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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당신의 당근 온도는?

하우투 스몰 브랜딩 - 6. 브랜드 경험

나의 당근 마켓 온도는 37.7도다. 웬만한 IT 기기는 직접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중고 거래가 잦은 편이다. 어제는 가성비 왕으로 불리는 갤럭시 탭 S6 라이트를 당근에 매물로 내놓았다. 올리자마자 연락이 왔고 마침 아들 데리러 가는 와이프 차에 올라 약속 장소로 갔다. 나는 10분 전, 구매자는 5분 전에 지하철역 입구에 도착했다. 문제는 내가 깜빡 하고 펜을 놓고 왔다는 사실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를 우리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갔다. 펜을 챙긴 후에는 알아서 가라고 할 수 없어 다시 구매자의 아파트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이는 스물 여섯, 직업은 항해사라고 했다. 한 번 배를 타면 6개월 가까이 타야 하기 때문에 태플릿을 산다고 했다. 이번에도 추석 전에 바다로 나가야 하지만 태풍이 올라와서 출항이 늦춰졌다고 했다.


당근마켓이 대단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에어비앤비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건 단지 숙박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지인들, 그리고 그들의 삶과 '연결'해지기 때문에 여느 호텔들과 차별화되는 것이다. 당근마켓도 마찬가지다. 중고거래가 핵심이란 중고나라가 여러 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물건도 많고 가격도 다소 높게 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당근은 중고나라가 절대 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한다. 바로 뜻하지 않게 벌어지는 이웃과의 만남이다.



인터넷에는 당근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에피소드들이 즐비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인근 동네 사람들이고 대면 거래를 해야 하니까. 그 과정에서 내가 경험한 것처럼 뜻하지 않은 만남과 대화로 이어지는 것은 당근만의 매력이다. 과연 이 서비스는 처음부터 이걸 계획하고 설계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 서비스의 시작은 사내 게시판에서였다. 같은 회사 사람들끼리 필요한 물건을 게시판을 통해서 교환하면서 생겨난 서비스였다. 이 거래의 가능성을 본 네이버와 카카오 출신의 창업자들이 당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수백 억의 투자로 이어졌다.


동네에 있는 하이마트는 갈 때마다 무엇을 사러 왔는지 일일이 확인한다. 그리고 매장으로 돌아서는 사람 등 뒤에서 손님이 무엇을 사러 왔는지 보고?한다. 나는 이 과정이 매우 불쾌했다. 굳이 이 과정이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반면 애플 매장은 아무 때고 들어가 부담없이 제품들을 만지작거리다 나올 수 있다. 삼성 본사 지하의 딜라이트 매장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면 하이마트 매장에서 물건을 사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의시받는 것 같은 그 기분을 느끼기 싫어서다.


이니스프리는 이런 손님들의 심리를 잘 알고 두 개의 쇼핑 바구니를 준비했다. 그 중 하나는 도움이 필요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다른 하나는 직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쓰여져 있다. 사람마다 다른 이 미묘한 차이를 인지한 서비스는 나처럼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멋진 경험을 제공해준다. 브랜드 경험이란 이처럼 소비자들의 디테일한 욕구를 읽고 그것을 채워주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기계적인 친절은 받을 만큼 받은 요즘의 소비자들이다. 우리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아주 작은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어느 나라 공주가 병이 들었다. 공주를 사랑한 왕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공주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을 갖고 싶다고 했다. 온 나라의 전문가들이 모여 그것이 왜 불가능한지를 왕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이 그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공연을 하는 한 젊은 광대였다. 그는 달 모양의 조그만 조각을 만들어 공주에게 선물했다. 공주는 흡족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공주가 원한 것은 엄청난 크기의 물리적인 행성이 아니었다. 공주의 눈에는 그저 손톱 만한 작은 초승달일 뿐이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이 '내가 원하는게 뭔지 말해봐'라는 여자들의 질문을 두려워한다. 마케터와 브랜더들에게 필요한 건 이처럼 공주의 마음을 읽어내는 관심과 애정, 그리고 섬세한 관찰의 능력이 아닐까? 신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거대한 숫자 뒤에 숨은 한 인간의 아주 작은 바램을 알아채는 능력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가끔씩 아이들을 위한 그림 동화를 읽는다. 하늘 위의 초승달을 손톱 위에 올려보는 그 공주의 마음을 헤아려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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