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회사에서 무려 9년 간 품질 관리 일을 하던 분을 만났다.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와디즈 펀딩이 계기가 되어 줌으로 인터뷰를 했다.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했다고 했다. 이제 자신이 극복한 방법을 매뉴얼로 만들어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한다. Why not? 나도 우울증으로 얼마나 고생했던가. 하지만 프로그램 설명을 듣고 있다보니 의도가 너무 착하긴 한데 '엣지'가 없다.
일단 이 분은 전문가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다. 게다가 우울증 관련된 전문 프로그램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임상? 경험도 많지 않다. 그런데 전문가도 아닌 이런 분이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 말려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어느 순간, 이 분이 스스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분은 화장품 회사에서 무려 9년 동안 소비자들의 클레임을 처리하던 분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클레임은 어떨까? 매일 매일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는게 우리 삶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분은 스스로 다음과 같은 컨셉을 이미 만들어두고 있었다.
몇 번은 극단적인 생각을 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수 년간 경험하셨던 분이다. 회사 안에서 괴롭힘도 당했다. 끔찍하리만치 출근하기 싫은 날이 매일 매일 이어지던 삶을 살았다. 그 고통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우울증을 털고 일어나 남을 도우며 살아가려 한다. 회사를 나와 창업을 했다. 회사 이름은 '그레이숲풀'이다. 혜림이라는 이름 그대로 은혜로운 수풀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
느낌 좋다. 때로는 병원에 가서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병원까지는 안 가고 싶은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분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된다면 어떨까? 직장 생활의 어려움으로 우울증을 감추고 다니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월요일마다 엉엉 울며 회사 가기 싫어하는 어른도 보았다. 바로 내가 그랬으니까.
이분에게는 명확한 창업 동기와 아이덴티티가 있다. 우울이라는 인생의 클레임을 해결해주는 매뉴얼이 있다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다음은 스스로를 브랜딩할 차례다. 내가 운영하는 스몰 스텝 단톡방으로 오시라 했다. 직장인을 상대로 한 특강을 해달라 했다. 그렇게 몇 십 명을 모은 뒤 별도의 단톡방을 개설하시라 했다. 그레이숲풀에 당장 필요한 건 팬덤이니까. 믿고 찾을 수는 고객들이니까.
그 다음엔 채널을 관리하라 말씀드렸다. 블로그와 브런치를 하고 계시다 했다. 딱 좋다. 그렇게 컨텐츠를 모아 브런치북이든, 전자책이든, 독립 출판이든 컨텐츠를 만드시라 했다. 가장 좋은 건 출판이다. 컨텐츠만 좋다면 나도 도울 수 있다 말씀드렸다. 이렇게 제품이 없는 서비스 브랜드인 경우는 커뮤니티가 생명이다. 컨텐츠와 커뮤니티가 서로 시너지를 낸다면 멋진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반가운 건 나와 생각이 비슷하다는 거였다. 경험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내가 걸어온 길이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신나게 내 얘기를 했다. 그리고 의견을 들어보니 자신도 그렇게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컨설팅을 받는 분의 얼굴이 시작할 때보다 두 배는 환해진 것 같다. 당장 내가 운영하는 스몰 스텝 방으로 초대하고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그레이숲풀,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이상 나처럼 울면서 출근하는 사람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렇다.
p.s. 네이밍은 '그레이'란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그레이와 수풀이 함께 있으면 삭막한 인생에 숲과 같은 곳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레이와 녹색의 로고를 개발해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