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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겐 소고기를 사주는 친구가 있습니까?

작아도 괜찮아, 어느 스몰리스트의 이야기 #02.

두 명의 친한 친구가 있다. 편의상 L이라고 하자. 이 친구는 보통의 키에 피부가 하얀, 잘생긴 친구였다. 특히 함께 다니던 교회에서 인기가 많았다. 오죽했으면 그 친구와 결혼했던 한 살 많은 누나가 결혼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이 친구를 사모하던 다른 교회 자매들을 향한 진심의 표현이었다. 다소 공분을 사긴 했지만 이 친구의 인기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친구인 P는 독특하고 비범한 친구였다. 누가 봐도 기골이 장대한 친구인데 섬세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친구를 잘 챙겼다. 따르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감성적인데다 자학적인 데가 있어서 늘 좌불안석하며 지켜보는 친구였다. 멀쩡한 학교, 멀쩡한 직장을 여러 번 때려치웠다. 한 번은 같이 일하던 동료를 때려서 친구들이 합의금을 물어주기도 했다. 누가 봐도 상대방의 잘못이었지만 성격 급한 친구의 대처가 너무도 경솔했다. 지금도 이 친구는 여전히 투덜거리며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친구에 대한 나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된 계기가 하나 있었다. 그건 최근 들어 내가 하는 일이 조금씩 풀리면서 빚어진 일이었다. 예전보다 수입이 조금 늘자 나는 친구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소고기를 샀다. 그것도 자주 샀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조금씩 자신감을 갖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 L이 단톡방을 나가 버렸다. 하지만 다른 친구는 툭하면 부산에서 올라와 고기를 사달라 졸랐다. 잘 나가는 친구한테 밥 얻어 먹는 걸 즐기는 눈치였다. 나는 비로 이 두 친구의 마음의 크기를 명백히 가늠할 수 있었다.


친구 P의 증언에 의하면 L은 내가 예전보다 돈을 조금 더 번다는 사실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항상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자신보다 앞서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나는 기가 찼다. 그래봐야 1인 기업, 프리랜서의 삶이고 보면 당장 다음 달을 기약할 수 없는 나를 보고 비교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다만 최근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위축된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반면 P는 넉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나는 그 친구에게 새로 산, 그러나 내가 차지 않던 디지털 시계를 선물했다. 그후로도 여러 번 비싼 고기를 샀다. 그럴 때면 친구는 항상 말했다. 자기도 잘 풀리면 그만큼 쏠거라고 말이다.


마음의 크기가 작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언제나 불안한 행복을 가지고 살아간다. 비교와 경쟁에 의해 얼마든지 흔들리는 행복의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의 크기가 큰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주변 환경이나 사람들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더 따른다.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은 위로가 되서, 조금 잘 나가는 친구들은 마음이 편해서 따른다. 그런데 이 차이가 나이가 들수록 새삼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누가 나를 도울 친구인지를 선명하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오해는 마시라. 친구 L을 미워하지 않는다.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금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어서 마음이 작아져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할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조금 잘 나가는 친구에겐 소고기를 좀 얻어 먹어도 괜찮다. 조금 힘든 친구에겐 맛있는 걸 사줘도 괜찮다. 중요한 건 마음의 크기다. 마음이 크다는 건 자존감이 높다는 거다. 나는 마음이 큰 사람이고 싶다. 혹 형편이 어려워져도 소고기를 마음껏 얻어먹고 싶다. 그게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참된 지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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