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은 왜 맨날 '나는 자연인이다'만 볼까?

와디즈 펀딩을 통해 컨설팅 의뢰를 받았다.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 명확했다. 이제 막 뜨고 있거나 검증된 해외 스타트업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능성 있는 사업들을 테스트해보는 아주 작은 사업체였다. 한 주 동안 그 페이지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주로 해외의 비즈니스 모델들이라 한국에 바로 들여오기엔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이 회사 대표가 검토했다가 최근에 접었다는 BM이 눈에 들어왔다.


해남에 황토집이 있다고 했다. 정원과 산책로가 딸린 아늑한 집이었다. ebs 한국기행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며칠간 살아보는 사업을 MZ 세대를 대상으로 시도했다고 한다. 일종의 에어비앤비와 팬션을 섞어놓은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문제는 아늑해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부 인테리어에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요즘 친구들은 불편한 건 못참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문득 나의 친구들이 생각이 났다.


자연인_02.png


*스타트업 언박싱 바로가기 https://startupunboxing.oopy.io/


친구들과 소액이지만 매달 돈을 모으고 있다. 국내든 해외이든 코로나가 풀리면 가족 여행을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친구 중 몇몇은 아예 바닷가 마을에 집을 사는 건 어떠냐고 했다. 이케아에서 일하는 친구는 어떤 수리든 가능하니 컨테이너 집을 사자고 했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자연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아주 살진 않아도 가끔씩 별장처럼 지내는 곳이 그런 곳이면 좋겠다고 한 기억이 났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요즘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단연코 '나는 자연인이다'이다. 물론 사람들과 떨어져 수 년 간 살 자신은 없다. 그러나 며칠 정도는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했었다. 자연인의 집을 빌려 다만 2,3일이라도 묵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며칠 살다보면 내가 노후에 이런 집에서 살 수 있을지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살 수 없다면 1년에 두어 달은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마음 맞는 친구가 있다면 아래 윗집을 함께 사서 살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KakaoTalk_20220604_200251668_04.jpg
KakaoTalk_20220604_200251668_05.jpg


사실 자연인의 삶을 갈구하는 사람들은 나 뿐만이 아니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그런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김창옥 교수는 방송에서 그 이유가 남자들의 숨어 있는 야생의 사냥 본능이라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들은 자연을 동경해서 그곳에 가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에서 지쳐서 찾아간 곳이 산 속일 수도 있다. 자연인들의 핵심 욕구는 '회복'이다. 남자들은 부부싸움을 하면 골방으로 잠적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다 회복을 위해서다.


자연인이 살만한 해남의 집을 에어비앤비처럼 대여하면 어떨까? 그곳에서 자연인의 삶을 살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하루 종일 산속 집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생활인지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정원 옆 텃밭에서 혼자 먹을 채소들을 길러보는 건 어떨까? 외떨어진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미리 체험해보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전국의 산에 있는 외진 집들과 임야를 연결해주는 중계업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인_01.png
자연인_02.png

* 어센트 코리아 '리스닝 마인드'를 통해 검색한 화면입니다.

www.ascentkorea.com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나는 자연인이다' 제작진들은 위성 지도를 열어 전국의 산 속 집들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아파트나 주택처럼 산 속 집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전국의 빈 집이나 살지 않는 집들을 싸게 연결해주는 웹사이트들을 개설해보면 어떨까? 전국에 있는 4,50대의 남자들은 한 번쯤 검색해보고 자연인의 삶을 꿈꾸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가능하다. 하루 10만 원이면 해남에 있는 정원 딸린 아늑한 집에서 자연인의 삶을 미리 체험해볼 수 있는 것이다.


브랜딩이란 사람들의 숨은 욕구를 찾아 이를 사업으로 확장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어센트 코리아의 서비스로 '자연인'을 검색해보았다. TV 프로그램 검색어 사이에 매매, 토지 같은 관련 키워드들이 보인다. 분명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 번쯤 나만의 자연 생활을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임야나 산 속 집들을 검색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핵심 타겟은 MZ 세대가 아닌 4,50대 남성들이란 점이 명확해진다. 그렇다면 이들의 숨은 욕구가 무엇인지, 왜 남편들이 맨날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는지 알아보는 것이 먼저 아닐까?


KakaoTalk_20220604_200251668.jpg
KakaoTalk_20220604_200251668_03.jpg


일주일 동안 각자 고민해보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일단 가까운 친구들에게 먼저 물어볼까 한다. 혹시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는지, 본다면 왜 보는지, 그런 곳이 있다면 며칠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아니면 아주 살아볼 생각을 해본 적은 있는지. 이게 완전한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해갈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나는 가능성을 본다. 나도 은퇴할 시점이 오면 5년 쯤 전에 계곡을 낀 산속 집 하나를 알아볼 생각이다. 아주 살지는 않더라도 가끔은 동굴을 찾듯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생각도 정리하고 글도 쓰고 싶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나 뿐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나부터 해남의 황토집으로 가서 며칠 묶다 오고 싶다. 비록 나 혼자만의 로망으로 끝날지라도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