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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B자 배우기' - 에필로그

제게는 이제 막 고 1이 된 딸이 있습니다. 얼마 전 첫 시험을 치렀는데 거의 모든 과목이 4,5등급이네요. 성적표를 받아본 와이프는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이 성적으로는 소위 인서울 대학은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자신은 학교 다닐 때 한 번도 100미터를 30초 이내에 달려본 적이 없다고, 노력해도 안되었을 거라고, 그런데 우리 딸 역시 달리기를 못하는 것처럼 공부를 못할 뿐이라고 말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딸은 수없이 많은 재능과 강점 중에 공부를 못할 뿐입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시간을 쪼개가며 노력하는 모습을 저는 보았습니다. 하지만 달리기 능력을 타고난 친구를 이길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노오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우리 딸은 자라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이때부터 부모의 진짜 후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딸도 분명 잘하는 것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일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브랜딩이란 그런 것입니다. 압도적으로 큰, 자산과 인력이 풍부한 회사의 브랜딩은 누군가 할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골목 깊숙이 숨은 오래된 가게 하나를 브랜딩하는 작업은 어렵습니다. 마치 4,5등급 성적표를 받은 딸은 돕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분명 우리 딸도 잘하는게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게 필요합니다. 규모가 작고 업력이 짧은 회사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이런 작은 브랜드의 브랜딩이 진짜 보람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란 작은 브랜드의 브랜딩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이 지닌 ‘가치’를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가치란 사전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 번째 의미는 ‘쓸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가성비를 따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뜻이 중요합니다. 가치의 또 다른 의미는 ‘욕구’입니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욕구를 채우는 것, 그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브랜딩의 진짜 의미이자 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방의 목적은 물건을 담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백만 원 하는 명품백의 가치를 쓸모만으론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가치’를 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가치를 발견하고 전달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저는 어제 ‘고기리 막국수’라는 가게를 다녀왔습니다. 그냥 평범한 막국수를 파는 곳입니다. 그런데 주말이면 사람들이 몇 시간을 줄을 서가며 기다리는 가게입니다. 평일인 어제도 30분을 기다려야 막국수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막국수의 맛이 놀랍도록 씀씀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비빔 막국수 조차 기존에 아고 있던 다른 가게의 알싸하고 강력한 맛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손님을 맞는 종업원들의 자세도 달랐습니다. 공손하면서도 품위 있고 자부심에 넘쳐 있었습니다. 식당 내부와 식기도 음식만큼이나 정갈했습니다.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아(혹은 조금만 써서) 음식 재료 원래의 맛을 그대로 살린 고집은 거의 모든 메뉴와 김치와 같은 반찬에까지 녹아 있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과정이 종갓집 맛며느리나 세련된 신사의 집을 방문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마디로 저는 ‘환대’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브랜딩은 한 마디로 ‘차별화’입니다. 그런데 이 차별화라는게 그렇게 거창하고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막국수 하나라도 원래의 그 맛을 제대로 살리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없이 많은 막국수 가게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 때문입니다. 자극적인 단맛, 매운맛을 추구합니다. 거의 모든 막국수집 국수 맛이 비슷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음식의 ‘기본’을 지키고 손님을 향한 ‘환대’의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가게는 주차장만 서너 개를 필요로 할 정도로 사람들의 환대를 거꾸로 받고 있습니다. 당연한데 신기하고, 평범한데 놀라운 가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딸은 어떨까요? 저는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분명 우리 딸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심성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딸은 어려서부터 잘 웃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기쁠 희()’자를 써서 희원이라고 지었습니다. 우리 딸은 분명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고민할 일은 딸이 가진 ‘기쁨’이라는 가치를 어느 그릇에 담을까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그릇이란 ‘직업’이 되겠지요? 그런데 이건 한 번에 찾을 수 있는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잘할 수 있고 사람들도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일을 찾는 과정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브랜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브랜딩은 어렵고도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앞서 소개한 고기리 막국수의 주인은 부부입니다. 그중 남편 분은 오랜 암투병을 하시다가 최근에 완치 판정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이 집의 음식 맛이 그토록 심심하고 씀씀했던 이유가 짐작이 가시지요? 그런데 세상에는 병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브랜드와 소비자가 막국수의 맛을 통해 서로 만난 것입니다. 저는 딸에게도 이 가게 이야기를 해주고, 또 데려갈 예정입니다. 그러면서 물어볼 생각이에요. 너로 인해 행복한 친구, 너로 인해 기뻐할 사람들이 있는 일들을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그런 경험을 더 많이 하게 해줄 겁니다. 소소한 일이라도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경험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 딸이 가진 ‘기쁨’이라는 가치를 전달하는 방법이 되겠지요? 그것만 선명하다면 직업은 그 다음에 고민해도 됩니다. 우리 딸이 되고 싶어하는 성우이든, 동물을 좋아하는 딸에게 어울리는 애견을 위한 미용사이든, 아픈 사람을 돌보는 간호사이든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우리 딸의 가치만 선명하다면 직업이 혹 달라지더라도 분명 잘해낼거라고 확신합니다.     


지금 창 밖에선 집 근처 중학교 학생들이 무슨 행사인가를 하고 있습니다. 밝고 깨끗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고함소리가 듣기 싫지만은 않습니다. 저 아이들도 언젠가 어른이 되어 여러분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겠지요? 취업을 하든 창업을 하든, 사장님이 되든 알바를 하든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강점을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과 유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행복한 아이들이 많은 세상이 제가 꿈꾸고 바라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역시 그런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바꾸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그런 브랜드가 될 수 있또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브랜딩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런 브랜드를 만드는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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