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어비앤비 Dec 27. 2019

사진 한 장 보고 결정! 레바논 여행

레바논 '내 친구의 집’을 찾아서 


'외딴섬’으로의 여정


▲ 레바논 여행을 결심하게 된 트리폴리 사진


레바논 여행은 뜻하지 않게 시작되었다. 작년 휴학 중에 두 달여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Тошкент)부터 조지아 트빌리시(თბილისი)까지 육로로 이동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여행 중 갑자기 레바논에 꽂혀서 돌아 돌아 베이루트(بيروت)에 도착했다. 사진 한 장을 보고 여행을 결심하는 때가 많다. ‘레바논에 가야겠다’라고 결심하게 된 계기 역시 레바논 북쪽 제2의 도시 트리폴리(Tripoli)의 전경을 본 이후였다. 시리아와 불과 몇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트리폴리의 모습이 마치 가본 적 없는 브라질 리우의 모습 같기도 했고, 나름의 무질서 속 질서가 보이는 것이 내가 접하지 못한 세계 같았기 때문이다. 레바논에 관한 정보를 찾아볼수록 레바논은 막연한 ‘중동’과는 조금 다른, 종교적, 언어적, 문화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나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레바논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레바논의 크기는 경기도 남짓. 지리적으로 보면 북과 동으로는 시리아, 남으로는 이스라엘, 서로는 지중해와 맞닿고 있는, 21세기의 외딴섬 같은 나라이다. 레바논 여행 이전 내가 이 국가에 대해 조금이나마 접해 본 경험은 고등학교 시절 잠깐 듣던 ‘베이루트’라는 이름의 밴드뿐. 한참을 고민하던 후 결국 이란 쉬라즈(شیراز)의 한 숙소 침대에 뒹굴며 엉켜버린 여정을 재구성했다. 고민은 깊이, 행동은 빠르게. 에어비앤비와 차량 예약을 마치고 바로 레바논으로 향했다. 2018년 8월 말, 이란 테헤란(تهران)에서 육로 여행을 끝내고 그리스와 키프로스를 거쳐 베이루트(Beirut)에 도착했다.





레바논 '내 친구의 집'을 찾아서


일라나와 하빕의 에어비앤비는 베이루트에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제마이제(Gemmayze) 지구의 바 스트릿에 있었다. 흔히 말하는 베이루트의 ‘힙’한 바들이 모두 이 길에 몰려 있었는데, 낮에는 회사원으로 북적거리고 저녁에는 바 손님으로 바쁜 거리였다. 스트릿 파킹을 찾지 못해 근처 성당과 모스크 앞의 공터에 주차를 해두고 에어비앤비까지 걸어갔다. 어쩌다 카풀링을 하게 된 미국 유학생은 레바논에는 성당과 모스크가 한 곳에 같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레바논의 종교에 대해 알려주었다. 레바논 인구는 크게 1/3은 가톨릭, 1/3은 수니 이슬람, 1/3은 시아 이슬람이라고 한다. 레바논은 고대에는 로마 제국, 더욱 최근에는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 프랑스의 통치를 받은 국가로 다양한 문화권의 영향을 받았다.


▲ 주차한 곳에서 차를 옮기기 전 해 질 녘의 모스크
▲ 숙소 바로 앞의 분위기 좋은 바 ‘Demo’. 일주일간 묵으면서 여러 차례 방문했다


가끔은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아가는 게 여행의 가장 큰 도전 중 하나이다. 주소가 없어서가 아니고, 아니, 레바논의 경우에는 주소가 정말로 없긴 한데, 호텔이 아닌 ‘집’을 찾아가는 건 어려움이 따르는 일이다. 나와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우리는 지도를 본다. 큼지막한 글자로 ‘호텔’ 혹은 자신의 이름을 광고하는 숙박업소와는 달리, 에어비앤비의 주소는 길가를 읽어야 하는, 정말로 주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익숙지 않은 길의 이름과 번지수까지 찾아야 그곳에 도착할 수 있으니까. 마치 그 지역의 주민인 듯, 번지수가 있는 주택에서 지낼 수 있는 잠시의 시간. 인터폰을 눌러서, 전화를 걸어서 – 극단적인 상황에는 발코니에 앉아있는 호스트를 불러서! ‘호세!’ 이렇게! 실제로 쿠바 아바나에서 그랬다 – 그래야 도착할 수 있다. "왔어?", "어 왔어", "현관문 열어줄게, 잘 왔어." 하는 친구 집처럼.



▲ 햇살이 통창으로 환하게 들어오는 레바논 내 집, 에어비앤비 침실
▲ 초록의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레바논 내 집의 에어비앤비 거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레바논 내 집’의 호스트는 일라나와 하빕. 일라나는 동유러피안, 하빕은 가톨릭 레바니즈로 둘의 결혼은 처음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베이루트는, 레바논은 그랬다. 길가다가 사람들은 영어를 하다가 불어를 하다가 아랍어로 미국 달러로 결제를 했다. (레바논 환율은 달러를 기준으로 고정환율이다. 또, 식민 지배의 영향인지 기초교육과정은 영어 혹은 불어로 지도한다고 한다.) 여기가 진짜 시리아 옆 이스라엘 위 그곳이 맞는지, 놀라움에 놀라움을 계속 준 곳이 레바논이었다.


일라나와 하빕은 에어비앤비에 거주하지 않고 앞집에 거주하며 호스트로서 게스트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 앞집 본인의 집에도 하숙생처럼 장기 여행자를 살게 했다. 내가 방문했을 때 만난 거주자는 남미 출신의 시리아 혼혈인 여성분이었는데 나와 만나기 일주일쯤 전에 시리아 다마스쿠스(دمشق)에 다녀왔다고 이야기했었다.





국경의 반대편,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레바논 도착 전까지만 해도 온 가족이 거기 정말로 가도 되는지, 시리아 옆인데 괜찮은지 걱정을 한 터였다. 그런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그 친구는 다마스쿠스는 베이루트와 비슷한 안전한 아름다운 도시였다고 했다. (실제로 현재 시리아 내에서 다마스쿠스는 안전한 축에 속한다. 시리아 또한 작년에는 한시적으로 자유여행 비자를 발급했다.) 시리아 다마스쿠스가 여기와 비슷한 정도라니! 국가별 경보 현황을 눈여겨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사실, 시리아에도 누군가 살고 있지 않은가. 글을 작성하는 2019년 12월 현재, 시리아 전쟁은 점차 사그라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평생 ‘위험 지대’와 ‘국경’에 대해 엄격한 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국민인 나였다. 내 발로 국경을 건넌 경험도 이번 여행이 처음이었다. 물론, 북미와 유럽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건넌 국경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나서 그런지, 비자와 입국 요건을 확인한 후에도 ‘국경’과 국경 초소는 내게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주었다. 갑작스레 국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한 레바논의 정치적, 지리적 복합성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리아나 이스라엘을 통해서 레바논에 입국하는 것은 어렵다. 가능하다고 해도, 시리아 동쪽으로는 또 이라크이고, 중동을 육로로 여행한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조금 어려운 일이다. 


▲ 발벡의 고대 로마 유적지


시리아와 인접한 레바논 발벡(Baalbek) 고대 로마 유적으로 많은 관광객을 모으는 지역이다. 레바논에 대해 알아갈수록 국가의 위치와 국경이라는 것의 정치적, 지리적 복합성에 대해 제고해보게 되었다. 사실 ‘국경’이라는 것은 지도상의 한 굵은 선 이상일 때가 많다. 예컨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이란까지 국경 초소 간의 거리는 (아무도 정치적으로 소유하지 않는 이 공간을 흔히 no man’s land 라고 한다) 버스로 한 시간,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지구본에서 세계지도에서 쉽게 접하는 실선 ‘국경’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현대 사회에서 불가피하게도 복잡한 존재이다. 북과 동으로 시리아를 맞닿고 중동에 위치한 레바논에서는 이런 정치적 상황이 첨예하게 드러났다.





시리아 무슬림 집에 초대받은 날


▲ 레바논에서의 첫 번째 식사


레바논 첫 식사를 한 이곳에서 우연찮게 한국인 K를 만났다. 하루는 K가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시리아인들을 만나러 간다 하길래 호기심에 그를 따라갔다. K와 나는 자이투나이(Zaitunay) 항구 산책로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그 청년 둘, 사촌 지간인 오마르와 히샴을 기다렸다. 해 질 녘쯤에 도착한 그들은 양손에 맥주를 잔뜩 들고 왔다. 레바논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언제 떠났는지, 시리아에는 종종 가는지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둘을 자신들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기에 택시를 타고 그들의 집에 도착했다. 그들은 대학교 기숙사 같은 곳에 다른 시리아 출신 젊은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슬람에서는 손님을 ‘신의 손님’으로 여겨서 무슬림에게는 손님 대접이 문화의 굉장히 중요한 일부이다. 그래서인지 중동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종종 차와 음식을 권해 받는다. 그들의 방에 도착해서 우리는 유튜브로 시리아 전통 음악을 듣고, 고향인 홈스(Homs)에서 가져왔다는 홈메이드 와인을 함께 마시고, 야밤에 커피까지 끓여서 시리아에서 건너온 간식을 즐겼다. 중동의 다과는 참 맛있다! 달달하고 파이처럼 눅진하고, 특산품인 견과류를 많이 넣어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음식이다. 그들과 보낸 저녁은 외국 친구들과 보내는 평범한 저녁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 결국 그런 평범한 나날들 중 하나였으니까. 나중에는 시리아식 ‘만두’를 구워다 줬는데, 한국식 동그란 찐만두를 구운 느낌이었다. 먹는 방법은 샤오롱바오를 먹듯이 피를 찢어서 한 김 식혀 육즙을 먼저 마시고 나머지 만두를 먹는다고. 만두, 다과, 커피, 와인까지… 오마르와 히샴은 우리를 정말 극진히 대접해주었다.


▲ 시리아식 다과 (좌) 오마르와 히샴이 준 와인과 간식(우)


▲ 시리아 만두를 먹는 방법


밤이 늦어져 우리는 이제 슬슬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떠나기 전 그들은 우리에게 기념품이라며 시리아 동전, 인도미, 시리아 커피, 티스푼 등등을 줬다. 친하지 않은 사이에 선물은 익숙지 않았지만, 감사히 받아 들고 다시 만나길 기약하며 그들의 숙소를 떠났다. 우버를 불러서 제마이제의 내 숙소를 찍고, 가는 길에 K를 내려주었다. 그들과의 대화는, 친구와 수다 떠는 게 항상 그렇듯, 대체로 실없는 이야기로 그득했다. 일 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시리아와 레바논은 역사적으로도 교류가 많은 인접국가이다. 최근 시리아 내전 이후에는 시리아에서 레바논으로 피난 온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레바논에 거주 등록된 시리아인의 인구는 백만 명에 가까운 숫자라고 한다. 백만 명의 인구 중 ‘난민’으로 봐야 할 인구는 몇 명이며 거주 등록되어 있지 않은 시리아 난민은 몇 명이나 있을까? 레바논을 여행하면서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한 번은 발벡 여행 중에 무언가가 ‘꽝’ 터지는 소리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다행히도 축제 준비였다고 하는데, ‘발벡은 안전하다’며 추천해준 일라나와 하빕의 말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서는 막연한 걱정이 일렁였던 것 같다.


오마르와 히샴에게 당신들은 ‘refugee(난민)'인지, 어떤 연유로 고향인 홈스를 떠나게 됐는지는 묻지 못했다. 묻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시리아에서 온 와인을 마시고 만두를 먹으며, 커피를 음미하면서 시리아 전쟁은 곧 끝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홈메이드 와인은 정말 달콤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만두라는 문화는 내게 또 다른 재미를 안겨 주었다. 홈스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내년에 내가 다시 온다면 그들이 홈스를 구경시켜줄 것이라고 - 그들은 마치 내년엔 전쟁이 끝날 것처럼 말했다. 내년에도 나에게 와인을 또 한 병 만들어 나누어 줄 것처럼.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오마르는 독일로 가고 싶다며 혹시 독일어를 하는 사람을 안다면 연결시켜 달라고 말했다.





레바논 '내 친구의 집'을 떠나며


입국할 때 보다 곱절로 아비규환이던 공항에 도착해서야 탁상 램프 옆에 두고 온 오마르와 히샴의 선물, 시리아 동전이 떠올랐다. 


▲ 오마르와 히샴의 선물


공항의 무질서는 모든 비행기를 한 시간 이상 연착시켰다. 한 시간짜리 직항 비행기를 타면서, 내 짐은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지 못해 이틀 후에야 요르단에 도착했다. 그래, 이런 아비규환도 레바논이었다. 그저 영어가 통하고 불어가 통하고 마냥 아름답기만 한 국가가 아닌, 1980-90년대에 끝난 레바논 전쟁의 여파를 아직도 겪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통령 공석이 2년가량 지속되었고, 시리아 내전의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는, 변화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는 나라였다. (2019년 연말에 들어서는 레바논 전쟁 이후로 약속 불이행된 생활권(전기 등)에 대한 시위가 대규모 촉발되었다 – 실제로 에어비앤비에서 하루에 1시간씩 예정대로 정전이 되었다).


레바논 다음 행선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관광업이 극도로 발달한 요르단이었다. 요르단은 물가부터 관광 인프라까지 레바논과는 꽤나 다른 나라였다. 나는 중동의 정세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거니와 그저 한 명의 여행객일 뿐이지만 일주일간 베이루트에서 시간을 보내며 여러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여행을 다녀오면 마치 그 국가가 나의 옛 고향인 듯 짠하고 애정 담은 마음이 된다. 마음 한편에 유독 레바논을 위한 공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후에도 레바논 관련 뉴스를 종종 찾아보게 되었다. 아마도 잠깐이나마 그곳에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일라나와 하빕의 에어비앤비는 잠깐이지만 ‘레바논 내 집’이었다. 제마이제를 활보하며 하빕을 마주치고, 베이루트 반대편까지 걸어가 자이투나이에서 맥주도 마시고, 레바논의 복잡한 정세에 빠져든 것을 보며 내가 그곳에 있었구나 체감한다. 방문객인 나는 영원한 외지인이겠지만, 에어비앤비에 사는 잠시 동안은 ‘우리 집’, ‘내 도시’라고 생각해도 좋은 걸까.



 ▲ 마지막 날 일라나와 하빕의 에어비앤비를 떠나며


제 글을 보며 레바논에 관심이 생긴 분들은 Lucien Bourjelly 감독의 <Heaven Without People(2017作)>, 넷플릭스 <Christiane Amanpour의 Sex & Love Around the World – Beirut> 편을 감상하시길 추천합니다.





에어비앤비 작가, 이주경


n년째 한국과 해외에 거주하며 대학원생을 빙자하는 한량입니다. 유의미하며 무의미한 여행을 좋아합니다.


인스타그램 @poxdpx

블로그 twentytwowaystoremember.blogspot.com

매거진의 이전글 서른 살의 방학, 파리에서 한 달 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