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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Jan 30. 2020

열흘간의 포르투갈 자동차 여행

완전히 낯선 곳에서 온전한 나를 마주하다

공연장에서 일하며 공연을 업으로 삼게 된 뒤 점차 많은 것들을 일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차례 무대 앞뒤를 뛰어다니는 일이라던가, 수십 명의 스태프, 출연자들과 함께 한 편의 공연을 만들며 얻는 성취감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잦은 야근과 불규칙한 생활 덕에 공연이 임박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수록 마음만은 더 많이 비행기를 타곤 했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찬바람 피해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야지!'


하지만 막상 공연이 막을 내리고 나면 무대 뒤의 팽팽한 긴장감이 사라진 뒤 풀려버린 나사처럼 느슨해지며, 아무런 계획 없이 며칠을 허비해 버리곤 했다. 그렇게 일한 지 5년 차가 되던 겨울, 연말 공연이 끝나면 어디론가 꼭 떠나자 했던 나와의 약속을 드디어 지키게 되었다. 그동안 쌓인 휴가를 모아 자체 안식휴가(?)를 약 2주간 보내게 된 것이다. 줄곧 노래를 불러왔던 따뜻한 나라로의 게으른 여행에 구미가 당겼지만, 조금 더 멀리 떠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기에 망설이지 않고 포르투갈을 선택했다.

▲ 포르투에서 묵었던 에어비앤비 숙소 바로 앞의 공원(Jardim do Morro)에서의 뷰. 숙소를 드나들 때마다 시선을 빼앗겼다

<포르토>, <리스본행 야간열차> 같은 영화에서 보아 온 세피아빛 감성과 실제로 여행을 다녀왔던 친구들의 극찬 덕으로 포르투갈은 나에게 '낭만적이고 멋진 나라'라는 통상적인 수식어로 저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유럽 도시들과 비교해 정확히 무슨 매력이 있는지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기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선 차를 빌려 리스본과 포르투를 가로지르며 여기저기 다녀보는 '(작은) 포르투갈 일주'를 하기로 했다.




발길 닿는 대로 다니는 방랑객이 되고 싶다면, 선택은 렌터카


‘여기저기 발길 닿는 대로 다니며 경치 보기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고, 무엇보다 운전을 즐기는' 성향이라면, 렌터카 여행을 추천한다. 나 역시 이런 성향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상황이 허락한다면 가급적 차를 렌트하는 편이다. 지도에 미리 찍어 놓은 목적지가 아니라도, 길을 지나다 마주치는 풍경들과 이름 모를 도시의 낯섦, 기대하지 못했던 곳을 찾는 즐거움 같은 것들이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리스본 인 포르투 아웃으로 항공권을 끊은 뒤, 열흘간의 계획을 세우기 전 렌터카를 먼저 예약했다. 리스본에서 포르투까지는 약 300km, 쉬지 않고 간다면 차로 약 3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이지만 중간에 여러 소도시에서 머물러야 했기에 렌트 기간은 5일 정도로 잡았다.

▲ 이번 여행을 함께했던 자동차. 분명 더 작은 차종을 예약했는데... 운 좋게도 더 좋은 차로 업그레이드를 받았다!

렌터카를 예약할 때는 여러 웹사이트 중에서 가장 큰 예약 플랫폼인 렌털카스 닷컴(rentalcars.com)을 이용하고 있다. 허츠(Herz), 에이비스(Avis) 등 큰 렌터카 업체뿐 아니라 로컬 업체들까지 가격 비교가 가능하고, 보험이나 사고 등 현지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한국어로도 고객센터 전화 연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차량을 예약할 때는 사고위험이나 만일의 상황에서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가급적 풀 커버리지 보험을 포함해 미리 전액 결제하는 게 편하다. 가끔 국내에서 요금을 전부 결제하고 가더라도 현지에서 자꾸 추가 요금을 요청해와 혼란 속에 추가 결제를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이런 경우 예약업체 고객센터에 연락하면 빠르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즐거운 시골길 운전하기. 우리나라와 핸들 위치도 같고 전반적으로 운전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여느 나라나 대도시가 아닌 시골길은 여유롭고 평화로워 운전하기가 편하다. 특히 포르투갈은 그동안 렌터카 여행을 다녔던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주차료가 저렴한 편이다. 또한 관광지나 소도시에는 무료 주차장이 갖춰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유류비와 톨게이트비 외 주차비에는 많은 예산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다.


렌터카 여행 tip!

- 한국에서 챙겨갈 것 : 국제운전면허증 (+한국 면허증을 아주 가끔 요구하는 곳이 있기도 해서 만일을 위해 챙긴다), 차량용 휴대폰 충전 시거잭, 부피가 작은 휴대폰 거치대

- 차 안에 보통은 내비게이션이 포함되어 있지만, 요즘은 구글 맵이 더 괜찮을 때가 많다. 휴대폰 거치대만 챙긴다면 한국어로도 편하게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 고속도로를 이용할 시, 1차선은 꼭 추월할 때만 이용한다. 1차선이 추월차로인 건 만국 공통이지만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유럽은 추월차로를 정말 칼같이 지키므로 유의해야 한다.

- 대부분의 유럽 도로가 그렇듯 중간중간 있는 회전교차로/로터리(Round-about)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출구가 네다섯 개씩 있는 회전 교차로에서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음성에 집중할 것.

- 회전 교차로에서는 교차로 안에 이미 진입해 있는 차량에게 주행 우선권이 주어지므로 차량이 돌고 있는데 무리해서 진입하지 않도록 한다.

- 공영주차장에서는 내가 체류할 시간에 대한 요금을 선불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장내에 주차요금 결제기가 있는지 미리 확인한다. 보통은 무인 결제기에서 결제를 먼저 한 뒤 영수증을 차량 앞쪽에 잘 보이도록 놓아두면 된다.



여행자의 유용하고 재미있는 놀이터, 에어비앤비


렌터카 예약은 끝났으니, 숙소를 선택할 차례. 다른 유럽 도시에 비해 물가가 저렴하기로 알려진 나라인 만큼 숙박비도 부담스럽지 않고, 에어비앤비에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공간이 많아 숙소를 결정하는데 꽤나 오래 걸렸다. 내가 여행에서 선호하는 숙소는 교통, 위치가 좋은 곳이나 최신 시설을 갖춘 곳보다는 그 공간만의 특색이 있는 곳이다. 오래된 창고를 숙소로 개조했다거나, 뷰가 무척 좋거나 등등, 아무래도 나의 일상에서 쉽게 만나지 못하는 특별한 매력의 숙소가 좋기 때문에 예약에 주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고는 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거의 대부분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정했는데, 리스본-포르토의 숙소는 공교롭게도 두 군데 전부 로프트였다. 리스본의 숙소는 산타 카타리나(Santa Catarina) 언덕 근처에 위치해 있었는데, 창문을 통해 보이는 시내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여행을 다닐 때 왜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찾는지 묻는다면, 가장 첫째로 '내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단 며칠뿐이었지만 리스본의 에어비앤비에서도 그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게스트의 편의를 위해 갖춘 작은 배려 - 리스본 시내에 아주 늦게 도착했는데 도착시간에 맞추어 집 안에 온풍기를 틀어놓아 준다거나 하는 - 가 도착한 날 밤의 노곤함을 한결 녹여주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웰컴 와인을 발견한 순간, 장시간 비행의 피로 역시 사라져 버렸고 말이다. 나 역시 서울에서 작은 공간을 활용해 에어비앤비 호스트로 6년간 활동해오면서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는 점이 게스트에게 최대한 집에 머무르는 것 같은 안락함을 제공하는 것이다.

▲ 리스본의 에어비앤비. 오래된 집의 맨 위층 공간을 호스트가 직접 개조했다
▲ 호스트의 감각이 돋보였던 공간
▲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직접 차린 조식으로 시작한 하루가 기억에 남는다

포르투에서 선택한 숙소는, 하루 5만 원 정도로 저렴했지만 창문을 통해 보이는 뷰가 가히 값어치를 매기기 어려우리만큼 멋졌던 로프트였다. 호스트 기셀라(Gisela)는 할아버지가 쓰시던 낡은 가정집의 다락을 직접 개조해 본인의 파티 공간 혹은 에어비앤비 게스트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운전을 하고 저녁 8시경에야 포르투에 도착했는데도 호스트는 그때까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셀라는 집에 대한 간략한 설명에 더해 사진 찍기 좋은 스폿, 맛있는 로컬 레스토랑 등등 여행 팁까지 성심성의껏 이야기해 주었다. 여태껏 내가 만나보았던 호스트 중 가장 귀여운 수다쟁이 같았다. 무척이나 활달하고 친근한 성격의 그녀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니 이게 웬 걸! 그녀도 나처럼 포르투갈의 공연기획자로 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로의 공통점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언젠가 그녀가 아시아에 공연 탐방을 오게 되면 내가 운영하는 숙소에 초대하기로 약속했다! 기셀라를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되길 기대해본다.

▲ 작지만 도루 강의 멋진 뷰가 보여서 인기 숙소였던 Gisela의 로프트
▲ 침실의 미니 창문에서 보이는 경치
▲ 포르투에 머무는 내내,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창가에서 함께했다

여행을 준비할 때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알아보고 예약하는 시간이 어떤 이에게는 고된 노동의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여행지를 미리 탐색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으로 다가온다. 호스트들이 자신만의 감각으로 가꿔온 숙소와 그 스토리를 천천히 살펴보다 보면 여행지와 더욱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게 된 건 2013년 초 영국 런던에서 오래된 쌀 공장을 개조한 숙소를 예약했을 때부터다. 공장, 창고, 성당 등 집이 될 수 없을 것 같던 공간들이 집이 되고, 그 집에 담긴 이야기를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호스트와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에어비앤비를 알게 된 이후로는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숙소 탐색부터 먼저 해 본 뒤에 여행지를 정하는 주객전도(?)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어비앤비는 여행자들의 유용하고 재미있는 놀이터 같기도 하다. 




각양각색, 다양한 색을 지닌 도시들


리스본을 떠나며 운전을 해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서쪽의 휴양 도시 카스카이스(Cascais)이다. 바닷가 앞 숙소에서 묵으며 대서양의 청량감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유럽 대륙의 최서단인 호카곶(Cabo da Roca)과 이국적인 모습의 페나성이 있는 신트라(Sintra)를 지나서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 휴양도시 카스카이스
▲ 흐린 날씨 덕에 더욱 신비로움을 자아내던 신트라의 페나성(좌)/서쪽 땅끝 호카곶(우)
 ▲ 조금 돌아가더라도 해안 도로를 선택하면 이렇게나 멋진 경치가 펼쳐진다

포르투갈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아마 각각의 도시들이 가진 각각의 특색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신트라를 지나 오비두스(Óbidos), 파티마(Fatima), 코스타 노바(Costa Nova), 아베이루(Aveiro) 등, 포르투로 향하는 여정 중 둘러본 소도시들은 같은 나라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각각 다른 건축양식,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일정상 각 도시에서 길게는 이틀 짧게는 반나절이라는 시간밖에 보낼 수 없었던 것이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 작지만 골목골목이 활기찬 마을 오비두스(좌) / 가톨릭 3대 성지로 경건함이 가득했던 파티마(우)

오비두스(Óbidos)에서 파티마(Fatima)로 가는 중에 길을 잘못 들어 어느 성당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때마침 주말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어 차를 세웠다. 여행지에서 주말 마켓이나 개러지 세일 등 벼룩시장에 일부러 발품 팔아 찾아가곤 하는데, 오래되고 먼지 쌓인 물건들 속에서 나만의 아이템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격 때문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도 포기해야 할 때도 많지만 말이다. 겉으로 볼 때 평범한 물건이라도 모든 사물엔 그만의 숨결이 담겨 있다고 믿어 본다. 관광지에 있는 널리 알려진 벼룩시장보다, 렌터카를 타고 길을 방황하다 우연히 만난 동네 사람들만의 작은 플리마켓이 더 흥미로운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계획하지 않은 순간, 예정에 없었던 것들을 발견하는 그 예외성이 여행에 즐거움을 더해주기도 한다.

▲ 이름 모를 벼룩시장 모습
▲ 주인 할아버지의 자부심이 보였던 앤티크 물건들 (좌) / 각 1유로의 빈티지 잔 (우) 유리 제품이라 선뜻 구매하지 못했다

포르투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렀던 마을, 코스타 노바(Costa Nova) 역시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을 그림 같은 줄무늬 집들로 기억에 남는 곳이다. 겨울이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고 오픈한 가게들이 많지 않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말이다. 어부들이 자신의 집을 멀리서도 잘 알아볼 수 있게 일부러 집마다 다른 스트라이프를 칠했다고 한다. 주택가 뒤로는 운하도시 아베이루까지 이어지는 긴 석호를 따라 걸을 수 있도록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에 처음엔 바다인 줄 알았더니 엄연한 호수란다. 코스타 노바와 아베이루를 끝으로, 포르투에 도착하여 렌터카를 반납하며 짧지만 강렬했던 소도시 탐방 일정이 끝이 났다.

▲ 코스타 노바의 줄무늬 집
▲ 화장실마저도 저리 감각적일 수 있다니! (좌) / 아베이루 석호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로 (우)
▲ 코스타 노바 산책로 앞쪽에 있던 성당. 마치 영화 같았다
▲ 포르투갈의 베네치아인 운하도시 아베이루



작은 마을의 기적


여러 도시가 각각의 매력을 경쟁적으로(?) 뿜어내고 있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파티마를 지나 포르투로 올라가던 길에 중부 내륙 레이리아 지구 쪽에서 발견한 아주 작은 마을, 카살 드 상 시망(Casal de São Simåo) (우리말로 하면 ‘세인트 시몬의 마을’ 정도)이다. 돌집들로 이뤄진 길 하나 짜리 마을이었다. 지도상에는 숙소와 레스토랑, 카페 등이 있다고 되어 있었지만 마을 안에 인적이라곤 우리뿐이었다.

▲ 인적 드문 작은 마을 '세인트 시몬의 마을'

투박하게 돌을 쌓아 올려 지은 집들로 이뤄진 마을은 포르투갈의 다른 도시들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주었다

빠른 걸음으로 둘러보면 10분이면 다 볼만큼 작은 규모였지만 군데군데 잘 가꾸어 놓아 동화 속 마을 같기도 했다. 나중에 숙소로 돌아온 뒤 홈페이지(www.casaldesaosimao.com/)를 찾아보니, 이 곳은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한 뒤 폐허가 된 마을을 다시 예전 모습으로 복원시킨 주민들의 숨결이 담긴 곳이었다. 유령 마을이었던 이 곳을 40여 명의 주민이 직접 복구했다.

▲ 주민의 노력으로 되살아난 마을의 집들

현재는 16채 정도가 있는 작은 마을이다. 15세기에 지어진 예배당, 18세기에 지어진 돌집, 분수 등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고,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시설과 레스토랑 등도 위치해 있다. 2006년 협회를 설립하여 관광을 위한 홍보도 하며 주민 모두가 마을 재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홈페이지의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발견하지 못했을, 또 하나의 색다른 여정이었다.




한 템포 쉬며 재충전하기


자동차 여행의 장점 중 하나는 도시 간 이동하는 중간에 대형 마트에 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식료품이나 현지 기념품을 대도시 중심부에 있는 마트보다 여유롭게 쇼핑할 수 있다. 그래서 차를 렌트했을 때는 각 도시 외곽에 있는 대형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곤 한다. 우리나라에선 구하기 어려운 신기한 식재료를 구경하거나, 현지인 사이에 섞여 장을 보다 보면 굳이 관광지에 가지 않더라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된다.

▲ Intermarche슈퍼마켓 (좌) / 매번 새로운 종류의 와인을 사서 맛보는 재미에 들렸다 (우)

마트에서 와인과 고기 등 저녁거리를 장 본 후에 중부 내륙 쪽의 Ninho House라는 에어비앤비 숙소에 짐을 풀었다. 코임브라(Coimbra) 지구 내 Ferraria de São João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 이 집은 앞의 카살 드 상 시망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한국인 게스트는 처음 본다며 우리를 환영해 준 호스트 페드로(Pedro)는 이 곳도 카살 드 상 시망과 같이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많이들 이주했기 때문에 비어있는 집이 많다고 했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산속 마을. 하루 정도는 그동안의 피로를 풀고 좀 쉬어가기로 했다. 페드로의 집은 작은 복층형 코티지였지만 요리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알차게 갖춰져 있었다. 덕분에 리스본을 떠나온 이후 며칠 만에 주방이 있는 숙소에서 여유로운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 나무로 지어진 재미있는 구조의 집. 직접 구운 티본스테이크로 풍성한 저녁식사를 차렸다

오래된 집들이 많고 마트나 편의시설이 없는 마을이지만, 마을 주민들 간 커뮤니티는 많이 활성화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재미있었던 건 빵을 주문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동네에서 제빵을 하시는 분이 매일 아침 집집마다 직접 빵 배달을 해 준다고 한다. 정겨운 느낌도 들고 호기심도 생겨서 여러 가지 빵이 담긴 메뉴판을 보고 주머니에 원하는 품목을 적은 종이와, 동전을 함께 넣어서 문 앞에 걸어두기로 했다.

▲ 빵 메뉴와 동전을 넣어두는 주머니
▲ 문 앞에 빵 배달 완료. 열어보니 엄청난 크기의 빵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포르투갈 판 새벽 배송-빵 배달이 완료되어있었다. 빵이 담긴 봉지와 함께 주머니에는 거스름돈이 담겨있었다. 두둑한 한 묶음이 단돈 1유로도 되지 않는다니, 거스름돈을 받기가 새삼 미안해졌다. (너무 많은 양이라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까지, 일용할 양식으로 활용했다.) 빵에 정어리 빠데(pâté)를 곁들여 아침을 먹고, Pedro 아저씨네 부부가 정원에서 일하는 것도 테라스에서 지켜보다가,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당나귀와 대화(?)도 하다가, 대낮부터 그린 와인 한 병을 오픈해 버렸다.

▲ 푸짐한 빵 + 어제 먹다 남은 재료로 차린 아침, 그리고 여유로운 오전
▲ 숙소에 딸린 정원의 모습.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조용히 하루를 보냈다



완전히 낯선 곳에서 온전한 나를 마주하다


자동차 여행을 하면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어 좋다. 힘들거나 경치를 보고 싶을 땐 잠시 운전을 멈추고 차에서 내려 쉴 수 있고, 흐리거나 비가 올 땐 가려던 곳들의 순서를 쉽게 바꿀 수도 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마음속 서랍을 열어보면 유명 관광지에서의 기억도 기억이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운전하던 구불구불 초행길, 창문을 열고 달리다 맡은 올리브 열매의 희미한 향기 같은 것들이 이상하리만치 더 선명하게 기억된다. 완전히 낯선 길 위에서 오직 나의 감각에 의존하며 온전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순간을 다시 만나길 바라며, 오늘도 다음 목적지를 고민해 본다.

▲ 자동차를 주로 타느라 막상 많은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인 '트램 타기'를 못했다. 다시 포르투갈에 가게 된다면 꼭! 도전하리




에어비앤비 작가, 요나

극장에서 공연을 만든다. 나만의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좋아하는 집순이지만 여행을 더 사랑한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고 싶은 탓에 에어비앤비 호스트로도 활동하며 여행자들과 소통 중이다.

인스타그램 @yonas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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