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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Jan 15. 2020

여름의 기억, 엑상프로방스

프랑스 남부의 고즈넉함을 추억하며

나는 지난 8년간 해외에서 나그네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서울로 돌아가고는 하지만,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며 정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에어비앤비는 매우 특별한 존재다.  단순한 공유 경제 서비스 개념을 넘어 내가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 맞추어 금전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문화적 경험을 선물해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오랫동안 공들여 뿌리내린 터전을 며칠간이나마 경험하고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은 나처럼 이 세계를 나그네로 떠돌며 살아가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점이 아닐 수 없다.


파리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2015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도시에서 에어비앤비를 꾸준히 이용하면서 느낀 점은, 크지 않고 굳이 볼게 많지 않더라도, 자꾸 돌아가고 싶은 도시가 있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가 바로 그런 도시다.




프로방스, 여름의 기억


엑상프로방스가 나에게 특별한 이유는 아마 그곳이 나에게 여행지라기보다는 여름과 휴식이 공간화되어 기억에 각인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4월에도 눈보라가 몰아치는 도시에 살다 보면, 엑상프로방스의 찬란한 지중해성 햇빛이 그리울 때가 있다. 밭에서 갓 뽑아온 듯한 신선한 농산물을 팔던 일일장터의 활기, 갓 구운 마들렌의 버터 냄새, 도시 곳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분수들 에서 굴러 떨어지던 물방울 소리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근사하고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엑상프로방스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차갑게 얼어붙었던 마음 한편이 녹아내리고는 한다. 여행의 기억이란 건 그만큼 힘든 순간에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프로방스'에 대해 지니는 동경은 특별하다. 프로방스라고 하면 흔히 드넓게 펼쳐진 라벤더 밭과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진 건물들, 바스락 거리는 린넨 식탁보와 로제 와인 등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엑상프로방스는 그러한 프로방스의 색채를 대표하는 핵심적인 도시라고 볼 수 있다.

▲ 시장에서 파는 해바라기. 고흐의 그림 속 해바라기를 연상시킨다.

프랑스 행정이 개편되기 전, 프로방스 주의 수도였기도 하고, 큐비즘의 영감이 된 화가 폴 세잔의 고향이기도 한 곳. 화려하거나 세련되지는 않지만, 도시가 주는 특유의 편안하고 고즈넉한 느낌을 곱씹을수록 프랑스 사람들이 엑상프로방스를 '프랑스 남부의 파리'라고 부르는 것이 이해가 간다. 실제로 몇 년 전 파리와 엑상프로방스를 3시간 만에 이어주는 직통 TGV가 생긴 이후, 많은 파리 사람들이 엑상프로방스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재래시장 덕후의 천국


엑상프로방스는 양파 같은 매력의 도시지만, 단연코 프로방스의 터줏대감 같은 이 도시가 많은 여행객들을 사로잡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재래시장의 다양함과 퀄리티라고 볼 수 있다.

▲ 신선함이 느껴지는 갖가지 과일과 채소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던지 재래시장에는 항상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만족스러움이 있다. 땅의 산물이 주는 신선함과 생명력, 이른 시각 시장에 모여든 사람들의 활기,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에 물품을 구입하는 경제적인 만족감이 더해져서인지 매우 근본적인 레벨에서 행복감이 느껴지고는 한다. 외국에서 슈퍼에 들어가 그 나라만의 공산품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기는 하지만 일반 슈퍼에 비해 왠지 재래시장은 같은 곳을 가도 매일매일 새롭게 느껴진다는 묘미가 있다. 날이 갈수록 매대에 오르는 과일들의 색깔과 크기가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을 눈치채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 다양한 색감의 꽃들

그런 면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면서도 고유의 전통을 지켜 나가는 엑상프로방스는 재래시장 덕후의 메카 같은 곳이다. 시청 옆에 있는 리셸므 광장(Place de Richelme)에서는 매일 오전마다 과일과 채소를 파는 장이 열린다. 아침 8시에 개점해 오후 1시에 문을 닫는데, 11시쯤 가면 가장 활기찬 시장을 목격할 수 있다. 일주일에 두 번, 꽃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갖가지 색상의 꽃들과 식용 허브들이 내뿜는 향기 속에 걸어 다니기만 해도 굉장한 기분 전환이 되었다.


미라보 거리(Cours Mirabeau)라는 엑상프로방스를 대표하는 대로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생활용품과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는 큰 시장이 열린다.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프랑스풍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러 군데서 지갑을 털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홀린 듯이 프로방스 라벤더와 올리브로 만든 비누들과 올리브 무늬가 그려진 식탁보, 프랑스 남부의 전통 무늬가 새겨진 천 원단, 빅토아르 산에서 양봉한 라벤더 꿀 등을 사고는 했다. 꿀이 든 유리병이 캐리어에 들어가면 매우 무겁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었다.

▲ 엑상프로방스의 대표 거리인 미라보 거리에서 열리는 장

비단 엑상프로방스뿐만 아니라 프랑스 재래시장의 특별한 점은, 장에서 만나는 상인들에게 구매하는 재료에 대한 팁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처음 요리해보는 해산물을 살 때의 팁은 매우 유용했다. 엑상프로방스에서는 무난하게 생선과 새우를 구워 먹고 과일을 사 먹었지만, 파리에서는 장터에서 난생처음 보는 등껍질을 가진 게를 살 때 어떤 와인에 몇 분 삶는 게 좋은지, 삶은 국물을 어떤 채소와 함께 끓이면 좋은 스튜가 되는지에 대한 꿀팁을 얻어서 가성비 좋은 해산물 요리를 숙소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조리시설이 갖추어진 에어비앤비에서 묵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큐레이팅 된 편안함


몇 년간 다양한 에어비앤비에 머물러본 결과,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에어비앤비의 유형은 두 가지인 것 같다. 첫 번째는 공간 자체가 지닌 아우라에 의해 계속 생각나는 곳이고, 두 번째는 호스트의 아우라가 강한 곳이다. (두 가지 모두 해당되는 에어비앤비는 인생 여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호스트와 같은 공간을 쓰고 교류가 많을 경우,  방문했던 도시 자체가 에어비앤비 호스트로 의인화되어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경우도 있다. 약간 머쓱하긴 하지만 SNS를 눈팅하듯이 예전에 가봤던 호스트의 리스팅을 클릭해서 요즘 비즈니스는 잘 되고 계시나 볼 때도 있는데, 칭찬들로 가득한 새로운 리뷰들을 볼 때 호스트의 성실함과 한결같음에 대한 뿌듯함과 존경심이 들고는 한다.


아파트 전체를 빌리는 경우에는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제외하면 호스트와 교류할 기회가 많지 않기는 하지만, 직접적인 교류 대신 집안 곳곳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를 통해 호스트의 취향과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호스트와 같이 쓰는 공간은 아니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엑상프로방스의 중심지(Centre Ville)에 위치한 슈퍼호스트 실비의 에어비앤비였다. 특히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두 가지가 매우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실비의 에어비앤비(사진출처: 에어비앤비)

첫 번째로, 실비의 에어비앤비는 내가 가본 곳 중 가장 살기가 편한 곳이었다. “살기 편안한 공간”은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엄청나게 구축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진 속에서 아무리 멋있고 아늑해 보이는 공간도 막상 살다 보면 동선이 불편하거나, 거울이 너무 높게 달렸다거나, 습도 조절이 안된다거나, 조리 기구가 탐탁지 않다거나, 소파에서 먼지 냄새가 난다거나 하는 조그마한 복병들이 숨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조금씩 불편한 점이 있어도 그것이 여행의 낭만이라 여기고는 하지만, 실비의 에어비앤비는 정말 흠잡을 데 없이 살기 편안한 곳이었다. 가끔 새로 만난 사람과 평생 알아왔던 것처럼 잘 통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그렇듯 실비의 아파트는 마치 내가 평생 그곳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 에어비앤비 입구와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

그렇게 살기 편한 공간이 저절로 나왔을 리는 없고, 호스트의 철저한 연구와 실험 끝에 나왔으리라 생각된다. 실비가 웰컴 기프트로 준비한 로제 와인과 크래커에서부터 좁지만 사용자의 동선을 고려한 화장실의 크기와 배치, 마치 새것인 것처럼 관리되어 있는 가구와 소품에 하나하나 깃든 정성이 느껴졌고, 그것이 여행의 만족도와 직결되었다. 나는 편안한 공간이 심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오직 필요한 것만 가장 필요한 곳에 놓음으로써 여행자는 편리함과 비움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실비의 에어비앤비에 묵은 후 나는 내 공간을 편안하게 놓아두기보다는 편안하게 큐레이팅 하기 시작했고, 이는 내가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행을 통해서 얻게 된 것 중 하나는 완전한 타인의 공간에 들어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시각인 것 같다. 기대하지 않았던 무형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습득할 수 있는 것은 여행 특유의 묘미이자 항상 새로운 모험에 대한 원동력이 되어주고는 한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


두 번째 좋았던 점은, 실비의 에어비앤비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나아가 상생하고 있는 공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외관상으로는 다른 건물들과 다르지 않은 3층짜리 낡은 석조 건물이었지만, 좁은 계단을 올라가 아파트의 문을 여는 순간 모던한 공간이 펼쳐졌다. 단열과 소음 차단을 위해 삼중 코팅된 창문의 조합과 그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고색창연한 프로방스식 테라코타 지붕의 조합은 어느 건축학도가 봐도 매우 설레는 광경일 것이다.


사실 실비의 에어비앤비뿐만 아니라 엑상프로방스라는 도시는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상생하고 있는 도시다. 마치 17세기로 시간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적당히 상업화되어있어 여행객들과 젊은 층들에게 인기가 많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그 와중에도 옛 색깔을 잃지 않고 묵묵히 고풍스러움을 지켜나가는 엑상프로방스의 우직함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옛 건축물을 보존해 사용하는 것도 매우 배울 점이 많았다.

▲ 모든 골목에 역사가 깃들어있는 느낌이다

구시가지에서 북쪽으로 난 언덕길을 15분쯤 걷다 보면 폴 세잔의 스튜디오가 있는데, 마치 19세기 화가가 작업할 당시를 그대로 정지해 얼려놓은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라네 미술관은 17세기 성당을 개조하여 현대 미술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엑상프로방스는 과거와 현재가 같이 숨 쉬고 있는 곳이고, 발을 딛는 곳마다 도시를 세우고 번영시켰던 사람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과 도시는 나에게 차후 디자인하고 싶은 공간을 제시해 주기도 했다.  나아가 프랑스적으로 재해석된 모던함을 보며 우리나라의 건축물에는 어떻게 적용해야 좋을지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언젠가 한국적이지만 모던한 공간을 디자인해 에어비앤비 (슈퍼)호스트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슈퍼호스트들의 공간을 경험해보며 그들이 지닌 디자인 전략과 영업마인드를 꾸준히 연구한 후, 언젠가 여력이 될 때  다양한 문화권들의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로컬 버프


만약 내가 실비의 에어비앤비가 위치한 거리를 걸으며 같은 풍경을 봤으면 아마 감흥 없이 쓱 지나쳤을 테지만, 같은 공간이라도 다른 시점에서 시간을 가지고 관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어비앤비는 나에게 건축과 도시에 대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주고는 했다. 어느 도시이든지, 대중교통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가는 동선,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까지의 거리, 문을 열고 닫는 법, 계단과 천장의 높이, 쓰레기 분류법 등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에어비앤비의 슬로건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망대에 올라가 전체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도시를 내려다보면 도시를 관할하는 큰 흐름들을 읽는 것도 굉장한 일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일상들을 통해 도시에 대한 데이터를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어느 도시이든 늘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데이터가 쌓이기 마련이다.

▲ 모든 질감에서 긴 세월을 지나온 흔적이 느껴진다

데이터를 쌓는 초기 단계에는 누구나 관광객이 될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곳들을 방문하며 기본기를 쌓는 것이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는 도시에 새로운 관광객과 숙련된 관광객 모두에게 일종의 '로컬' 버프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단기간에 내부적인 관점에서 도시에 대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게 된다. 그런 면에서 여행이 지니는 시간적 한정성을 고려했을 때, 에어비앤비는 시간 대비 얻게 되는 시각의 가성비가 굉장히 높고, 내가 계속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000개의 분수의 도시


다시 돌아가 엑상프로방스의 매력들을 탐구해보자. 엑상프로방스는 '1000개의 분수의 도시'라는 엄청난 별칭이 있다. 실비의 에어비앤비를 떠나 엑상프로방스를 돌아다니다 보면, 거의 5분에 한번 꼴로 분수를 보게 된다. 엑상프로방스는 기원전 2세기 로마 제국 시절부터 존재했던 도시인데, 흔히 엑상프로방스를 지명의 앞글자를 따서 '엑스(Aix)'라 줄여 부르는데, 로마식 이름이 변형된 것을 볼 수 있다. 고로 이름에서부터 볼 수 있듯이 엑상프로방스는 예전부터 물로 유명했던 도시인 것이다.

▲ 구시가지를 거닐다 보면 갖가지 모양의 신기한 분수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가장 큰 분수는 엑상프로방스의 상징이자 일명 '로터리 분수(Fontaine de la Rotonde)'다. 주변을 항상 차들이 맴돌고 있기 때문에 약간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크기와 화려함이 인상적이다. 한여름 사방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까지 시원해지고는 한다. 주변 광경과 가장 잘 녹아드는 건 알베르타 광(Place d’Albertas)의 고풍스러운 색감을 배경으로 고고하게 서 있는 분수인 것 같다. 엑상프로방스 넘버원 포토존이다. 하얀색 옷을 입으면 사진이 잘 나온다.


미라보 거리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이끼로 뒤덮인 돌 분수인 무쉬 분수(Fontaine de la Mousse)도 매우 인상적이다. 비주얼로만 봐서는 약수터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굉장히 건강할 것 같은 지하수가 샘솟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비둘기들이 목욕하기 좋아하는 분수라는 것을 알게 된 후 피하고 있기는 하지만, 거리의 포플러들이 모두 시든 겨울에도 홀로 녹색을 지키며 신비로운 아우라를 뽐내는 분수다.

▲ 엑상프로방스를 대표하는 로터리 분수와 고풍스러운 우아함을 뽐내는 알베르타 광장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수는 4마리의 돌고래 분수(Fontaine des Quatre Dauphins)인데, 다분히 프랑스적인 대칭 미를 뽐내면서도 어딘가 살짝 삐져있는 것 같은 아기 돌고래의 포스와 곡선미로 인해 사 차원적인 개성 또한 느낄 수 있다.


2018년 엄마랑 엑상프로방스를 여행하며 이 돌고래 분수를 지나가다, 근처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던 화가분에게서 유화 한 점을 구매했다. 매우 작은 캔버스에 그려진 항구의 풍경이었는데, 아티스트가 상트로페(Saint Tropez)라는 유명한 휴양지에서 그린 후 20년간 지니고 있었다는 자식 같은 작품이었다. 난 집에 가서 이 유화를 볼 때마다 그분이 그림을 팔지 말지 결정하면서 잠시 보였던 슬픈 눈빛이 떠오르고는 한다. 지금도 건강하게 프로방스 지역을 돌아다니며 멋진 작품들을 남기고 계시기 바란다.

▲ 엄마가 아티스트분께 구매한 그림



멋진 주변 당일치기 여행


엑상프로방스를 여행지로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동서남북 다른 프로방스 마을들로 통화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엑상프로방스에서 머물면서 큰 장이 서지 않는 날에는 다른 지역을 당일치기로 방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모두 매력적인 곳이라 일일이 자세한 부연 설명을 적고 싶지만, 간단하게 추천 리스트를 뽑아보았다.

    프로방스 마켓의 요충지 뤼베롱(Luberon)

    특이한 색감의 바위들이 자라고 라벤더 아이스크림이 맛있는 루시옹(Rousillon)

    깊은 역사가 깃들어있는 중세 도시 아비뇽(Avignon)

    반 고흐의 삶과 로마시대의 유적이 녹아들어 있는 아를(Arle)

    다양한 문화와 항구도시의 에너지가 존재하는 마르이세유(Marseilles)

    특이한 해안바위와 절경을 자랑하는 스쿠버다이빙의 천국 카시(Cassis)

    일광욕을 즐기기 좋은 고즈넉한 마을 라시오타(La Ciotat) 


모두 프로방스 지역에 있지만 서로 다른 매력들을 지닌 곳이다. 엑상프로방스 투어리스트 오피스에 문의하면 지역별로 진행되는 소규모 그룹 일일 투어를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아비뇽, 아를, 마르세유, 라시오타는 버스로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 돌아보는 것을 추천하지만 다른 지역은 운전을 해서 가는 편이 빠르기 때문에 렌터카가 없다면 소규모 투어를 예약하는 편을 추천한다. 참고로 6~8월 라벤더가 만발하는 프로방스 성수기 때는 그룹 투어를 미리 예약해 놓는 편이 좋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는 상품을 선택하면 개인 투어를 받게 될 수도 있다.


당일치기로는 살짝 무리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니스(Nice), 모나코(Monaco), 생 레미드 프로방스(Saint-Rémy-de-Provence) 같은 도시가 모여있는 꼬뜨다쥐르(Côte d’Azur) 지역을 함께 여행하는 것도 좋다.




재충전의 도시


나는 2014년 학업 때문에 두 달간 엑상프로방스에서 지낸 후 유럽에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난 어떻게 해서든 항상 엑상프로방스로 돌아갔다. 같은 프랑스지만 엑상프로방스는 파리와는 확연하게 다른 정체성이 있다. 각 도시의 건축물들이 실제로 그러하듯, 파리가 파란색이라면 엑상프로방스는 노란색 같은 곳이다. 개인적으로 파리에서는 비 내리는 거리를 동서남북 정처 없이 걸어 다니는 것이 묘미라면, 엑상프로방스에서는 아침 일찍 대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서성이다, 분수에 걸터앉아 도시의 활기를 흡수하는 것이 묘미인 것 같다.


그저 엑상 프로방스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재충전되는 느낌이 들고는 한다. 그것이 장터에 매일 새로 놓이는 과일들의 신선 함인지, 골목마다 숨어있는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하수의 생명력으로 인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춥고 긴 겨울을 보낼 때마다 엑상프로방스의 기억은 햇살처럼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에어비앤비 작가, 하지예

긴 산책, 초콜렛 아이스크림, 도시, 계획 없는 여행, 낙서를 좋아합니다. 20대의 대부분을 보스턴과 서울을 오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는 건축을 공부 중입니다.

인스타그램: @jiyezi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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