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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풍 Oct 30. 2022

소설 환취 (3화/25화)

3. 첫날밤

3. 첫날밤      


 본래 쫓아내야 하는 게 저의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전 그런 일을 하라고 고용된 사람이었으니까요. 사실 길고양이가 담을 넘어 회사 안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하라고 지시를 따로 받은 적은 없었지만, 그저 당연한 거였죠. 비록 생명은 없어도 차량 외관이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에 다치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외관에 작은 스크래치만 나더라도, 사고가 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미리 막아야 했죠. 하지만 그날 고양이를 보자마자 머리에 떠오른 생각들이, 제 본연의 업무나 다름없는 일을 뒷전에 두게 만들어버렸어요. '저러다 얼어 죽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이미 머릿속의 절반을 차지해버린 상태였거든요.


 한참을 서로 쳐다만 보고 있다가 제가 먼저 고양이에게 말을 건네보기로 했어요. 처음 떠 올린 건 '나비야!'였지만 저랑 어울리지 않게 너무 낭만적인 것 같아서 관두었어요. 그런 말을 고양이에게 해본 적도 없거니와 조금 낯간지러운 느낌도 들었거든요. 그래서 잠깐 고민을 하다가 처음으로 만나게 된, 저와 다른 존재에게 건넬 첫인사를 골랐죠.     


"안녕?"

    

 무난한 첫인사였어요. 아마 전 외계인을 처음 만나도 같은 말을 했을 거예요. 또 둘 사이에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다가 '안녕?'이란 말에 대한 고양이의 반응이 돌아오더군요. 힘없이 내뱉는 "냐… 아옹"이었죠. 당연히 고양이의 대답이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서로 우호적인 인사를 나누었다고 치고 밑바닥에서 나오게 하기로 했어요.


 먼저 손전등을 비추면서 다른 손으로는 아기들이 하는 죔죔 손짓을 해봤어요. 아기 고양이니까 죔죔  손짓을 보여주면, 뭔가 적의가 없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입으로는 반응을 보인 '안녕?'이란 말을 연발하면서요. 그런데 고양이가 저의 이 혼자만의 쇼를 한참 보고만 있더군요. 부끄럽게요. 아마 자신을 보고 손짓하는 인간에게 가까이 가야 할지 말 지를 갈등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조금씩 몸을 움직이면서 기어 나오는데, 꾸물꾸물 움직이는 솜뭉치 같은 게 가까이 다가올수록 제 심장박동이 커지더라고요. 저와 고양이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머리만 잡으면, 머리만 낚아채면 된다.'라고 속으로 되뇌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사정권에 녀석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아주 천천히 나오더군요. 마치 산모의 출산을 기다리는 보호자의 심정 같았어요. 물론 전 그런 경험이 없었지만요. 바깥으로 나올 듯 말 듯하던 녀석의 머리가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나왔을 때, 죔죔 손짓을 하던 손으로 빠르게 머리를 잡아챘어요. 그러자 다시 뒤로 가려고 발버둥을 치더군요. 벌떡벌떡 움직이는 생명체의 공포가 담긴 몸부림이 순식간에 부담감으로 다가왔어요. '그냥 놓아버릴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가 고개를 빠르게 절레절레 흔들어 다시 정신을 차렸어요. 그런 다음 손에 힘을 더 주고 몸통까지 바깥으로 빼낸 뒤, 바로 손전등을 쥐고 있던 다른 손으로 등을 꽉 눌렀어요. 그러자 몇 번의 몸부림을 더 치다가 멈추더군요. 제 두 손안에 거의 다 들어올 정도로 작았어요. 사람으로 치면 겨드랑이 부위에 양손을 넣고 잡아들었더니, 인형에 박혀있는 듯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하더군요. 순간 손으로 전달되는 고양이의 체온이 느껴졌을 때, 아주 잠깐 저의 모든 게 정지된 듯했어요. 그런데 고양이도 잠깐 그랬던 것 같아요. 정말 잠깐이요.

      

 고양이를 그대로 경비실 안으로 들고 들어가 바닥에 내려놓았어요. 제 손아귀를 벗어나자마자 재빠르게 구석으로 가서, 몸을 한껏 웅크리고 경계하더군요. 저도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그리고 앉아서 찬찬히 녀석의 생김새를 뜯어봤어요. 고양이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일반적인 고양이들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얼굴이었어요. 이쁘다고 해야 할지, 잘 생겼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더라고요. 성별도 구분이 안 갔거든요. 그저 작은 인형이라고 가정하면 이쁘고 귀여운 모습에 가까웠어요. 고양이의 암수를 구별해서 생김새를 표현하는 말을 다르게 쓰는지 아니면 상관없는지도 순간 궁금해지더군요. 전 그만큼 고양이란 생명체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거든요.


 한참 녀석의 관상을 보다가 따뜻한 물을 먹여보기로 했어요. 바깥에 있는 동안 추웠을 테니까요. 냉온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종이컵에 받아 코앞에 살며시 두었는데 먹지는 않더라고요. 그러는 사이 정해진 순찰 시간이 돼서 잠시 자리를 비워야 했어요. 제가 순찰을 하러 문을 열고 나갈 때, 녀석이 튀어 나가지 못하게 재빠르게 경비실 문을 열고 제 몸만  빠져나온 다음 순찰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고양이가 경비실 안에서 탈출하려고 난동이라도 부릴까 봐 불안해지더군요. 그래서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순찰을 했어요. 급히 순찰을 마치고 경비실로 돌아와 보니, 여전히 같은 자리에 꼼짝 않고 있더군요. '얌전한 고양이네….'라고 생각했어요. 종이컵에 담겨있던 물도 제가 없는 사이 절반 정도는 마셨고요.       


 고양이와 제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웃겼어요. 처음이었거든요. 서로 대화도 하지 않고 그렇게 둘 다 가만히 경비실에 있었어요. 제가 낯가림이 심하기도 하지만 반려동물과 같이 살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고양이와 같이 있는 상황이 어색했어요. 하지만 어색함 속에 왠지 기분은 조금 좋더군요. 고양이를 볼 때마다 조금씩 웃음도 나왔고요.

      

 굉장히 추웠던 경비실도 혼자 있을 때보다 조금 따뜻해진 느낌도 들었어요. 고양이도 실내에 있는 동안 기력을 회복해 가는 듯 보였고요. 아침이 다가오면서 일찍 출근하는 직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어요. 가장 먼저 출근하는 직원에게 밝게 인사를 한 다음, 야간에 발생한 특이사항이나 전달사항이 있으면 이야기한 뒤에 퇴근을 했거든요.


 직원의 눈에 띄기 전에 고양이를 들고 나와 땅바닥에 내려놓았어요. 그랬더니 쏜살같이 경비실 밑바닥으로 기어 들어가더군요. 다시 못 보게 되면 그대로 작별이었고, 또 보게 된다면 다음날 밤이나 가능했어요. 전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 야간 근무였거든요. 일상이 쳇바퀴 돌 듯이 언제나 똑같다가 색다른 경험을 해 본 날이었죠. 고양이와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 첫날밤이었고요. 퇴근하면서도 그 고양이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어요. 그렇게 웃음을 머금은 채 여관을 향해 걸어갔어요. 전 여관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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