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과거로 떠난 시간여행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은 결심 끝에 떠난 유학이었다. 이십 대 초반에 모아둔 적금통장 하나 들고 혈혈단신 캐나다에 온 지 2년도 채 못 돼 한국에 되돌아가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충분할 것이라 믿었던 유학 자금은 생활비와 첫 해 학비로 쓰느라 1년 만에 동이 났다. 그 사이 아르바이트는 두 개로 늘었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학교에 다니며 생활비와 학비를 모두 충당하려던 계획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수업이 끝난 후 곧바로 시작되는 레스토랑 일과 밤낮 없는 번역 업무에도 수입은 다음 학비의 절반조차 채우지 못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턱없이 부족했던 준비과정이 끝에 가서는 기어코 내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한 학기를 더 버텼지만, 끝에 가서는 현실의 장벽에 그대로 부딪히고 말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늦은 밤,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한참 눈물을 쏟았다. 고민 끝에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스스로가 그리 작아 보일 수 없었다.
캐나다의 매서운 눈보라가 뒤를 바투 쫓는 것만 같던 그 무렵, 귀국까지는 두 달이라는 시간을 남겨두고 있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안 그래도 복잡한 마음이 더 어지러웠다. 모두가 입을 모아 반대한 퇴사, 미처 끝내지 못한 공부에 대한 미련, 한국에 더 이상 내 자리는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 잔 생각은 가지에 가지를 치면서 끝없이 뻗어 나갔고, 그렇게 나는 출구 없는 지독한 우울에 빠졌다. 어제와 다를 것 없이 흘러가던 하루에 물음표를 던진 것은 무료함에 펼쳐본 책의 한 구절이었다. 작년 이맘때 중고서점에서 2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혹해 구입한 책,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의 [노인과 바다].
Now is no time to think of what you do not have. Think of what you can do with what there is.
지금은 없는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야.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라고.
책에서 노인 산티아고는 바다로 나가 어렵게 잡은 청새치를 지키기 위해 상어와 힘겨운 사투를 벌인다. 거대한 청새치의 무게를 버텨내느라 무감각할 정도로 뻣뻣해진 몸과 팽팽한 낚싯줄에 손이 사정없이 찢겨 피가 철철 흐를지언정 그는 고기 잡은 줄을 놓지 않았다. 끝내 상어의 머리를 내리치던 몽둥이마저 빼앗기고, 상어가 청새치를 모조리 먹어 치우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최악의 상황에도 노인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배는 아직 괜찮구나’ 했다.
체념을 넘어 인생을 달관한 듯한 늙은 어부의 모습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강한 삶의 의지를 보았다. 자기 연민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듯 노인은 우울에 빠진 나를 잡고 그대로 끌어올렸다. 그것은 동시에 나 자신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노인이 마주한 바다를 온전히 느껴보고 싶다는 바람은 [노인과 바다]의 배경지인 쿠바로부터 시작되는 중남미 여행의 도화선이 되었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되는 코히마르(Cojimar)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Havana)의 첫 행선지였다.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려보던 동네는 사람 많고 어수선한 모습이었는데 직접 마주한 이곳은 생각보다 훨씬 여유롭고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바다로 통하는 길목에 레스토랑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코히마르 어부들의 안식처로 통하는 ‘라 테레사(LA TERRAZA)'는 실제로 헤밍웨이가 생전에 자주 찾던 단골 술집이다. 이곳은 ‘테라스’라는 이름으로 [노인과 바다]에서도 몇 번 언급되었는데, 책에서는 노인의 곁을 지키던 소년이 가끔 들러 노인을 위한 맥주와 따듯한 커피를 주문하는 곳으로 그려졌다.
점심시간을 넘겨서인지 식당은 꽤 한산했다. 늦은 점심을 먹는 듯한 한 테이블의 사람들과 바에 앉아 술을 홀짝이는 몇몇이 전부였다. 널찍한 내부에 사방으로 난 창문은 모두 바다를 가득 담고 있었는데 그 덕에 꺼진 조명에도 불을 켠 듯 환했다. 벽에는 헤밍웨이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었고, 눈길이 닿는 곳마다 [노인과 바다]를 연상케 하는 푸른빛 바다 그림들이 보였다.
자리를 안내받고 앉아 ‘코히마르 빠에야(Cojimar Paella)’를 주문했다. 코히마르 어부들이 잡은 해산물로 요리해 준다는 말에 주저 없이 고른 메뉴였다. 음식을 기다리는 중에 눈이 마주친 건너편 테이블에서 손짓을 해 보였다. 합석해 같이 먹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름도 모르는 낯선 이들과 함께 늦은 점심식사를 즐겼다. 빠에야는 탱글한 해산물과 자극적이지 않은 토마토소스가 어우러져 담백한 맛을 냈다. 그 날 저녁 일기장 반 페이지가 맛에 대한 극찬일 정도로 빠에야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함께했기에 모든 것이 더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 즈음, 그들은 식사를 마쳤음에도 내가 숟가락을 놓을 때까지 다정하게 자리를 지켜주었다. 언어가 달라서 비록 깊은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내 어설픈 스페인어를 이해하려고 몇 번이고 되묻는 모습에서 그들의 진심을 보았다. 이방인에게 손을 내미는 데 주저함이 없는 쿠바인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스스로를 ‘입양 쿠바인’이라 불렀던 헤밍웨이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테라스는 눈부신 햇살 아래 쾌적했다
밝고 따뜻한 묘사가 담긴 책의 한 문장에서 라 테레사를 향한 작가의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내가 찾은 라 테레사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한동안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부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수평선 너머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노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고개를 돌리자 한 아이가 능숙한 듯 낚싯대에 미끼를 끼우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어 보이는 아이에게서 나는 노인의 곁을 지키던 어린 소년 마놀린을 떠올렸다.
펼쳐진 책의 한가운데에 내가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눈을 감으면 망망대해에 작은 조각배를 탄 노인이 보이고, 뜨거운 햇볕 아래 끝없이 펼쳐진 카리브해의 짙은 바다내음이 느껴졌다. 헤밍웨이의 제2의 고향이라는 이곳에서 나는 쿠바에 대한 그의 넘치는 애정과 책을 쓰기까지 얻은 영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트리니다드로 향하는 길, 비좁은 버스에 장시간 비포장도로를 달리느라 기진맥진한 나는 산타클라라(Santa Clara)에서 잠시 정차한다는 말에 무작정 짐을 들고 내렸다. '잠깐 휴식을 취하기에 좋겠다'던 순간의 결정과는 달리, 매력적인 이 도시에서 나는 꽤나 오랜 시간을 보냈다.
숙소는 최대한 공원과 가까운 곳으로 정하기로 했다. 이유는 오로지 인터넷 때문이었다. 쿠바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란 쉽지 않은데, 우선 1달러짜리 와이파이 카드를 구매한 후에 와이파이가 가능한 공유 지대에 가서야 비로소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문제는 와이파이 공유지가 굉장히 한정되어있고, 그것마저도 신호가 약해 인터넷 접속에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여행에 있어 인터넷은 돈과 시간을 절약해주는 좋은 수단인데, 인터넷이 되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 반복되자 숙소를 구할 때 ‘와이파이 공유지 근처’라는 조건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그렇게 정한 에어비앤비는 와이파이 공유지인 레온시오 비달 공원(Parque Leoncio Vidal)과 체 게바라 기념관(Museo Memorial al Che)을 도보로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햇볕이 잘 드는 집, 그곳에서 다정한 호스트 산드라 아주머니와 딸 케일라를 만났다. 아주머니를 만나 가장 먼저 한 일은 연락처를 주고받은 것이었다. 쿠바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에 여행하다 혹시라도 일이 생기면 본인에게 연락하라는 당부를 해왔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그만큼 많은 숙소를 이용해봤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낯선 나라에서 먼 친척을 만난 듯 마음이 든든했다.
산드라 아주머니네에서 지내며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현지인의 일상 안에서 그들의 이웃으로 살아보는 경험이었다. 아이들을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로 하루를 시작해 함께 아침을 먹고, 날이 저물면 TV 앞으로 모여 하루를 마무리하는 흔한 일상을 보냈다. 이것은 분명 호텔 조식을 먹고 관광객 사이에서 즐기는 투어 여행과는 다른 에어비앤비만의 매력이다.
산타클라라의 일상을 통해 본 쿠바는 정 많고 따뜻한 모습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홀로 동네를 걷다 보면 자주 들리는 '올라 (Hola ‘안녕’)'.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언제나 미소를 짓는 이웃들이 있었다. 다정한 인사로 내 걸음을 멈추는 곳, 요란한 기념품 가게나 호객꾼들 뒤에 가려진 쿠바의 진짜 모습이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그들의 일상 속 일부가 되는 것, 그만큼 진귀한 경험이 또 없다.
의사를 꿈꾸던 젊은 아르헨티나 청년에서 이제는 세계적인 혁명의 아이콘이 된 체 게바라(Che Guevara). 산타클라라는 쿠바 혁명을 이끈 그가 결정적 승기를 쥔 마지막 전투 현장이자 그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곳이다. 체 게바라의 도시라는 타이틀에 알맞게 눈길을 돌리는 어느 곳에서나 그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제일인 ‘혁명 뮤지엄 카페’는 혁명 영웅인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해 놓았다는 평을 듣는 곳이다.
이곳에는 쿠바 혁명의 순간을 그대로 담은 원본 사진이 150여 장 넘게 보관되어 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친필 서명이 있는 문서 원본들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쿠바 혁명을 대변하는 기념비적인 혁명 당시 물건들을 마주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사는 듯 멀게만 느껴졌던 두 혁명 영웅,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가장 가깝게 만나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는 액자 속 익살스럽게 웃는 모습은 쿠바의 영원한 친구 체 게바라를 온전히 담아낸다. 그는 오랫동안 앓았던 천식에, 남보다 병약한 몸을 가지고도 타국에서의 혁명을 이어 나갔다.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일까.
네 자유와 권리는 딱 네가 저항한 만큼 주어진다
그가 남긴 문장에서 나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해답을 찾아본다.
첫 소절만 들어도 오비스포 거리의 시가를 문 아부엘로가 그려지는 음악, 아프로쿠반(Afro-Cuban)은 그 역사가 꽤 깊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1940~50년대에 활동하던 쿠바의 노장 음악인들을 다시 모아 결성한 쿠바노 밴드로, 아프로쿠반의 대명사로 통한다. 한때 최고라 손꼽히던 실력파 뮤지션들은 어느새 검버섯이 짙게 핀 노인이 되어 있었고, 앨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를 발매할 1997년 당시, 그룹의 평균 나이는 70세였다.
"지금 유명해진다고요? 목소리도 안 나오고 지팡이 없이는 잘 걷지도 못하는 늙은이가 됐는데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이브라힘 페레르의 목소리를 통해서였다. 그의 '치자꽃 두 송이(Dos gardenias)'는 쿠바 여행을 준비하며 찾아 듣던 플레이 리스트 중 하나였다. 이브라함의 애절한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덤덤한 목소리에도 ‘가수가 참 사연이 많나 보다.’ 싶었다. 가수로 활동하던 당시, 팍팍한 삶에 치여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이브라함은 다른 멤버들에 비해 일찍이 무대를 떠났다. 깊게 파인 주름에 삐쩍 마른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에게서 고단했던 지난 삶을 조금이나마 추측해 볼 뿐이다.
2005년 그의 나이 78세, 마지막 라이브 공연에서 그는 두 곡에 한 번씩 산소호흡기로 숨을 연명하면서도 끝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나흘 후 세상을 떠났다.
원년 멤버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을 따르는 후배 뮤지션들의 공연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이름으로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공연을 보기 위해 찾은 나시오날 호텔 (Hotel Nacional de Cuba). 초반에는 술잔을 기울이며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던 관객들이 후반부에 가서는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 두 시간 동안 계속되는 공연은 지루할 틈이 없었고, 분위기 덕분인지 모히토는 그 맛이 특히 더 좋았다. 무엇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인기 곡인 '찬찬 (Chan Chan)'과 멤버 콤파이 세군도의 '관따나메라 (Guantanamera)'를 생생한 라이브로 들어볼 수 있었던 뜻깊은 경험이었다.
소설가를 꿈꾸는 주인공이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담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내게 큰 영감을 준 작품이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푸조 자동차를 타고 예술의 황금기라 불리는 1920년 파리로 떠난다. 그는 과거를 여행하며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과 같은 역사 속 예술계 거장들과 만나 소통하며 인생의 진리를 배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 나약해진 내 앞에 동경하던 과거의 인물이 나타나 삶의 조언을 해준다니. 이보다 더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을까. 영화가 끝난 후에 더 짙게 남은 여운은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어느 시대에 어떤 인물과 만나길 바랐을까’ 하는 상상으로 이어졌다.
나에게는 우연히 펼쳐본 책 [노인과 바다]가 과거 여행을 돕는 ‘푸조 자동차’의 역할을 했다. 어디에 꽂혀 있었는지 조차 잊고 살았던, 연회색의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책에서 나는 과거의 인물들을 만나볼 기회를 얻었다. 20세기 영문학의 거장 헤밍웨이, 쿠바의 혁명 영웅 체 게바라, 그리고 인생의 황혼기에 꿈을 되찾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멤버들까지. 활동 시기도 다르고 각자 원했던 삶의 방식도 달랐던 그들에게서 나는 뿌리가 같은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당장 눈 앞의 결과가 아닌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내 인생을 대변한다’는 점이다.
늦은 걸음에 남들보다 한참 뒤처지더라도 이제는 나의 보폭으로 나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희로애락이 담긴 삶의 여정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 쿠바에서 얻은 삶의 지혜를 되새기며 열흘 간의 <미드나잇 인 쿠바>를 마무리한다.
에어비앤비 작가, 김고은
즉흥적이고 감정표현에 솔직한 편,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즐긴다. 디지털 노마드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현재는 프리랜서 영상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스타그램_@uniqco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