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도 괜찮아, 어느 스몰리스트의 이야기 #03.
나는 지방대 출신이다. 부산에 있는 국립대학을 나왔다. 물론 20여년 전의 위상은 지금과 달랐다. 하지만 그것조차 옛날 얘기다. 이제는 인서울 외에는 모두 지잡대로 불리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차이를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경험한다. 아마도 나같은 지방대 출신들은 알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음을. 이대를 나온 회사 후배의 모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좋은 대학, 좋은 집안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결혼 상대자를 찾는다고 했다. 지방대인 내가 알지도 못하고, 따라갈 수도 없는 모임이다.
하지만 내게는 스토리가 있다. 일단 나는 군대를 다녀와 다시 수능 시험을 보았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서실 알바를 하며 6개월을 공부하고 다시 대학에 들어갔다. 수능 성적도 수학을 제외하곤 4% 내외의 실력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대부분 1등급인 성적을 받은 셈이다. 그래서 나는 학교를 부끄러워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더 만족스러운건 학교 생활이었다. 전공인 사회학은 발표 수업이 많았다. 6살 어린 동생들은 거의 모든 발표를 내게 맡겼다. 나는 4년 동안 날아다녔다. 그리고 누군가 대학 얘기를 하면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부끄럽지도, 그렇다고 자랑스럽지도 않다고 말이다.
지금도 내 주변에는 최고의 대학을 나온 지인, 친구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좋은 대학에 걸맞는 삶을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주는 감동은 아주 크지 않다. 낙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낙차란 기대심을 말한다. 서울대를 나온 사람이 뛰어나면 그런가보다 한다. 하지만 지방대를,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주는 감동은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낙차가 크기 때문이다. 기대없이 바라보니 놀라움도 크다는 말이다.
지방대를 나온 장점은 또 한 가지 있다. 소소하고 평범한 삶을 이야기하기 그만이라는 점이다. 내가 만일 최고의 대학을 나온 수재라면 내가 하는 이야기는 공감을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버드를 나온 사람이 스몰 스텝을 이야기하는건 얼마나 모순적인가. 그래서 나는 스몰 스텝을 이야기하고 스몰 브랜드를 이야기한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은 나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에 조금 더 공감한다. 이쯤되면 나의 약점은 약점이 아니다. 지방대 출신을 굳이 약점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말이다.
비교와 경쟁이 차별화의 전부는 아니다. 생각의 전환만으로도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 수 있다. 룰을 바꿀 수 없다면 운동장을 바꾸면 된다. 수억 짜리 컨설팅 시장은 또 그들만의 경쟁이 있을 것이다. 거기선 아무리 좋은 대학도 평범해지는 그런 시장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써 나의 스펙을 높이기 보다는 작은 시장을 찾았다. 나의 도움이 가치있어지는 작은 브랜드를 찾았다. 그리고 거기에 '스몰 브랜드'란 이름을 붙였다. 나의 소소한 삶에 '스몰리스트'란 수식어를 붙였다. 그런 나는 지금 행복하다. 그래서 내 스펙이, 그리고 내 삶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