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어비앤비 Dec 11. 2019

파리를 파리답게 만드는 사람들

어제와 오늘의 파리지엥들


매일 꽃을 꽂는 파리지엥, 게스트 클로에가 준 여운


지난해 스페인•포르투갈로 떠났던 신혼여행 여정 동안 ‘살아보는 여행'의 매력에 흠뻑 빠진 우리 부부. 서울에 돌아와 자연스럽게 호스팅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래된 벽돌집을 구해 취향을 듬뿍 담아 꾸미고, 우리가 읽던 책을 자루 채로 가져다 놓았다. 연식이 있는 집은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감사하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어느덧 1년 차 슈퍼호스트가 되었다. 호스팅을 하며 가장 좋은 점은 단연 예전의 나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알게 되는 것. 손님들은 국적도 나이도 달랐지만 어딘가 우리와 교집합을 가진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집안의 화병마다 생화 몇 송이씩을 꽂아두고 갔던 한 파리지엥 게스트 클로에(Chloe). 4박 5일이라는 짧은 여정 중에도, 그녀는 집안에 꽃을 두고 바라보는 작은 여유를 고집스럽게 지켜냈다. 서툰 언어로 꽃 값을 치르고, 물을 채운 뒤 그 모습을 찬찬히 보며 즐겼을 클로에. 여행을 갈 때마다 본전 생각이 들어 잠까지 줄여가며 여정을 소화하기 바빴던 우리 부부에게 그녀가 꽂아 두고 간 꽃 몇 송이는 참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파리지엥의 낭만이란 이런 것일까? 


이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자, 우리는 고민 없이 다음 휴가지를 정했다. 호스팅으로 모아 온 여행 경비 통장을 탈탈 털어.




'나이를 묻지 않고 친구가 되는 법'을 알려준 호스트 안토닌


우리 부부를 파리로 이끈 것은 화병의 꽃뿐만이 아니었다. 다프트펑크(Daft Punk)•피닉스(Phoenix)•망쏘(Manceau)•품(Poom). 프렌치 팝을 사랑하는 우리 부부에게 그곳은 일종의 '성지'와도 같았다. 싱어송라이터인 남편이 아주 어릴 적부터 들어온 노래들이 태어난 곳. 중고 LP샵에서 우연히 유명한 뮤지션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어가 아닌 영어로 인사하면 실례가 될까? 영화 같은 상상을 하던 중에, 에어비앤비에서 그 상상보다 영화 같은 집을 찾게 된다. 아늑한 침대 대신, 산처럼 쌓인 LP와 턴테이블 사진이 메인으로 걸린 곳. 바로 안토닌(Antonin)의 집이다.

▲ 안토닌의 집

늦은 밤 스쿠터를 타고 체크인을 도와주러 온 안토닌은 자신을 뮤직 레이블의 리더이자 작곡가, 그리고 셰프라 소개했다. 집에는 안토닌이 사용하는 살림살이들이 질서 없이 놓여 있었다. 암벽을 타듯 등반해야 올라갈 수 있는 침대방, 아침이면 작은 창으로 비둘기가 들어와 퍼득거리는 화장실. 조금은 이상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 침실의 뷰.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아침잠도 달아났다
▲ No Pigeon(비둘기 금지)라는 글귀가 붙어있던 화장실. 날마다 환풍구로 비둘기가 들어와 한참을 구구 거리다 떠나가곤 했다

살림은 모든 것이 수더분하고 단출했지만, 유독 턴테이블과 스피커는 비싸고 진귀한 것들이었다. 나는 알턱 없는 물건들이나, 신랑은 첫눈에 진가를 알아보았다. "이 스피커, 굉장히 귀한 것 아니야?" 안토닌은 그때부터 수다쟁이가 되었다. "친한 뮤지션이 공연하는데 놀러 올래?", "내가 만든 노래인데 들어볼래?" 영어냐 불어냐 했던 고민이 무색하게도 둘은 손짓 발짓을 섞어 빠르게 친구가 되었다.

▲ 안토닌과 우리 부부
▲작은 청음실 같았던 그의 거실. 그는 종종 집에 들러 그날그날 듣고 싶은 음반을 챙겨가곤 했다

안토닌은 자신이 태어나 자라고 경험한 파리의 좋은 점들을 여행자인 우리도 똑같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요즘 자신과 또래 친구들은 유기농 와인을 글라스 단위로 주문해 서서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으로 시작해,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파리의 뮤지션, 화가의 집과 작업실을 그대로 보존한 미술관, 코 앞에서 동물을 볼 수 있는 박제상까지, 파리의 젊은이들이 요즘 어떤 것에 빠져있는지 여기 사는 사람들은 평소에 무얼 먹고 어디에 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여행 중반쯤, 그는 우리에게 프랑스어로 친구는 ‘Ami’라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야 우리가 서로 나이를 묻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상하 관계를 가르지 않고, 열린 마음과 공통된 관심사 몇 가지로도 흔쾌히 ‘친구'가 될 수 있는 곳. 우리는 그런 곳에 든든한 친구 하나를 만들고 온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안토닌의 소개로 만난 파리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고집스러운 파리의 예술가, 귀스타브 모로 


'누군가의 생가'에 가는 것은 가까운 이의 집들이에 초대받는 것처럼 언제나 조금 설레고, 조금 긴장되는 일. 누군가의 가장 자연스럽고도 솔직한 모습을 보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호스트 안토닌의 추천으로 우리는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라는 화가의 생가에 닿게 되었다. 귀스타브 모로 시립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모로의 생활공간과 화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가 살아 숨 쉬던 시공간으로 초대받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의 이름조차 생경했지만, 복도를 따라 집 안을 거닐며 그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상상하기 시작했다.


침실과 응접실에서는 본차이나와 일본 스타일의 수집품을 비롯해 그 시절 가장 트렌디했을 예술가의 취향을 엿볼 수 있었다. 여느 예술가들이 그렇듯, 아름다운 것을 보면 사모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겠지. 키가 닿지 않는 벽 꼭대기에 거울을 달아둔 것에서는 괴짜 같은 구석도 느껴졌다. 서재 안 가구와 집기의 배치에서는 예술가 특유의 예민함이 전해져 침이 꼴깍 넘어갔다. 빼곡한 액자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그리드, 강박적으로 좌우 대칭을 맞춘 장식품들. 실제로 그는 그의 집과 작품을 모두 파리 시에 기증할 때, 그가 정해둔 작품의 위치 등을 최대한 바꾸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삼았다고 한다. 파리가 명실공히 예술의 도시로 불리는 것은 어쩌면 이처럼 예민하고 고집스러운 아티스트 한 명 한 명이 이루어낸 성과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귀스타브 모로가 생전에 수집하고 애호하던 것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기운 액자를 고쳐 걸고, 체스판 앞에 앉아 친구와 신경전을 벌였을 그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 위층 화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눈물이 날 뻔했다. 벽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히 걸린 마스터피스와 암막 뒤 캐비닛에 표구된 손바닥만 한 습작들까지. 한 사람의 작품으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한 양의 작업물을 보고 있자니 그의 인생 전부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성서에 기반하여 심오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귀스타브 모로는 ‘상징주의' 미술사조의 선구자로 불린다고 한다. 당시 인상주의가 혁명처럼 번지던 파리에서, 너무나도 다른 그림을 그려나갔던 모로. 어쩐지 그가 반항기 가득한 이단아처럼 느껴졌다. 몇 달 전 이탈리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영접하며 나는 차마 가닿을 수 없는 천재성을 맛보았다면, 음울하고 어딘가 광기 어린 귀스타브 모로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왜인지 그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캔버스를 걷어차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또 씩씩대며 붓을 잡았을 모습이 그려져서 피식했다. 온계절을 그렇게 노래와 씨름하는 우리 남편 모습과 겹쳐져서. 신랑은 음침하고 압도적인 종교화의 기운에 눌려 몸살이 날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어딘가 모나고 비뚤어졌지만 속마음은 따뜻하고, 누구보다 뜨겁게 삶과 예술을 사랑했던 어떤 친구의 집에 다녀온 것 같아서 마음이 포근했다.

▲ 위층으로 오르는 나선형 계단과 그의 자화상. 덥수룩한 수염과 더벅머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귀스타브 모로가 사용하던 화구



살아있는 모든 것의 가치를 전하다, 박제학자 데롤의 쇼룸


어릴 적 곤충 마니아였던 남편을 위해 동물 표본을 사거나 대여할 수 있는 데롤(Deyrolle)의 쇼룸을 찾았다. 잔 바프니스트 데롤(Jean Baptise Deyrolle)이 창설하고 그 가문이 대를 이어 꾸려온 곳이다. 데롤이 동명의 회사를 설립했던 1800년대는 대륙 간 여행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면서 유럽 전체가 박제 수집에 열광하던 시기라고 한다.

▲ 귀스타브 모로의 방에도 나비 박제 유리관이 있었다

헌데 동물권 선진국으로 꼽히는 프랑스, 그 복판에 박제 판매점이라니! 그는 어떤 생각으로 이런 공간을 만들었을까? 동물을 사랑하는 파리지엥들이 200년 동안 이 곳을 가만히 둔 이유는 무엇이지? 여러 의구심을 품고 쇼룸의 문을 열었다.


내부의 첫인상은 매우 학술적인 ‘박물관’ 또는 ‘표본실' 같았다. 손님은 대부분 아이에게 동물을 보여주러 온 가족단위의 현지인이었다. 아주 어린 꼬마들도 코 앞에서 박제를 보는 일을 겁내지 않았다. 모두가 놀라움과 경건함으로 아주 진지하게 표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가까이서는 처음 보는 동물들의 향연에 연신 탄성을 내뱉으며 관람에 빠져들었다. 명칭/가격표 모두 불어로만 쓰여있었고 어떠한 설명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말 그대로 코 앞에서 동물의 몸을 샅샅이 보는 것만큼 완벽한 배움이 있을까! 멧돼지의 벌린 입 사이로 혓바닥과 입천장까지 볼 수 있었다. 프랑스인 대부분은 이곳 데롤에서 제작한 학습 자료로 동물을 배우고 자란다고 한다. 박제는 또한 예술이기도 해서, 예컨대 애호가들에게 '노란 앵무새와 초록 풍뎅이를 섞어서 요만한 사이즈의 유리관으로 만들어주시오'라는 주문을 받기도 한단다. 내가 데롤을 처음 접한 건 우디 앨런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의 한 장면이었다. 영화에서 살바도르 달리가 예술가들을 초대한 파티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예술가들이 예부터 지금까지 박제를 예술의 일환으로 인정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지점이었다. 데미안 허스트•오프닝 세리머니 등 데롤은 여러 아티스트•브랜드와도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했다. 웨스 앤더슨 역시 데롤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물론 교육도 예술도 좋지만, 동물 박제가 야만스러운 짓은 아닐까? 이곳에서는 박제를 위한 살육은 일절 없으며, 표본은 동물원과 서커스 등에서 자연사한 동물들로만 만들어진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께름칙했던 우려가 사라지면서 안도할 수 있었다. 동물들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지는 느낌도 들었다. 살아있는 동물을 한정된 공간에 전시하는 동물원에 아이들을 데려가기보다는 이런 곳에서 동물을 보고 배울 수 있게 한다면 어떨까? 현존하는 동물원, 서커스의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죽고 나면 이렇게 표본을 만들어 전시하고, 대신 그 끔찍한 곳들의 대를 끊어낸다면 어떨까? 동물원의 잔인함에 혀를 차면서도 '그럼 애들은 뭘 보고 동물을 배우지?'라는 질문에서 늘 생각이 그쳐버렸던 것 같은데, 지구 반대편에선 이미 200년 전 누군가 명료한 답을 내놓았고,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누리고 있었다. 동물 생명의 존엄을 해치지 않고 그 가치를 새롭게 풀어낸 데롤과, 그것을 소중한 배움, 그리고 예술로 받아들이는 파리지엥들의 태도가 깊게 와 닿았다.

▲ 쇼룸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 유니콘 등 실제하지 않는 동물의 표본도 볼 수 있다. (출처: www.deyrolle.com)
▲ 작은 동물이나 곤충의 표본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우리는 표본 대신 엽서를 구매했다.



파리를 파리답게 만드는 사람들, 파리지엥


2017년 파리 샹젤리제 테러가 일어난 다음날, 파리지엥들은 테러가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평소처럼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왜인지 희생자를 기리던 국장에서 한 남성이 유족 대표로 애도사를 낭독한 것이 생각났다. 그는 희생자 중 한 남성의 동반자로서 그 자리에 섰다. 희생자의 법적 부모, 형제가 아닌 그의 (동성)동반자가 대표로 나서 연설을 할 수 있는 나라. 이 대단한 것들이 무심한 듯 시크하게  이는 이 곳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번 여행에서 마주친 파리 사람들을 통해, 그동안 막연하게만 그려왔던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예술을 사랑하며, 그 공통된 관심사 하나로 나이를 묻지 않고 친구가 되었던 호스느 안토닌.

고집스러운 예술혼으로 새로운 사조를 만들고 보존해 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와 생생하게 소통하는 귀스타브 모로.

학술로서의 그리고 예술로서의 동물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해 올바른 동물권을 시사한 데롤.


우리 부부에게 이번 여행은, 이렇게 우리가 만난 몇 명의 파리지엥으로 기억되었다. 세계 만국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파리로 이끄는 것은 어쩌면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 디저트와 보르도 와인보다도 '파리 사람들'이 아닐까? 과거에 파리를 채웠던, 그리고 지금의 파리를 이루고 있는 파리 사람들말이다. 여행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방금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이라던가. 채 짐도 다 풀지 못한 우리는, 연말 파리행 티켓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그리운 그들, 파리 사람들을 만나러.





에어비앤비 작가, 유지민

콘서트를 연출하고, 라운지웨어 브랜드를 운영합니다. 수필집 ‘가요톱텐’을 출간하였으며, 합정동 작은 투룸의 호스트입니다. 뮤지션 징고, 14살 된 말티즈 꽃님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39900won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속 피렌체와 시에나에서 발견한 낭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