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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는 웁니다

간만에 어머니가 오셔서 며칠 머물다 가셨습니다. 그런데 집을 나서시면서 '수고했다'라고 표현하시는게 너무 마음에 걸리네요. 가족이고 아들인데 수고했다니요. 아마도 계시는 동안 서로 불편했던 일들이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네요.


어머니는 청소에 진심이십니다. 그렇다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청소를 하시면 큰 방을 내어드려 거실에서 잠을 자는 와이프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새벽에 집중해서 글을 쓰는 저도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외식이나 시켜 먹는 걸 너무도 싫어하십니다. 정확히 이유를 물어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며느리가 차린 밥상만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정말 궁금하긴 합니다. 이러면 며느리는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처럼 지내는 고양이를 싫어하십니다. 더 정확히는 배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까망이와 뚱이 때문에 매일 투덜거리며 청소를 하십니다. 청소하지 않는 우리 가족에게 불평과 불만이 매일 쏟아지니 힘들수밖에 없습니다.


오랫동안 따로 살아왔으니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왔다 가시면 몸져 눕는 와이프도 이해가 됩니다. 오해 마세요. 아내는 정말 살갑게, 진심을 다해 어머니를 모십니다. 그런데도 혹이라도 같이 살게 되면 정말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듭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불효자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다만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함께 살아야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족이니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구요. 가까울수록 서로 지켜야 할 선을 지킬 때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얼마 전 대통령 취임식 때 직원을 불러 모아놓고 티비를 함께 보자고 했다던 친구 회사 회장님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그거 폭력 아닌가요?  정치적 신념이 다른 사람에겐 불쾌한 일일 수 있습니다. 가족이라고 상사라고 그런걸 강요하는 건 정말 싫습니다.


사랑하기에 조금 거리를 두는 지혜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희들 사는 모습이 내내 못마땅했을 어머니는 지금처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는게 서로에게 좋은 일 아닐까요. 하지만 가족인데 이런 얘기를 쓰고나니 제 얼굴에 침뱉기 같아 마음이 정말 좋지 않습니다.


효도에도 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함께 행복하려면 지켜야할 것들이 있는데, 그걸 어머니께 말씀드리는 것도 실례일까요? 돌아가신 빈 자리를 보니 괜히 우울해집니다. 어떻게 하면 나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떳떳한 효도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지는 그런 새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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