운 이곳에서(나의 주관적인 생각) 우리는 평생의 동반자로서 혼인을 약속하고 사진을 찍었다. 성당에서 만난 신부님은 우리를 반겨주시며 알 수 없는 언어로 꽤 오랫동안 축복 기도를 해주었다. 신부님이 뭐라고 축복해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기도가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베스트 컷




어떤 여행은 인연을 만들어낸다


이전까지 내가 생각한 여행이 단순히 장소 이동과 구경, 즉 관광이었다면 이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여행은 그 의미가 다르다. 나와 전혀 다른 배경과 환경에서 살아온 타인의 삶에 녹아들어 그 삶을 살아보는 것이 여행이라 생각된다. 5성급 호텔방보다 더욱 환상적인 세자르의 다락방에서 나는 이들이 즐기는 술과 디저트뿐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과 생각, 고민들까지 피부로 느끼며 깊이 교감했다. 호텔방에서는 만들 수 없는 인연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이 모든 과정을 나의 주체적 결정들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어쩌면 나의 기억에 롱샹순례자성당보다 더 오래, 더 진하게 남을 에밀리 가족. 그리운 폴, 에밀리, 루, 세자르 모두가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길 이곳에서 기도한다.


돌아오는 8월 31일 나는 기적처럼 지연이와 결혼식을 올린다.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여행이 벌써 기대된다.


P.S.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동반자, 사랑하는 나의 지연이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에어비앤비 작가, 방성배

: 건축을 전공하고 관련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오는 8월 31일 결혼을 앞둔 행복한 예비 신랑입니다.

인스타그램_ @artchi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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