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자서전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
아이폰으로 읽는 전자책으로 무려 2,800여 페이지,
지금 막 2,100페이지를 넘어섰다.
그는 지금 애플에 복귀해 아이팟을 성공시킨 후,
픽사를 디즈니에 인수 합병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직 그의 진짜 전성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나 놀랍게도,
내가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자신의 자서전을 저자인 월터 아이작슨에게 부탁하는 장면이다.
몇 번의 거절을 당하고도 잡스는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해줄 것을 부탁한다.
결국 승낙의 조건으로 월터가 말한다.
결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 것을,
자서전 완성 전에 원고를 결코 보여달라 하지 말 것을.
그리고 잡스는 이 제안에 흔쾌히 응한다.


지금 책의 7할을 넘어선 나는
이것이 그의 본성에 얼마나 어긋나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일도 사람도 기업도
철저히 자신의 의도대로 컨트롤할 수 있기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폭언도 거짓말도 위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기록할 '역사' 앞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러지 않았는지 모른다.


스티브 잡스는 '명암'이 분명한 사람이다.
월터가 기록한 잡스의 자서전은
내가 읽기에도 민망할 만큼의 아프고 추하고

때로는 분노할만한 잡스의 그림자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그래서 그의 성공과 업적은 더욱 객관적인 것이 되어 빛난다.
이제 나는 그의 성공에 압도되어 그를 '신화'로 여기지 않음과 동시에
인간적인 약점을 평생 안고 살았던 그를 '측은'히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존경'은 더 높아졌다.

나는 이것이 한 인간에 대한 기록이 가지는 참된 의미라 생각한다.


'올바른 역사'가 무언지를 고민하는 요즘이다.
내가 정말 이 나라를 자랑스러워하지 않는지 되묻는 요즘이다.
관심도 없었던 근현대사의 기록들을 꼼꼼히 찾아보는 요즘이다.
그래서 1988년의 내가 얼마나 맹목적으로

이 나라를 자랑스러워했는지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가 유지된 참된 이유가 무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요즘이다.
자랑스러워했을 때보다 부끄러웠을 때가 더 많았고,
누군가를 호령하기보다 생존에 급급했을 때가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언어와 민족으로 수천 년을 이어온

이 나라의 자랑스러움이 무언지 더 깊이 알게 된 요즘이다.

그래서 역사는 모든 것을 기록하게 해야 한다.
'올바른' 역사는 스스로 규정할 수 없음을 많은 이들이 증언해왔기 때문이다.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를 끌어안을 수 있을 때,
나는 그것이 교과서를 넘어선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한 개인도 그것을 알았다.
하물며 수천 만이 대를 이어 공유할 역사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이게 이 시대에 던져진 우리의 숙제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제발 역사는
역사를 해석하고 기록하는 이들에게 맡기게 하자.
스티브 잡스가 월터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어두운 역사를 빛나게 하고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 할 거름이 되어 줄테니까.


스티브 잡스는 월터 아이즈너에게
자신의 자서전을 부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당신 책이니까요.

읽어 보지도 않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abduzeedo.com - http://goo.gl/lyMXv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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