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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풍 Oct 30. 2022

소설 환취 (4화/25화)

4. 역주행 길

4. 역주행 길     


 경비원 일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회사 근처에 적당한 고시원을 찾아봤어요. 지갑도 넉넉지 않았지만 언제 일자리를 잃고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할지 몰라서요. 불안정한 일자리엔, 언제든 쉽게 떠날 수 있는 곳이 편했거든요. 이삿짐은 언제나 간단했어요. 일부는 택배로 부치고 나머지 짐은 직접 싸 들고 가면 끝이었죠. 짐은 항상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살았어요.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면, 지역을 따지지 않고 구직을 하는 게 유리해서 나중에 먼 곳으로 갈 것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했죠.


 그런데 경비원으로 일을 하게 된 회사 근처에서는 제가 지낼만한 고시원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원룸이나 월세가 몇 군데 있었지만 보증금을 안 받는 곳이 없었고요. '어떡하지….' 하며 회사 인근 지역을 배회하면서 길에 혹시나 붙어있을지 모르는 무보증 월세 전단지를 찾아다녔죠. 그러다 한 여관 앞을 지나다가 출입구에 붙어있는 "장기방 환영"이란 문구를 보게 되었어요. 한번 물어나 보자 하고 사장님께 여쭤보니 보증금도, 관리비도 안 들고 방세가 이전에 지냈던 고시원들과 비슷했어요. 비록 이전 고시원의 큰 장점이었던 쌀밥과 김치 제공은 없었지만, 방이 훨씬 넓고 욕실이 있다는 점은 고시원보다 좋았어요. 물론 비싼 고시원엔 방에 욕실이 따로 있는 곳이 많았어요. 하지만 전 주로 욕실이나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곳에서 살았거든요. 방세가 쌌으니까요.


 노후된 여관이라 그런지 단순 투숙객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장기방 거주자였어요. 여관 사장님이 방을 보여주시면서 장기방엔 노인분들이나 일용직 노동자분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주로 지낸다고 설명해 주셨어요. 그 설명엔 제 직업을 물어보시는 의미도 담겨있는 것 같아, 전 인근 회사에서 야간 경비원으로 일할 예정이라고 말씀드렸죠. 여관 사장님이 "가깝고, 참 잘 됐네."라고 하시더군요. 장기방 거주자 대부분 비슷비슷하게 돈 없는 처지라, 서로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 필요도 없을 게 뻔했어요. 알아봤자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두드리면서 라면 하나만 빌려달라고 할지도 모르니까요. 여관의 시설이나 생활환경을 보니, 여관 사장님에게만 잘 보이면 지내는데 문제 될 게 없어 보였어요. 그렇게 해서 여관을 숙소로 정하게 되었죠.

     

 여관에서 회사까지는 출근할 때 운동 삼아 걷기에도 좋은 거리였어요. 일자리도, 숙소도 심지어 걷는 길까지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출퇴근할 때 걷게 되는 인도를 "역주행 길"이라는 저만의 이름도 붙였고요. 제가 출근할 때 직원들은 퇴근을 하고, 제가 퇴근할 때 직원들은 출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제가 비번인 날 출근하는 다른 경비원분도 왠지 비슷한 이름을 그 길에 지어주었을 것 같더군요. 물론 저와 이유는 달랐을지 모르지만요. 그 길은 회사와 공장들이 밀집된 지역의 도로를 따라 쭉 뻗어있어서, 출퇴근할 때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직원들과 마주치곤 했어요. 제가 직원들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처음엔 눈치가 보여서 직원이 근처에 보이면 담배 한 대도 피우기 어렵더군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생활에도 적응이 된 다음엔, 그 길을 걸으며 담배를 한 대씩 피우곤 했어요. 물론 직원이 안 보이거나 멀리 있을 때만요. 한적한 시골길과 도심의 도로가 섞여 있는 듯한 분위기가 그 길엔 있었어요.         


 저에겐 참 아이러니 한 길이기도 했어요. 몸도, 마음도 긴 세월을 헤매다가 그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마치 제 자리를 찾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무엇보다 출근해서도 혼자이고, 퇴근해서도 혼자라 사람들과 부딪칠 일이 적어서 저에게 딱 맞았던 것 같아요. 전 고양이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세상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어릴 적에 도둑고양이들을 겪으면서 고양이를 싫어하게 된 것처럼, 성인이 되어선 도둑 같은 사람들을 겪으며 살아오다 세상 사람들이 싫어진 것뿐이었어요. 밀린 급여를 떼인 적도 있었고,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크게 당한 적도 있었죠. 그 돈만 그대로 있었다면 제 삶도 덜 피곤했을 텐데요. 그 기억이 떠오르면 순식간에 가슴에 돌덩어리가 들어찬 느낌이 들곤 해요. 그런데 그런 사건들로 인해 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것도 큰 상처로 남았어요. 제가 돈을 떼먹거나, 사기를 친 사람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었어요. 사람은 평등하고,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그건 '갑'과 '을'의 관계에서는 예외더라고요. '을'은 부당한 것도 참을 줄 알아야 하고, ''의 눈치도 잘 살펴야 했죠. 먹고살려면요.


 그렇게 반복해서 사람들에게 크고 작게 당하며 살아오다 결국에는 혼자인 삶을 택했어요. 철저히 공적이면서 사무적인 최소한의 교류만 하면서요. 심지어 말투까지 사교적인 표현을 자제하면서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말했어요. 사람과 친해지지 않으려고요. 물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자연스레 외로움이란 감정이 쌓이긴 했지만, 살아남는데 무게를 둔 인생에 외로움 같은 건 그냥 덮어둘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렇게 살아야 했어요. 가족도, 만나는 사람도 없이 사는 게 내 삶이라고 생각하면서요.


 하지만 혼자 밥 먹을  가끔 허전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티브이를 켜놓고 먹으면 좀 나았지만 그러다가도 한숨이 나올 정도로 허전할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땐 돼지 인형을 앞에 두고 먹곤 했어요. 인형 뽑기 가게에서 운 좋게 한 번에 뽑은 인형을 줄 사람도 없고 버리기도 아까워서 데리고 있었죠. 분홍색 인형이라 "분홍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고요. 아마 누가 봤다면 정신이 어떻게 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분홍이라도 앞에 두고 밥을 먹으면 좀 낫더라고요.


 그리고 믿기 어려운 신기한 일이 가끔 생기기도 했어요. 정말 대화를 한 적도 있거든요. 짧은 한마디 정도였지만요. 제가 떡볶이를 사 가지고 와서 먹기 전에 "오늘 떡볶이 맛있겠네."라고 말했을 때 분홍이가 '맛있게 먹어.'라고 속삭이듯 가느다란 소리로 말하는 게 들린 적도 있었어요. 그럴 때 분홍이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활짝 웃고 있는 것 같았고요. 물론 다른 층이나 옆방에서 넘어온 소리일 가능성도 있었지만요. 저야 항상 이웃한 방에서 넘어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공간에서 살았으니까요. 어쩌면 제 목소리를 듣고 짓궂은 옆방 사람이 장난을 친 것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죠. 어차피 분홍이가 말을 해주었든 옆방 사람의 장난이었든, 결국 혼자였던 건 변함없는 사실이긴 했어요. 혼자 일하고, 혼자 먹고, 혼자 자고의 반복이었죠.


 그래서 그다음, 또 그다음 출근했을 때, 그 고양이가 나타나 줘서 반가웠어요. 제가 경비실에 있으면 바닥에서 울기만 하고 바로 나오지 않아, 한동안 매번 바닥에 엎드려 죔죔 하는 손짓을 나올 때까지 해야만 했죠. 바깥으로 나오게 한 다음엔, 똑같이 경비실로 들고 들어가 같이 조용히 밤을 보냈고요.       


 쉬는 날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반려묘 코너를 기웃거렸어요. 경비실 밑바닥에서 좀 더 쉽게 고양이를 바깥으로 유인해 보려고, 처음으로 먹을 걸 줘보기로 했거든요. 뭘 사야 될지도 몰라서 가장 작아 보이는 봉지를 하나 골랐어요. 고양이들이 먹는 간식이었는데, 작은 알갱이 형태의 과자로 사람이 먹는 과자보다 조금 비싸더라고요. 그래도 막상 한 봉지를 사고 나서는, 고양이가 간식을 잘 먹을지 기대하면서 출근하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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