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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페이스북에 초고를 쓰는가?

하우투 스몰 라이팅 #01.

2020년, 페이스북에 브랜드에 관한 21개의 글을 연재했다. 쉬운 주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불현듯 그렇게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결국 해냈다. 이렇게 쓴 글을 그대로 브런치에 연재했고 그해 '브런치북 특별상'을 받았다. 올해 4월에는 그 내용으로 와디즈 펀딩도 한다. 1석 3조가 따로 없다.


페이스북에 긴 글을 쓰면 사람들이 읽기 힘들어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일단 독자로서의 내가 괜찮았다. 페북에는 종종 자신의 생각을 긴 글로 쓰는 분들을 만난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그 내용이 도움이 되고 공감이 된다면 나는 그 글을 끝까지 읽어냈다. 아니 좋아했다. 라이크를 누르고 댓글을 달았다. 읽기 불편한 환경은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매끈하게 인쇄된 책도 내 마음을 끌지 못하면 읽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좋은 글은 어디에 쓰여도 읽힌다는 믿음이 생겼다. 내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글을 쓰냐이지, 어디에 쓰느냐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페이스북에 글을 쓴 것일까? 일단 눈에 보이는 마감에 쫓기기 때문이다.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끝을 내야 한다. 페이스북에는 (내가 알기로) 중간 저장 기능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기 일쑤였다. 하지만 페북은 글쓰는 공간이 작고 만만해서인지 호흡을 끊지 않고 글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한 번 쓰면 끝까지 쓰는 훈련을 하는데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페이스북 짧은 호흡의 글을 쓰는데도 용이하다. 메모장 같은 글쓰기 창에 긴 글을 쓰긴 어렵다. 많은 글쓰기 선배들은 짧은 글, 즉 단문 쓰기를 연습하라고 조언하곤 한다. 의사 전달이 쉽고 문법 등의 실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요즘 독자들은 만연체의 글, 두꺼운 책을 싫어하지 않던가. 그건 아마도 SNS에 달린 댓글 읽기에 익숙해서일지도 모른다. 소비되는 글의 스타일은 글을 쓸 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 훈련을 하기에 트위터나 페이스북만한게 없다.


내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알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라이크수와 댓글 수만 봐도 이 글이 어떤 반응을 얻을지, 팔릴만한 글이 될지 가늠해볼 수 있다. 몇 달 간 묵힌 글을 비로소 책을 통해 유통하는 시대는 지났다. 페이스북 지인들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글이 불특정 다수 독자들의 반응을 얻을 수 없다. 그 반응에 따라 글의 톤앤매너나 컨셉, 심지어 주제 조차도 바꿀 수 있다. 중간에 드롭하면 그만이다. 팔리는 글은 내가 쓰고 싶은 글에 머물러선 안된다. 읽고 싶은 글이 되어야 한다.


나와 와이프가 좋아하는 개인방송 중에 '권감각'이라는 유튜버가 있다. 이 분은 한동안 빨래를 개면서 방송을 했다. 남편 욕이나 주식 이야기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일들로 '수다'를 떨었다. 나는 이런 방송이 시대의 요구에 '합한'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어디 이 유튜버 뿐인가. 스튜어디스 출신의 백수? 딸이 은퇴한 아버지와 날마다 싸우는 방송 '하알라'는 어떤가. 요즘 인기있는 '너덜트'나 '숏박스'도 마찬가지다. 텍스트의 형식만 아니었지 누구라도 공감할 내용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는 바로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


글쓰기를 대단하고 거창한 작업으로 오해하지 말자. 누군가는 논문을 쓰고 대작을 쓰겠지만 나는 아니다. 빨래하듯 청소하듯 글을 쓰고 싶다. 누군가의 아주 작은 일상에 청량감을 주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이런 글이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용기를 주는 글을 쓰고 싶다. 그것이 내가 '스몰 라이팅'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근엄한 글쓰기의 무게를 넘어서 달달한 사탕 같은 글쓰기로 지루한 일상에 액센트를 주고 싶다. 자극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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