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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Oct 26. 2021

23년 차 직장인 A 씨 인터뷰

당신의 직업은 어떤가요?

올해 23년 차 직장인입니다. 무슨 회사냐고요? 

저희도 사람들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생산하고 판매까지 하고 있습니다.     


TV 광고요?

광고하기도 합니다. 자주 하는 건 아니고 특별한 때에만 가끔 하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물건이냐고요?

예, 어떤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누구나 꼭 필요한 필수품입니다.

     

가격이요?

음…. 사실 생산단가로 치자면 결코, 저렴하진 않습니다. 원료비도 만만치 않고요. 노동력도 상당히 필요합니다.     

 

소프트웨어냐고요?

예. 굳이 분류하자면 소프트웨어입니다.   

   

생산과 판매 과정이요?

음…. 설명하기가 쉽진 않은데….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지난 새벽, 그러니까 어제 새벽에 모르는 사람이 현관문을 열려고 시도했었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그때도 경찰이 출동했었지만, 다시 신고한다고 했다. 출동 전 지난 새벽에 처리했던 기록을 찾아보니까 이혼한 전남편이 찾아왔을까 싶어 불안했는데 같이 사는 아들에 의하면 아버지는 지금 사는 집 주소를 절대 알지 못한다고 하고 이웃집에서 실수했을 수도 있다고 해서 그냥 종결했던 것을 확인했다. 

     

 “불안해서 안 되겠어요, CCTV 확인이라도 해야겠어요.” 

    

  갑자기 불안해지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냐는 물음에 중년의 여자는 그냥 생각할수록 불안하다고 했다. 정말 이혼한 남편이 의심되냐고 묻자, 그건 아니라고 하면서도 말끝을 흐렸다. 예순 정도의 여자는 2년 전 이혼하고 성인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사건 당시 상황에 대해 다시 구체적으로 물어야 했다.     


“누군가 갑자기 번호키를 누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번호가 맞지 않자, 몇 번에 걸쳐 다시 눌렀고 계속 번호가 맞지 않았어요. 그래도 번호가 맞지 않으니까 잠시 멍하니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계단으로 사라졌어요.”


     

 행동의 패턴이 전형적인 취객의 형태였다. 우선 침입할 목적이라면 비밀번호를 미리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하고 그렇게 몇 번에 걸쳐 요란하게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번호가 맞지 않는 것을 인지하고 문 앞에서 멍하니 있었을 가능성이 적다. 엘리베이터에서 층수를 잘못 내려 자기 집으로 착각한 취객이 번호가 맞지 않자, 이내 착각을 깨닫고 얼른 자기 층을 찾아갔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런가요? 생각해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찬찬히 설명하자 다행히 금방 수긍하기 시작했다. 처음 봤을 때 보였던 얼굴의 불안도 다소 겉이 는 것 같았다. 사실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아니고 지난 새벽에도 알았던 것이지만, 하루가 지나는 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일 뿐이다. 함께 사는 아들이 아버지는 아니라고 말했던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고 겸연쩍어하실 필요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네요. 그 순간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혼자 집에서 생각하다 보니까 불안이 커졌던 것 같아요.”   

  

 아파트에선 가끔 있는 해프닝이기도 하고 사실은 우리도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있다고 살짝 고백도 했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불안이라며 공감도 표시도 잊지 않았다.  

   

“그런가요?”     


 여자는 피식 웃음을 보였다. 그렇지만, 원하신다면 사건을 접수하고 정식으로 CCTV를 확인할 수 있음을 안내했다.    

  

“아니에요, 그럴 필요까진 없는 거 같아요. 바쁘신 분들을 이런 일로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신경 쓰지 마시라고, 고객께서 괜찮으시다면 저희는 어떻든 좋을 뿐이라고 인사했다. 그렇게 오늘도 상품 1kg을 팔고 지구대로 복귀했다. 저울을 들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경험상 알 수 있었다. 오늘 판매량은 더도 덜도 아닌 딱 1kg이었다는 것을.     




     

순정품이 확실한가요?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솔직히 아주 가끔 하자 있는 물건이 나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품질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만에 하나 하자가 발견되면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요?

음…. 맞는 말씀이긴 한데, 심각하지 않으면 오히려 침소봉대하지 않는 것이 고객에게 더 좋습니다.

      

판매자가 효율을 높이려고 무리해서 고객에게 드려야 할 양을 줄일 위험도 없지 않아 보이는데요?

그래서 다른 회사에 비해 결과에 대해 더 높은 수준의 책임이 요구되는 직업입니다. 도덕적 비난도 피할 수 없고요. 사실 무엇보다도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인데 20년 정도 경력이면 순정 보증은 확실한 편입니다.  

   

침소봉대하지 않는 것이 고객에게 더 좋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예를 들어 고객의 필요보다 더 많은 양의 물건이 나가게 되면 오히려 고객의 만족도가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필요 이상의 양을 구매하시면 오히려 불편하기도 하고 심지어 독이 될 수도 있고요.   

  

불편하거나 독이 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저희가 파는 물건은 안심입니다. 고객에게 딱 필요한 만큼의 안심을 드리려 노력합니다. 필요 이상의 양을 드리면 오히려 남는 양이 불안으로 바뀌기도 하거든요.   

  

예? 안심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불안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고객들에게 안심을 팔고 있습니다.  

   

가격은 비싼 편인가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각자 생업에 종사하시고 불안이 찾아오면 저희가 물건을 드리고 값은 여러분들이 내시는 세금으로 정산합니다.      


아까 원재료가 비싸고 노동력도 많이 든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원재료는 지식재산이고 노동은 거의 감정노동입니다.     


잘 팔리는 편인가요?

예. 아무리 세상이 풍족해도 저희 상품의 수요는 그치지 않으리라 봅니다. 사실 먹고사는 문제처럼 기본적인 욕망이 해결된 뒤에야 불안이란 놈이 수면 위로 그 실체를 드러내는 법이거든요.   

  

전망이 아주 밝군요?

예, 하지만 수익으로 평가하기 힘든 점이 있습니다.   

   

입사 경쟁이 치열하겠군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업무강도... 아니 물건 팔기가 쉽지 않거든요. 날이 갈수록 다양한 형태의 불안이 등장해서 말이죠.      


사원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직업인으로서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공익 기여자로서의 사명 같은 게 필요한데 그 둘을 조화롭게 부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특히 후자가 말입니다.  

   

그렇겠군요. 바쁘신데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필요하면 다시 협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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