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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은 '인스타그래머블'한가요?

작아도 괜찮아, 어느 스몰리스트의 이야기 #08.

연세 우유로 만든 크림빵이 인기다. 포켓몬 빵 열풍이 불어닥친지 얼마나 되었다고 새로운 아이템이다. 하지만 우린 늘 그랬다. 허니버터칩을 구하기 위해 편의점을 뛰어다니던 기억이 그리 오래지 않았다. 요즘은 테니스가 인기라 한다. 골프보다 싸지만 만족도는 높아서라고 한다. 국뽕의 시대이니만큼 솔직한 자기 고백 하나쯤은 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냄비처럼 쉽게 끓고 쉽게 식는다. 그건 한 편으론 열정이지만 한편으로는 쏠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쏠림에는 자기 생각이 없다. 우리는 '우르르' 남의 생각을 쫓아간다.


'인스타그래머블'이라는 말이 있다. 한 마디로 사진 잘 나오는 식당과 메뉴, 아이템들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 카페는 반드시 포토존을 갖춰야만 한다. 아니 굳이 만들지 않아도 사람들이 만들어낼 때도 있다. 이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맛난 식당에서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은 게 뭐 그리 욕심일까. 하지만 온 국민이 그러고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본질을 놓치고 있다면 그건 문제가 된다. 우리는 왜 식당에 가는가.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행복해지고자 함이 아닌다. 그런데 '나 맛있는거 먹고 살아', 나아가 '나 너보다 더 행복해'라는 웅변을 담고 있다면 이건 식당의 본질을 벗어난거다. 자의식의 과잉이자 불필요한 비교 의식이다.


이런 유행은 필연적으로 생명이 짧다. 2,3년 전에 유행했던 카페나 음식점 중 살아남은 가게는 몇이나 될까? 한때 '다운타우너'라는 버거 브랜드가 유행했었다. 이 브랜드를 만든 회사에서 다시 '노티드'라는 도넛 브랜드를 만들었다. 아주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럽다. 직접 매장을 방문해보니 노란색의, 아주 밝은 채도의 캐릭터 그림으로 가득차 있었다. 어느 디자이너와 콜라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공간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과연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시 이곳을 찾을까. 인증샷을 찍으러 온 이들은 이미 목표를 이루지 않았는가. 성수동에 있는 '앵무새'를 찾았을 때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의 경험, 그것은 손님들 뿐 아니라 브랜드를 만든 사람도 의식한 목표가 아니었을까?


'카페 진정성'이라는 커피 전문점이 있었다. 경기도 김포에 있는 그 넓디 넓은 매장에서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 집의 맛있는 밀크티를 이야기하며 스토리에 열광했었다. 하지만 불과 4년이 되지 않아 이 카페는 시즌 2.0을 이야기한다. 브랜드의 수명이 다했다고 판단한 듯 하다. 하지만 4년이면 잘 버틴 것이다. 좋은 브랜드라서 가능한 일이다.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유행이 끝나버린 브랜드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나는 가끔 이런 의문을 가진다. 수백 년 된 브랜드가 수두룩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좋은 브랜드를 가질 수 있을까? 과연 누가 10년 20년을 바라보고 사업을 시작할까, 하는 그런 의문이 앞선다. '인스타그래머블'이 유행하는 세상에선 변화가 필수다. 혹은 아예 리셋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전략은 필연적으로 생명이 짧다.


하지만 모든 브랜드가 그런 것은 아니다. 분당에서 산지 20년이 넘었다. 두 번째 이사 간 집의 윗층은 동네에 있는 두부 전문점을 하는 사장님이셨다. 처음엔 가게 하나를 했다. 그러다 장사가 잘되어 옆의 가게를 인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예 근처에 새로운 건물을 올렸다. 우리는 여름마다 그 집의 칡으로 만든 냉면과 콩국수를 먹었다. 귀한 손님이나 친구가 오면 그 집으로 인도했다. '두향'이라는 이 가게는 한 동네에서만 20년 이상을 했다. 메뉴도 달라지고 가격도 달라졌지만 어쨌든 생존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20년을 견딘 음식점은 이 동네에 없다. 10년을 견디는 카페의 주인은 건물주이다. 이런 현실이 비단 우리 동네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오랜 역사가 좋은 브랜드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대세만 따라서는 좋은 브랜드가 나올 수 없다. 때로는 대세를 거스르는 용기도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이런 용기는 인간과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무엇을 필요로 할까? 시장은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원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 질문에 한 가지를 더해야 브랜드가 된다. 이 제품은, 이 서비스는 과연 10년, 10년을 갈 수 있는 인내와 진정성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우리들의 삶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한 번 뿐인 인생, 남다른 길을 걸어갈 용기가 있는가? 대세를 거슬러 '나다운 삶'을 고집할 인내와 진정성이 있는가.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 대세에 주눅들지 않을 수 있다. 내 '작은' 인생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포켓몬 빵에 대한 미련, 연세 우유빵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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