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이라는 온라인 매거진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다. 하루에 한 편, 브랜드에 관한 글을 싣는다. 그런데 그 글은 딱 하루만 공개가 된다. 돈을 낸 가입자라고 해도 당일 읽지 않으면 유료로 보아야 한다. 신박한 아이디어라 생각했다. 비슷한 성격의 매거진을 두어 개 구독해봤지만 자주 가지 않았다. 하루 날 잡아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급기야 돈만 내고 해지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롱블랙은 다르다. 매일 읽지 않으면 유료가 된다고 하니 일단 클릭은 하고 본다. 한 번이라도 열람하면 아무 때고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루틴이 되고 리추얼이 되었다.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이 습관이란게 참으로 무섭다. 롱블랙이라는 이름이 확실히 각인이 된다. 가랑비에 옷 젖듯 이 사이트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물론 습관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어떤 매거진의 글보다 콸러티가 탁월하다. 이곳이 아니면 읽을 수 없는 글들로 가득하다. 이것이 브랜딩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나는 새로운 주제의 글을 연재할 때마다 소위 '넘버링'을 한다. 페북에도 브런치에도 블로그에도 글을 쓰지만 항상 번호를 붙인다. 이 글이 하나의 글이 아니라 연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연재는 꾸준함이다. 꾸준함은 신뢰로 연결된다. 그냥 생각나서 한 번 써 본 글이 아니라는 믿음을 준다. 한 편의 글을 우연히 읽었다 해도 다른 글이 궁금해진다. 그렇게 스몰 스텝을, 스몰 브랜딩을 그리고 지금은 스몰 라이팅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롱 블랙과 방법만 다를 뿐 개념은 동일하다. 내 글을 독자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루틴은, 리추얼은 습관을 넘어서는 것이다. 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해서 모두가 달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십 년간 숟가락으로 밥을 먹었다고 해서 '숟가락의 달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매 끼니 자신이 먹은 음식을 그림으로 남기는 사람은 다르다. 이 기록이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먹은 음식을 기억하고 그림을 그리고 한 두 줄의 글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한 권의 책이 된다. 그 책을 읽노라면 그 사람의 삶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나 뜻하지 않은 깨달음을 주지 않는 글은, 책은 그저 인쇄된 종이일 뿐이다. 그런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부디 꾸준히 글을 쓰자. 꾸준한 독자를 만들자. 그러기 위해 나만 쓸 수 있는 글의 주제를 찾자. 정보나 깨달음, 하다못해 재미라도 주는 가치 있는 글을 쓰자. 코카콜라도 처음엔 1년 에 수십 병 밖에 팔리지 않는 흔하디 흔한 음료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피자나 치킨을 먹을 때 생각나는 먹을거리가 되자 브랜드가 되었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차별화'되기 위해서다. 특별한 삶을 살기 위해서다. 내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남기고 싶어서다.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결과가 그렇다.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꾸준히'라는 말은 사뭇 무서운 말이다. 어렵기 때문이다. 롱블랙에 하나의 원고를 싣기 위해 2주를 시달려야 했다. 글이 올라가기 전날에도, 올라온 후에도 회사 대표와 편집자로부터 수시로 전화가 왔다. 메일이 오고 문자가 왔다. 글을 쓰는 내내 다시는 글을 투고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롱블랙의 글을 매일 읽는다. 한 편의 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기 때문이다. 신뢰하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