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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글쓰기 비법

볕 잘 드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연다. 원목으로 된 테이블을 쓰다듬으며 온기를 느낀다. 읽지도 않을 책 한 권을 꺼내 놓는다. 센스 넘치는 카페 주인의 선곡에 감사하며,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다. 딱히 무슨 글을 쓰지 않아도 좋다. 여유롭게 창밖을 응시하지만 굳이 초점을 맞추진 않는다. 시간과 장소, 날씨에 따라 다른 커피를 주문한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아이스 커피, 평범한 날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다. 특별히 기분 좋은 날은 아인슈페너를 마신다.


짧지만 세상을 살아오며 한 가지를 배웠다. 그건 아주 소소한 것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행복들이 있다는 것 다. 연애 시절 와이프는 페레로 로쉐를 좋아했었다. 지금도 긴 미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면 종종 편의점에서 이 초콜릿을 산다. 세 개짜리 페레로 로쉐 포장을 뜯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가 도착한다. 20여년 전, 나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와이프는 부산에서 제약회사를 다녔다. 주말이면 예외 없이 비행기표나 기차표를 예매했었다. 그리고 내려가는 내내 와이프의 얼굴부터 발끝까지를 속속들이 떠올렸다. 그 중에서 하늘색 원피스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여행을 갈 때면 언제나 카페 라떼 하나와 씨네21을 샀었다. 명절이면 영화 잡지는 두 배로 두꺼워진다. 지금도 조금 우울한 날이면 라떼를 마시고 영화 잡지를 읽는다. 그도 아니면 영화 관련 팟캐스트를 듣는다. 글이 안써지면 카페 라떼를 마신다. 만년필을 꺼내 몰스킨에 낙서를 한다. 서걱거리는 그 느낌이 좋아 끄적이지만 딱히 글은 아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이게 다 나를 세뇌하는 작업들이다. 내가 행복해야 행복한 글이 나온다. 독자들은 기가 막히게 그 행복을 알아본다. 지식이나 정보를 전하는 글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고역이다. 쓰고 싶은 글을 써도 괴로운 일인데 써야만 하는 글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럴 때면 좋은 것들과 글쓰기를 연결시킨다. 익숙한 카페에 간다. 늘 마시던 커피를 시킨다. 창가쪽 자리에 앉는다. 좋아하는 노트북의 전원을 켠다.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촉감을 느낀다. 애국가를 타이핑 한다. 마우스를 클릭한다. 부드럽게 딸칵거리는 클릭감을 사랑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뭔가를 쓰고 있다. 명문은 아니라 해도 뭔가를 써내고 있다. 그런 내가 한없이 뿌듯해진다.


쓸 수밖에 없는 환경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도 때로는 필요하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글쓰기를 연결시키는 일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노트북과 태블릿을 사 모으는 이유가 있다. 쓰지도 않을 거면서 만년필과 몰스킨을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 글쓰기 직전까지의 괴로움을 상쇄할 나만의 의식을 만들기 위해서다. 조각난 생각의 파편들을 모으기까진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마중물을 넣어야 우물을 퍼올릴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 글 쓰는 것 외의 모든 것들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보자. 혹시 또 아는가. 툭 하고 좋은 문장 하나가 튀어나올지.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나오는 대로 쓰면 된다. 마치 오랫동안 그래왔다는 듯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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