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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점 아저씨와 일의 본질

샤워기 꼭지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습니다. 나사를 조이니 물은 안새는데 뜨거운 물이 안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가장 가까운 철물점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 지난 번 왔던 그분이네요. 아차 싶었는데 오자마자 기존에 공사를 한 사람 욕부터 합니다. 급기야 아무 말없이 전체 건물의 밸브를 막더니, 이를 모르고 다시 밸브를 열어 물이 쏟아지자 냅다 건물주와 언성을 높이며 싸움을 합니다...


결국 어찌 어찌 공사는 끝났지만 여운이 길게 남네요. 씨발이란 욕을 달고 일하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분노 장애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입니다. 결국 동네 장사이고 그 대상 중 하나가 집주인들일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하시는 솜씨는 깔끔한데 이 분을 다시 부르는 일은 없을 것 같네요. 검색하면 인근에 대여섯 개의 철물점이 있던데요.


뻔한 얘기일지 모르나 이 아저씨는 '본질'을 놓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기술에 대한 프라이드는 높으나 이 일이 제공하는 가치가 뭔지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 이럴 때 생각나는 유명한 말이 있죠. 드릴이라는 공구를 파는 것이 아니라 구멍을 팔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벽에 내는 구멍이지 드릴 자체를 사는게 아니에요. 즉 도구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원하는 건 생활에 필요한 구멍이거든요.


과다하게 친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샤워기를 깔끔하게 고쳐 놓아도 고객이 원하는 건 '안심'입니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도 있지만 이 문제로 주인과 등지는 새로운 불안을 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아무리 탁월한 솜씨로 문제를 해결해도 더 큰 불안을 만들지 모르는 이 아저씨는 다시 찾지 않을 거에요. 그릭 이게 꼭 마케팅이나 브랜딩 원론을 공부해야 알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안타까운 마음으로 새벽에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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