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리 막국수, 두 번째 방문기

메밀 국수를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비빔면을 좋아합니다. 막국수 특유의 거친 식감과 매콤달콤한 양념이 어우러지면 더 바랄게 없을 정도입니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기본은 하는 메뉴입니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갈만한 메뉴는 아닙니다. 와이프가 뜬금없이 막국수를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면 굳이 평일 오후에 들를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기리 막국수는 다릅니다. 꼭 한 번은 더 가고 싶었던 가게입니다.


첫 번째 방문은 김윤정 대표님을 만나러 갔었습니다. 그때는 메뉴보다 사람에 끌렸습니다. 한두 시간 인터뷰를 하고 혼자 먹으려니 온전히 맛을 음미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사람에 취하고 왔습니다. 평범한 국수 하나를 가지고 어떻게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두 부부의 선한 영향력에 끌렸습니다. 하지만 국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저 단아한 분위기와 정성스런 환대에 취한채 가게를 다녀왔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릅니다. 과연 두 번 찾아갈 만한 맛집인지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냉정하게 평가하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이번엔 아무런 이해 관계? 없는 와이프가 동행합니다. 그렇게 30분을 달려 골짜기 깊숙한 고기리 막국수를 찾았습니다. 다행히 평일 오후 시간이라 웨이팅이 길지는 않았습니다. 아이패드 앱으로 대기를 걸고 나오니 30분쯤 기다려야 합니다. 가게 옆 고즈넉한 테이블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심정으로 순서를 기다립니다. 과연 이곳은 국수 한 그릇 먹기 위해 올만한 곳일까요?


시간이 되어 종업원의 안내를 따라 자리를 잡았습니다. 물막국수와 들기름 막국수, 수육 작은 사이즈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종업원이 물막국수를 먹어봤냐고 먼저 물어옵니다. 엉겹결에 아니라고 하니(실은 예전에 먹었지만) 씀씀할 수 있다고 안내를 해줍니다. 오래지 않아 메뉴가 나옵니다. 국물 맛을 보고 알았습니다. 왜 굳이 별도로 안내를 해주었는지. 그런데 서빙을 하는 종업원의 태도가 흔히 만나는 아주머니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뭐랄까요, 자부심에 넘친달까요? 단순한 친절, 그 이상의 애티튜드가 새삼스레 다가옵니다.



메뉴는 '정갈함' 그 자체입니다. 꼭 필요한 것들만 들어 있네요. 들기름 막국수는 고소함이 넘칩니다. 면발은 꼭 알맞은 만큼 탱글함이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균일합니다. 물막국수는 종갓집 며느리가 내온 차림처럼 품위가 있습니다.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심심하지도 않은, 딱 필요한 만큼의 맛만 냅니다. 그건 수육도 김치도 마찬가지에요. 평소 MSG 맛 가득한 자극에 익숙해져있던 입맛이 빠르게 살아나는 기분입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맛, 인공적이지 않은 맛, 사람으로 치면 아주 젠틀한 신사 한 분을 떠올리게 합니다. 흥미롭습니다. 요란하지 않은데 자꾸 끌리네요.


고기리 막국수는 곱배기가 없습니다. 대신 반값에 온전한 메뉴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빔국수를 먹고 알았습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어요. 수없이 먹어봤던 양념 가득한 비빔 막국수와 전혀 달랐거든요. 팔도 비빔면 같은 인스턴트 식품이 주는 자극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비빔양념의 맛은 살아 있습니다. 물막국수와 기성? 비빔 막국수의 딱 중간 어디쯤에 있는 맛입니다. 그런데 새롭습니다. 낼 맛은 다 내면서 자극적이지 않아요. 신기합니다.


누군가는 말할 것입니다. MSG 쓰지 않고 과하지 않게 양념하면 그 뿐 아니겠냐고. 그런데 그것과는 좀 달라요. 다른 가게들이 그걸 몰라 그런 맛을 내는 건 아닐거에요. 손님들이 원하니까 달고 짜고 매운 맛을 내는 걸겁니다. 아, 그러고보니 고기리 막국수의 모든 메뉴엔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그 특유의 과한 단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국수와 육수, 수육과 김치 본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인데 잡티가 전혀 없는 소녀의 얼굴이랄까요? 좋은 음식이란 재료 본연의 맛을 내는 것이라는 소신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딱 수긍할만큼만 맛을 냅니다. 마구잡이로 씀씀하지만은 않다는 것, 이거 굉장히 어려운 기술 같아요.



가게 밖은 대기자들로 분주해보이지만, 적어도 식사하는 동안은 고즈넉한 한옥을 가진 친구 집에 초대받은 기분입니다. 주방과 종업원, 손님들이 뒤엉킨 기존의 식당과는 다른 정서가 온전히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나를 지켜줍니다. 와이프가 마지막 남은 비빔 막국수 한 젓가락을 가져갑니다. 그래도 화가 나진 않습니다. 기분 좋게 배불러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분은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그대로 느껴집니다. 국수 세 그릇에 수육까지 먹었는데 기분 나쁜 배부름이 전혀 없습니다. 이상하게 씀씀한 감칠맛이 입가에 맴돕니다. 그리고 언젠가 생각나면 다시 가야겠다, 스스로 약속을 합니다. 와이프도 흡족한 표정입니다.


그냥 막국수입니다. 하지만 막 말아넣지 않은 정갈함이 이 집의 매력입니다. 내가 알던 기존 막국수와는 모든 것이 다릅니다. 손님 접대도, 맛도, 분위기도 전혀 다릅니다. 한 마디로 차별화되어 있습니다. 차로 30분을 달려 용인의 고기리 깊숙한 골짜기로 찾아들어오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종종 싸움?이 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 맛을 알면 찾아올만한데, 그저 국수만 먹으로 오기엔 무리한 여정이 될테니까요. 희한한 일이죠? 이렇게 평범한 막국수 하나로 차별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게요.



식상한 말이지만 이 가게는 '기본'을 지키고 있습니다. 일부러 손님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양냠도, 요란한 접대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오랜 친구와 지인, 가족을 맞는 종갓집의 정갈한 손님맞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한 마디로 '환대'입니다. 사람과 음식에 기품이 들어 있으니 손님도 이를 따르게 됩니다. 여느 가게에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경험'은 이런 기본에서 시작됩니다. 저처럼 가게 주인의 스토리를 안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겠지만,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냥 맛과 분위기만 느끼고 오기에도 충분합니다.


그러니 요란하게 배불릴 음식이 필요치 않다면, 어느 평일 늦은 오후 정갈한 음식이 생각난다면, 기분 좋게 음식 본래의 맛을 경험하고 싶다면 고기리 막국수를 찾아보세요. 요란한 도심을 떠나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 하나를 데리고 이곳을 찾아보세요. 평범한 맛과 분위기에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란함과 분주함에 지친 사람이라면 분명 그 맛과 분위기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거에요. 일상의 쉼표를 찍어보세요. 그래야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 시간을 음식과 함께 한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적어도 제겐 고기리 막국수가 그런 음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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