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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아, 너는 잘 웃는 아이야!

아빠가 딸에게 쓰는 편지 #01.

희원아, 어제 엄마가 학원 앞에서 1시간이나 널 기다렸다는 얘길 들었어. 운동하던 아빠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으로 집으로 돌아왔었지. 워낙 흉흉한 세상이라 설마, 하면서도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더라. 다행히 보강 수업이 있어서 늦은 줄은 알았다만, 미리 얘길 해주지 그랬니. 그나저나 별 일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무튼 요즘 시험 성적 때문에 전에 없이 우울해하는 것 같아서 아파도 마음이 아프다. 니 방에서 들려오는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아빠에겐 마치 천국의 웃음소리처럼 들렸거던. 어떤 일이 있어도 웃을 수 있는 힘, 아빠는 그게 니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해. 그건 아무나 할 수 없는 탁월한 힘이라고 생각하거든.


요즘 같아선 니가 너무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어린데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해야만 하나 해서 마음이 안좋았거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보려는 니 자세를 아빠는 정말 응원해주고 싶어. 그 끈기와 인내심 때문에 넌 아마 아빠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될거라 확신하고 있어.


그래도 고민은 되겠지. 사실 니 성적으론 학종이 힘들다는 사실을 엄마로부터 들었어. 고1 때의 성적이 죄다 합산이 된다면 지금의 니 성적으론 인서울은 힘들다는 말도 들었어. 그런데 말야. 인서울이 그렇게 대단한거야? 조금 뻔한 말처럼 들리지만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가는 세상은 이미 끝났다고 아빠는 생각하는데?


아빠가 좋아하는 유튜버는 고졸 출신이야. 그런데 4개 국어를 하지. 테니스 국제 심판원으로 일하다가 요즘은 일본인 아내를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 그런데 아빠는 그 사람 특유의 당당함, 그리고 세상을 낙관하는 자세가 너무 좋더라.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자세도 부럽고. 무엇보다 잘 웃는게 너무 보기 좋더라고.


엄마가 요즘 자주 보는 유튜버는 트랜스젠더라며? 그러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니. 오빠가 커밍아웃이라도 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가질 않아. 무엇보다 본인이 가장 혼란스럽겠지. 그런데 그 아픔을 유튜브로 풀어내니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돈도 많이 벌고. 무엇보다 트랜스젠더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조차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건 존경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


아빠는 20년 이상 일하면서 좋은 직장, 높은 연봉만 쫓아다녔어. 맨날 맨날 고민했지. 어떻게 하면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들어가 조금이라도 더 월급을 더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그런데 이젠 알겠어. 직장보다 더 중요한 건 '직업'인 것 같아. 어떤 회사에 다니느냐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거지. 그 차이가 어떤 거냐고?


아빠는 요즘 다른 사람이나 회사가 하는 일을 기록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어. 주로 그들이 한 일이나 지식, 경험을 책을 쓰는 일을 하지. 그런데 이 일이 너무 재미있단다. 무엇보다 많이 배울 수 있어서 그래. 하루는 한의사, 하루는 교육전문가, 하루는 디지털 마케터...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는지 몰라. 그런데 더 놀라운게 뭔지 아니? 그렇게 배우면서 돈도 받는다는거야. 그것도 많이.


혹시 '소울'이란 영화 봤니? 거기엔 흑인 이발사가 한 명 나와. 주인공의 머리를 다듬어 주는 사람이지. 원래 상이용사였다가 지금은 이발사로 일하고 있어. 그런데 그 사람이 꿈꾸는 직업이 수의사였대. 그런데 딸이 아파서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지? 그래서 주인공이 이렇게 묻더라고. 원하던 직업이 아니라서 불행하지 않냐고.


그런데 그 사람이 말했어. 전혀 그렇지 않다고. 수의사나 이발사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건 똑같다나?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거지. 그러고보니 그 이발소 분위기가 좀 남다르더라고. 누구라도 와서 수다를 떨다갈 수 있는 그런 편안한 곳이랄까. 아빠도 그런 이발소가 주변에 있다면 솜씨가 좀 모자라도 거길 갈거 같아. 네 생각은 어떠니?


희원아, 엄마 아빠는 네가 잘 웃어서 기쁠 희자를 써서 '희원'이라고 이름을 지었어. 너는 기쁨과 행복을 타고난 아이야. 그리고 아마 네 옆에 있는 다른 사람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사람이야. 그러니 부디 어떤 일을 하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희원이로 살아주길 바래. 아빠가 바라는건 그게 전부야. 네 직업이 무엇이든 아빠는 전~~~혀 상관이 없단다.


그러니 당장의 시험 성적이 기죽지 않길 바래. 인서울이 목표가 안되었으면 좋겠어. 그보다 네가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했으면 좋겠어. 그게 뭐냐고? 네 이름에 있잖아.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사람. 시험 성적이 4,5등급이어도 넌 웃을 수 있는 애잖아. 그게 얼마나 대단한건지 네가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아빠는 속상해.


첫날부터 아빠가 너무 말이 많았지? 미안하다, 미안해. 역시 아빠는 아직도 딸바보인가봐. 맨날 투덜대지만 아빠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꼭 알아주었으면 해. 이 편지는 아마 네가 성인이 되는 날까지 계속될거야. 아빠가 배우고 깨달은걸 기록할 생각이야.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책으로 엮어서 네게 주려고. 니가 그 책을 좋아했으면 좋으련만.


나이 마흔, 쉰이 되어도 너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 그건 슬픈 일이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채 돈만 버는 삶은 말이야. 그러니 아빠는 네가 가장 먼저 네 자신을 잘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 진로나 직업은 그 다음에 고민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 하나 찾아가보자. 네가 더 기쁘고 행복한 길을 말이야. 분명히 그 길은 있을 거고 아빠와 너는 그 길을 찾고야 말거야. 그러니 오늘도 웃어주렴. 네가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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