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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Sep 13. 2021

괜찮은 알바

보이스피싱

 너무 순조로웠다. 구 과장이 말한 남자가 약속 장소에 나왔고 아무 말 없이 돈을 건넸다. 현금 1,400만 원이 든 누런 봉투였다. 그저 눈인사를 건넸을 뿐이고 그렇게 거리에서 돈을 건네받은 후 헤어졌다. 남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망설였고 그냥 눈인사만 나눴다. 

    

 남자와 헤어진 것을 어떻게 아는지 구 과장은 곧바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계좌번호 두 곳을 알려주며 그리로 받은 돈을 입금하라고 했다. 마치 인공위성으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하긴 일을 시작하기 전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김 팀장도 그렇고 김 팀장이 소개한 구 과장은 자신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며 혹시라도 딴생각하면 끝까지 찾아갈 것이라며 겁을 줬다. 

   

 돈을 입금한 후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이제 서울행 버스를 타기만 하면 모든 건 끝나는 일이었다. 마음이 졸렸지만 애써 그냥 알바를 할 뿐이라며 스스로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대합실로 들이닥쳐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았는데 실제 쿵 소리가 들렸던 거 같았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눈을 피해야 했지만, 경찰이 어디로 가는지를 봐야 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심장이 쿵쾅댔다.


      

 역시 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어쩐지 일이 너무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다지 가고 싶지도 않은 대학은 코로나 때문에 어차피 거의 갈 일이 없었고 달리 할 일도 없던 차였다. 그냥 노느니 괜찮은 알바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경찰 두 명이 저벅저벅 다가왔고 모든 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CCTV 사진을 보여주며 본인이 맞냐고 묻는 말에 도저히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불과 한 시간 전 돈을 받고 돌아서며 찍힌 사진이었다. 구 과장이 최대한 사무직으로 보이는 옷을 입으라고 했기 때문에 그나마 있는 옷 중에 검은색 정장을 선택했는데, 경찰이 보여주는 사진 속에 검은 정장과 흰 운동화를 신은 여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뺨이라도 맞을 것 같았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체포한다고 했다. 변호사에 대해서도 얘기했지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는 말이었다. 그렇게 수갑이 채워졌고 터미널의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그건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그냥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앞이 깜깜 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페북 메시지를 주고받던 김 팀장은 괜찮은 알바를 소개하겠다고 했다. 힘든 일도 아니고 돈을 받아 전달해주면 되는 일인데, 세금 때문이라고 했다. 은행 거래를 하면 세무서에서 세금 폭탄을 때리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돈을 받아 와야 한다고 했다. 하루 잠깐 다녀오는 일치 곤 꽤 많은 알바비도 주겠다고 했다.    

 

 그 뒤로 김 팀장과 구 과장은 텔레그램 메시지로만 연락이 됐다. 시외버스에서 내린 뒤, 구 과장이 텔레그램으로 말해주는 장소로 택시를 타고 갔고 곧이어 나올 거라던 그 남자가 진짜 나왔다. 현금 뭉치를 건네받았을 때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큰돈을 만져본 것은 처음이었다. 잠시 그 돈을 들고 도망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김 팀장과 구 과장이 진짜 모든 걸 알고 있을 것 같아 겁이 났다. 실제 그들이 말하는 걸로 봐서는 많은 걸 알고 있는 거 같았고 무슨 거대한 조직인 거 같았다. 그래서 사실 도망갈 배짱도 없었다.


     

 구 과장이 말해 준 계좌로 돈을 모두 이체했다. 물론 알바비로 주기로 했던 30만 원은 제외했다. 그건 구 과장이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었다. 경찰에게 모든 걸 말했지만, 알바비까지 모두 경찰이 가져갔다. 결국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스물한 살에 수갑을 차고 경찰서에 앉아 있는 현실밖에 없었다.  

    

 경찰은 김 팀장과 구 과장이 한국에 없을 거라고 했다. 사실 실제로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김 팀장과 처음 알바에 대해 얘기할 때, 혹시 일이 꼬이더라도 정 안되면 그냥 알바를 했을 뿐이라고 말하면 된다고 했지만 정작 그 얘기는 경찰에게 꺼내 보지도 못했다. 경찰도 김 팀장과 구 과장을 메시지로만 알고 만난 적이 없다는 걸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한심한 애 정도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냥 속아서 나쁜 일인 줄 모르고 알바를 했을 뿐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말할 기회가 없었다. 아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억울했다. 1,400만 원 중 고작 30만 원이 남았고 그나마도 경찰이 빼앗아 갔다. 하지만 그 어리숙해 보이던 남자가 1,400만 원 전부를 내놓으라고 따질 거 같았다. 남자는 구 과장이 은행 직원인 줄 알고 기존의 대출금을 갚아 실적을 쌓아야 한다고 해서 돈을 건넸던 것이라고 경찰이 말해줬다. 경찰은 김 팀장과 구 과장에 대해 더 묻지도 않았고 돈이 이체된 계좌만 신경 쓰는 것 같았다.  


 차라리 김 팀장과 구 과장이 실제 있는 사람이냐고 따져 묻기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나도 속았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지도 않았다. 경찰들의 무관심 때문에 갑자기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마치 모든 일을 기획한 건 구 과장도 김 팀장도 아닌 바로 나라고 있지도 않은 죄라도 뒤집어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라리 그러면 현실이 받아들여질 것 같았다.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 싶었는데 정작 나락으로 내민 놈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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