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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전차'는 무엇인가요?

작아도 괜찮아, 어느 스몰리스트의 이야기 #05.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강력하다고 여겨지는 전차가 있다. 바로 독일의 6호 전차 티거다. 밀리터리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독일은 패전했지만 이 탱크 만큼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2차 대전 당시 적국이었던 영국의 박물관, 그것도 제일 좋은 자리에 별도로 전시되고 있을 정도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말한대로 아름답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 전차 한 대가 소련의 전차 22대를 격파한 기록이 있다. 티거의 개발 초기,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나는 한 때 이런 티거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유능하고 탁월한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잘나고 일 잘하는 사람이 넘쳐났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다음과 같은 깊은 깨달음에서 왔다. 회사는 일만 잘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일을 못해도 정치에 능한 사람이 높은 자리를 꿰어차곤 했다. 리더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나는 일에도 관계에도 젬병이었다. 깊은 우울이 찾아왔다. 티거는 커녕 보병 한 사람의 몫도 못하는 기분이었다.


996B84455B431DFC2F 독일의 6호 전차 '티거'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갑작스럽게 퇴사를 했다. 먹고 살기 위해 홀로 전장으로 나섰다. 그리고 선의를 가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의 작은 지식과 경험도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치 티거의 정비창에서 소련의 T-34, 미국의 M4 셔먼 탱크를 만드는 곳으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었다. 이 전차들은 독일의 티거와 동시대에 경쟁했던 탱크들이다. 그런데 성능은 티거에 못 미쳤지만 장점이 있었다. 생산이 쉽고 수리가 용이하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티거는 전쟁 내내 1300여 대 밖에 생산되지 못했다. 하지만 T-34의 생산대수는 3만 8천대였다. 셔먼은 모두 5만 대 이상이 생산되었다. 그리고 전쟁은 이 두 나라가 이끄는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나는 아름답고 강력한 티거 전차가 아니었다. 조종이 쉬운 T34이거나 수리가 용이간 셔먼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에 대한 기대치와 욕심을 버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나처럼 평범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스몰 스텝'이라는 책을 쓰고 세바시에 나가 강연을 했다. 수십 개의 스몰 브랜드를 만나 컨설팅을 했다. 이 일은 티거를 만들고 조립하는 수고의 절반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이전의 나와 달라진게 없었다. 그저 내가 필요한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우연한 선택이 내 삶을 바꿔 놓았다. 나는 내 인생의 전쟁에서 비로소 조금씩 승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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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소련의 T-34와 미국의 M4 셔먼


독일은 이 엄청난 무기를 만들고도 졌다. 전쟁은 탁월한 소수의 무기보다는 보통의 성능을 가진 엄청난 물량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탁월한 스펙을 가진 소수들이 승리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길고 행복의 모양은 다양한 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다. 혹은 평범에 미치지 못한 자원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수능 1등급을 받는 학생들은 겨우 4%다. 전체 직장인들 1억 이상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6%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은 언제까지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을 위한 들러리가 되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그래서도 안된다. 삶이라는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는 나와 같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다.


작고 평범한 인생들의 세계에서 탁월함은 돌연변이다. 소수이다. 그런데 왜 나같은 보통의 사람들이 기죽어야 하는가. 우울해야 하는가. 수능 상위 4%가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연봉 상위 6%가 행복을 장담하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전장에서 필요한 것은 만들고 쉽고, 조종하기 쉽고, 수리도 쉬운 행복이다. 거대한 성공이 아닌 소소한 일상에서의 승리가 더욱 필요한 법이다. 벤틀리에 올라 고민하는 CEO 보다는 버스에 타고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내 인생이 나는 더 만족스럽다. 나는 티거가 아닌 T-34, 셔먼의 삶을 선택하고 나서야 비로소 행복해졌다. 강력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내 인생의 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차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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