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도 괜찮아, 어느 스몰리스트의 이야기 #06.
내가 전학을 한 건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그 전까지는 경상도의 어느 시골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그 학교에서 나는 모범생이었다. 반에서 1,2 등을 다투었을 뿐 아니라 교무실에 모르는 선생님들이 없었다. 하지만 한 번의 전학으로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학을 한 시기가 그랬고, 시골에서 이사간 학생에 대한 시각이 그랬다. 전학이 원활치 않아 꽤 긴 공백이 있었던 것도 문제였다. 그렇게 전학을 간 첫 시험에서 내 성적은 급전직하했다. 같은 과목을 공부했는데도 공부 환경의 변화가 준 충격은 뜻밖에 컸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학생에서 아무도 관심두지 않는 무명의 학생으로 전락했다.
나는 똑똑하였으나 환경 때문에 성적이 떨어졌다고 변명하고자 함이 아니다. 모두에게 추앙?받는 위치에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위치로의 급전직하가 준 변화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함이다. 늘 칭찬받는 사람은 칭찬받지 못하는 사람의 비애를 가늠하지 못한다. 늘 무시당하던 사람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달콤함을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시골에서 도시로, 우등생에서 평범한 학생으로의 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누군가의 기대와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추락은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여정은 대한민국에서 갈 수 있는 최하위권의 4년제 대학, 그리고 그 학교에서도 야간학과를 들어가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내 삶은 아주 바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약간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던 건 다름아닌 교회 덕분이었다. 적어도 내가 다녔던 교회에선 학교를 가지고 평가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려던 교회의 욕심이 전혀 없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분위기에서 조용히 내가 잘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교회는 청년부나 대학부에서 주보를 만든다. 일종의 소식지인 셈인데 보통의 주보는 약간의 소식과 한 두개의 투고를 싣는게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이 주보를 남다르게 만들었다. 16페이지의 잡지처럼 만들었다. 대선이 있던 해에는 선거 특집판을 만들었다. 글 뿐 아니라 솜씨 있는 친구의 일러스트도 실었다. 서울로 상경해 기독교 출판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쉽고 재미있었다. 주말은 주보를 만드느라 아주 교회에서 살았다.
최근 방영 중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친구에게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단짝 친구가 없었더라면, 그랬다 해도 우영우라는 변호사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한낱 드라마라지만 실제로 자폐증을 앓는 변호사가 미국에도 있었다. 백 번 양보해서 드라마라 치부하더라도 이 말만은 해보고 싶다. 한 사람은 그 한 사람의 기질과 능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한 사람을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의 격려와 사랑만으로도 달라지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그때 교회를 찾았던 것은 행운 중에서도 행운이었다. 스펙이나 외모가 아닌, 신앙이라는 관점으로 나를 바라볼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그래서 나는 평등에 민감하다. 수직적인 조직과 권위적인 사람을 매우 견디기 힘들어한다. 제 아무리 인턴이라 해도 존대를 하고 존중을 했다. 내가 지방대 출신이니 누군가를 학벌로 무시해본 적도 없다. 키가 작으니 외모가 떨어지는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도 않았다. 겸손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겸손을 배웠다. 그래서 교회가 동성애를 허락하지 않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인데, 한 인간을 모자라고 병든 채 세상에 내보낼리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런 생각으로 나는 여전히 많은 곳에서 경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나의 애티튜드가 나다운 것이라 믿는다. 자랑스러운건 몰라도 부끄럽지도 않다.
인간은 타인과 어울리며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법이다. 골방에서 홀로 도를 닦는다 해서 그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완성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나는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 나는 불완전하고 그래서 불편한 관계들을 많이 만들어왔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심을 한다. 내가 하는 일들로 누군가가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그러니 자기계발을 하고 스펙을 쌓는 것만큼이나 관계를 만들어가자. 존재 자체만으로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줄 그 한 사람을 찾는데 소홀히 하지 말자. 혹 그런 사람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지키자. 그리고 그 안에서 나답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