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어른과 아내, 그리고 샤인 머스캣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장인 어른이 얼마 전 쓰러지셨다. 아파트 입구에서 넘어지셔서 머리를 다치셨다고 했다. 다행히 큰 후유증 없이 치료를 받으셨지만 놀란 와이프가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때 사들고 간 샤인 머스캣을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한다. 자신이 원하던 맛이 바로 이런 거라고. 그래서 조금 더 사서 보내드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다시 쓰러지셨고, 이번엔 마지막까지 고려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까지 갔다. 어릴 적 장인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던 아내다. 그러나 그 일이 두고 두고 마음에 걸렸나 보다. 이럴 때 나는 뭐라고 아내에게 말했어야 했을까?


아내는 샤인 머스캣, 즉 장인어른이 좋아하시는 청포도를 보내느냐, 마느냐에의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장인어른에 대한 미움과 딸 된 도리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을 때, 남편 된 나는 반드시 이렇게 말해주었어야 했다.


"나는 솔직히 안보내드리는게 맞다고 생각해. 당신을 그렇게 힘들게 하신 분이니까. 하지만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든 지지해. 나한테 중요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나는 그때 이런 말을 해주지 못했다. 더 정확히는 와이프는 이런 고민을 내게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고민을 해결해주긴 커녕 더 혼란스러운 답을 줄 것 만 같았다는게 아내의 고백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간극이 꽤 크다. 20년 간 함께 살아오면서 샤인 머스캣 같은 일이 얼마나 또 많았을까. 그때 나는 남편이라는 위치에 어울리는 답을 제대로 주었을리 만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와이프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던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뼈에 사무치게 외로워했던 건 아니었을까?


문득 달을 따 달라던 공주님이 나오던 동화 하나가 떠오른다. 모두가 공주의 요구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지를 따지고 있을 때, 어떤 광대는 공주의 마음을 읽고 손톱만한 크기의 달모양 목걸이를 만들어주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이게 어쩌면 아내가 원했던 공감과 사랑과 지지는 아니었을까?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공감해준다는 것, 나아가 사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지혜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건 쉽게 되지 않는다.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 노력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믿는다. 사랑은 어렵다.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결혼이란 걸 한 이유이니까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