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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박요철

간만에 석헌님을 만났다. 석헌님은 스몰 스텝 활동이 인연이 되어 처음 만났다. 육중한 몸매와 달리 아주 감성적인 사람이다. 평소 사진 찍는 일을 한다. 남에게 동기부여하는 일에 능하다. 그리고 매일 두 쪽씩 책을 읽는 사람이다. 혼자 읽을 뿐 아니라 단톡방을 만들어 매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올해 그가 바라는 일은 자신의 책을 내는 일이다. 나는 그의 책 쓰는 일을 돕고 있는 중이다.


강남의 한 카페에서 한결 날씬해진? 그를 만났다. 헤어스타일도 왠지 모르게 달라졌다. 알고보니 여자 친구가 생겼다 한다. 그럼 그렇지. 얼마 전 그는 원고를 보내왔다. 오랫동안 고민한 원고였지만 초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의 글 제목과 컨셉을 완전히 바꿔 다시 써달라 했다. 그 사이 석헌님의 글을 출간하고 싶다는 출판사 편집자도 만났다. 그에게 바꾼 컨셉대로 다시 샘플 원고를 써달라 했다.


어제는 그의 새로운 원고와 출판 기획서를 두고 의논하는 날이었다. 미팅은 의외로 빨리 끝났다. 그의 새로운 원고는 재미 있었다. 일단 글은 재미 있고 봐야 한다. 요즘에 볼거리와 읽을거리가 얼마나 많은가. 처음부터 사람의 눈길을 끌지 못하면 대부분 그 글은 혼자만의 글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도 혼자 읽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일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글쓰기는 어찌 되었든 소통의 수단이니까. 이제 그의 글을 잘 다듬어서 몇몇 출판사에 보내는 일만 남았다. 본론을 마무리하고 근황에 대해 물어본다. 나는 평소 사진을 찍는 그에게 유튜브 촬영해 대해 물어보았다.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다가 그의 입에서 '실시간 글쓰기'에 관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실시간 글쓰기? 그게 뭐지?


그의 아이디어는 이랬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전 과정을 유튜브로 생중계하자는 거였다. 고민하는 시간부터 쓰는 과정, 퇴고하는 과정까지 모두 실시간으로 보여주자는 거였다. 그 새벽에 누가 볼까? 하지만 못할 것도 없다. 나라면 누군가 글 쓰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면 흥미로울 것 같긴 했다. 집 안 깊숙한 곳에서 삼각대를 찾았다. 아이폰으로 최적화된 촬영 각도를 잡고 아이패드로 서브 모니터까지 세팅을 끝냈다. 그리고 지금은 실시간으로 하나의 글을 쓰는 중이다.


석헌님은 늘 그랬다. 자신도 그렇고, 남을 부추기는? 일에 능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곤 했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실시간 글쓰기 중계라니.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멍을 때리는 유튜브 동영상은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 글을 쓰는 장면을 볼 사람이 있을까?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채팅 창엔 나를 포함한 단 두 사람만이 함께 하고 있다. (정작 석헌님도 오지 않았다) 저 사람이 다른 어떤 누구인지, 아니면 내가 별도로 켜둔 노트북인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일도 모레도 이 글쓰기를 계속할 생각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그 도전이 꾸준히 쌓이면 그건 '혁신'이 된다. 사람들은 그런 도전에서 대리 만족을 얻는다. 실시간으로 하나의 글을 완성해 가는 일은 재밌다. 누군가 어깨 너머로 내가 쓰는 글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흥미롭다. 마치 무대에 오른 연극 배우 같다. 나는 이곳에서 글을 쓰고 퇴고를 하고 페이스북과 브런치에 글을 올릴 것이다. 그렇게 열흘, 백 일, 천 일을 쓰면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그 사이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나갔다.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세 명, 네명, 그리고 열 명이 이 글 쓰는 장면을 보게 되겠지. 걷는 사람 하정우처럼, 쓰는 사람 박요철을 만나게 되겠지. 언젠가는 실시간 채팅 창으로 소통하며 글을 쓸 수 있겠지. 글을 쓰는 중간 중간 피드백을 받을지도 모른다. 오타에 대해서, 잘못된 표현에 대해서 지적을 하는 사람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글쓰기가 재미있어진다. 아무도 그런 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슬슬 이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지금 시간은 5시 28분, 글을 쓰기 시작한지 30분 정도가 지났다. 이제 이 글을 브런치로 옮겨 다시 한 번 퇴고를 해야겠다. 여전히 채팅창엔 '2'라는 숫자가 흔들림 없이 지속되고 있다. 아무렴 어떤가. 마치 단 한 명의 관객을 두고 연극을 하는 배우, 노래를 하는 가수가 된 기분이다. 부디 이 도전이 누군가에게 즐거운 자극이 되기를,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소가 될수 있기를. 사람이 살아있다는 건 단지 숨 쉬는 것만이 아니니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제대로 '살아있음'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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