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어비앤비 Jan 23. 2020

전남 보성에서 맞은 만추

적막함 아름다움의 사이


낯을 가리는 아이


나는 아기 때부터 사람 많은 곳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엄마 등에 업혀 동네 마트라도 가는 날엔 작은 소동이 나곤 했다.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관심 탓에 얼굴이 붉어지도록 울어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미안한 일이다. 그들의 시선은 갓난아이를 대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따뜻한 방식이었을 텐데. 그러나 나는 말을 몰랐고, 눈도 제대로 못 떴고, 울 줄만 알았으니 그저 울어버리는 수밖엔 없었다.

▲ 어릴 땐 부모님 껌딱지였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하는 성격은 다 큰 지금도 여전하다. 지하철보다 버스 타기를 선호한다. 혼자서 그날 가장 일찍 상영하거나 가장 늦게 상영하는 영화를 본다. 크면 다를 줄 알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만 늘었다.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 있다. 네가 걱정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너를 쳐다보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 사실 나도 알고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겐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이기에 모를 리가 없다. 다만 낯선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던 순간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내 모습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그때마다 재빨리 눈을 피했다. 자리를 뜨거나 안 어색한 척하려고 웃는 척도 했다. 나는 여전히 만남이 어려웠다.




하루라도 빨리 따뜻한 남쪽으로


이번 가을에도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누군가를 만나기엔 일이 바빴다. 한동안은 가을이 다 가버리는 줄도 모르고 지냈다. 그러는 사이 주변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장롱에서 롱패딩을 꺼내 입고 누군가는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기엔 아직 이른 11월이었지만 모두 연말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일이 거의 마무리될 즈음, 한 해의 마무리로 여행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쉴 겸, 한 해를 시작하기에 앞서 걱정거리들도 정리할 겸.


그날은 며칠 뒤면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 있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분기점에 있었다. 기왕이면 단풍이 남아있는 남쪽으로 내려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전부였다. 휴대폰으로 구글 맵스를 켜서 남해 부근을 조금 살펴보다 몇 분 만에 보성을 선택했다. 나는 여행지를 고를 때 오래 고민하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다 안 가본 곳인데 고민해봤자 답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일단 출발해놓고 보성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비로소 생각했다. 나는 왜 보성에 가고 있는 거지? 떠오르는 대답은 두 가지였다. 따뜻한 남쪽이니까. 차가 유명하니까.

▲ 보성에도 조금씩 낙엽이 쌓이는 중이었다



"차 한잔하자"


나는 ‘커피 한잔하자’는 말보다 ‘차 한잔하자’는 말을 더 좋아한다. 차를 나눌 수 있는 사람과는 좀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차를 마시는 자리에선 ‘이것만 마시고 일어나자’는 말이 무색했다. 간편한 티백도 두세 번은 우려 마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커피도 리필이 가능하지만 선뜻 용기가 안 생긴다) 찻잎을 너무 여러 번 우리면 떫은맛이 날 때가 있다. 그때 아쉬운 마음으로 남은 찻잎을 버리고 끝내는 대화가 좋았다. 다담(차를 마시며 하는 이야기)을 나눈 그 사람은 분명 내게 편한 사람일 것이다. 차는 그렇게 몇 안 되는 내 인간관계를 좀 더 길고 끈끈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차에 관해 바라는 게 있다면 누군가와 대화할 때 차가 필요한 준비물처럼 내게 자리 잡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좀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했다. 바쁘거나 걱정이 많은 시기일수록 차를 자주 마시는 건 어려웠다.




오래된 한옥에서 만끽하는 여유


녹차에 이끌려 정한 여행이었지만, 녹차 밭은 일정의 마무리로 남겨두고 대부분의 시간을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숙소로 정한 ‘목임당’은 조선시대에 지은 고택 한 채를 게스트에게 내어주는 곳이었다. 고택의 정취가 궁금했던 건 아니고 되도록 보성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쉬러 가는 여정이었기에 사람 많은 동네에는 들를 생각이 없었다.

▲ 목임당 마루의 채광, 시간대마다 색이나 분위기가 달라졌다

목임당 겉모습은 오래된 한옥인데 내부는 깔끔한 현대식으로 개조해 분위기가 아늑했다. 홀로 여행 온 내겐 지나치게 큰 숙소이기도 했다. 넉넉한 부엌과 거실을 제외하고도 침실이랑 화장실이 두 개나 됐다. 그래도 시골이 아니면 어디서 이렇게 넓은 집에 살아보겠냐는 마음으로 머물렀다.

호스트는 특히 화장실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넓고 깨끗한 건 물론이고 바닥 타일에도 온돌이 돌아가서 따뜻했다. 내게 있어 겨울에 하는 샤워란 여러 번 마음을 고쳐먹어야 겨우 시도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여기선 하루에 두 번이나 샤워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샤워가 좋았다. 샤워를 끝내고 나와 안개 서린 푸른빛의 아침을 맞으면 마음이 꽤 안정됐다. 늦은 밤까지 나를 괴롭혔던 자잘한 걱정거리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부지런하지는 않아서 아침부터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산책하러 나가는 일 따윈 하지 않았다. 대신 침대로 다시 기어들어가 가져온 고전소설을 읽었다. 아침마다 50페이지를 읽자는 다짐이 있었지만, 대개는 잠들어버려 점심이 다 되어서야 깨어나곤 했다.

▲ 오래된 집이라도 내부는 호텔보다 좋았다

목임당은 한옥만의 적당한 불편함이 매력적인 곳이다. 마루는 밟을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났고, 방문을 넘나들 땐 낮은 천장에 머리를 박을까 봐 조심해야 했다. 잔잔한 바람 소리도 어디선가 흘러들어왔다. 하루는 인덕션에 라면 물을 올려놓고 깜빡하는 바람에 급하게 방에서 뛰쳐나오다 머리를 세게 박았다. 머리를 다친 건 정말 오랜만이라 주저앉아 아파하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가 내게 정신 차리라고 야단치는 것 같았다. ‘앞으론 더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그런 해프닝과 다짐들은 내가 이 공간에 단순히 머무르는 기분에 그치지 않게 만들었다. 나는 어느 정도 여기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만남은 우연히


남도에는 다양한 에어비앤비 숙소가 있었지만 호스트와 교류할 수 있는 곳은 드물었다. 그랬기에 바로 옆 채에 호스트가 사는 목임당은 기대만큼이나 걱정도 많았다. 사람을 어려워하는 내가 호스트를 피하면 어쩌지. 혹시라도 호스트가 혼자 여행 온 나를 반기지 않으면 어쩌지. 온갖 걱정을 했다. 다행히도 호스트인 김수자 선생님은 혼자 찾아온 여행객은 오랜만이라며 나를 살뜰히 챙겨주셨다. 목임당 주변에는 식당이나 마트가 없어 미리 장을 봐서 와야 했는데, 나는 대책 없이 컵라면 몇 개랑 겨우 한두 끼니를 만들어 먹을 식재료만 사 왔다. 김수자 선생님은 그런 내게 가끔 귀한 반찬을 나눠주시기도 했다. 너무 얻어먹기만 하는 것 같아 하루는 내가 저녁을 만들어 드렸다. 그 일을 계기로 밥을 먹은 뒤엔 같이 차를 마시기도 했다.

▲ 마트에서 사온 명란으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차와 파스타의 조합이 꽤 어울렸다

따뜻한 차와 함께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호스트로 노년을 보내는 선생님의 삶이 궁금했고 선생님은 20대로 사는 내 삶과 훗날을 궁금해하셨다. 선생님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헬런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읽고 난 후로 소박한 삶을 살기로 정했다고 하셨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한 헬런이 메이플 시럽을 만들며 셰익스피어를 읽는 행복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자신도 귀촌을 결심하게 됐다고 하셨다. 내 대화 주제는 주로 취업 걱정과 인간관계에 대한 넋두리였는데, 선생님은 조언이나 충고 없이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셨다. 앞으론 상황이 지금보다 나아질 게 분명하다고만 말씀해주셨다.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내가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누군가가 믿어준다는 것만으로도 꽤 위로가 되는 밤이었다.


나로서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분과 차에서 떫은맛이 날 정도로 오랫동안 얘기할 수 있다니. 이 집이 나와 선생님을 편하도록 도와주는 건지, 아니면 선생님이 나를 이 집에 편하게 머무르도록 도와주시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행복한 며칠을 보냈다.




겨울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곳


숙소는 주암호라는 큰 호수를 끼고 있었다. 주암댐으로 생겨난 인공 호수였는데 광주를 비롯한 전라남도 서남부 지역에서 이 물을 마신다고 했다. 만추라 그런지 주변 산의 빛도 색이 바래 호수는 담담한 수묵화 같았다. 해외 관광지처럼 초록이 무성한 산과 푸른 호수는 아니었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풍경이었다. 마냥 아름답거나 적막하지만은 않았다.

▲ 바람이 적어 물결이 멈춘 듯 고요했다

호수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니 호스트가 추천해준 대원사(大原寺)라는 절이 나왔다. 보성에 있던 나흘 동안 대원사에는 두 번이나 들렀다. 서울에는 단풍이 다 떨어졌는데 대원사 주변 산엔 단풍이 아직 한창이었다. 올해는 단풍이 특히 더 오래 붙어있다고, 스님들이 말씀해주셨다. 가을에는 단풍으로, 봄에는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나는 따뜻한 절 마루에 앉아 주지스님이신 현장스님과 차를 마셨다. 대화 없이 차만 홀짝이다가 평소엔 궁금하지도 않던 것들이 떠올라 물었다.


"스님, 종교란 무엇입니까.

스님, 절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입니까."


스님도 내게 어려운 질문을 몇 번 하셨다.


"행복이란 무엇이냐,

현명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어떤 대답을 들었고 어떤 답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질문을 하고 질문을 받으면서 긴 고민에 빠졌고 그럴 때마다 차를 마셨다. 체스판 없이 체스를 두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대원사에 들른 날, 나는 현장스님에게 (절에서 커피를 내려 주시겠냐마는) 보성에선 다들 차를 많이 마시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스님이 내게 이제 차가 질리느냐고 물으셨다. 고민하다가 아직 녹차 밭에 못 가봤다며 엉뚱한 대답을 했다. 다음날 떠나야 하는데 어쩐지 더 머무를 것만 같다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 단풍이 찻잔 안에 떨어진 줄 알고 건져낼 뻔했다. 실제로 단풍을 넣고 구운 찻잔이라고 한다



잘 익은 차 한잔


호스트에게서 찻집을 한 곳 소개받았다. 원래는 노산도방(蘆山陶房)이라는 이름의 차 도구를 만드는 공방 겸 쇼룸으로 개방되던 곳이었는데, 주인분이 지인들에게 차를 대접해드리다 차를 마시는 공간인 도도헌(荼陶軒)을 따로 만드셨다고 했다. 도도헌은 ‘차와 도예가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도예작가인 이혜진 대표님이 다도에 밝으셔서 정성스레 우려 주시는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우리가 마신 차는 봄에 찻잎을 따서 가을에 홍배(로스팅)한 ‘무이암차’였다. 차를 처음 우릴 때 걸러냈던 잔을 건네주시며 향을 맡아보라 권하셨는데 향이 특이했다. ‘진한 향은 딱 여기까지’라고 선을 긋는 듯한, 늦가을에 딱 어울리는 잘 익은 차향이었다. 차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대표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원래 차라는 것은 찻잎을 우려낸 물이라 보리나 꽃잎, 뿌리 등을 사용한 건 그냥 탕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라고 한다. 여태 유자와 생강을 달여 마시며 차라고 말했는데... 하지만 유자탕, 생강탕이라고 말하니 어색하긴 했다. 매운탕에 익숙한 민족이라 그런 건가. 탕이라고 하면 어쩐지 밥이나 소면을 말아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도도헌은 ‘차와 도예가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의미

차도 좋았지만 도도헌의 분위기는 작은 그릇이며 주전자 하나하나까지 정성스레 준비된 느낌이라 머무르는 내내 따뜻하고 정갈했다. 대표님이 사용하시는 다구들은 대부분 직접 만드신 작품이었다. 우리는 다담을 꽤 오랫동안 나눴다. 대표님은 그릇을 만들 때 물론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생활에 밀접한 부분을 먼저 챙기신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은 차를 마시는 사람이니 차를 마시기에 편한 그릇을 생각한다고. 디자인이나 감각, 기술 같은 것들은 그때그때 변하지만 삶에 녹아 있는 양식들은 좀처럼 변하기 어려운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가치를 고수하면서 자신은 점점 단단해지는 중이라고 덧붙이셨는데, 그 마음가짐이 부러웠다. 차를 다 마시고 쇼룸에 전시된 찻잔을 구경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다음에 내가 찻잔을 사게 된다면 누군가 이미 사용했던 것이 좋겠다고.

▲ 차를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도도헌을 꼭 소개해주고 싶었다



곧 돌아올 사람처럼 떠났다


끝으로 여행의 종점인 대한다원을 방문했다. 평일이었다. 이제는 정말 비가 올 듯 날씨가 흐려 인적이 드물었다. 대한다원의 녹차 밭은 TV에서 보던 것만큼 크고 굴곡도 선명했다. 보성 녹차 밭의 풍경은 계절마다 모습이 다르다고 들어서인지 곧 떠날 참인데도 기분이 좋았다. 만추에 보는 이 풍경도 아마 귀할 거라고. 녹차 꽃이 피면 다시 와야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보성을 눈에 차곡차곡 담았다.

▲ 녹차 밭만으로도 좋았지만 단풍나무, 편백나무와 함께라 더 좋았다

이번 여행은 조금 특별했다. 혼자서 여행을 다니면 자의든 타의든 새로운 누군가와 마주하게 되는데 그들을 마음 편히 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평소에도 사람을 어려워하는 데다 여행 중엔 긴장한 탓에 더 경계하는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보성에선 조금 달랐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오래 이야기하고, 곧 돌아올 사람처럼 떠났다.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 덕일까. 눈으로 담은 풍경보다 귀로 담은 귀한 말들이 더 오래 기억될 여행이었다.





에어비앤비 작가, 선명

어젯밤 심었던 씨앗이 언젠가 발아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청년. 디지털 노마드가 꿈이며 여행 갈 땐 캐리어를 들고 가지 않는다. 평소엔 저질 체력이지만 여행만 가면 하루에 이만 보씩 걷는다.

인스타그램 @sunmmyoung

매거진의 이전글 미드나잇 인 쿠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