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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복 Oct 30. 2022

소설 환취 (5화/25화)

5. 어떤 불안

5. 어떤 불안


 고양이가 주로 나타나는 시간대에 과자 몇 알을 종이 위에 뿌려놓고 경비실 밑바닥두어봤어요. 과자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겨서 그랬는지 아무런 손짓도,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바깥으로 나오더라고요. 고양이가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는 걸 직접 확인하게 된 날이었죠. 다음엔 손바닥 위에 몇 알을 올려놓고 기다려봤어요. 역시 냉큼 나와서 제 손바닥을 핥으면서 먹더라고요. 손을 혹시 물거나 할퀴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과자만 능숙하게 골라 먹더군요. 그렇게 간식을 계속 사다 먹이다 보니, 어느새 경계를 풀고 제가 경비실을 나올 때면 고양이도 따라 바닥에서 얼굴을 내밀며 나오더라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간식을 줄 때마다 항상 게 눈 감추듯 빠르게 먹어치워서 양이 부족한 것 같았어요. 아무래도 배를 든든히 채워줘야겠다 싶어서 고양이용 건식 사료를 사다 먹이기 시작했어요. 주로 새벽에 제가 야식을 먹을 때 고양이에게도 사료를 주고 같이 식사를 했어요. 그렇게 건식 사료를 계속 주다가, 어느 날 야식을 준비하던 중에 제가 컵라면과 같이 먹을 참치 통조림을 뜯자, 갑자기 미어캣처럼 두 발로 일어서서 코를 벌름거리며 '킁킁' 냄새를 맡는 녀석을 보게 되었어요. 그리곤 무슨 주술에 걸린 고양이 마냥 참치 통조림을 쳐다보며 두발로 다가오더니, 앞발을 뻗어 통조림을 잡으려고 하더군요. 그래서 참치 살덩이 큰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여봤어요. 정말 '냠냠' 소리까지 내면서 맛있게 먹더군요. 그다음부턴 통조림으로 나온 습식사료를 사다 먹이기 시작했어요. 물론 참치 맛으로요. 돈은 더 들었지만, 정말 잘한 선택이었어요.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자식이 먹는 모습을 보면, 내 배가 부르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식사를 마친 다음, 고양이가 자기 몸을 핥으면서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 식으로 먹이를 주면서 고양이와 더욱 가까워지더니, 어느덧 제가 경비실을 나가면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나와 구두나 바짓가랑이에 얼굴과 몸을 비비며 꼬리를 바르르 떠는 게 인사가 된 지, 반년이 금세 지나가버리더군요. 그사이 이름을 지어주었어요. "땅콩"이라고요. 맞아요. 저에겐 "땅콩"이라는 단어가 그 고양이를 의미해요. 어느 날, 땅에서 '콩!'하고 나타났다는 의미로 "땅콩"이라고 부르기로 했죠. 제가 땅콩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제 성을 딴 사람들이 많이 쓰는 이름을 붙여줄 걸 하고 후회되는 부분이기도 해요. "문철수", "문동호", "문영수" 등으로요. 그래도 "땅콩아!" 하고 부르면 자신을 부르는 줄 잘 알아들었어요. 밤에 저와 땅콩이 둘만 있으면 같이 순찰도 돌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대화도 자주 했어요. 외로움이 가슴 어딘가에 낸 구멍을 땅콩이가 메워주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땅콩이와 만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한 가지 불안이 갈수록 커져갔어요. 제가 쉬는 날 땅콩이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모른다는 점이었죠. 그래서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서, 한 번은 직원 사무실로 들어가 최 과장님 컴퓨터로 CCTV에 녹화된 화면을 확인해 보기로 했어요. 경비실이 워낙 작은 공간인 데다 야간에만 쓰이는 곳이라, 컴퓨터나 CCTV 전용 모니터 같은 건 없었거든요. 그리고 녹화된 화면은 회사 내 용역 직원들의 관리자 겸 보안 담당자이신, 최 과장님 컴퓨터로만 볼 수 있었어요. 야간에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컴퓨터로 CCTV 화면을 확인할 수 있도록 최 과장님이 사용법을 저에게 알려주셨었죠. 저와 개인적으로 관련이 있는 일이긴 했지만, 업무상 필요한 경우가 맞기도 했어요. 회사 안을 돌아다니는 고양이의 동태를 살피는 것도 어찌 보면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거든요.      


 녹화된 화면을 통해 제가 비번인 날 근무하는 다른 경비원분의 모습을 보면서 땅콩이가 혹시 경비실에 나타나는지, 회사 어딘가에서 숨어 지내는지 찾아보았지만, 작은 화면 어디에서도 땅콩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경비실을 오래 비워둘 수 없어서 빠르게 화면을 돌려보느라, 제가 미쳐 못 본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요. 또 건물 사이라던가 차량 밑쪽은 CCTV 사각지대라서 그런 곳에 숨었다면 안 찍혔을 수도 있었고요. 막상 눈으로 확인을 못하니 더 찜찜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래서 다른 경비원분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로 했어요. 왜냐하면 다른 경비원분은 정말 꼼꼼한 성격에, 근무도 철저하게 하시는 것 같아 불안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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