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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Aug 12. 2019

80일간의 포르투갈 드로잉 여행

돈 걱정 없이 오래오래 유럽 그리기(feat. 에어비앤비 드로잉 클래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나는 스마트폰이 필수인 세상에서 스케치북과 펜을 들고 다닌다. 현장의 모습을 스케치북에 담아내면서 세상과 이야기를 나눈다. 나에게는 이 아날로그 도구가 세상과 연결해주는 스마트폰과 같다. 이번에는 80일간 포르투갈(리스본, 포르투)을 그리러 떠났다. 포르투갈은 여러 매체에서 나오는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다. 에그타르트, 페르난도 페소아, 대항해시대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곳이다.


많은 사람이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잠시 들르는 곳이라고 포르투갈을 생각하지만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포르투갈만 생각하고 떠났다. 그림을 그리러 포르투갈로 향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림을 그리기 좋은 곳이니까. 그림을 오래 그리려면 유지비와 치안이 중요하다. 사진을 찍는 일과는 다르게 현장에서 편안하게, 오래 그려야 하므로 일정도 길어야 하고, 주변 환경도 안전해야 한다. 


포르투갈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치안도 좋고 저렴하게 숙박과 식사가 가능한 곳이다. 특히 에어비앤비는 가격대비 숙소 퀄리티도 좋고 다양하다. 이런 이유 외에도 원체 한곳에 머물면서 지내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래야 그곳의 문화를 이해하고, 사람들의 모습들도 다양하게 느낀다. 너무 여러 곳을 빠르게 보는 것을 싫어한다. 그 외 노랑 트램과 오래된 유럽의 모습도 느끼고 싶었다.


나에게는 아날로그 도구가 세상과 연결해주는 스마트폰과 같다.





여행지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건


여행지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곳의 시간을 담아내는 일이다. 시간의 흐름이 온전히 스케치북에 남는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천천히 표현한다. 디테일은 중요하지 않다. 향기, 소리, 촉감을 느끼면서 그린다. 선 하나하나에 기억을 담아서 그린다. 내가 이곳에 있었다는 흔적과 시간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여러 디테일과 정보 들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특히 건축 구조에 대한 부분이 잘 느껴진다. ‘그림으로 그리는 것도 어려운데 저걸 어떻게 만들었지’ 하는 감탄이 든다. 여행지에서 스케치를 하다 보면 삶의 지혜를 배우는 기분이다.       

굴벤키안 미술관의 나무/ Drawing Time: 약 1시간



코메르시우 광장(Praca do Comercio)은 리스본 최대 규모의 광장이며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 이곳을 지나다니다 보면 선글라스와 셀카봉을 파는 사람들이 틈틈이 있다. 나는 가로등 근처에 휴대용 의자를 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햇볕이 강해서 오후 늦게나 나와 그릴 예정이었는데 아침에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숙소를 환기하려고 창문을 열었는데 집 안으로 비둘기가 들어온 것이다.


허둥대면서 내쫓으려 하니 비둘기가 날개로 화병을 넘어뜨렸고, 빨리 비둘기가 날려 보내고 화병을 보니 깨져서 난리도 아니었다. 일단 빗자루로 화병 조각들을 모아두고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메시지로 상황을 전했다(호스트는 <스타워즈>를 사랑하는 분인데 내가 예전에 한 <스타워즈> 콜라보 작업을 보고 좋아했다. 고양이한테 <스타워즈> 투구를 씌워서 사진도 찍어 보내주기도 했다). 호스트는 메시지를 보더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청소하는 분을 불러주었고, 있을 곳이 없어진 덕분에 나는 이렇게 아침부터 광장에 나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을 또 가지게 되었다. 


천천히 건물 중심부의 위에서부터 그려나간다. 노란빛이 가득한 건물을 바라보며 물감도 올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는 내 모습을 찍기도 하고 엄지도 날린다. 천천히 그리다 보니 오후가 되고 그림도 완성되었다.


코메르시우 광장/ Drawing Time: 약 1시간 30분

 




밥을 먹으러 가는 나라, 포르투갈


포르투갈은 유럽 사람들이 ‘밥을 먹으러 가는 나라’라고 부르는 곳 중 하나다. 그만큼 맛집이 많다. 유럽의 음식 치고는 짠맛과 단맛이 덜해 먹기 편하다. 여러 번의 침략과 대항해시대로 인해 많은 문화가 섞여서 다양한 조리법이 탄생했다고 한다. 식당에 가보면 실로 여러 나라의 음식 문화가 섞인 것이 보인다. 프랑스식 샌드위치, 독일식 소시지, 아랍 계열의 그릇들, 이집트 계열의 무스 등 여러 식재료와 문화 들이 녹아 있다. 어떻게 보면 주체가 없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이 다양함이 각각의 개성을 보여주는 요리로 만들어주었다.


포르투갈에서 자주 먹으러 간 음식은 단연 문어다. 한국의 문어가 탱탱한 식감이라면 이 지역의 문어는 부드러운 느낌이 강하다. 구우면 입에서 부드럽게 씹힌다. 세 번 연속 간 곳은 ‘파불라스(Fabulas)’라는 음식점이다. 아마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분들은 한 번쯤 들르는 곳일 것이다.

파불라스/ Drawing Time : 약 1시간


위의 그림은 노란 병아리콩 무스에 올려져 있는 문어 요리다. 이집트 요리와 스페인의 요리가 합쳐진 모양새로 덜 단 밤 맛과 비슷한 무스를 붉은빛 문어에 올려 먹는다. 문어의 향과 함께 섞여 엄청난 풍미를 자랑한다. 양도 꽤 되어서 먹다 보면 배가 부를 것이다.


디저트로는 바질 민트 푸딩도 추천한다. 바질과 은은한 민트 향의 커스터드 크림에 초코칩이 올라가 있다. 민트가 든 음식은 싫어하지만 이건 계속 먹게 된다. 입안도 개운해진다.





인생 에그타르트, 두 개만, 아니 세 개 더!


에그타르트 맛집/ Drawing Time: 각기 다른 시간대에 그림


포르투갈은 에그타르트의 원조이고 성지다. 에그타르트에 별 감흥이 없어도 먹어야 한다고 추천하고 싶다. 입안에서 바사삭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페이스트리, 그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크림에서 따스함과 은은하고도 진한 단맛이 느껴진다. 달걀의 비릿하고 맹한 맛이 아니다. 진정한 에그 크림! 포르투갈의 맛이다.


두 개를 시켜서 먹다가 맛있어서 다시 두 개를 시키고, 아쉬워서 또 시키는 게 포르투갈의 에그타르트다. 위의 그림은 20곳 이상 다녀보며 괜찮았던 집들의 에그타르트를 그린 것이다. 특히 ‘파스테이스데벨렘(Pasteis de Belem)’은 꼭 가봤으면 하고 추천하는 곳! 매장 옆에 있는 수녀원에서 수녀님들이 옷에 풀을 먹일 때 남은 노른자를 이용하여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픈하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로 꽉 차버린다. 밖에는 따로 포장하려는 줄도 길게 서 있다. 벌써 5대째 이어져 오는 곳으로 하루에 2만 개 이상이 팔린다고 한다. 다른 집들에 비하면 크림 부분은 조금 덜 단 대신 페이스트리 부분에서 단맛이 느껴진다. 기념품으로 이곳의 컵도 구매할 수 있으니 선물용으로도 좋다.

 

파스테이스데벨렘의 에그타르트/ Drawing Time : 약 1시간



저 위에 나열한 에그타르트 그림 중 ‘나타퓨라(Nata Pura, 에그타르트 업체)’는 한국 폴바셋에 입점한 제품인데 포르투갈 현지에는 아쉽게도 매장이 없었다. 수출만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이다. 예전에 폴바셋(Paul Bassett)에서 에그타르트 제품이 나왔을 때 그림을 그려준 적이 있는데 그 인연으로 이번 여행에서 나타퓨라 담당자와 잠시 보기로 했다.


그는 요새 포르투갈에 외국 자본 투자가 많아져서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짧게 여행 중이라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주변에 신식 건물과 공사하는 곳도 많아지고 물가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여행하는 80일간 사라지고 새로 생기는 곳도 많았다. 외국인들이 많이 오면서 물가가 높아지다 보니 현지인들이 살 곳이 점점 줄어들고, 포르투갈에 정착하려는 아시아인도 많아졌다고 한다(타 국가에 비해 시민권을 따기가 편하다고 한다). 길을 가다가 현지인만 가는 곳에 가보면 가격차가 크다는 것도 느낀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이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걱정이 되었다. 이 아름다운 곳이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


리스본 골목길/ Drawing Time : 약 40분/ 클레리구스 타워/ Drawing Time : 약 1시간 10분




오늘도 따봉의 나라 

 

포르투갈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다(어느 나라에 가든 불친절한 사람들이 있지만). 포르투갈 사람들은 조용하지만 이야기를 해보면 친절하고 많은 것을 알려준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은 아닌가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면 이 이야기에 대부분 공감했다. 마주친 사람 중 브라질에서 온 타투이스트가 있었다. ( 포르투갈어와 브라질어는 지역마다 다른 발음만 빼면 사실상 같은 언어라고 한다. ) 그녀도 이곳에서 지내면서 포르투갈 사람들은 조용하고 친절하다고 했다. 말소리도 안 크고 배려심이 매우 깊다고 했다.


리스본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도 만났다. 길가에서 그림을 그려 팔고 있기에 나는 옆에 앉아서 당신을 그려도 되느냐고 물어봤다. 괜찮다는 대답을 받아 나는 그를 그려 선물로 주었다. 리스본에서 지내며 지나가는 길에 인사를 계속 나누다 보니 우리는 친해졌다. 한번은 차로 운전해서 본인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식사도 같이하게 되었다. 주로 포르투갈과 한국을 비교하는 내용들로 수다를 떨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 지역 사람들과 친해지고, 그들을 통해 포르투갈을 알게 되니,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나라인 스페인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리적으로 스페인이랑 가까워서 많은 사람이 포르투갈을 열정적으로 느끼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면 정반대의 느낌이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가 비슷해 포르투갈 사람에게 스페인어로 다가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를 꺼린다고 한다. 언어가 비슷하지만 스페인에 침략당한 아픔이 있어서라고 한다.  또한 스페인 사람들의 불같은 성격도 매우 싫다고 한다.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고 개인차가 존재하겠지만 현지인을 통해 몰랐던 사실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공원의 할아버지/ Drawing Time : 약 10분/ 그림을 파는 할머니/ Drawing Time : 약 30분


 



포르투갈에서 드로잉 클래스를,

'에어비앤비 트립'을 아시나요?


포르투갈에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하여 다양한 트립(Airbnb Expereinces) 을 신청했다. 같이 갔던 R양은 서핑 수업을 신청하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에그타르트 베이킹과 그림과 관련된 드링크 앤드 드로(Drink&Draw)와 누드 크로키 트립을 신청했다. 에어비앤비는 숙소 예약뿐 아니라 현지인이 제공하는 다양한 경험도 예약할 수 있는데, 여러 경험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편하게 현지인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누드 크로키는 리스본에 있을 때 매주 적어도 한 번은 갔다. 다른 나라에서 누드 크로키를 해본 적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한국인은 처음이라며 에어비앤비 경험 호스트가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한국과 크게 다른 건 없었지만 서양 모델을 보고 그리는 경우는 드물다 보니 신나게 그렸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머리가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국보다는 조금 천천히 크로키를 하는 게 이곳의 특징 같다. 대부분 나잇대가 많은 분들이 자주 나와서 연습한다고 한는데, 산타클로스 수염을 한 다른 게스트의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누드 크로키 클래스/ Drawing Time : 약 20분



드링크 앤드 드로 에어비앤비 트립에서는 음료 혹은 술을 마시면서 그림을 그렸다. 조금 편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그리고 그리는 대상은 그때마다 달라진다. 보통 테마를 잡고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드링크 앤드 드로에서는 악기를 연주하는 분을 그렸다. 즐거운 음악을 들으면서 그리니, 게스트 모두 미소가 가득하다. 음료를 마시고 연필을 잡고 그리는 그들의 미소에 행복함이 보인다. 서로 얼굴 그려주기, 가게의 마스코트인 개 그리기 등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각자의 그림에 집중한다. 나중에 보니 뜨개질하는 사람 그리기, 춤추는 사람 그리기, 음식 만드는 사람 그리기 등 주제가 다양했다.  


드링크 앤드 드로의 현장.



에그타르트 베이킹은 아이들과 들어도 좋을 것 같다. 기본적인 반죽부터 굽기까지 모든 단계를 세세하게 가르쳐준다. 재료도 하나하나 만져보면서 진행하니 꽤 재미나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완벽하게 에그타르트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고 한다. 맛을 결정하는 포인트가 버터인데 한국 수출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에그타르트에 사용하는 버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버터의 느낌보다 만졌을 때 조금 말캉한 고무 같은 감촉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돌아와서 다양한 곳의 에그타르트를 먹어봤지만 포르투갈의 맛을 담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수업을 듣고 나면 마지막으로 완성된 에그타르트를 시했는데,  입천장이 델 정도로 뜨겁다 보니 식혀서 천천히 먹어야 한다. 초콜릿 잔에 따른 체리주도 나온다. 포르투갈에서는 체리주를 소화제처럼 마시던데 도수는 엄청나게 높다. 


직접 만든 에그타르트.



포르투갈은 서핑으로도 유명하다.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R양이 서핑 클래스에 나가면 나는 주로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서핑을 안 하니 정확하게 어떤 기분인지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계속 바라보는 입장에서 말해보자면 포르투갈의 바다는 높이가 있지만 깨지는 파도가 길게 오는 편이다. 깊은 바다에 들어가는 게 무섭지 않으면 무리는 없어 보인다. 선수, 공식 서핑 강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수업의 질이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픽업 서비스도 잘되어 있는 편이고 보드랑 옷도 빌려준다. 한국분들도 가끔 보인다.  


서핑하는 R양을 기다리며/ Drawing Time : 약 40분
포르투 콤비 커피/ Drawing Time: 약 50분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와서 


포르투갈은 유럽의 동남아 같은 기분이 든다. 당연히 동남아와는 많이 다르지만 비슷한 부분들이 조금씩 보인다. 유럽에 처음 가고, 물가가 비싸서 걱정이 된다면 포르투갈을 매우 추천한다. 물가가 낮고 여러 문화를 체험하기 좋다. 에어비앤비 트립 콘텐츠도 활발해서 다양한 투어나 체험이 가능하다. 또 각 여행지 간 거리도 안 멀고 식당도 대부분 맛집이라고 부를 만하다.


유럽의 여러 여행지에 가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포르투갈이 가장 좋았다는 평이 많다. 아름다운 하늘과 그 하늘을 보며 가는 트램을 느끼며 여행하길 바란다.


포르투갈의 하늘/ Drawing Time : 약 1시간


나는 현장의 모습을 스케치북에 담아내면서 세상과 이야기를 나눈다.

 


 

에어비앤비 작가, 카콜 

: 언제나 스케치북과 펜을 들고 다니며 여행지를 그리는 여행 스케치 작가. 현장의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며 사진과는 다른 맛으로 담아내고 있다. 《드로잉 인 포르투갈》을 얼마 전에 출판했으며 오늘도 그림을 그리러 나간다. 

인스타그램_ @shlim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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