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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도 괜찮아, 어느 스몰리스트의 이야기

나는 어릴 때 키가 작았다. 지금도 작은 키지만 그때는 더 작았다. 그런데 키만 작으면 큰 문제가 아닌데 늘 위축되어 살았다. 늘 비교하며 스스로 '작아지는' 삶을 살았다. 어느 날 서울 사는 친척이 집으로 놀러왔는데 나는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 친구는 동갑내기 사촌이었는데 나보다 머리 하나는 컸다. 어머니는 늘 자신이 물젖이라 그렇다며 아쉬워하고 속상해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보다 더 속이 상했다.


어느 날 출판사 편집장님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해왔다. 왜 작은 것들에 대해 그리 관심이 많으냐 하는 질문이었다. 내가 쓴 책 제목만 해도 그렇다. 스몰 스텝, 스몰 스테퍼, 스몰 브랜드의 힘... 심지어 최근 새로 고친 브런치 이름도 '스몰리스트'이다. 한 마디로 작은 것들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그런데 한 번도 그 이유를 생각해보지 못했다. 브랜드를 공부한 입장에선 당연한 '차별화'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왜 작은 것들에 그토록 천착하는지에 대해선 그리 많은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그게 궁금해진 것이다.


나는 화려한 장미보다 길가의 들꽃에 더 마음이 간다. 브랜드 관련 회사를 다닐 때 크고 화려한 브랜드보다 작지만 알찬 회사들에 더 마음이 갔다. 버려지고 다친 고양이를 살뜰히 챙기는 와이프를 보고 결혼을 결심했다. 아마 그 속마음에는 나같은 사람을 끝까지 이해하고 챙겨주리라는 작은 기대가 숨어 있었던 건 아닐지. 아무튼 작은 것들에 대한 나의 유별난 애정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은 것들의 세계를 애정어린 눈으로 써보기로 했다. 세상 작은 것들의 가치를 재발견해보기로 했다. 이 작음은 물리적인 크기만을 말하지 않는다. 소심하고 위축되어 평균적인 삶이라도 살았으면 하는 지금의 세대들에 대한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작다는 것은 나쁜게 아니다. 평균의 미만이란 뜻도 아니다. 크기가 작음에도 가치가 큰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일부러 '작음'을 선택한 미니멀리스트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지금부터 이 작은 것들의 유쾌한 반란에 대해 써보려 한다. 결코 170을 넘지 못한 169센티의 삶에 대해 말하고 싶다. 평균의 키, 평균의 아파트, 평균의 삶을 갈망하던 어느 소시민의 삶에 대해 써보고 싶다. 하지만 그 작음에서 커다란 가치를 조금씩 길어올리는 평범한 삶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싶다. 작지만 큰 삶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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