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도 괜찮아, 어느 스몰리스트의 이야기 #04.
내가 군대에 막 입대할 때의 몸무게는 50kg 정도였다. 아마도 조금만 노력했으면 면제를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아들이 오죽 걱정되었으면 의정부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는 나를 부모님이 몰래 훔쳐 보셨을까. 그야말로 물가에 애를 내놓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6주의 신병 교육을 받은 나는 단 3명에게 주어지는 사단장 표창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기막힌 반전이었다.
나는 소심한 사람이다. 한자 뜻 그대로 마음이 작은 사람이다. 하지만 마음이 작다는 것이 곧 비겁하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조금 섬세하고 예민할 뿐이다. 나는 군대를 애써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부끄러운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4중대 4지대 184번 훈련병이라는 번호가 훈련병 생활 내내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필이면 왜 죽을 4자가 3번이나 반복된다는 말인가. 군 생활 내내 이런 소심한 마음으로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하지만 적어도 비겁하진 않았다.
오늘은 오랜 지인을 만나 그가 꿈꾸고 있는 아이템에 대해 이야기했다. 평범한 직장 생활에 지치는 그는 지금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주먹만한 수박을 재배한다고 했다. 나는 흥미로웠다. 오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이겨내고 자라는 식물에 마음을 쏟게 된 그의 회복을 응원하고 싶었다. 지금은 바야흐로 600만 1인 가구의 시대 아닌가. 2,3만 원 짜리 큰 수박을 사서 못 먹고 버릴 바에는, 어쩌면 그들에게 이란 앙증맞은 크기의 수박이 사랑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다. 살 수 밖에 없는 진심어린 브랜드 스토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조건 없이 그에게 도움을 주기로 했다. 나의 '작은 마음'이 쉽게 움직인 탓이다.
오후에는 아이용 드레스를 만드는 브랜드 대표를 만났다. 어느 창업 지원 재단에서 만난 이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도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정말로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물었다. 네이밍을 도와달라고 했다. 컨셉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시피한 대표님을 붙들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다시 마음이 동했다. 치위생사로 일했지만 다시는 그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금처럼 아이를 위한 옷을 만드는 일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래서 예쁜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순백의 이미지를 담은,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런 이름을 원한다고 했다. 최소 1,2주는 고민을 해야 하겠지만 돕기로 했다. 또 한 번 나의 '작은 마음'이 동한 결과였다.
나는 여전히 소심한 사람이다. 내가 아직도 운전을 배우지 못한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면허를 따자마자 스타렉스를 대절해 동네 아줌마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난 와이프가 심히 존경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비하하진 않는다. 나는 소심할 뿐 아니라 예민한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소소한 필요를 읽는 일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찾는다. 작게 시도하지만 끈기있게 지속할 수 있다. 이렇듯 모든 성격에는 양면성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여전히 소심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예민함으로 '나다운' 삶을 찾아낼 수 있었다. 비겁하지 않은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타인과 동행하는 지혜를 배웠다. 비록 30kg이나 불어난 몸무게를 조율하는데는 실패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