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

어느 불법체류 모자에 관한 짧은 인연에 대하여

병원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주차비가 뜬다.

45,000원.

정산하는 아저씨도 놀라고 우리도 놀란다.

이렇게 많은 주차비를 내본 적이 없어서다.

그런데 4박 5일,

보호자도 아닌 신분으로 차를 주차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대구에 있는 한 병원에서 분당의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이 아파서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비슷한 이유가 있기는 했다.

지난 8년간 가족같이(순전히 우리의 시각으로) 알고 지내왔던 아이가

학교에서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연락을 받아서였다.

와이프는 전화로 울먹이다 결국 바로 다음날 내려갔다.

가족도 아닌데,

아무튼 그랬다.


보육원과 교회의 결연 사업을 통해 만난 *혁이는

매우 잘 생기고 키도 큰 아이였지만 피부색이 달랐다.

그래서 가정체험을 위한 이 프로그램에서도 이래저래 소외된 듯 했다.

그 모습이 밟혔던지 와이프가 데려왔고

교회를 옮긴 후에도 여름이나 겨울방학이면

마치 친척집을 찾아가는 아이처럼 우리집으로 데려와

같이 먹고 자고 놀러다녔다.


*혁이는 운동도 잘했다.

가끔씩 몸을 찔러보면 말랑한 우리 애들과 다르게 딴딴함이 느껴졌다.

아주 오랫동안 다이빙 선수로 뛰었다.

강호동이 나오는 프로그램에 나오고

전국대회에서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그런 애가 학교에서 쓰러졌다고 한다.

*혁이는 결국 사흘만에 눈을 떴다.

하지만 깨어난 후에도 한참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와이프는 그 나흘을 아이와 함께 지냈다.


치약과 치솔을 구분하지 못하고,

가글액을 그냥 마셔버리기도 했지만

다행히 나흘째 되던 주말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갔을때

아이의 상태는 많이 좋아져 있었다.

여전히 원인은 정확치 않았지만

회복속도도 빨라서 안심이 되었다.

보육원 선생님께 아이를 맡기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뿔싸 그게 다가 아니었다.

와이프는 그새 또다른 사고를 치고 있던 참이었다.


*혁이의 옆 침대에는 캄보디아 아이가 입원해 있었다.

이름은 *호라고 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호 모습은 왠지 낯이 익었다.

*혁이의 어릴적 모습과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이래저래 와이프는 마음이 갈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레고 장난감을 챙겨오라한 이유를 그제서야 알았다.

그런데 *호의 사정도 만만치 않았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맹장 수술을 받으러 왔는데

신분이 신분인지라 수술비만 400만원.

아빠의 월급은 150,

*호 엄마는 둘째를 임신중인 상황인데

더욱더 놀라웠던 건 리호가 백혈병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숙제를 안은채 우리는 다시 분당 집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알았다.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호 엄마를 통해 새로운 소식들이 속속 들려왔다.

*아빠에겐 이미 현지에 처가 있고,

새로운 여자가 생긴 듯 하다는 얘기를 듣기가 무섭게

이내 헤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둘째는 이미 지운 상태,

통장이 겨우 몇 십만원 남은 *호 엄마에게는 이제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자연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기댈 곳은 오직 와이프 뿐.

매일매일 카톡과 전화가 이어졌다.


두 모자를 도울 방법을 찾느라 와이프가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불교 단체에 문의하기도 했고

화장실에서 만난 목사님 사모님을 붙들고 사정을 쏟아냈다.

다행히 사회복지분야의 장로님이 연결되어 도움을 약속받기도 했다.

하지만 신분이 문제였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해도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받을 도움은 많지 않았다.

점점 해결책은 하나로 모아졌다.

*호네 가족을 다음 달 이사갈 새집으로 데려오는 것,

*호 엄마의 직장을 근처에서 잡아주고

아이 돌보는 일을 하는 와이프가 *호를 돌봐주는 것.

나의 고민도 점점 커져만 갔다.


문득 아주 오래전 어느 날 생각이 났다.

와이프를 만난 건 교회 청년부 게시판에서였다.

열차에 치인 고양이를 돌보단 와이프가 입양할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읽고서였다.

동물을 싫어하는 (미래의) 장모님이 숨겨 키우던 고양이를 발견한 탓이었다.

기회?를 발견한 내가 입양을 자처했다.

그렇게 만난 와이프와 결혼을 했고

부산을 떠나 분당집과 서울직장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길잃은 대상'에 대한 와이프의 관심은 끊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길거리에 버려진 유기견을 데려와선 사방에 벽보를 붙이다가

결국 대신 맡아 길러줄 시골의 인심 좋은 부부를 소개받아 데려다주고 오기도 했다.

그러니까 *혁이에 대한 관심, *호를 향한 애정이 즉흥적인 마음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는 일은 유기견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지나는 길에 동전 한닢, 지폐 한 장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단순한 동정이 아닌 깊은 신뢰와 한결같은 인내가 없다면

되려 서로가 상처받을 위험도 매우 높은 일이다.

한쪽이 한쪽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것도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더구나 우리집 형편이 누굴 도울만하지 않다는게 가장 큰 문제다.

하지만 이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아내의 얼굴은 빛이 났다.

병원에 내려간 나흘 동안은 늘 먹던 우울증 약을 먹지 않은 것도 잊을 정도였다.

*호 이야기를 할 때면 아내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때로는 이해될 듯 하면서도

때로는 너무 멀리 나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혁이를 만난 것만 해도 이미 8년째,

결코 순간적인 감상에 의한 선택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더욱 고민이 됐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회사 앞을 지나오다가 두 아이와 한 엄마의 모습을 봤다.

첫눈에도 다문화 가정임을 쉽게 알 수 있는 가족이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을 한 *호 또래의 아이들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카톡으로 이 이야기를 와이프에게 전했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라고.

그러자 와이프가 말했다.

*호랑 *호엄마도 환하게 웃을 자격있다고.


첫눈이 내린 서울숲역 근처의 거리가

차갑게,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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