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생각'이 아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알았다. 와이프가 견과류 반찬을 좋아한다는 사실, 버터 중에서도 프레지덩과 이즈니를 좋아하는 사실, 그리고 남편이 길을 가다 꺾어온 장미를 원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와이프가 쓴 블로그를 보았다. 허니문 베이비를 가진 후 첫째 서원이가 태어난 1,2년 정도의 시기다. 그때 나는 열이 나는 아이와 씨름하는 와이프를 두고 게임 방송을 보고 있었다 한다. 쳐죽일 놈이다. 이렇게 이기적인 놈은 처음 본다. 그런데 그게 나라는 사실에 흠칫 놀란다.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냥 생각만 한 거다. 이상적인 아내상을 만들어놓고 나는 그 안에 안주한거다. 그러니 걱정하는 와이프 두고 편하게 영화보러 다닐 수 있었지. 그렇게 20년을 살았다. 그 와중에 와이프 속은 섞어 문드러졌을 것이다.


나이 50에 걸음마처럼 대화법을 배운다.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뒤늦게라도 깨닫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가도 철저하게 나만을 생각했던 지난 시절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좀 더 표현하리라. 좀 더 사랑하리라. 좀 덜 이기적이 되리라. 굳이 팔불출처럼 이 글을 쓰는 것은 만인에게 공포하면 좀 더 오래 지키지 않을까 해서다.


사랑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사랑하지 않았다. 표현도 하지 않고 관심도 없었으니까. 내 아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딜 좋아하는지, 어떤 시간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새삼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사랑하자. 관심을 갖자. 표현을 하자. 그리고 나의 지독한 이기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자. 아직 늦지 않았다. 한 번 뿐인 인생, 제대로 사랑하자. 한 사람만이라도.


p.s. 그런데 와이프 필력 이거 뭔데. 20년 전에 쓴 글을 읽다보니 웬만한 에세이집 저리 가라잖아. 남편도 글 좀 쓴다는 얘기를 듣는 편이지만 지독히 사실적이고 솔직한, 속이 뻥 뚫리는, 펄떡이는 생선같은 글들에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그 중 오할이 남편 욕인 것도 잊어먹은 채. 이 정도면 내년 브런치북 대상을 노려볼 법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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