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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째 파는 풍요로움의 비밀, '박스드'를 아시나요?


한 번은 미팅 때문에 합정역 인근의 작은 컨설팅 회사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일 잘하기로 유명한 회사라 스무 평 남짓한 회사 내부는 항상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흘러 넘쳤습니다. 조명도 일부러 조도를 낮춘 탓인지 오직 일에만 몰두하라는 무언의 메시지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의외의 장소에서 한 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회사 곳곳에 생수병과 화장지가 가득했거든요. 사무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생수병은 왠지 모르게 풍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저만 했던 건 아닌 모양이네요.


'박스드'라는 이름의 미국 회사가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코스트코처럼 생필품을 '박스떼기'로 판매하는 곳입니다. 창고형 할인 매장을 모바일로 그대로 옮겼는데 아마존보다 3,40퍼센트 정도 저렴합니다. 사용자가 49달러 이상의 상품을 주문하면 2일 이내로 무료로 배송까지 해줍니다. 별도의 회비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는 '밀레니얼을 위한 코스트코'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포브스는 이 회사를 차세대 유니콘을 선정하고 아마존의 최대의 경쟁자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고 하네요.



물론 이 회사의 매력은 배송의 간편함과 가격 경쟁력에 있습니다. 어차피 살 물건이면 대량으로 싸게 구매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박리다매로 재고를 처분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회사의 가장 큰 경쟁력은 편리함이나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밀조밀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많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까운 수퍼에 나가려고 해도 차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야 하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곳에 사는 사람이 박스드에서 배달온 생수병 박스를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마치 제가 컨설팅 회사 사무실에서 느꼈던 그 풍요로움과 여유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에 없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일은 어렵습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 사람은 아마도 마케터라기보다 연구자나 과학자에 가깝겠지요. 결국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거나 팔고 있는 제품을 가지고 승부를 보아야 합니다. 저는 박스드의 창업자가 이러한 사람들의 '숨은 욕구'를 발견했기에 지금과 같은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회사의 창업주 '치에 황'은 어머니가 일하던 식당의 사장이 장학금을 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물류센터 직원들에게 미국연방 최저임금보다 2배 많은 13~17달러를 지급한다고 합니다. 직원 자녀가 대학에 갈 경우 학비를 전액 지원하고, 직원들에게는 결혼 비용으로 2만 달러까지 지원한다고 하네요.



제품과 서비스를 가격만으로 파는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마케팅을 넘어선 브랜딩이 필요한 이유는 가격을 넘어선 '컨셉'을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박스드란 회사의 컨셉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생필품을 박스째 사야 안심이 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풍요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먹거리가 가득 담긴 선반과 냉장고에서 느끼는 안정감이 박스드라는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입니다. 혹시 다이소에 가서 한가득 쇼핑을 했을 때의 만족감을 경험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 회사가 직원들의 복지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이유도 창업자가 직원들의 안정감을 고스란히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 애쓰지 마세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결핍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보세요. 거기에 우리가 찾아야 할 매출과 성공, 그리고 브랜딩의 답이 숨어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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