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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풍 Oct 30. 2022

소설 환취 (2화/25화)

2. 도둑고양이

2. 도둑고양이

  

  예전에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한 사람과 깊은 대화의 자리를 가진 적이 있어요. 서로 마주한 상태에서, 그 고양이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뜯어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죠. 유쾌한 자리도 아니었는데, 대화 말미에 제가 냄새를 잘 맡는 코에 대해 자랑하듯 말했더니, 상대방이 웃더군요. 정확히는 절 잠시 쳐다보고 고개를 크게 한번 끄덕인 다음, 빙그레 웃었어요. 그 모습이 참 기억에 남더라고요. 제 말이 재미있게 들렸던 모양이에요. 고양이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던 그날은, 별들이 참 아름답게 하늘에 걸려 있던 밤이었어요. 전 그런 밤하늘을 그날 대화의 주제였던 고양이와 같이 보곤 했고요. 신기한 일이었어요. 제 팔자에 고양이랑 같이 밤하늘을 보는 시간이 있을 줄을 몰랐거든요. 전 고양이를 매우 싫어했으니까요. 특히 길고양이들을요. 하지만 사람의 일은 참 알 수가 없는 것인가 봐요. 지금은 제 곁에 고양이가 항상 있으니까요.


 제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길고양이들을 "도둑고양이"라고 불렀어요. 직관적으로 명칭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해요. 정말 도둑질로 연명하던 고양이들이 많았으니까요. 지붕을 타고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다 집안까지 들어와 반찬거리들을 훔쳐 가곤 했어요. 한 달에 한두 번은 이런 고양이들의 도둑질에 저희 집은 물론, 많은 이웃집들이 당하곤 했죠. 전 고양이들의 도둑질도 참 싫었지만 그보다 더 싫어했던 게 하나 있었어요. 밤이 되면 낡은 집 천장에 들어와 뛰어다니는 고양이의 발소리였죠. 요즘 시대에 아파트 층간 소음을 떠올리시면 해되실 거예요. 고양이가 쥐를 쫓아 추격전이라도 벌이는 날엔, 그날 잠은 다 잔 셈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것도 이젠 다 옛날이죠. 요즘은 도둑고양이들이 지붕보단 길에 많이 돌아다니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호칭이 어느샌가 "길고양이"로 둔갑했나 봐요. 하지만 제가 인식하는 길고양이의 본질은 여전히 도둑고양이였어요.


 길고양이와는 좋은 인연이 아니었던 건지, 회사 안에 들어온 길고양이를 내쫓는 일도 살다 보니 하게 되더라고요. 야간 경비원을 했거든요. 여러 직업을 거치며 살아오다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땐,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았어요. 그래도 젊을 적엔 벽시계 공장에서 오래 일했는데, 수입품 저가 벽시계에 밀리는 세상이 오면서 공장도 망하고, 직원들도 망해버렸죠. 그때가 그나마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직이었어요. 물론 그 당시엔 "비정규직"이란 말도 안 쓰던 시절이었지만요. 그 뒤로는 세월 따라 흘러가면서 계약직과 용역 일자리를 전전했어요. 그러다 경비원 경력도 없는 늦은 나이에 운 좋게, 용역회사를 통해 회사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게 되었죠. 그곳은 큰 기업에서 운영하는 자동차 서비스 센터였어요.


 회사는 본관, 별관, 차량 정비고 이렇게 건물 세 동과 큰 주차장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제가 일해 본 곳 중 가장 건물이 깨끗하고 주변 환경이 깔끔히 잘 정돈되어 있던 곳이었어요. 주변에도 큰 회사들과 공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제가 경비원으로 일하게 된 회사 양옆으로는 커다란 사료공장과 물류 회사가 각각 자리 잡고 있었어요.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용역 경비원 신분이었지만, 그래도 규모 있는 회사에서 일하게 되니 기분은 좋더군요. 제 능력으로는 만져보기도 힘든 값비싼 고급 차량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던 것도 좋았고요. 직원들도, 방문하는 고객들도 대부분 사람을 대하는 매너가 좋아서 사람과의 지속적인 마찰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었어요. 물론 간혹 차량에 알 수 없는 고장이 생겨서 화를 내는 고객이 있긴 했어요. 당연히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은 상태에서 야간에 직원은 안 보이니, 경비원에게 막말을 하는 거였죠. 그래도 전 그저 '돈이 화를 내나 보다….'하고 넘기곤 했어요. 먹고사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요. 그리고 경비원은 어쩔 수 없이 때때로 욕먹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기도 했고요.


 정해진 업무들은 많지 않았어요. 야간에 고객의 전화가 오면 다음날 직원에게 전달할 만한 중요한 내용을 받아 적었어요. 주로 예약 날짜 변경이나, 취소 같은 것들이었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업무로 사고나 고장이 난 차량이 들어오면 주차할 곳을 정해서 안내해 주는 게 있었어요. 야간에 들어온 차량들은 다음날부터 대부분 점검이나 수리를 받게 되기 때문에, 밤에 몇 대라도 받으면 회사 입장에서는 이익이었죠. 그래서 야간 경비원을 쓰게 된 것 같더라고요. 누군가는 밤에 들어오는 차량을 안내해 줘야 했으니까요. 물론 깊은 새벽에는 전화도 거의 오지 않고 들어오는 차량도 없어서 정해진 시간에 순찰을 한 다음, 경비실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게 일이었어요. 


 대부분의 시간들이 고요했어요. 밤에는 인근 회사와 공장들도 문을 닫아서 오가는 차도 사람도 없었거든요. 다만, 옆에 있는 물류 회사에서 화물차들이 우르르 들어갔다가 다시 줄지어 나가는 몇 시간을 빼고는요. 항상 평일 새벽에 화물을 싣고 전국 어딘가로 출발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딱, 그때만 화물차들이 회사 앞을 지나가면서 약간의 소음공해를 만들었죠. 하지만 큰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서 근무환경에 대해서는 만족했어요.


 물론 처음 하는 경비일에 실수도 많이 하고 일에 서툴러서 진땀을 몇 번 빼기도 했지만, 한 달을 넘기면서부터는 많이 적응이 되더군요. 일을 시작한 초기엔 전화벨이 울리면 긴장한 채로 전화를 받는 바람에 말도 더듬다가, 나중엔 어떻게 하면 좀 더 친절하게 전화응대를 할까 고민할 정도였어요. 밤에 들어오는 차량의 주차안내도 처음보다 매끄럽게 할 수 있게 되었고요. 


 그렇게 적응해나가면서 야간 경비원으로 일 한 지 3개월쯤 지났을 때였어요. 크리스마스와 신정의 사이, 엄청나게 추웠던 날, 야간 근무 중이었죠. 경비실이 건물 형태로 지어진 게 아니라 백화점이나 마트 주차장 입구에 있는 안내 부스같이 생긴 작고 부실한 공간이라, 난방기를 틀어도 냉장고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어요. 추위와의 싸움을 끝내려면 그저 퇴근하는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날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발까지 시리더군요. 추위와 싸우느라 체온과 체력이 떨어져서 그랬는지, 평소답지 않게 전 그만 앉은 채로 깜빡 잠이 들고 말았어요. 그러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귓가를 간지럽히는 어떤 소리에 몸을 움찔하며 잠에서 깨어났고요. 처음엔 누가 온 줄 알고 경비실 바깥은 급히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안 보이더군요. 그런데 그때, 경비실 바닥 너머에서 아주 가느다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냐아 옹… 냐아 옹"     


 회사 바로 옆 사료공장의 넓은 부지에 숨을 곳이 많았는지 길고양이들이 꽤 살고 있었어요. 여러 마리의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가끔 제가 일하는 곳으로 담을 넘어오는 고양이들의 얼굴이 자주 바뀌었거든요. 그날도 그중에 한 마리가 넘어온 것이라고 여겼어요.     


 보통 그런 고양이들을 보면 발을 크게 구르거나, 박수를 힘껏 치거나, "워이!" 하는 소리를 내면서 쫓아냈어요. 그런데 그날은 추운 바깥을 나가기 싫어서 그냥 앉은 채로 발을 한번 '쿵!'소리가 나도록 굴리고 말았죠. 바로 조용해지더군요. 어디론가 도망갔겠거니 하고 신경을 꺼버렸어요. 그런데 잠시 뒤, 아까보다 소리로 서럽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야아… 아옹!"


 시끄럽더군요. 정말 저한테 '제발 나와 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바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경비실 밑면, 땅에서 살짝 뜬 공간고양이가 들어가 있을 게 뻔했죠. 전 서리가 낀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손전등을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비춰봤어요. 역시나 태어난 지 몇 달 얼마 안 돼 보이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그곳에 있더군요. 그런데 그 고양이를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그 생각들을 따라 고양이를 어찌할지 결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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