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재수생이다. 기타를 친다. 실용음악 전공이 목표다. 오후 늦게 일어나 학원을 간다. 하루 종일 연습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밤 11시쯤 느지막히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또 새벽까지 유튜브를 보며 예술혼을 태운다. 그 새벽녘에 정확히 뭘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간간히 학원 연주회를 찾아가서야 아들이 놀고 있진 않구나, 생각할 뿐이다.
그런 어느 날 아들이 새로운 선생님을 찾았다. 더 정확히는 줌으로 기타 연수를 받는다고 했다. 문제는 아들의 온라인 스승이 뉴욕의 뮤지션이라는 것이다. 매일 유튜브를 보다가 만난 기타리스트라 했다. 어렵사리 의사 소통을 하며 연주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세상의 온갖 기타 연주를 다 들어보았을 아들이 감탄할 정도면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임은 분명한 듯 하다. 아들을 다시 보았다. 나도 생각지 못한 학습법이었다. 바다 건너 미국 선생님에게 직접 사사를 받다니... 그래서 영어 공부가 필요하다는 아들에게 학원비를 홀린 듯 내어 주었다.
얼마 전 '모두의연구소' 교장 선생님과 화상 인터뷰를 했다. AI 교육 기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이곳은 따로 교수나 강사 없이 그 어려운 공부를 한다. 이럴 때 쓰이는 교육 방법이 '거꾸로 수업' 방식이다. 하나의 연구 주제를 두고 토론을 통해 학습을 한다. 모르는 내용은 서로 묻고 답하며 해결책을 찾아간다. 이게 가능할까 싶은데 벌써 8개의 학교가 생겼다. 수십 억에 달하는 투자도 받았다. 이른바 주도적인 학습 방법으로 인공지능을 공부하는 셈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장면이 묘하게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간절함이 방법을 찾는다. 함께라면 더욱 좋다. 한국의 재수생과 뉴욕의 뮤지션이 하나의 주제를 두고 토론을 한다. 합주를 한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인공지능으로 가위 바위 보 하는 방법을 배운다. 라이브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한다. 마치 게임 방송을 하는 유튜버가 채팅의 도움을 받아 그 어려운 마지막 스테이지를 깨는 장면을 보는 듯 하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어떨까? 좋은 글을 쓰는 방법도 그렇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황홀한 글감옥'이란 단톡방에서 매일 한 편의 글을 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매일 한 편씩의 글을 올린다. 수십 명이 올리는 모든 글을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꾸준히 글을 쓰는 노하우와 인내를 배운다. 함께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3주를 쓰고 2주를 쉬는 시즌제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다음 주부터는 22번째 시즌을 시작한다. 그 가운데는 천 일 동안 쉬지 않고 글을 쓴 사람도 있다. 천일의 글쓰기라니... 그런데 그게 가능하다. 함께 글을 쓴다면 말이다.
뉴욕의 뮤지션이라 대단한게 아니다. 국경의 장벽을 넘어 함께 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AI 교육이라 대단한게 아니다. 해박하고 탁월한 교수님 없이도 함께 배운다는 사실이 더 대단한 것이다. 천 일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 놀라운 도전이 가능했다는 깨달음이 중요한 것이다.
간절함이 이긴다. 그러다 깨닫게 된다. 아 글이란, 배움이란 혼자서 가능한 것이 아니구나. 그래서 스승을 찾게 된다. 동료를 찾게 된다. 친구를 찾게 된다. 함께 쓰고, 배우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골방에서 홀로 번민하며 답을 찾아나서는 글쓰기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유튜브를 보며 영상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댓글을 통해 치열하게 대화하고 수다 떨며 소통하는 것이 이 시대의 소통법이다. 글쓰기라고 다르지 않다. 그러니 이제 함께 쓰는 법을 배우자.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단톡방부터 만들자. 카페도 나쁘지 않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모아 내 글을 평가받자. 함께 글을 쓰는 모임을 시작한다면 더욱 좋다. 한 편의 글을 쓰더라도 반드시 블로그나 SNS에 올리자.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자.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새로운 주제를 찾아 나서자. 그렇게 딱 스무 개의 글만 써보자. 책 한 권을 내기 위한 최소 분량이다. 혼자 글을 쓰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당신 홀로 읽을 일기를 쓰는게 목표가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